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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상미술 전시의 역사전(1)

김달진

한국 추상미술 전시의 역사 1957-2015

 

 

김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

 

 

 

추상미술이란 개념은 대상을 알아볼 수 있게 표현한 구상미술의 반대 개념인 비구상미술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우리는 최초의 추상화로 주경의 1923 <파란>(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을 꼽기도 한다. 본격적인 대두는1930년대의 동경유학생인 김환기, 유영국, 이중섭, 문학수 등이 관전을 외면하고 전위적인 그룹자유미술가협회’, ‘미술문화협회’, ‘백만회등을통해 모더니즘 작품을 발표한 때부터이다.

 

주경 <파란>, 1923

해방 이후 혼란기를 지나 6.25 한국전쟁의 시련을 겪은 후 1950년대 말 본격적인 추상미술운동이 일어났다. 새로운 소재, 기법의 개척, 대담한 미학모색, 국전의낡은 가치관에 반항하며 열기를 더해갔다.

1957년 본격적인괄목할 만한 활동을 보이기 시작하는데모던아트협회’, ‘현대미술가협회’, ‘신조형파전’, ‘창작미술가협회등이 창립되고 조선일보사 주최 《현대작가초대미술전》이 시작되었다.

 

 

공모전에서 추상미술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타려면 인물좌상을 그려라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국전에서는 아카데믹한사실그림이 대우를 받았다. 이러한 냉대 속에서 추상미술 최초의 최고상인 대통령상 영광은 1965 14회 국전에서 조각 박종배 <역사의 원>이 수상했다.그 후 1969 18회 서양화 박길웅 <흔적 백 F-75>1972 21회 서양화 표승현 <> 등 세 차례 있었다.

1974년 국전 대통령상 서양화 2, 유희영 <부활>

국전에서 구상과 비구상의 분리를 주장해 오던 것이 1974년 이루어졌다. 그동안 재야작가로 있던 동양화가 송영방, 전영화, 정탁영, 서양화가 박서보, 정영렬, 조용익, 하인두, 윤형근, 전성우, 하종현, 조각가이종각 등이 국전에 비구상 추천작가로 대거 영입되었다. 1975년에도 서양화가 김종학, 윤명로, 정점식 등이 있었다.

가을에 개최해 온 국전을 봄,가을로 분리, 봄국전은 2: 비구상(동양화, 서양화, 조각), 4(공예, 건축, 사진)로 가을 국전은 1: 구상(동양화, 서양화, 조각), 3(서예, 사군자)로 나누어 공모했다. 이후 1974 23회 서양화 유희영 <부활>,1975 24회 서양화 강정완 <회고>가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러던 것이 1977 26회부터 봄 국전에 서예, 공예, 건축, 사진, 가을 국전에 동양화, 서양화, 조각을 1: 구상, 2: 비구상으로 나누어 실시했다. 1977 26회 서양화 이반 <팽창력-겨울>, 1978 27회 동양화 황창배 < 51>, 197928회 조각 한창조 <역사의 문>이각각 대통령상 영예를 차지했다.

 

또 다시 제도의 변경으로 80 29회부터 대통령시상제는 폐지되고 부문별 대상으로 동양화 이석구 <잔영>,서양화 김진석 <그림자 802>, 조각이상갑 < 80>, 1981 30회는 동양화 오숙환 <휴식>,서양화 박재호 <사변의 시>, 조각전국광 <매스의 비> 수상을 끝으로 국전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언론기관 주최의 민전에서는 수상작품이 최고상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국일보사의 한국미술대상전에 1970 1회 김환기 <어디서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대상을 수상했고 1978 5회 지명공모 대상 윤형근, 일반공모 대상 진옥선, 1980 7회 지명공모 대상 하종현, 일반공모 대상 이동엽이 각각 수상했다. 중앙일보사의 중앙미술대전조각부문에서 1978 1회 강대철, 1979 2회 백철수 추상작품이 연이어 수상했다. 한편, 동아일보사의 동아미술제는 새로운 형상성을 내걸었기 때문에추상미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1950-80년대 추상미술 단체의 흐름

구상이 국전을 주 무대로 맥을 이어 왔다면 추상미술은 화단의 보수성을 배격하고 단체 활동, 국제전참가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50-80년대 추상미술의 흐름을 그 당시 활동했던 미술단체와 기획전을중심으로 살폈다.

1957년 창립된모던아트협회는 아카데미즘에 반발한 새로운 의식을 내세우며 일본에서유학했던 박고석, 유영국, 이규상, 한묵, 황염수가 창립하여 회원변동이 있으면서 1960년까지 6회전으로 해체되었다.‘현대미술가협회는 반국전을 내걸고 결성, 김창열, 장성순, 하인두 등 8명이창립하여 2회부터 박서보 등이 참가했는데 60년까지 1년에 1-2번씩, 6회전을가졌다. 1961 ‘60년미협과 《연립전》을 가진 후악뛰엘로재출발하였다.

‘현대작가초대전’은 조선일보사 주최로 1957년 서양화가20명을 시작으로 동양화가 조각가, 판화가로 확대되었다,1961-63년은 공모전을 병행하기도 하였다. 1964, 1965, 1967년은 열리지않았고, 1969 13회로 막을 내렸는데 우리미술계에 큰공헌을 남겼다.

1960년 들어 ‘60년미술가협회는 김봉태, 김종학, 박재곤, 윤명로, 이주영, 최관도 등 대학을 갓 나온 신예작가들이 덕수궁 담벼락에 전시회를 열었는데 2회전후 1961현대미협과《연립전》 후 해체되었다,

‘벽동인전’은 서울대 출신의 김익수, 김형대, 박병욱, 박홍도, 유병수, 유황, 이동진, 이정수 등이 창립했다. 여기에동양화의 전통적 형식과 가치관에 도전하여 서울대 출신들이묵림회를만들어 1964 8회까지 지속되었다.

1962악뛰엘 1961현대미술가협회 ‘60년미술가협회가 《연립전》을 가진 후 해체되며 만들어져 미술계에 표현주의적 추상운동을 확대하였다.

《문화자유초대전》은 세계문화자유회의 한국본부가 주최하여 1966년까지 5회 동안 화단중심에 있던 작가를 초대하였다.

1969년 《1회 한국현대조각회전》

1963원형회는 새로운 조형행동의 전위조각을 표방하며 1963, 1964년 전시회 이후1966년 덕수궁 야외전을 끝으로 아쉽게 해체되었다.

‘오리진회화전’은 홍대 출신들이 모여 만든 단체이며, 부산에서는혁동인전이 출범하였다.

1964년 광주에서현대작가 에뽀끄전이 창립되었으며1966-68년 《한국현대회화전》이 중앙일보사 주최로 《한국현대미술초대작가전》 일환으로 개최하였다.

1967무동인’, ‘오리진’, ‘신전동인이 참가한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이 중앙공보관에서 있었고, 조각단체로 1968년 서울대 출신현대공간회’,1969년 홍익대 출신한국현대조각회가 활동을시작했다.

 

1970년대는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로 시작되었다. A.G전위예술에의 강한 의식을 전제로 비전 빈곤의 한국화단에새로운 조형질서를 모색 창조하여 한국미술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이념을 내걸고 곽훈, 김구림, 김차섭, 김한, 박석원, 박종배, 서승원, 이승조, 최명영, 하종현과평론가 이일, 오광수가 창립했는데 학회지도 1969부터 1971년까지 4호를 발간했다.A.G 1970년 《확장과 환원의 역학》, 1971년《현실과 실현》, 1972년 《탈관념의 세계》 등 3번의주제전을 갖고 1974년 《1회 서울비엔날레》주최를 끝으로해체되었다.

1970년 서울대출신들이신체제를 창립하여 추상표현주의 극복을 내세우며 1년에 2번 전시회를 가졌고,1976 11회로 해체되었다.

1971 ‘S.T’전은 Space Time의약자로 전시와 토론회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다가 1980 7회까지이어졌다.

1972년 《앙데팡당전》은가장 젊은 실험작가들이 집결되었는데, 각종 국제전 출품작가 후보지명 형식으로 출발했다. 같은 해 홍익대 출신 동양화가 5명이 시간성과 공간성 극복을 내세우며시공전이 창립되었고 대구에서신조회가 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 명동화랑에서유근준, 유준상, 이일이 선정한 《한국현대미술 1957-72전》을 열었는데 1:추상=상황, 2: 조형과 반조형을 주제로 하였다. 또 서울대 출신 박재호, 오경환, 유희영, 이동진, 이정수, 조용각 등이3그룹전이 창립 1982년까지 12회전을 지속하였다. 1974년 서울대 출신 서양화가 조각가가 모여개성과 경험을 존중하며 창조적 입장을 내세워서울’70’ 1977년까지 4회전을 가졌다. 동양화에서재료의 질적인 변화를 추구하며 서라벌 성신여대 출신이 모여 《현대회화전》을 1974, 1975년 가진 후, 1976년부터 《현대차원전》으로 계승되었다. 1975년 새로운 형태로 《에꼴 드 서울》의 창립전은 박서보에 의해 초대작가를 선정했는데 2회부터 운영위원에서 초대작가를 선정하는 방법으로 변화를 주었다. 그러나매년 주요작가는 변함없이 몇몇 작가만이 바뀌는 형식으로 세력화되어 관훈갤러리에서 이어지며, 1995년에는《에꼴 드 서울 20년》, 《모노크롬 20년》이 열렸다.

1978년에는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미술협회가 공동주최한 《한국현대미술 20년의 동향전》이 열렸다. 시기별로 나누어 1: 27, 2: 35, 3: 32, 4: 37명이출품했고 계간미술에서 『한국의 추상미술-20년의 궤적』을 발행하였다.

1979년 미술회관에서《한국미술 오늘의 방법전Ⅰ: 비구상》을 열었다. 이 전시는미술회관 신축개관 기념전시로 비구상 회화 44, 조각 20명의 작품이 초대되었다.

1960-70년대《파리비엔날레》, 《상파울루비엔날레》, 《카뉴국제회화제》, 《인도트리엔날레》등 국제전에 참여 빈도표를 보면 박서보 10, 김창열, 심문섭, 이우환, 하종현 7, 서승원, 윤명로, 정영열, 조용익 6, 서세옥, 정창섭, 최만린, 최명영, 윤형근 5회로 추상작가 14명이 독점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1)

 

작가

출품

출품 내역

박서보

10

파리 (63, 65커미), 상파울루 (65, 75), 카뉴 (69, 74커미, 77), 국제청년 (69), 국제현대 (69, 78)

김창열

7

파리 (61, 63커미), 상파울루 (65, 73, 77), 카뉴 (72), 인도 (74)

심문섭

파리 (71, 73, 75), 인도 (74), 상파울루 (75), 카뉴 (79), 국제현대 (78)

이우환

상파울루 (69, 73), 국제청년 (69), 파리 (71), 인도 (74), 카뉴(76), 국제현대 (78)

하종현

파리 (65, 71), 상파울루 (67, 77), 카뉴 (74), 인도 (74), 국제현대 (78)

서승원

6

파리 (69), 국제청년 (69), 상파울루 (71), 카뉴 (76, 77커미), 인도 (78)

윤명로

파리 (63, 69), 상파울루 (67), 국제청년 (69), 카뉴 (71, 79)

정영렬

파리 (65), 상파울루 (67), 카뉴 (70, 75커미, 77), 인도 (74)

조용익

파리 (61, 67커미, 69커미), 상파울루 (67), 카뉴 (69), 인도 (74)

서세옥

5

상파울루 (63), 카뉴 (69), 국제현대 (69), 인도 (71커미, 78커미)

정창섭

파리 (61), 상파울루 (65), 카뉴 (69), 국제현대 (69), 인도 (74)

최만린

파리 (65, 67, 71커미), 상파울루 (69), 인도 (74)

최명영

파리 (67), 상파울루 (69), 카뉴 (71, 76커미), 인도 (74)

윤형근

상파울루 (69, 75), 카뉴 (76), 인도 (78), 국제현대 (78)

() 1960-70년대 국제전참가 다수 작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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