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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미술평론가 (2)

김달진


오광수(80세) 선생과의 인연은 국립현대미술관 초대 전문직 관장이었던 이경성 관장은 덕수궁 동관 1전시장을 전문위원실·자료실로 바꾸셨다. 당시 오선생은 전문위원으로 미술관 전시기획을 자문하셨고 나는 새롭게 만들어진 자료실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오 선생이 미술관을 떠나신 다음에도 프랑스에서 『주간 조선』에 연재될 원고를 보내주시면, 조선일보사에 전달하는 일을 도와드렸다. 2007년 『오광수 고희기념논총』에 저작목록을 내가 작성했다. 2009년에는 오 선생이 창성동에 집을 신축할 때 연속간행물 팸플릿류 40종을 기증받았다.

우리가 발행하는 『서울아트가이드』에 「오광수 미술칼럼」을 2006년 1월부터 2014년까지 100회를 기고해주었고 나중에 『시대와 현장과 비평』단행본으로 발간했다. 말씀이 적고 무뚝뚝하다는 인상을 많이들 이야기 하지만, 원고와 시간 약속에 철저하였다. 우리 박물관이 개관 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후원회가 만들어질 때 준비위원장을 맡아주셨고, 박물관 운영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며 전시도 관람을 꼭 해주셨다. 환기미술관장, 국립현대미술관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 중요 보직을 역임했다. 현재는 80대 연세에도 원주 뮤지엄산 관장이다.
 

송미숙(75세) 선생은 전시나 미술행사에서 뵈었었고 『서울아트가이드』에 2009년부터 「송미숙 미술시평」을 4년간 연재하며 가까워졌다. 이러한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어렵게 느껴졌던 첫 인상이 만사가 정확한 성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도 아카이브로 사진, 육필원고 등을 기증하며 동참해주셨다.
 

옥영식(74세) 선생은 부산에서 이시우(1916-1995), 김강석(1932-1975)의 뒤를 잇는 미술평론가로 부산 미술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2006년 김달진 아트투어로 스페인 여행을 함께했으며 현재까지도 오랫동안 끊김없이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유홍준(69세) 선생은 『계간미술』기자 때부터 인연으로 1985년 겨울 딸 영나의 백일을 축하해주신다며 작가들과 함께 인천 주안에 동석해주셨다. 유선생이 『선미술』주간이던 시절 내게 청탁해서 쓰게 된 원고 「관람객은 속고있다」는 정확한 기록과 자료보존을 위한 제언 발표로 1985년 겨울호에 게재되어 미술계에 큰 화제를 모았다. 이 글은 작가의 화력, 팸플릿, 연표, 연보, 연감에서 잘못되고 누락된 기록들을 조목조목 사례를 들어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환기시켰다. 이 내용이 중앙지 4종 지방지 3종에 인용 보도되어 주목을 받았다. 이때 “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 역사로 남는다”는 나의 어록이 되었다. 이후에 자신감을 얻어 미술공모전, 대한민국공예대전, 미술상, 미술잡지, 아트페어 등을 잡지에 연이어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또한 1995년 내 저서인 『바로보는 한국의 현대미술』책에 「나의 또 다른 동반자, 김달진」이라는 제목의 추천사를 써주시기도 했다. ‘…김달진이 명확한 자료와 함께 제시한 증언들은 그 자체가 사료로서 영원히 살아 남을 것 같다…’

그 후 유선생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시리즈 스테디셀러작가로 문화재청장까지 역임했다. 너무 유명해져 거리감이 생겼지만 내가 2016년 홍진기창조인상 문화예술부문에서 수상하며 다시 만났다. 유선생은 2016년 소장해온 도서 5,000여 권과 유물 300여 점, 2018년 백자 100여 점과 도서 1,000여 권을 부여군에 기증하여 세차례의 기증유물전이 부여문화원에서 열렸다.
 

윤범모(68세) 선생은 1983년 한국일보에 「한국현대미술100년」을 연재할 때부터 그의 대단한 자료조사에 감탄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매주 전면기사를 기다렸다. 내가 국립현대미술관을 사직하고 가나미술문화연구소 자료실장으로 근무할 때 윤선생이 『가나아트』편집위원을 맡아 자주 만나게 되었다. 나도 1993년 한국근대미술사학회 창립에 동참하였고 그후에도 가장 많이 많났던 미술평론가의 한 사람이다. 2013년 1월호부터 현재까지 『서울아트가이드』에 「윤범모 미술시평」을 연재하고 있으며. 2010년 말 전북도립미술관에 미술도서와 자료 6,500여 점, 김진우의 <묵죽화>(1930년대) 등 40여 점을 기증했다.


김영순(66세) 선생은 현재는 미술평론가로 더 알려져 있지만 1983년 국립현대미술관의 2회 청년작가전 초대작가였다. 1984년 개인전도 가졌고 일본유학을 마친 후 미술평론가로 전환하여 한원미술관 관장을 역임하며 《한국현대미술의 “한국성” 모색》을 4부전으로 기획하였다. 그 후 현재의 광주 영은미술관 조성 건립 개관을 주관했다.


윤진섭(63세) 선생은 본인이 행위예술가로 활동과 개인전도 몇 차례 가졌다. 또한 우리미술 ‘단색화’ 명칭을 안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후원회 이사로 동참하여 박물관이 마포에 있을 당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 회수가 임박한 우리의 상황을 『서울문화투데이』에 두 차례 기고해주었다. 현재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후원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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