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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김달진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김달진 권사

 

주여 나의 영혼과 가정의 앞날과 교회의 모든 일을 주님의 손에 의탁하나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먼저 외치는 주문이다. 아주 오래 전 교회 부흥회에서 목사님이 가르쳐주셨던 그 말씀으로 하루의 시작이다. 나와 최명자권사가 세검정교회로 옮겨온 게 1년이 지났고 함께 웨슬리찬양대원이다. 세검정교회는 1952년 창립된 교회로 대한기독교감리회 소속이며 장로가 20명이 넘는다. 처음 예배순서도 다르고 시니어 교인이 많고 남자 안수집사도 권사로 호칭이 낯설었다. 교구가 아니고 속회 활동으로 모이고, 동아리 모임으로 더욱 가까워졌다. 동아리 처음에 배드민트 모임에 신청했지만 활동이 이어지지 못해 선병철 권사가 진행하는 문학과 영화와 음악의 만남에 참여하고 있다. 교회 계간 <새빛으로> 발간도 역사이고 주일 오후 예배는 예배가 아니고 성경공부였다. 목사님의 일화, 사례로 시작하는 말씀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이곳 홍지동으로 이사와서도 10년이상 섬겼던 낙성대 해오름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이적은 쉽지 않았지만 대중교통 1시간 20분 소요는 부담이었다. 이제 교회와 직장인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몇 분 거리안에 있다는 건 축복이다.

 

작년은 우리 박물관이 개관 10주년 되는 해로 6월 박물관의 <한국 미술평론의 역사> 전시 개막을 목사님 예배로 시작했고 좋은 전시평가가 이어졌다. 미술평론가 51명이 걸어온 길을 부제로 미술평론가 개척자였던 1세대 이경성에서 2, 3세대까지 망라했다. 전시를 준비하며 어느 평론가는 유족을 찾을 수가 없었고, 누구는 병환 중이었다. 전시는 크게 개인, 단체 활동, 평론계 논쟁, 행사 기록, 주요 기사 목록, 연표 등으로 구성했다. 전시는 4개월 열흘간 열렸고 5명의 강연과 어린이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전시회 일환으로 만든 책 <한국 미술평론의 역사>가 한국박물관협회가 주관하는 2018 박물관·미술관 올해의 우수활동상: 출판물부문에 선정되어 2019114일 문화체육관광부 도종환 장관도 참석하는 전국 박물관·미술관인 신년교례회에서 수상한다. 나는 미술작가를 돌아보는 전시는 많지만 정작 중요한 미술평론을 다루지 않는 것이 아쉬워 기획을 했다. 그 중에 한 해 유준상, 김윤수, 박용숙, 3명의 평론가가 타계했는데 마지막이 되었다. 나는 박물관장이지만 큐레이터(2급 정학예사 자격증)로 미술 평론계의 쇠퇴와 어려운 현상을 파악하며 이 주제로 중앙대 예술대학원, 서울도슨트협회, 서울특별시박물관협의회, 김달진 박물관 등 4곳에서 강의하였다.

 

지금 박물관 전시는 작년 11월 말부터 420일까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아카이브 10>인데 박물관 개관 10주년 숫자이고 내용은 나의 48년간 컬렉션을 유형별로 보여주는 전시로 연구 결과를 책으로 함께 펴냈다. 미술연구자, 대학교수, 미술사를 전공하는 학생, 미술애호가, 언론보도를 보고 찾아오는 뜻밖의 손님 등 다양하다. 특히 이번 전시는 소장 유물들이 진열장에 전시되어 내용을 볼 수 없는 것을 탈피하기위해 1921서화협회회보 창간호, 1891조선아동화담 영인본, 1912년 아손 그렙스트의 I.KOREA, 1929년 안드레아스 에카르트의 조선미술사 한글 번역본 등이 준비되어 있으니 누구든지 찾아오면 된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욥기 87

 

중고교 시절부터 잡지에 서양에 유명한 명화(칼러화보) 뜯어 모았던 미술자료 수집이 하나 씩 발전하여 월간 전시계, 국립현대미술관, 가나화랑&가나아트센터를 거쳐 김달진미술연구소 개소하고 월간 서울아트가이드 잡지를 창간했다. 한때는 안방까지 들어놓은 박스위에 잠을 자야했던 불편한 기억, 1994년 성수대교, 95년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던 참사에 놀라 주인이 2층 마루가 휘니 방 빼달라던 때도 있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으로 나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개관했고,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를 창립하여 회장이다. 2010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통령상), 2016년 홍진기창조인상(유민문화재단, 중앙일보사)을 수상했고 2013년 중학교 도덕교과서까지 수록되었는데 '직업 속 가치탐구' 자료수집에서 아키비스트 archivist (기록관리전문가)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든 사례로 소개되었다. 두 번의 목척추 종양수술도 있었고 어려웠던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여기까지 인도해주셨다.

 

새벽 4시반에 벌떡 일어났다. 요즈음 2010년 펴냈던 대한민국미술인인명록에 이어 미술인인명사전을 내기위해 교정 중이다.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인을 2010년에는 4,900명 수록했고 이번에는 6,000명을 수록한다. 한 미술인의 학력, 개인전 5, 단체전 7회 이내 기록, 경력, 수상, 현직 등 내용을 담는데 끊임없이 수정사항이 나온다. 아니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다. 보람있는 일이지만 체력의 한계를 실감한다. 여기에 김달진미술연구소 & 박물관의 운영은 서울아트가이드 잡지 광고 수익에 의존한다. 그러나 매출의 감소, 12여명 직원의 연봉 인상 구조적인 한계를 타파하기 어려운 스트레스가 크다. 2018년 두 곳 대학원 강의, 13회의 특강, SNS 시대 페이스북에서 라이브 방송까지, 나의 숙명인 아트아카이브로 한국근현대 미술사 쓰기는 계속된다. 나의 일은 죽어야 끝나는데 너무 집착된 삶을 사는 내 자신이 미워지기도 한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 지리라잠언 163


이제는 나의 침대 위에 걸려있는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며 모든 일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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