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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속의 눈 - 눈내리는 겨울과 가난한 화가

김달진

요즈음 겨울 문턱에서 첫눈을 기다리는 연인들이 많다. 첫눈이 내리는 날 만나기로 한 약속을 상기하며 기상청에 문의도 한다. 사람들은 눈을 좋아한다. 또 눈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겨울, 크리스마스, 눈사람, 스키, 동계 전국체전 등을 연상하고 눈에 대한 추억들을 가지고 있다. 눈이 내려 산과 들, 마을까지 덮어버리면 깨긋함과 포근함을 느낀다.

눈에 관련된 풍경은 흐린 겨울 하늘에서 함박눈 내리는 모양, 삭풍이 불어 눈발이 휘날리는 모양, 외딴 산골짝의 눈 덮힌 소나무, 눈을 밟으며 멀리 걸어가는 사람의 뒷 모습, 눈에 갇힌 어촌의 모습, 번잡한 스키장의 인파를 연상한다. 겨울 그림을 주제별로 크게 나누면 겨울의 경관 그 자체를 다룬 것,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고사를 그린 것, 겨울의 갖가지 풍속을 묘사한 것, 겨울을 대표하는 수목과 화조를 그린 것 등이 있다.

가난한 예술가에게 겨울은 지내기 어려운 계절임에는 틀림이 없다. 화가들에게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고독한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기에 겨울은 적절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다른 예술작품에 비해 겨울을 배경으로 한 미술작품을 만나기는 어렵다. 계절의 변화에 민감했던 인상주의자들을 제외한다면 겨울날의 마른나무가지와 눈덮힌 자연의 모습은 매력적인 예술의 소재는 아니었던 듯하다.

그러나 전통시대의 화가들에게 겨울은 우주의 만물이 순환한다는 그들의 세계관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소재였던 듯하다. 특히 가난하고 현실세계에서 외면받았던 화가들일수록 겨울은 가장 매력적인 계절이 아니었나 싶다. 조선의 19세기 천재화가로 30세에 요절한 고람 전기의 <매화초옥도>는 그래서인지 더욱 빛이나는 작품이다. 병약하고 가난했던 그에게 겨울이라는 계절은 자신의 내면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소재였던 것이다. 눈덮힌 적막한 산속에 홀로 은거하는 친구를 찾아가는 붉은 옷을 입은 이는 가난하고 고독한 벗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거문고를 메고서 친구를 위로하고 풍류를 즐기고자 하는 그의 마음씨가 이 가난한 예술가에게는 눈덮힌 산에서 느껴지는 따뜻함만큼이나 눈물겹게 고마왔을 것이다. 신분의 갈등으로 괴로와했던 19세기 직업화가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기에 첩첩산중의 겨울날은 가장 매력적인 소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함박눈처럼 만발한 매화는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준 친구의 마음을 상징하는 하나의 모티브이기도 했다.

모든 생명도 잠시 대지속으로 들어간 엄혹한 계절에 홀로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고독한 화가에게 만발한 매화는 그의 벗이자 마음을 의탁할 수 있는 유일한 자연의 생명체였다. 이제 눈오는 계절이다.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마음의 벗이 그립다. 만물의 영장 인간도 겨울만큼은 위대한 어머니 자연의 품에 안겨 한없이 겸손해지는 마음이 간절하다. 고독한 천재가 아니라도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만 있다면 눈 덮힌 겨울날의 혹독한 고독도 달갑게 느껴질 듯 하다. 첫 눈오는 날, 연인보다는 마음의 벗과 함께 술 한잔하며 오손도손 인간의 겸손에 대해 얘기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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