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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비스트, 취미가 역사를 만들었다

김달진

                        아키비스트, 취미가 역사를 만들었다

                                                            김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장)



 

퇴근 무렵, 자료를 정리하다 1972년 <한국근대미술 60년전> 보도자료를 찾으며 작은 추억에 잠겼다. 1969년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후, 1900-60년대까지 우리나라 근대미술 작품을 발굴하고 정리한 역사적인 전시로 그 당시 최초의 도쿄미술학교에 유학한 고희동의 유화가 벽장 속에서 발견되어 보도되기도 했던 전시이다. 이 보도자료 내용 중에는 전시작품 들의 소장자(처)와 주소가 들어있는 중요한 증거물이다. 개인적으로도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형님의 도움으로 대전에서 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농촌에서 시내로 올라온 나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담뱃갑, 껌 상표, 우표 등을 모으는데 빠졌다. 이렇게 뭔가를 모으던 취미는 여성잡지에 실린 세계의 명화를 모은 것으로 옮겨갔다. 서울로 올라와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자 헌책방이 많았던 청계천 서점가를 돌며 미술교과서, 미술전집 등을 살 수 있었다. 풍족하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나는 서점 주인에게 잡지 전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며 그림이 실린 한 페이지만 팔라고 조르기도 했다. 그러던 고등학교 3학년 여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한국근대미술 60년전>은 그동안 인쇄물로 된 서양의 명화만 보다가 우리 근대미술의 주옥같은 작품을 실물로 본다는 게 커다란 환희를 안겨 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8년부터 『월간 전시계』에서 일하며, 취재 기사를 작성, 미술자료 기획물을 연재도 하고 편집일을 배웠다. 80년도 언론 통폐합에 폐간되었으나 1981년 이경성 관장님의 도움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무하게 되자 미술자료 수집활동은 더 활기를 띄었다. 내 지나간 별명 중 하나는 ‘금요일의 사나이’다. 매주 금요일이면 인사동·사간동 일대를 돌며 자료를 수집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으로, 그 당시 화랑사람들은 자료를 그렇게 열심히 모아 무엇을 하느냐 묻곤 하면서도 내 자료수집에 도움을 주었다. 그 현장에서 얻은 인연들이 지금까지 큰 힘이 되었다. 이제는 많이 바뀌어 일일이 현장을 다니며 자료를 받아오지 않아도 많은 곳에서 미술관련 자료들을 보내온다. 내가 발행하고 있는 미술정보 잡지『서울아트가이드』에 신간소개를 요청하여 미술도서들을 받기도 한다.


나는 평생을 미술자료를 수집하면서 1978-81년 월간 전시계 , 1981-96년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 1996-2001년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으로 근무했다. 2001년 김달진미술연구소를 개소하여 2002년『서울아트가이드』창간하고 2008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개관하였다. 박물관에서 수집한 자료를 중심으로 전시를 만들고 학술도서를 출판하고 있다.

그동안 《미술정기간행물 1921-2008》, 《한국현대미술 해외진출 60년》, 《외국미술 국내전시 60년》《한국미술단체 100년》, 《한국근현대미술교과서》, 《한국미술공모전의 역사》《한국미술 전시공간의 역사》 등의 단행본을 펴냈다. 2013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를 창설, 회장으로 이끌고 있는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지난 세월동안 자료를 모아 그 내용을 파악하고 미술기초자료로 정리해 미술계 현상을 파악하고자 했으며, 공적가치를 창출해 공유하고자 했다. 그러나 많은 한계들도 느껴왔다. 첫째는 자료보존을 위한 공간과 예산문제이다. 둘째는 시대변화에 따라 다양해진 자료들의 매체와 수집 보존의 판단이 어려워졌다. 셋째는 SNS(Social Network Service)시대에 서비스 강화와 활용의 문제 등이다. 무엇 하나 쉽게 되는 일은 없지만 이전까지 그래왔듯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 일들도 하나씩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 “하신 일도 많으시지만 하실 일도 많으십니다.” 2005년 11월, 김영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현 국립중앙박물관장)가 남겨준 말이다. 국내 미술계가 마주한 한국미술의 정체성 문제, 미술시장 활성화, 한국미술의 해외진출 등 많은 문제들의 단초가 오늘 내 가방 안에 들어있는 작은 전시리플릿 한 장, 메모한 줄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 정확한 역사로 남는다”. (졸고- 관람객은 속고 있다. 1985)

내가 해왔던 아키비스트(archivist)는 보존기록인 아카이브를 관리하는 전문가를 뜻하며 사례로 중학교 도덕교과서 2(금성출판사 2013)에 수록되었다. 우리 박물관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도서관+기록관+뮤지엄의 성격을 복합한 라키비움(Larchiveum)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아직 너무 할 일이 많다.


-문학의 집.서울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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