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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조준호 / 에너지의 형상 – 파동에 관한 사회학적 메타포

김성호

에너지의 형상 – 파동에 관한 사회학적 메타포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조준호는 그간 조각과 설치의 언어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그는, 인간이 태초부터 자연의 한 부분으로 존재해 왔으나, 물질문명을 구축해 나가면서 자연과 분리되어왔던 역사를 성찰하면서 인간의 본성이 결국 자연임을 조각의 언어로 확인하고자 한다. 즉 그는 광활한 자연 속에 인간이 구축한 웅대한 건축적 구조물을 형상화하거나, 문명의 소산인 붓을 무수히 집적하고, 자연의 궁극적 형상인 산수를 조각이라는 예술 언어로 입체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이 공유하는 본원적 존재론적 위상을 탐구해 왔다. 이러한 그의 작업 방향은, 모든 곳에 포진해 있으나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 까닭에 우리가 쉽게 간파하지 못하는 에너지의 세계를 추적하는 최근의 작업을 통해서도 여실히 살펴볼 수 있다. 
이 글은 ‘에너지의 형상(Shape of Energy)’이라는 테마를 통해서 펼쳐보이는 개인전을 중심으로 조준호가 추적하는 에너지의 세계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아울러 조형적으로 달리 보이는 위의 세 가지 유형의 연작이 함유하는 공통의 미학이 무엇인지도 함께 살펴본다. 


에너지의_형태_털_150×40×5cm_2023

II. ‘천인합일의 일원론적 사유’의 조형 –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공생 
조준호는 자연 속에 기념비처럼 우뚝 선 건축물이 이룬 장관을 조각으로 구현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대립 또는 공생을 탐구하거나, 동양 전통의 산수화를 브러쉬라는 오브제를 집적해서 표현하거나 한지를 접어 펴서 만든 주름을 이용해 산수화 속 선이 창출하는 지형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의 작업은 자연물과 인공물이 대립하는 듯한 이미지나, 함께하는 이미지를 통해서 인간과 자연의 큰 담론을 조각으로 시각화한 것이라 하겠다. 
최근 작업은 이러한 대립과 상생이 교차하는 이미지를 넘어서 자연이 본성적으로 지닌 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가시화하는 일에 골몰한다. 최근 작업은 피상적으로는 수면에 일으키는 파동과 파장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연에 내재한 동양 전통의 기(氣)라고 하는 에너지를 탐구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그의 모든 작업이 동양의 일원론적 존재 이해와 더불어 그것에 관련한 성찰 안에서 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작업은 ‘음과 양, 흑과 백, 인간과 자연’이 이원론의 대립 속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일원론적 존재로서 공생과 공존을 지속하고 있음을 거듭 확인하는 작업인 셈이다. 그의 작업 속에 표현된 건축적 구조물, 산의 굴곡진 지형, 또는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는 물결과 같은 형상 속에 표현된 음과 양, 골과 마루,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대립하지 않고 하나로 인식될 수 있는가? 또한 그의 작품 속 작디작은 소우주가 과연 드넓은 대우주의 세계와 어떻게 하나로 인식될 수 있는가? 
애초부터 서구의 이원론적 사유를 지니고 있지 않은 동양 철학에서의 자연관은 다분히 일원론적 입장을 드러낸다. 여기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자 곧 자연으로 보는 관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향한다. 이러한 관점은 중국으로부터 발원한 동양 철학인 유가(儒家)의 사유와 더불어 철학과 종교를 오가는 도가(道家), 도교(道敎)의 사유에서 비롯되고 인도로부터 발원해서 중국을 거쳐 심화된 ‘불교’의 철학이 공유하고 있는 일원론적 존재적 사유로부터 기인한다. 
이러한 관점은 무엇보다 중국 철학의 바탕이 된 역경(易經)으로부터 기인한다. 그 중 주(周)나라의 역경인 주역(周易)은 유교나 도교 사상의 핵심적인 경서로 인식되면서 동양의 일원론적 사유의 바탕을 이루었다. ‘우주의 변화와 천지의 운행 질서’를 설명하는 ‘주역’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하나로 보는 일원론적 관점을 지향한다. 즉 하늘과 사람이 합일체임으로 의미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주창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은 ‘유기적인 한 몸’으로 간주된다. 
이 주역은 구체적으로 “천지의 자연 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나 간단하고 평이하다”는 뜻의 이간(易簡), “천지만물은 양(陽)과 음(陰)의 기운으로 항상 변한다”는 뜻의 변역(變易), 그리고 “변화하는 모든 것은 항구불변(恒久不變)의 원칙에 따라 그 법칙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역(不易)의 내용으로 구성된다. 이 때 이러한 세 가지의 내용은 음양오행론을 바탕으로 모든 대상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주역’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하늘과 인간’은 상호 합일체라는 관점 아래 인간이라는 소우주가 감히 자연이라는 대우주를 품을 수 있는 철학적 사유의 바탕을 제공한다. 
주역을 주요 경서로 숭상하는 ‘유교, 유가(儒家)’의 차원에서, 공자(孔子)나 맹자(孟子) 역시 이러한 천일합일의 일원론적 사유를 천명했다. 천명(天命)을 중시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덕성을 강조하고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초월과 내재의 관계로 파악했던 ‘공자’의 사유나, “인간이 자기 마음을 다하면 본성을 알게 되고 자기 본성을 알게 되면 곧 하늘의 이치를 알게 된다(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고 설파했던 ‘맹자’의 사유가 바로 그것이다. 유교를 국교로 수용했던 한(漢)나라 동중서(董仲舒)의 사유는 또 어떠한가? 그는 “사람은 하늘에 기초하여 만들어졌으며 하늘은 사람의 증조부”라고 하는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을 설파했는데, 하늘을 인격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기존의 천인합일사상에서 한 걸음 더 진보한 사유를 펼쳐보였다. 
이러한 천인합일의 일원론적 사유는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천신과 인간의 결합으로 시작된 단군 신화로부터, 하늘과 인간 사이에 간극이 없음을 선포한 천인무간사상(天人無間思想)에 이르기까지 천인합일의 일원론적 사유는 도처에 존재한다. 특히 ‘하늘의 뜻이 인간의 마음이자, 인간의 마음이 곧 하늘의 뜻(天心卽人心 人心卽天心,)’이라고 선포하는 동학(東學)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하늘이 인간 행위를 따른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이라는 미시적 세계가 하늘이라는 거시적 세계를 품어 안을 수 가능성마저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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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에너지의 시각화 — 파동에 대한 조형적 성찰 
조준호의 이번 개인전 ‘에너지의 형상’은 이전의 자연 속 건축 조각과 산수 조각 연작을 계승하면서도 ‘자연과 인간의 공존, 공생’에 관한 주제 의식을 보다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탐구한다. 그것은 기(氣)로 대변되는 에너지가 함유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조각의 언어로 가시화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이 맞물리는 일원론이라는 동양적 사유’를 더욱더 깊이 성찰한다. 
‘기’란 에너지에 상응하는 중국의 철학 용어로, “만물 또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 물질의 근원 및 본질”이자 “생태계 일반을 두루 관통하고 있는 우주적 생명력”을 가리킨다. 노자나 장자와 같은 도가 철학은 ‘우주의 생성 변화’를 ‘기’의 작용으로 풀이했듯이, ‘기’는 이 세계에 생성 변화하며 존재하는 물질의 근원적 바탕으로 간주된다. 
한(漢)대에서 이 ‘기’는 원기(元氣)라는 근원적이고 통합된 일기(一氣)를 모태로 우주생성론을 펼치고 있듯이, 기는 일원론적 사유의 핵심이다. 그것은 마치 인도에서 ‘생명의 근원적 힘’으로 언급되는 프라나(prana)와 같은 존재라고 할 것이다. 물론 중국의 송(宋)대에서는 이러한 ‘기’의 대치되는 개념으로 ‘이(理)’를 상정한 바 있다. 여기서, ‘기’가 물질적 바탕이라는 형이하학적 존재라고 한다면, ‘이’는 “모든 존재의 원인 및 이치”라고 하는 형이상학적 존재로 정의된다. 그렇지만 송학(宋學)의 정이천이 주장한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은 ‘이’와 ‘기’를 분류하는 이원론이 아니다. 이기이원론은 생성 변화하는 물질에 대한 존재론적 사유와 더불어 물질과 그것의 운행 이치를 밝히는 가치론적 차원에서의 철학을 지향한다. 따라서 이기이원론은 서구에서 데카르트(René Descartes)가 주장했던 이원론과는 다른 일원론적 사고임을 명백히 한다. 
작가 조준호는 이러한 생성 변화하는 존재이자, 일원론적인 ‘기’의 존재를 어떻게 조각으로 표현하고 있는가? 그는 파동(波動, wave)의 개념에 집중한다. ‘파동’은 빛, 소리, 전자가 공기, 진공, 물, 사물과 같은 다양한 매질을 거쳐 전달될 때 진동하는 움직임처럼, “어떤 한 곳의 에너지가 흔들림을 통해 다른 곳으로 전달되어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조준호는 〈에너지의 형상〉 연작을 통해서 수면 위에서 생성되는 파동에 주목한다. 그는 물 위에 조약돌이나 물방울이 떨어질 때 일어나는 ‘공간의 한 점에 생긴 물리적인 상태의 변화’ 즉 파동의 순간을 조각의 몸체 위에 정지된 형상으로 포착한다. 정방형이나 직사각형 더러는 원형의 구조로 절단해서 선보이고 있는 그의 부조형 조각은 마치 관자가 물결을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수면 위 점처럼 자리한 파원(波源)으로부터 ‘작은 원 → 큰 원’으로 확장하는 동심원의 패턴은 파동의 과정을 시각화하기에 족하다.  
여기서 우리가 유념할 것은, 조준호가 조각화한 파동은 ‘파장(波長, wavelength)’이라는 수평적 확장만이 아니라 마루와 골을 만드는 수직적인 확장이 일련의 패턴을 보이면서 동시에 벌어지는 일련의 운동이라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파동이라는 운동을 정지시킨 패턴을 우리는 흔히 ‘결’이라고 부른다. 즉 물의 파동을 정지시킨 ‘물결’이라는 평정 상태는 대립적 요소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운동성의 존재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마치 ‘물결’이 골과 마루가 만들어내는 무수한 파동(波動)의 형식으로 운동하고, 우리의 ‘마음결’이 희로애락의 상반된 감정들이 끊임없이 생채기내며 싸우는 운동의 과정 속에서 평정의 상태를 찾는 것이듯이 말이다. 
이와 같이, 조준호의 조각이 만든 파동의 정지 상태, 즉 결이라고 하는 일련의 패턴을 통한 평정 상태는 ‘정중동(靜中動)’이라는 운동성의 미학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주체와 주체, 주체와 타자의 만남과 같은 존재론적 미학의 강력한 메타포로 작동한다. 파동은 하나를 또 하나와 연결한다. 이러한 연결과 만남은 결국 하나를 전체와 연결하는 운동을 낳는다. 그의 작품을 보자. 조각 속에서 골과 마루라는 요철을 만든 결의 형상들은 마티에르의 위상을 극대화하면서 하나의 동심원과 이웃하고 있는 다른 동심원들로 이어지면서 ‘결’의 이미지를 확장하고 연결한다. 조준호는 이 결을 확장하는 자신의 조각을 ‘에너지 필드’라고 규정한다. 그것은 달리 말해 ‘에너지의 운동이 펼쳐지는 장(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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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음양오행 혹은 태극의 운행 — 개체들의 간섭과 상호 작용 
조준호의 ‘에너지의 형상’이라는 제명의 일명 ‘파동 조각’은 하나의 파동을 넘어 또 하나의 파동이 개입하는 사건을 형상화한다. 파원을 가진 한 동심원의 패턴 이미지가 또 다른 파원을 지닌 동심과 겹치는 형상이 그것이다. 서로 다른 방향의 파장을 만들면서 겹치는 이미지는 때로는 휘어진 씨줄과 날줄의 교차 무늬처럼 보이거나 때로는 직물의 패턴화된 문양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채색 계열의 미세한 털로 덮힌 조각의 표면은 이러한 이미지를 더욱더 강화한다.  
그의 조각에서 이러한 ‘겹친 동심원 형상’은 음양이라는 두 개의 상호보완적 힘이 맞물려 우주의 삼라만상을 생성, 변화, 소멸시킨다고 보는 음양오행설의 사유를 함유한다. 음과 양이, 골과 마루가 한데 모여 만들어진 동심원이 반복이 구축한 패턴 이미지는 마치 ‘주역’의 추가 설명문인 계사(繫辭)에 언급된 ‘우주에 있는 두 가지의 힘 중에 때로는 한쪽이, 때로는 다른 쪽이 물결과 같이 우세하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의 아포리즘을 실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음양오행이란 때로는 음이 때로는 양이 우세하게 작동하지만 음양은 결코 분리되지 않고 언제나 함께 연동된 채 지속적으로 상호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음양오행의 운행 속에서 하나와 또 다른 하나는 대립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음양이 상호의존하는 응합(應合)이 작동할 따름이다.  
이러한 음양오행은 태극의 우주관으로부터 온 것이다. 앞서 언급한 ‘계사’에는 “역(易)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는다”고 밝히고 있는데, 즉 여기서 태극은 원기(元氣)이며 여기서 나온 양의는 음양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4상(四象)→8괘(八卦)로 전개되는 태극의 우주론은 음양오행과 맞물림을 여실히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송나라의 주돈이(周敦頤)는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태극→음양→오행→만물’의 우주론을 성립시켰다
우리가, 중국의 태극 문양이나 한국의 태극기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효(爻)와 괘(卦)에 나타난 획선(劃線)은 양을 의미하고, 절선(絶線) 음을 의미한다. 또한 팔괘(八卦) 중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는 각각 양과 음의 특별함을 상징하고, 나머지 6괘는 음양의 효가 조합되어 만들어진다. 이러한 차원에서 태극 문양은 만물 생성의 이치와 기와 음양오행의 움직임을 하나의 도상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여러 파동의 간섭 현상을 하나의 조각체 위에 실험하던 조준호의 최근 작업 중 파동 이미지의 무수한 단편들을 3D로 프린팅하여 벽면 위에 멀티플 아트(multiple art) 유형으로 집적된 연작은 이러한 태극의 우주관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제각기 다른 물결 모양을 담은 정사각형의 모듈이 무수히 집적되어 커다란 원을 구성한 작품은 개별 주체의 파동이 또 다른 주체인 타자의 파동과 상호 간섭하면서 만드는 에너지의 통합적 형상이라는 태극의 우주관을 추론하게 만든다. 특히 모듈의 형상인 정사각형은 팔괘, 건괘, 곤괘를 연상하게 만들면서 원형과 사각형의 이미지가 맞물린 채 조형적으로 재해석된 태극의 모델을 효과적으로 구축한다. 게다가 원의 중심에 위치한 짙은 색상의 모듈에서부터 외부로 가면서 점차 연해지는 색상의 모듈을 순차적으로 구성한 조형 언어는 파원에서부터 점차 멀어지면서 파동이 미약해지는 물리학적 사실을 시각화하는데 매우 효율적으로 보인다. 
한편 이 설치적 조각 작업과 닮은꼴로 된 또 다른 멀티플 아트는 앞서의 작품과 반대로, 도자기로 만든 원형의 작은 모듈을 멀티플로 집적하여 만든 커다란 정사각형의 작품이다. 두 작품 중 하나가 양의 모듈을 통해 음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또 하나는 음의 모듈을 통해 양의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해 볼 수 있다.   
모듈, 즉 개체들이 집적됨으로써 나타나는 간섭 현상은 두 개체의 개체 사이에서 혹은 여러 개의 개체 사이에서 불규칙한 형태로 화면을 긴장감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이내 음양오행의 질서 속에서 상호작용을 시도하면서 무질서한 엔트로피를 하나의 안정된 형상으로 구축하면서 태극의 우주관을 넉넉하게 담아낸다. 
물론, 음양오행의 세계적 질서와 태극의 우주관을, 단편들의 집적을 통해 멀티플 아트의 유형 속에, 담아내는 조준호의 부조형 조각은 궁극적으로는 주체와 타자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심리적 인간관계를 은유한다. 마치 주역을 통해 ‘점’을 친다는 것이, 어느 개인의 파동을 다른 사람의 파동과 연동하는 간섭현상을 살피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멀티플 조각은. 풍수사상(風水思想) 또한 인간과 자연의 간섭현상을 성찰하고 오늘날 각박한 인간관계에 있는 우리에게 문제 제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달리 말해, 그의 작업은 파편적 모듈들이 집적해서 만드는 개체들의 간섭과 상호작용의 효과를 나와 너 사이, 당신들과 우리 사이, 그리고 그(녀)와 그(녀)들이라는 인간관계로 확장한다고 할 만하다.   

FORMS_OF_ENERGY_3D프린팅_240×240×7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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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에필로그   
조준호는 이번 전시에서, 소리의 파장을 조형적으로 실험하는 두 영상 작품을 선보인다. 수면 위에 비가 떨어지는 듯한 가상의 영상을 수평적 시각에서 포착하거나, 하나의 파원으로부터 발원한 동심원들이 연속되면서 파장의 시각화를 실험적으로 선보이는 영상이 그것이다. 이 두 영상은 파장의 시각화를 도모했던 조각으로부터 그의 조형 실험을 확장하는 동시에, 그가 탐구하는 에너지의 시각화 연구가 일상의 주변 풍경과 삶의 지평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식하게 만든다. 
이러한 실험은 물리적인 실험 과정을 거쳐 그가 의도하는 파동의 형상을 찾고자 하는 모색이라고 하기보다, 에너지를 시각화하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파동이 함유한 주체와 타자라는 인간관계를 성찰하고자 한 작업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더 적절하겠다. 달리 말해 파동의 조형적 실험을 통해서 사회적 인간이라는 함의 속에서 형성되는 서로의 영향 관계와 상호작용에 대해 성찰하는 것으로서 말이다. 결론적으로 에너지의 형상을 탐구하는 그의 작업은 ‘파동의 넓이와 깊이’ 속에 담긴 한 편의 사회학적 문제 제기이자 ‘파동에 관한 사회학적 메타포’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

  

출전 /
김성호, 「에너지의 형상 – 파동에 관한 사회학적 메타포」, 『조준호』, 카탈로그 서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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