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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공모전의 양상과 단면(3) 언론기관 공모전

김달진


3. 언론기관 공모전

 국가나 관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을 ‘관전’이라 하고, 민간에서 주관한 전시를 ‘민전’이라 했다. 대표적인 민전은 언론기관의 공신력을 바탕으로 권위와 신뢰를 얻었다. 언론기관에서 미술사업을 지속적으로 이끌어온 곳은 동아일보사, 조선일보사, 한국일보사, 중앙일보사, 서울신문사 등을 꼽을 수 있다. 
 동아일보사는 가장 활발한 미술사업을 펼쳤는데 《동아사진콘테스트》, 《동아국제사진살롱》, 《동아공예대전》,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동아국제판화비엔날레)》, 《동아미술제》 등 다양한 부문에 걸쳐 있다.  《동아공예대전》은 1967년  《한국민속공예전》으로 출발하여 1969년에 와서는 공모전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것은 전통공예와 현대공예로 나누어 전시되었는데 한국현대공예사의 신인등용문으로 중요한 몫을 해왔다.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는 동아일보 창간 50주년 기념으로 1970년에 창설하여 대상을 매회 외국작가 포함 각 4명씩 냈는데 1970년 김상유, 72년 송번수가 수상 후 9년간 중단되었다가, 다시 1981년에 재개되어 1981년 한운성, 1983년 윤미란, 1986년 김태호, 1988년 강애란, 1990년 윤명로, 1992년 지석철 등이 영광을 얻었다.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는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정기적인 국제 공모전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었다. 
 《동아미술제》는  《원로작가회고전》을 시작하면서 초대작가가 후배와 미술학도를 위해 미술상기금을 기탁하여 가장 뜻있게 쓰기위한 의도를 가지고 태동하였다. 처음에는 “새로운 형상성”을 목표로 내걸고 짝수해는 회화Ⅰ(전통회화), 회화Ⅱ(현대회화), 회화Ⅲ(판화 수채화 드로잉)과 조각을 전시하며 홀수해는 공예, 사진, 서예를 전시하는 것으로 출발했고 이후 홀수해에 공예와 사진부문이 빠져나가고 서예, 전각, 문인화로 바뀌었다. 특히 다른 공모전과 달리, 전해의 대상수상작가 초대전 코너를 별도로 마련하고, 동아미술상 수상자들이 동우회를 만들어 별도로 공모전과 병행한 회원전을 열어 결속력을 높였다. 그러나 2006년부터 《동아미술제》는 일반 작품공모를 폐지하고 전시기획 공모전으로 바뀌었다.
 조선일보사는 재야전의 성격을 띠며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중반에 걸쳐 추상미술 운동의 거점으로 현대미술 발전에 기여한 《현대작가초대전》을 개최했다. 1957년 1회전을 갖고 1969년 13회로 폐지되었는데 재야전 성격을 띠었으며 추상운동의 거점으로 기여를 했다. 1회는 서양화만 2회는 동양화 조각까지 분야를 넓혔으며 3회를 보면 동양화가 45, 서양화가 79, 조각가 25, 전부 149명이 초대되었고 범위도 넓혀지고 6회는 동양화, 서양화, 조각, 판화에 외국작가도 11명이 초대되었다. 5, 6, 7회는 일반 공모전도 병행하여 5회(1961년) ▲심사위원: 홍종인, 김영주, 권옥연, 유영국, 이세득 ▲입상작: 민병영, 장려상: 김기원, 정해일, 6회(1962년) ▲심사위원: 민경갑, 김영주, 전상범, 이항성 ▲장려상: 김인중, 곽훈, 양주석, 정관모, 오창성, 7회(1963년) ▲심사위원: 이희세, 권옥연, 김영학, 이상욱 ▲신인상: 권승연 ▲장려상: 장상의, 이광하, 권진규, 오창성씨가 수상했다. 8, 9, 11회는 개최하지 못했다.
 그 후 조선일보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공동주최로 2008년 아시아 대학생·청년작가미술축제  《ASYAAF》(Asian Students and Young Artists Art Festival)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출품은 대학생·대학원생 및 30세 이하 작가들의 패기 넘치는 작품을 선보이며 판매까지 확대하여 미술시장의 진입로 역할을 해주고 있다. 2013년까지 한국화·서양화·입체·판화·사진·미디어 아트로 세분화했던 응모 분야를 올해는 평면·입체·미디어로 단순화 시켰다. 
 한국일보사의 공모전으로 《한국미술대상전》이 있었다. 이 전시회는 1970년에 동양화, 서양화, 판화, 조각으로 나누어 추천과 일반의 두 부문에서 공모했는데 그해 대상은 뉴욕에 있던 김환기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수상하였다. 멀리 미국에서 칩거중이던 김환기가 오늘날 알려지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신선한 공모전이었다. 2회 1971년에 추천과 일반의 구분없이 실시하였으며 이후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3회는 1976년에 일반공모전, 4회는 1977년에 초대전 형식으로 열렸다. 5회는 1978년에는 운영방식을 바꾸어 커미셔너제를 도입하여 이경성이 맡았고 지명공모 36명과 더불어 일반공모를 병행하였다. 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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