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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일반│2020창원조각비엔날레 1

김성호


<김성호 총감독이 설명하는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2020창원조각비엔날레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창원시가 2010년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을 개최한 경험을 자산으로 삼아 2012년 제1회 비엔날레를 개최한 이래, 어느덧 세월이 흘러 2020년에 우리는 제5회 행사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020창원조각비엔날레는 2020년 9월 17일부터 11월 1일까지 46일간의 일정으로 용지공원과 성산아트홀에서 개최되는데, 본전시와 특별전, 국내외 학술프로그램과 다양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으로 운영됩니다. 전시는 다음처럼 구성됩니다. 

‘본전시1 - 비조각으로부터'(용지공원), 
‘본전시2 - 비조각으로'(성산아트홀 1, 2F), 
‘특별전1 - 이승택, 한국의 비조각’(성산아트홀 B1F), 
‘특별전2 – 아시아 청년 미디어조각’(성산아트홀 B1F).



올해 비엔날레 주제, 비조각 – 가볍거나 유연하거나
여러분은 각 전시명에서 반복 등장하고 있는 ‘비조각’이라는 낯선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된 것인지 의아해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쉽게 아실 수 있듯이, 이 말은 ‘비(非)’라는 부정의 접두사와 ‘조각(彫刻)’이라는 용어가 결합된 것입니다. 조각비엔날레에 비조각이라니 감독은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러한 단어를 조합해서 전시명을 만든 것일까요? 
비조각이란 단어는 올해 비엔날레 주제로부터 온 것입니다. 올해 비엔날레 주제는 《비조각 -가볍거나 유연하거나 (Non-Sculpture - Light or Flexible》입니다.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홈페이지에서 이번 주제에 대한 간략한 설명문을 살펴보실 수 있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여기에 다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이번 비엔날레의 ‘비조각’이라는 용어는 세 곳에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확장된 영역에서의 조각(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1979)


먼저 이 용어는 미술사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확장된 영역에서의 조각(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1979)이라는 논문에서 풍경과 건축이 조각과 만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비풍경(not-landscape), 비건축(not-architecture)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던 기호학적 방법론을 제가 변용하여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비조각이라는 용어는 ‘자기반성’ 즉 ‘자기 부정’과 ‘자기 성찰’의 용어인 셈입니다. 크라우스가 제시한 도표를 보세요. 조각이 자신과 성격이 다른 풍경과 건축을 만나는 복합(complex)의 방식에 이르는 전 단계로 크라우스는 풍경과 건축을 부정하여 조각과 비슷한 모양으로 만드는 중성화(neuter)의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올해 비엔날레가 제시하는 비조각은 이 방식을 거꾸로 취한 것이죠. 조각이 스스로를 부정해서 비조각으로 변화된 상태에서 조각과 달랐던 모든 것들과 어렵지 않게 만나는 것입니다. 비조각이라는 용어는 창원조각비엔날레가 창립한 지 올해 5회 째로 10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조각의 자기반성’에 대해 성찰해 볼 만한 적합한 주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크라우스 이론에서 추출한 비조각이란 용어는 사실 한국의 조각가 이승택이 사용하던 용어입니다. 조각가 이승택이 「내 비조각의 근원」(1980)이라는 에세이에서 서구의 근대 조각의 유산에 저항하면서 ‘조각을 향한 비조각적 실험’을 천명했던 ‘비조각’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그것입니다. 조각가 이승택이 실제로 1980년보다 더 일찍 사용한 용어라는 점에서 이번 비엔날레의 비조각이라는 용어는 조각가 이승택에게 더 많이 빚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한편, 이 비조각이라는 용어는 넓게는 동양과 한국의 ‘비물질의 미학’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이번 비엔날레에서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주제어 비조각 뒤에 붙인 ‘가볍거나 유연하거나’라는 용어는 ‘비조각’을 보다 쉽고 친근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마련한 보조 개념입니다. 즉 ‘가볍거나’라는 용어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념비처럼 덩치가 큰 조각’이나 ‘딱딱하고 견고한 조각’에 대립하는 비조각의 형식을 드러낸다고 한다면, ‘유연하거나’라는 용어는 ‘결과보다는 과정 중심’, ‘완성을 향한 미완성’이라는 비조각의 내용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출품작 소개 
그렇다면 이번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서 초대를 받은 출품 예정작은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언뜻 생각하기론 바람, 공기와 같은 비물질적 재료를 끌어들인 작품이나 물이나 흙과 같은 유연한 재료를 탐구하는 작품들을 떠올려 볼 수 있겠습니다. 거품, 액체, 종이, 섬유, 비닐, 솜, 글리세린, 대나무, 알루미늄과 같은 재료로 구성된 작품들도 상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또는 반대로  무겁고 둔중한 재료를 사용하여 내용적으로 유연함과 연동되는 여러 주제를 탐구하는 조각들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테크놀로지, 가상현실, AI와 로봇틱스를 탐구하는 일명 ‘미디어조각’이라 이름 붙인 여러 유형의 작품들이 그러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작품이 완성되지 않은 채로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이는 과정 중심의 작품들도 이러한 예들이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4인의 작가들을 작품을 소개합니다. 


1) 바람, 공기, 물 - 이승택 
전시 구성에서 살펴보셨듯이, 특별전1은 《이승택, 한국의 비조각》으로 꾸려지는데요, 이 특별전에 출품되는 조각가 이승택(1932~ )의 ‘비조각적인 실험 조각’은 이번 비엔날레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찬 바람을 맞닥뜨린 채, 커다란 붉은 천을 휘몰아치듯이 날리는 퍼포먼스를 비롯해서 불타는 그림을 한강에 흘려보내는 퍼포먼스, 드넓은 대지를 캔버스 삼아 색을 칠하는 대지 페인팅 퍼포먼스는 장대합니다. 
이러한 퍼포먼스가 조각이냐고요? 굳이 이야기하면 ‘살아있는 조각(living sculpture)’이라 부를 만한 ‘비조각적 조각’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특별전에는 이러한 퍼포먼스 말고도 이승택 작가의 비조각적 실험으로 가득한 회고전 성격의 조각들로 가득하니까요. 
이번 특별전에 소개될 작품들에는, 새끼줄, 밧줄, 어망, 헝겊, 천 조각, 머리털, 깃털, 돌멩이, 부표 등 각종 비조각적인 오브제를 조각의 재료로 삼아 만들어 낸 ‘비조각적인 조각 실험’이 정말 엄청나게 멋집니다. 이번 특별전은 바람, 공기, 물, 불, 흙으로부터 싹트는 동양적인 ‘비물질의 미학’을 들여다 볼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지면에서는 작품 한 점만 소개하지만요. 어때요? 《특별전1 이승택, 한국의 비조각》이 기대가 되지 않나요?        


이승택, 바람 놀이, 1971, 가변 크기, 바람에 천 날리기




2) 바람, 소리 - 성동훈
돈키호테 연작으로 유명한 한국 조각가 성동훈(1967~ )의 작품 〈소리 나무〉(2020)입니다. 이번 비엔날레에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서 신작을 새롭게 준비 중인데요. 이 나무는 제목처럼 소리를 냅니다. 녹음된 소리를 스피커로 내보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스트레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나무 형상의 이 작품에는 나뭇가지마다 세라믹 재질의 작은 종들이 무수하게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용지공원에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을 맞으면서 흔들리는 종들이 내는 경쾌하고도 청아한 소리를 말이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종을 흔들어 작품을 ‘움직이는 무엇’으로 가시화시키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통해 시각예술을 시청각으로 확장하는 조각으로 변환시킵니다. 조각이자 비조각인 셈입니다. 


성동훈, 소리나무, 2016, 스테인리스 스틸, 풍경, 높이 4m,



3) 흙, 시간 - 글렌다 리온
이것이 작품인가요? 그냥 흙 아닌가요? 네. 달랑 모래에 가까운 흙일 따름이죠. 쿠바 국적의 설치미술가 글렌다 리온(Glenda Leon, 1976~)의 작품 〈잃어버린 시간2 (Temps Perdu)〉입니다. 그녀는 하바나와 마드리에 거주하면서 국제적으로 활발한 작품을 선보여 왔는데요. 사진, 오브제, 설치 미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설치되는 작품은 2013다카르비엔날레(Dak'art biennale)에서 선보였던 작품의 새로운 버전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식민 피지배의 역사를 상기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2020창원조각비엔날레에 새로운 버전의 작품으로 들어와서 새로운 주제 의식으로 변형됩니다. ‘본전시2’에 선보일 이 작품은 용지공원에서 파낸 흙을 성산아트홀에 쌓아 놓을 예정입니다. ‘본전시1 -비조각으로부터’ ‘본전시2 - 비조각으로’ 이행한 작품이 되는 셈입니다. 용지공원에서 파내어진 구덩이는 구덩이대로 야외에서 전시되고 그것으로부터 장소 이동한 흙은 흙대로 실내에서 전시되는 작품입니다. 두 장소에서 한꺼번에 펼쳐지는 이 작품은 흙이 간직한 지역의 역사와 시간을 상기하게 만듭니다. 흙더미 꼭대기에 놓인 모래시계는 이러한 흙이라는 질료에 담긴 시간의 의미를 드러냅니다. 더불어 흙더미 자체가 작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알려 주는 것이지요. 


글렌다 리온, 잃어버린 시간 2, 2013, 흙 10톤, 30분 용 모래시계, 175 x 450 cm


4) 공기 - 이안 맥마혼  
이 작품은 어떤 재료로 만든 것으로 보이나요? 그렇죠? 빵빵한 공기 튜브로 만든 작품처럼 보이죠? 그런데 아니랍니다. 뉴욕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를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미국 조각가 이안 맥마혼(Ian McMahon, 1982)의 출품작은 재료가 석고랍니다. 
이 작품은 공기 튜브 위에 석고를 뿌려서 굳혀 만들어 마치 공기 튜브 자체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는데 관객은 이미지만 보고서는 깜빡 속아 넘어간답니다. 물론 작가가 이 작품을 시뮬라크르라는 허상을 제시하면서 관객을 기만하려는 의도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공기 튜브의 피부를 석고 질료가 새롭게 재현한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 이안은 ‘보이지 않는 공기’의 시각화를 새롭게 실험합니다. 이 작품은 볼륨과 매스라는 조각의 주요한 조형 문법을 준수하면서도 비조각의 주제 의식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안 맥마혼, 사라지는 것, 2016, 석고, 철, 13 x 40 x 12m


어떠세요? 이승택, 성동훈, 글렌다 리온, 이안 맥마혼의 작품을 잘 감상하셨나요? 다음에는 새로운 키워드로 또 다른 출품작들을 소개해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2020창원조각비엔날레를 많이 기대해 주세요.  ●


출전/
김성호, 「총감독이 설명하는 창원조각비엔날레 1」, 『문화누리』, 5월호, 2020, pp.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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