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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김현주-조광희 / 도시 일상과 도시인의 마음

김성호

도시 일상과 도시인의 마음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작가 김현주, 조광희의 전시 《도시-도心》은 도시를 향한 현대인의 마음과 욕망을 탐구한다. 조형적으로는 5채널 미디어로 구현하는 ‘움직이는 드로잉’ 작업을 터널처럼 기다란 시민청소리갤러리 안에 3개의 구간으로 범주화하여 펼쳐낸다. A구간의 <산양의 노래>, B구간의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 도시입니까?〉라는 제명의 작품들과 C구간의 <도시?도心>이라는 전시명과 같은 작품이 그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시로 구현되고 이 작품들이 함유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II. 도시 속 산양 - 욕망의 현대 도시인  
전시장 초입 스크린에 투사되고 있는 영상 작품 <산양의 노래>는 “도시 속 인간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품은 채 그 질문에 대한 여러 가능한 답들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까만 바탕 위에 올라선 녹색의 그리드 위를 흰색 선묘로 그려진 인물이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삶의 근원적) 목적지를 잃어버린 채 멈춤 없이 계속 달리는(혹은 달려야만 하는) 도시인의 일상과 그 속에 숨은 욕망’을 상징처럼 드러낸다. 마치 게임의 한 장면처럼 걷고 뛰고, 장애물을 넘고, 빌딩을 기어오르는 인물은 ‘어떠한 목표’를 향해 진격하고 있지만, 그리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영상은 그 인물의 지난한 노력이라는 것이 근원적 목적에 대한 성찰이 없거나 그러한 목적지를 상실한 채 벌이는 허망한 몸짓일 수 있음을 문제 제기한다. 드럼의 리듬처럼 되풀이되는 긴박한 사운드, 헐떡이는 인간의 숨소리, 영상의 반복적인 재생은 인물의 움직임에 긴장감을 더하면서도 그것이 결국 허망한 몸짓임을 깨닫게 한다.  
짙은 어둠을 배경으로 한 채 도시(都市) 혹은 도심(都心)을 상징하는 녹색의 그리드 속에서, 하얀 실루엣을 입은 이 유령 같은 인물은 도대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학교, 회사, 은행, 체육관, 쇼핑몰, 카페 혹은 레스토랑? 도대체 ‘그/그녀’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동영상 속 인물은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는 그리드로 형상화된 ‘가상의 도시-도심’ 속을 이리저리 분주히 달리고 숨 가쁘게 기어오른다. <산양의 노래>라는 이 작품명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어쩌면 현대 도시인은 ‘경사가 급한 바위가 있는 험한 산림 지대에서 서식하고 있는 산양(山羊)’처럼 위태위태한 하루를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때, “왜?”라는 질문은 관람자 안에서 일어난다. 등장인물이 지속적으로 어딘가로 향해 뛰고 기어오를 때, 그 목표는 타자들이 가리키고 있는 ‘암묵적 동의 지점’이 아닐까?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가장된 학벌, 권력, 부를 위한 어떠한 목표 지점 말이다. 어떤 이는 공정, 상식, 선의의 경쟁 그리고 불의에 대한 저항을 도모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협잡, 공모, 모략, 권모술수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목표 지점’을 향한 달리기는 근본적으로 ‘욕망’으로부터 발원한다. 그 욕망이란 타자의 것이다. 라캉(J. Lacan)의 유명한 아포리즘,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라는 말을 상기해 보라. 그에 따르면, 모든 인간 주체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즉 욕망은 개별자 주체의 사적 영역으로부터 발화하는 것이면서도 타자의 욕망을 자각하고 그들과 변증법적 관계를 맺으면서 구성되는 사회적 구성물이다. 도시 속에서 목적 없는 질주를 지속하는 주체는 마치 라캉의 상상계(imaginaire) 속 거울 단계(stade du miroir)에서 자신의 육체 이미지(image du corps)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유아의 위상을 공유한다. 즉 거울에 비친 이미지(타자)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자기 인식(connaissance)에 눈을 뜨면서도 동시에 실재(주체)로부터 소외되는 자기 오인(meconnaissance)의 상태에 이르는 까닭이다. 거울 속 이미지로서의 타자는 유아뿐 아니라 성인 주체에게서도 나의 매혹의 대상이자 경쟁과 질투 그리고 공격의 대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품 <산양의 노래>에서 그리드 속을 질주하는 몸이 텅 빈 이 하얀 인물은 타자가 가리키는 성공, 행복, 욕망을 자신의 것과 동일시하고 무작정 뛰고 있는 도시인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산양의 노래>라는 제명처럼, 웅얼거리는 음조를 숨 가쁘게 내뿜으면서 말이다.    





III. 도시 속 언어 - 홈 파인 공간 위에 쌓이는 말들
다음 공간으로 이동해서 만나는 작품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 도시입니까?>에서 작가들은 제목과 동일한 질문을 반복하고 그것에 관한 다양한 답들을 전개한 후, 마지막에 “도시를 빠져나가는 방법은 무엇입니까?”라는 새로운 질문에 대한 열린 대화로 작품을 종결한다. 
이 작품에서는, 도시로 상징되는 육면체를 이리저리 손으로 돌리는 드로잉 영상과 오버랩되는 질문이 벽면에 투사되고, 그것에 대한 답들이 바닥에 맺히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텍스트의 내용은 도시 생활을 체험한 작가들의 진솔한 내레이션이 대부분이고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의 실험적 소설인 『보이지 않는 도시들(Invisible Cities)』(1972)에서 발췌, 인용된 문구가 뒤섞여 있다. 그런 만큼, 관람자들은 피부에 체감되는 작가들의 생생한 도시 성찰뿐만 아니라, 현실과 환상, 시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칼비노의 가상 도시를 둘러싼 심리적 내레이션도 만나게 된다. 작품은 스크린 안에 텍스트가 일렁일 때 그것을 낭독하는 음성이 함께 작동하도록 구성되었다.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 도시입니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텍스트적 진술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도시는 칸의 제국처럼 사람과 도시로 밀집되어 있으며 물질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혼란스러운 곳입니다. / 가장 위협적이고 게걸스러운 쥐의 입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서로 빼앗아 먹으려고 하는 쥐 떼들처럼 답답한 지하도로 달려가는 도시입니다. / 도시의 대형 아파트들은 하늘을 빼앗아 갔습니다. 아파트 밖에 아파트가 있어 아파트 너머 아파트는 끝이 없고 무궁합니다. 아파트값이 두 배가 된 다음 날 아파트와 아파트들은 모두 페인트로 화장을 합니다. / 미군들의 땅이 있고, 익숙한 성씨의 종중들의 땅이 있고, 국방부의 땅이 있고 시의 땅이 있고, 땅이 없는 세입자의 땅이 있고, 떠나야 할 사람들의 땅과 새로이 이주해 올 사람들의 땅이 있는 곳입니다.”

이런 진술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도시 담론과 더불어 한국적 현실 속 도시를 한꺼번에 바라보게 만든다. 그것은 대개, “헛헛한 욕망으로 배 속이 빈 듯한 채워지지 않는 허전한 곳”이거나 “(...) 쓰레기가 인간이, 인간이 쓰레기가 되고자 애쓰는 곳”이라는 진술처럼, 현실 비판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낸다. 도시 속 언어, 즉 도시를 비집고 올라오는 도시인의 발화(發話)는 비관적이고 그 내레이션은 비루하고 참담하기까지 하다. 이 작품의 끝에 등장하는 “도시를 빠져나가는 방법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칼비노의 소설에서 가져온 텍스트는, 어찌 보면 선문답(禪問答)처럼 보이지만, 도시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는다: “하나는 지옥을 받아들여서 우리가 사는 곳이 지옥이라고 느끼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옥이 아닌 곳을 찾아내서 거기에 공간을 부여하고 그것의 성질을 지속시키는 것입니다.” 
도시란 무엇이고 도시의 삶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들뢰즈(G. Deleuze)식으로 말해, ‘자연의 매끈한 공간(l'espace lisse)’ 위에 ‘틈’을 만든 '홈 파인 공간(l'espace strie)'이다. 고대 인류가 유목을 접고 정주(定住)를 시작하면서 짓기 시작한 셸터(shelter)가 이러한 ‘홈 파인 공간’의 원형(原型)이듯이, 오늘날 아파트는 극대화된 ‘홈 파인 공간’이다. 
생각해 보라. 비바람과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구축했던 피난처로서의 셸터가 홈 파인 공간 위에 벽을 세우고 수로를 만들면서 너/나/그(녀) 사이에 거리를 만들어 왔듯이, ‘무수한 홈이 파인 공간’인 아파트는 너와 나 사이에 경계를 더욱더 공고히 한다. “구부러지고 유연한 좁은 골목 ? ‘통로’들이 사라진 자리에 ‘누구’에게만 허락된 땅의 경계를 엄호하는 아파트 장벽이 늘어나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작가들의 진술은 오늘날 ‘홈 파인 공간’이 다다른 ‘소통이 단절된 문명 속 막다른 골목’을 선보인다.  
유목-정주-셸터-아파트로 확장하는 홈 파인 공간은 도시로부터 도시의 중추이자 핵(核) 구역인 도심을 만들고 확장하면서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 지가 급등, 공해, 인구의 교외 유출, 도심 인구의 감소와 인구 공동화 현상과 같은 문제 말이다. 이제 도시는 수도권, 위성도시, 중간 지대, 외곽 지대와 같은 경계로 재편된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나와 너 사이의 경계를 공고히 하면서 소외와 단절을 극대화한다. 
따라서 작품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 도시입니까?>에서 선보이는 ‘도시와 도시 삶에 대한 다양한 진술’을 우리는 가히 ‘홈 파인 공간 위에 하나둘 쌓아 올리는 말들’이라고 할 만하다. 






V. 도시 속 삶 - 공명하는 육면체와 도시인의 공생   
마지막 공간에서 펼쳐지는 전시명과 동일한 작품 <도시?도心>은 작가들의 열린 내레이션을 마무리한다. 그것은 “도시 속 인간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와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 도시입니까?”라는 질문들을 잇는 “오늘날 도시 속 삶은 어떠하십니까?”라고 하는 ‘도시 속 삶’ 혹은 ‘도시 일상’에 관한 질문이다. 
스톱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만들어진 이 드로잉 영상 작품은 마주 보고 있는 두 채널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도시와 도시인의 관계에 대해 탐구한다. 하나의 작품은 도시의 상징인 육면체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담고 있고 또 다른 작품은 책상 앞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사람과 육면체들이 가득한 도시의 풍경을 대비시키고 있다. 
전자의 작품에서는 지평선 앞에 우뚝 서 있는 육면체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정지된 채로 서 있는데, 육면체와 사람의 그림자 길이와 위치가 계속 바뀌면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다. 이 작품에서는 육면체가 사라지면서 우주의 풍광이 자연과 순연히 만나거나 육면체가 마치 식물처럼 땅으로부터 훌쩍 자라기도 한다. 시간과 계절의 변환을 유추하게 하는 하늘과 땅의 변화 등이 시계 초침의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반복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이 도시를 어떻게 대면하고 있는지 성찰하도록 이끈다. 



후자의 작품에서는 강가에 자리한 아파트먼트가 밀집한 도시 풍경과 물을 끊임없이 마시고 있는 사람이 대비되는 한 쌍을 이루면서 채움과 비움의 내러티브를 지속한다. 즉 반대편 도시에 범람했던 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책상 앞에 놓인 빈 컵에 물이 차오르고 사람이 그 물을 마시면 도시의 강 수위가 범람의 수준으로 다시 올라가길 반복하는 것이다. 이 영상은 인간이 욕망을 채울 때 자연이 위협을 받지만, 욕망을 비울 때 자연은 회복된다는 메시지를 거칠지만 매우 단순하고도 명료하게 드러낸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 살펴보았던 작품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 도시입니까?>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겠다. ‘홈 파인 공간’으로 은유화된 ‘도시’는 언제나 고질적인 문제를 떠안고 있지만, 그 모든 문제는 인간의 욕망이 낳은 폐해로부터 기인한다. 공해, 소음, 지가 급등, 인구 유출, 도심의 인구 공동화 현상과 같은 도시가 맞닥뜨린 문제의식들은 이처럼 ‘홈 파인 공간’ 위에 ‘수많은 비판적 담론’을 하나둘 쌓아 올린다. 특히 낮에는 밀집도가 폭발하지만, 밤에는 다수의 도시인이 자신의 주거지인 위성도시를 찾아 떠나면서 텅 비게 되는 도심의 공동화 현상은 후자의 작품인 물 마시는 사람과 범람하는 도시 풍경과 오버랩된다. 필자의 은유로 말하면, 도심은 가히 ‘빽빽하지만 이내 공명(共鳴)하는 육면체’라고 할 만하다. 그것은 ‘채움/비움, 정주/이주, 유입/유출’이라는 반작용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삶의 생태적 맥락과 밀접하게 맞물린 ‘인공의 공명 육면체’이다.
채움이 반복적으로 탈주하는 이 빈 곳 속 허망한 울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도시라는 공간과 도시 일상을 버리고 떠날 것인가? 아니면 그 안에 거주하면서 이 허망한 울림을 따스한 하모니로 바꿀 것인가? 도시와 인간의 공생(共生) 혹은 상생(相生)은 그래서 훗날 풀어야 할 먼 문제가 아니다. 지금 당장 해결해 나가야 할 시급한 문제다. 다만 그 해결의 노력을 일순간에 얻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하나둘 풀어가야 할 복잡다기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VI. 에필로그  
작가 김현주, 조광희는 이번 전시에서 오늘날의 ‘도시-도심’을 자신들의 마음으로 읽고자 한다. 현대 도시가 떠안은 수많은 문제의식에 직면하면서 인간과 도시가 나아가 자연이 상생과 공생을 이루는 상황을 영상 예술의 유형으로 고민하고 성찰한 것이다.  
그간 소외된 사회적 공간 속에 담긴 이야기를 소환하고 추적하면서 커뮤니티아트에 집중해 왔던 작가 김현주와 현대 문명의 풍경을 특정 서사와 드로잉, 영상, 애니메이션으로 탐구해 온 작가 조광희가 그룹이 되어 펼친 이번 전시는 일정 부분 상이했던 각자의 조형 언어와 관심을 하나로 모으고 서로의 공유 지점에서 리서치와 연구 그리고 조형적 실험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이들은 서울의 도심 안에서 펼쳐지는 ‘도시-도심’이라는 제명의 전시를 통해서 현대 도시의 이상적이고 조화로운 모델이 과연 무엇이며 오늘날 도시인의 욕망과 마음은 무엇인지를 특유의 조형 언어로 성찰하고 탐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늘날 코로나 19가 위협하는 팬데믹의 공포와 고단한 삶의 무게로 인해서 강퍅하고 피폐해진 도시인의 마음을 위로하고 또 위로하길 시도한다.  ●


출전/
김성호, 「도시 일상과 도시인의 마음」, 『김현주·조광희 - 도시-도심(心)』 , 전시 카탈로그
(김현주·조광희 전, 2022. 2. 10~3. 31, 시민청 소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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