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진
미술잡지의 역사 100년을 읽다
- 1917년 <미술과 공예>에서 2019년 현재까지
김달진 |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서울아트가이드 편집인
우리 김달진미술연구소 &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자료실에는 매월 미술잡지가 30여종 정도 도착한다. 순수 미술종합지, 공예, 서예, 디자인, 사진, 건축 잡지 등 다양하다. 입수된 잡지를 한번 씩 넘겨보고 몰랐던 정보를 수집하고 필요한 내용을 기록한다. 특집 주제가 무엇인가? 어느 작가를 클로즈업 했나? 새로운 필자는 누구인가? ...특히 우리가 소장품 차원으로 관리하는 D폴더 작가의 작가론, 리뷰 등을 보게되며 원본(복본인 경우) 기사 또는 복사를 해서 해당작가의 파일 속에 추가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종이잡지는 온라인 플랫폼에 밀려 발행부수도 줄고 광고 매출이 줄어드는 현실이다.
금년들어 『묵가』는 2006년 창간한 서예 3대 잡지 중 하나인데 2월호로 잠정적 휴간(폐간을 의미)을 밝혔다. 『미술세계』가 11월호부터 운영난으로 발행인이 바뀌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에서 미술잡지는 시대별로 어떻게 변해 왔을까? 그 역사를 그간 필자가 수집,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살펴보았다.
우리나라의 최초 미술잡지는 무엇일까? 1917년 4월 동양미술협회 이사장이었던 야마구치 세이(山口 精)가 편집한 『미술과 공예』가 창간되었다. 그는 동양문고 주임으로 총독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주요 간행물을 발행 및 수집 기증도 받았다. 잡지 내용은 삼국시대부터 구한말까지 대략적인 미술품과 공예품 소개, 잡록, 회원의 소리로 구성되었다. 2호는 1917년 6월에 발간되었다. 1921년 10월에 발행된 『서화협회회보』는 우리나라 사람에 의한 최초의 미술잡지이다. 이 잡지는 서화협회의 회보였지만 홍방현을 발행인으로 목차와 판권을 갖춘 정기간행물이며 당시 정가는 40전이었다. 크기는 18×26cm(4×6배판)크기의 판형으로 제작된 이 책은 본문이 21쪽으로 되어 있는데, 회고를 통해 1년에 4회씩 발행되는 계간임을 밝히고 있다.
1922년 3월 15일에 발행된 『서화협회회보』 2호는 발행 예정일자가 1월 하순이었으나 늦어졌음을 회고를 통해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현재 이 책은 희귀본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지학자 안춘근이 1984년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한국근대미술자료전』에 출품되었는데 이 때 필자가 국립현대미술관 근무시절이라 이 잡지를 접했다. 2010년 우리 박물관이 경매에서 낙찰받았으며 외부 기관의 대여요청과 열람예약을 많이 받고 있다. 1926년 『조선예술잡지 조』가 발행되었다.
민족해방을 맞은 직후인 1946년 5월 조선조형예술동맹은 4×6배판 크기의 16쪽짜리 『조형예술』을 창간했는데, 정가 10원에 판매되었다. 이 『조형예술』에는 뒤에 한국전쟁때 월북한 작가들의 글이 몇 편 실려져 있다. 이어『사진문화』1948년 7월
창간되어 12권이 발핸되고 한국전쟁으로 중단되었다.
이러한 미술 잡지와는 달리 본격적인 미술잡지의 창간을 선도한 것은 1956년 9월에 창간한 『신미술』이었다. 서양화가 이항성(1956년 당시의 이름은 이규성)이 발행인이었던 이 책은 4×6배판 크기로 정가가 5백환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1958년 10월, 제 11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다. 그동안 『신미술』은 국전, 대한미술교육회전, 자유초대미술전 등을 특집으로 다루었으며, 총 지면수 30-70쪽 가운데 대부분을 전시회소식과 미술교육에 할애했다. 1958년, 폐간 후에도 이 출판사는 미술평론동인회의 편찬을 통해 『미술평론』과 『미술과 대학입시문제』를 각각 12호와 13호로 이어 추가 발행하기도 했다. 주목할 것은 1956년 5월 『사진문화』 한국중견사진작가 지상전, 사진기술 ABC 등을 수록하며 창간하였다. 이『사진문화』는 1948년 동일한 제호인『사진문화』와 발행인과 발행처가 다르다.
북한에서는 발행한 잡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 1956, 1호(8월 발행/ 누계 5호)는 한상진, 오성삼, 박용달 등 조선미술가동맹 소속 미술가들이 조선화, 조각, 무대 미술, 원근법, 단원 김홍도의 작품과 생애에 대한 개요와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는 평론과, 북한에서 만들어진 총 33점의 작품이 수록되었고 정가 60원이다.
『조선미술』 1958, 1호(1월 발행)는 10월 혁명 40주년 기념전 관련 기사, 새해결의에 7명 미술가들의 각오, 국립중앙미술박물관 개관 소식, 인명사전: 현대쏘련화가편, 그리고 다양한 작품 사진과 미술평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언에 나온 “우리 조선 인민들 앞에는 우리 혁명을 철저히 수행하기 위한 더욱 전투적이며 더욱 중요한 과업들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공화국의 미술가들은 우리 사업을 총화하며 거기에서 얻은 경험들로써 자기 사업을 더욱 풍부화해야한다.”는 문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회주의 선전의 성격이 강하다. 『조선미술』 1958, 3호(2월 발행)도 소장하고 있으며 정가는 70원이다.
『신미술』 폐간을 아쉬워하며 맞이한 ’60년대에는 1964년 6월 15×21cm크기의 52쪽 『미술』지가 창간되면서 미술잡지 출판의 새 장이 열리는 듯했다. 이 잡지에는 포프아트란 무엇인가?, 액션페인팅의 전제조건, 한국 근대화단의 개척자 고희동 등이 실렸으나 결국 폐간호가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미술잡지의 출판 명맥은 1966년 8월에 2종의 사진잡지 『사진예술』과 『포토그라피』, 11월에 종합 예술지 『공간』이 각각 창간되면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발행되고 있다. 『사진예술』은 1956년 『사진문화』 발행인이었던 조명원이 10년 만에 다시 편집인으로 복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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