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행복한 모범생, 수화 김환기 (樹話 金煥基)

김달진

올해는 수화(김환기의 호) 타계 25주기로, 그 추모전을 환기미술관, 갤러리현대, 원화랑 세 곳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중 환기미술관은 1950년대 그가 집중적으로 다루었 던 백자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모아 <백자송>이란 특별전을 꾸며 7월까지 기획전을 연 다. 단순히 백자를 사실적으로 그렸다기보다는 여인, 매화, 새, 집, 정물 등과 어우러진 구성적인 요소가 많다. 전시는 작품 이외 실제 백자, 참고 사진, 스케치, 인쇄물로 꾸며 폭넓게 관람객의 시선을 유도해 주고 있다.

한 작가가 평소에 수집을 하고 애착을 가졌 던 조선조 백자를 어떻게 조형화했는가를 보여주며 한 예술가가 조국의 문화에 얼마나 깊은 감명을 받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다. '나로선 미에 대한 개안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림에는 수화의 맑고 소박한 품성이 풍겨 나오고 있다. 환 기미술관은 도심에 위치하고 있지만 주택가 안쪽이라 조용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지금 그 곳에는 채송화, 할련, 꽃잎이 떨어진 할미꽃, 꽃망울이 커가는 함박꽃, 초롱꽃 등 이름 모를 들꽃이 피어 미술관 안의 작품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환기는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일본대학을 나와 해방후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모더니즘 회화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홍익대교수, 미대학장을 역 임했고 1956년부터 3년간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후 1963년에는 한국미술 협회 이사장으로 브라질 상파울로비엔날레에 출품하여 명예상을 수상했으며, 그후 미국 에서 활동하다 1974년 61세의 일기로 작고하였다. 세상에는 화가도 많다. 그러나 미술가로 평가받고 미술사에 자리잡기는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 김환기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지주의 아들이었고 국전에서도 1회부터 추천작가로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미술대학교수를 지냈고, 작가의 영예인 예술원회원이 되었었다. 그는 이중섭처럼 파란만장한 역경이 삶의 기로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박수근처럼 가난과 신체적 고통이 없었으며, 이응노처럼 정치적 시련을 겪지 않았다. 다른 작가들 과 달리 국내에서의 활동이 끝나지 않고 프랑스, 미국 등을 통해 코스모폴리탄적인 작가 로 성장했다.

타계 후에도 서울 뿐만아니라 뉴욕, 파리, 도쿄에서도 전시가 이루어졌다. 여기에 1992년 개관한 환기미술관은 가장 모범적인 운영으로 사설 미술관의 귀감이 되고 있다. 환기미술관(설계자 우규승)은 1994년 김수근건축상과 작년 12월 문화관광부의 문화 기반시설 관리운영 평가에서 소장품관리 영역에서 격려상을 받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매년 그가 남기고 간 작품을 가지고 뉴욕시대, 엽서화, 십자가 구도, 과슈화, 편지그림을 모아 보여주며 회고전, 10주기전, 탄생 80주년, 20주기전 등 다양한 기획전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 환기재단이 설립되어 있고 환기미술관은 여러 종의 화집, 아트 상품들이 항상 우리 곁에 남아 예술의 빛을 발하고 있다. 시대를 넘어 기억되는 화가 김환기, 이제 우리는 그를 미술사에서 가장 행복했던 모범생으로 기억한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