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미술은 아무 데나 있다

김달진

집사람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배우자가 있다. 바로 미술이다. 얼핏 따져보아도 미술과 관계를 맺은 지가 25년(은혼식)이 훌쩍 넘은 것 같으니,미술은 진짜 집사람 만큼이나 아주 편하고 다정하게 여겨진다. 곰보여자와 살아도 살다보면 정이 담뿍 들어 그 곰보자국 하나하나마다 정겨운 사연이 담긴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아름다운 미술과 더 아름다운 집사람이 동시에 곁에 있으니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런 나에게 사람들은 미술은 어려운 것, 현실과 유리된 것이라는 하소연을 한다. 또 묘한 것이 그런 말을 들으면, 그럴만도 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미술하면 먼저 그림을 생각하고, 또 현대미술을 생각하고는 선입견을 가지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그림(현대 미술)이 참 어렵게 다가오는 때가 많다. 그러나 미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고 관점을 맞추어 나가는 것(조금 유식을 떨자면 지평을 설정한다고 할까)이기에 어렵다고 외면하지는 않는다.

한 예로 우표수집을 들어보자. 처음부터 우표의 역사나, 양식 그리고 디자인사에 대한 체계를 세 우고 우표수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있다면 희귀우표를 모아 나중에 한 몫 보려는 경우가 있을까. 그저 배달되어 오는 편지지에서 우표를 모으고, 모으다보니 분류가 생기고 그런 과정 뒤에 좋아하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표의 구분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우표에 관한 정보가 쌓여지고 안목도 길러지게 된다.

미술도 비슷하지 않을까? 관심사를 굳이 미술사가나 미술작가 그리고 미술평론가들에게 맞출 필요는 없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시각물에 맞추고 그것을 즐기며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굳이 회화나 조각 뭐 그런 장르가 아니어도 좋다. 솔직히 요즘 나의 고민거리기도 하지만, 웹(Web)이 미술의 한 부분이 되리라고 불과 5년 전 그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싶다. 미술은 또한 생활 가까이 있다. 우표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그 범위가 넓기 때문에 우표보다도 친근한 것이다. 사진, 영화, 만화, 광고 등 주변의 모든 시각물 장르를 거론하기에 앞서서라도, 아침에 당장 셔츠와 넥타이를 고르고 그 색상과 문양을 조화시키는 작업도 미술행위니까 말이다.

문득 지난 1995년 광주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만난 한 전라도 촌로(村老)가 생각난다. 쓰레기를 쌓아놓고 무슨 예술이냐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던 주름깊던 그 표정. 나는 전시장을 뒤돌아 나오며, 촌로의 머리 속에 있었을 사군자나 산수화를 떠올리며, 또한 널려진 시각물에 대해 느꼈을 낭패감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낭패감의 느낌도 소중한 것이다. 이제 과거 미술은 이런 거라고 교육/계몽 받았던 미적 희열, 시각적 유희 등등의 감정을 잊어먹자. 성속미추(成俗美醜)의 구분을 벗어나, 내가 중심에 있다고 느끼는 감정의 동요, 그 자체가 미술이 주는 선물인 것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