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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박민수 / 운동체의 매듭 조각 - ‘로테이셔널 시메트리’

김성호

운동체의 매듭 조각 - ‘로테이셔널 시메트리’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조각가 박민수의 최근 개인전(2019. 11 14~12. 31, 갤러리 거제)은 ‘시메트리(Symmetry)’를 주제로 내세웠다. ‘대칭’과 ‘균형’으로 번역되는 시메트리는 그의 작품의 전반을 읽어내는 키워드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시메트리는 ‘대칭’을 주요 개념으로 삼는데,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좌우 및 상하 대칭이라고 하기보다는 회전축을 중심으로 회전 운동을 이룬 로테이셔널 시메트리(Rotational Symmetry)라고 하겠다. 그것이 무엇이고, 그의 조각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발현하고 있는지, 그리고 대칭이 그의 작품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함유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박민수, 〈Knots_3, 4〉, Steel Welding, 120 × 57 × H120Cm, 2019 
앞의 작품.  




I. 로테이셔널 시메트리 - 대칭과 비대칭을 잇는 ‘또 다른 환원적 조각’ 
로댕 이후 달려온 20세기 조각의 세계는 이전의 이즘을 과거의 것으로 치부하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면서 대립과 대조의 역사를 펼치던 ‘이데올로기 시기’였다. 단토(A. Danto)의 관점에서 이 시기는 ‘미메시스 시기’와 ‘역사 후기(post-historical)’ 사이에 위치한 채 '거대 서사(master narrative)의 종말을 예고하는 마지막 지점이었다. 단토식으로 말해, 1960년대 중반 팝아트와 미니멀 아트는 거대 서사의 종말을 고했다. 이제 오늘날의 조각은 크라우스(R. Krauss)의 예견처럼 서로 다른 것들이 뒤섞이는 '복합(complex)'의 단계를 거치면서 건축과 풍경을 끌어안은 융복합(fusion)의 위상으로 내달린다.  
흥미롭게도 조각가 박민수의 작업은, 외견상으로 미니멀 아트 이후의 복합을 화두로 한 조각이기보다 20세기 추상 조각이 천착해 온 '구조적 환원주의'의 세계에 여전히 자리한 것처럼 보인다. 즉 그의 작품은 풍경이나 건축뿐 아니라 언어, 비물질 등 어떤 ‘조각이 아닌 것들’과의 만남을 시도하면서 ‘조각 외부’로 관심을 돌리기보다 볼륨과 매스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조각 내부’의 문제의식에 천착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까닭이다. 이러한 외형적 특징은 그가 시메트리의 구조를 핵심 조형 언어로 삼고 있는 것으로부터 기인한다. 
수학자 바일(H. Weyl)이 이러한 대칭, 균제의 조형인 시메트리 구조를 BC 4세기의 그리스 조각인 ‘기도하는 소년’에서 찾았던 것처럼, 시메트리는 구상조각의 전통에서도 익숙한 조형 언어지만, 대개 현대 조각에서 시메트리의 근본적 조형성은 추상에서부터 발원한다. 주지하듯이, 이러한 시메트리는 브랑쿠시(C. Brancusi) 이래 20세기 추상조각을 대표하는 조형 양식이었다. 브랑쿠시의 작품이나, 한국 추상 조각의 1세대 김정숙 그리고 문신의 조각에서 드러나듯이, 추상조각의 시메트리는 수직이나 수평의 중심축을 기점으로 좌우 혹은 상하로 대응하는 구조와 배치가 관건이다. 
반면에 박민수의 조각에서의 시메트리는 양상도 다를 뿐 아니라 그것이 함유하는 시메트리의 미학도 차원이 다른 방향을 지향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관자에 따라 마치 꽃잎을 펼치고 있는 한 송이 꽃처럼 보이거나, 자신의 몸을 구불구불 말아 똬리를 튼 채 웅크리고 있는 한 마리 뱀의 형상처럼 보이기도 하는 박민수의 추상 조각은 정면에서 볼 때에는 수평, 수직 축이 만드는 시메트리 형상처럼 보이지만, 관객이 시점을 이동하여 조각 주변을 빙빙 둘러보는 ‘주항(周航 circum-navigation)’의 관람을 거칠 때에는 시메트리의 양상이 깨지고 만다. 그가 ‘비틀어진 입체의 유닛을 반복하여 회전축을 중심으로 운동하는 패턴으로 시각화하면서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형태를 만들게 되면서 야기되는 결과’라 하겠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조각에 나타난 대칭을 좌우 혹은 상하 축을 중심으로 한 시메트리가 아닌 회전 운동에 기초한 ‘로테이셔널 시메트리’로 정의하게 만든다. 
박민수의 조각에서 시메트리가 지니는 미학적 함의는 무엇으로 설명되는가? 
앞서 언급했던 수학자 바일은 시메트리의 대표적인 특성을 “여러 부분이 하나의 완전체가 되게 하는 일치의 한 유형(sort of concordance)”으로 꼽는다. 그것은 조화(harmony)와 같은 것이다. 조각에서 시메트리는 관자에게 조화, 안정, 엄숙, 숭고의 감성마저 전한다. 다만 비평적 관점에서, 조각에서의 과도한 시메트리는 유기적인 생명력을 상실하고 경직된 미감을 낳게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조각에서의 시메트리는 종종 에이시메트리(asymmetry)와 연동하여 해석되곤 한다. 로버트 모리스, 솔 르윗, 도널드 저드와 같은 작가들의 미니멀 아트를 살펴보자. 미니멀 아트가 표방하는 ‘비관계적 구성(non-relational composition)’이란 일반 조각에서 선보였던 물체 간의 계층적 관계를 허용하지 않는 반복성을 특징으로 한다. 같은 입방체의 단순한 반복, 나열을 통해서 성취한 ‘비관계적 구성’이란 실상 시메트리가 성취하는 미학적 효과라고 하겠다. 공장에서 주문 생산된 미니멀 아트의 시메트리 입방체들은 작가의 개성적 흔적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그린버그로부터 비미술(non-art)로 평가 절하를 받기도 했지만, 여기에는 에이시메트리라고 하는 비대칭 세계의 잠입을 허락한다. 칼 안드레가 자신의 미니멀 아트에 드러난 비관계적 구성의 조형 방식을 “비대칭적 대칭(anaxial symmetry)”이라고 명명한 것도 이러한 경우라 하겠다. 우리 논의식으로 말하면 ‘시메트리 속 에이시메트리’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비틀어진 유닛의 회전 운동을 실험하는 박민수의 조각은 조각의 매스와 볼륨 안에서 그만의 로테이셔널 시메트리의 세계를 펼쳐낸다. 미니멀 아트가 시메트리를 통해 조각 내부로 잠입하고 ‘시메트리 속 에이시메트리’와 크기 키우기 그리고 연극성 효과를 통해 조각 외부로 확장하는 것과 달리 그의 조각은 처음부터 끝까지 로테이셔널 시메트리, 즉 회전 운동을 통해서 ‘에이시메트리를 잇는 시메트리의 세계’에 천착함으로써 조각 내부의 미학 세계로 잠입한다. 이러한 지점은 1970년대 이후 한국적 포스트 미니멀리즘의 조각이 ‘물질에 대면하는 정신’으로 시메트리와 에이시메트리를 잇는 작업에 몰두한 것과도 유사하면서도 다른 지점이라 하겠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박민수의 조각을 ‘대칭과 비대칭을 잇는 또 다른 환원적 운동체 조각’이라 부를 만하다.  





II. 탈경계의 로테이셔널 시메트리 - 뫼비우스의 띠와 토러스 매듭에 대한 질문  
그렇다면 조각가 박민수의 작업이 실천하고 있는 ‘그만의 로테이셔널 시메트리의 미학’은 무엇인가? 
그의 조각은 외형적 조형의 관점에서 환원주의적 구조주의를 선보이면서도, 조형 내부의 미학적 함의에서는 포스트 구조주의의 세계를 은유한다. 이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마치 크라우스(R. Krauss)가 ‘확장된 영역에서의 조각’을 설명하기 위해 구조주의 기호학을 도구로 삼아 1970년대의 포스트 구조주의의 조각 현장을 소개했던 방식처럼 박민수는 20세기 초반의 추상 조각의 그릇 안에 오늘날의 상대주의적이고 다원화된 세계를 담아낸다. 
박민수는 비틀어진 유닛을 반복하여 회전 운동을 패턴화하는 실험에 골몰해 나가면서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조각의 완성을 이루게 되는데, 이 완성체는 외형적으로 특유의 기하학과 물리학의 구조적 모델에 근접하게 된다. 우리가 토러스 노츠(Torus Knots)’라 부르는 특유의 ‘도넛 모양을 비튼 매듭 구조’와 더불어 ‘뫼비우스 띠(Möbius strip)’라는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외형적으로 유사한 이 구조적 모델은 그가 지향하는 상대주의의 포스트 구조주의적 세계관을 너끈하게 담을 만하다. 다음의 박민수의 발언을 보자: “위와 아래, 뜨거움과 차가움, 길고 짧음, 밝음과 어두움, 실제와 허상, 선과 악, 유한과 무한 등의 상반된 개념은 동일한 현상의 이면이며,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 종이의 앞면과 뒷면이 상반되는 두 가지의 성질이고 모서리는 앞과 뒤를 구분 짓는 기준이라고 한다면, 한번 비틀어 앞면과 뒷면을 연결한 뫼비우스의 띠는 모서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면과 뒷면의 구분이 없다. 즉, 그 경계가 무의미해지며 모순된 현상에 합리성을 부여한다. 작품은 뫼비우스의 띠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패턴은 모서리를 경계로 서로 다른 면이 존재하지만, 일정한 규칙에 의한 조합에 의해 하나의 면과 하나의 모서리만을 갖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구조를 갖게 된다. 이는 이분법적이고 결정론적인 세계를 넘어 유연하고 상대적인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다.”
박민수의 꿈틀거리며 휘몰아치는 형상의 조각에는 경계의 구분이 특별히 없는 세계가 존재한다. 정면에서는 시메트리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에시메트리를 선보이는 그의 조각은 자연스럽게  뫼비우스의 띠 구조나 토러스 매듭의 구조를 조형적으로 실험한다.  
그런데 토러스 매듭이란 무엇인가? 트레포일 매듭(trefoil knot)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것은 평면에 놓인 원을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여 얻은 도넛 모양의 ‘원환체((圓環體, Torus)’를 ‘꼬아 만든 것(Knot)’이다. 따라서 ‘원환체 매듭’이라고 번역될 만한 이것은 원의 지속적인 회전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매듭으로 정의될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있다. 피상적으로 3차원처럼 보이는 뫼비우스 띠나 토러스 매듭을 몇 차원으로 정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다. 답을 구하기 위해서 생각해 보자. 일반적으로 차원이란 “기하학적 도형, 물체, 공간 따위의 한 점의 위치를 말하는 데에 필요한 실수의 최소 개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좌표계에서 직선은 하나의 실수(x)를 지니기에 1차원으로 불리며, 평면은 두 개의 실수의 조합(x, y)으로 구성되기에 2차원이며, 입체는 세 개의 실수의 조합(x, y, z)으로 표기되기에 3차원이라 한다. 
여기서 답을 구하면, 뫼비우스 띠와 토러스 매듭은 ‘2차원 다양체(manifold)’로 정의된다. 3차원이 아닌 2차원 다양체라니. 다양체가 무엇인가? “집합체 또는 의공간(擬空間, pseudo-space)이라고도 지칭되는 다양체는 기하학적인 유추를 통하여 4차원 이상의 공간을 연구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다. 다양체는 점, 직선, 평면, 원, 삼각형, 입체, 구(球)와 같은 기하학적 도형의 집합을 1개의 공간으로 보았을 때의 공간을 말한다.” 곡면이 가진 위상적 성질을 추상해서 다양체의 개념을 형성하는데, 곡선은 1차원 다양체, 공간 속 곡면이나 평면은 2차원 다양체라 부른다. 기하학적 유추에 의한 이러한 다양체는 n차원(n-1, n+1)으로 무수히 많다. 
물론 박민수의 작품은 완성 단계에서 토러스 매듭과 뫼비우스 띠라는 2차원 다양체의 특유의 구조를 일정 부분 공유하면서 그것을 응용한 3차원의 것이지만, 우리는 그의 조각을 ‘n차원 다양체’ 더 구체적으로는 ‘n-1차원 다양체’로 부르기로 한다. 우리가 그것을 n-1차원 다양체로 부르는 까닭은 그가 탈경계의 로테이셔널 시메트리 조각’에 응용하면서 시메트리에 담긴 ‘동시대의 탈경계와 탈구조적인 철학적 세계관’을 은유하기 때문이다.   


박민수, 〈Knots_5〉, Steel Welding, 100 × 100 × H42Cm, 2014 
앞의 작품. 



III. 대칭으로부터 운동으로 - n-1의 세계  
박민수의 로테이셔널 시메트리 조각에는 구별과 경계를 없애는 토러스 매듭과 뫼비우스 띠와 같은 ‘탈주의 운동’이 겹쳐진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뫼비우스 띠는 평면의 앞면과 뒷면의 대립을 꼬아 이어서 2차원 평면으로부터 3차원 입체(본질적으로는 2차원 다양체)로 일으켜 세우고 평면의 앞과 뒤를 같은 존재로 만든다. 경계를 없애는 이러한 뫼비우스 띠의 모델은 꼬여 있지만, ‘단절되지 않은 채 이어진’ 토러스 매듭과 맞물리면서 3차원의 유연한 조각을 만든다.  
그의 조각을 살펴보자. 작품 〈Knots_3, 7〉(2019)은 중심을 비운 둥글둥글한 도넛과 같은 형상이 정면을 향하고 있는 투과체의 철 조각이다. 이 작품은 일견 유선형의 입방체들이 서로 이어진 채 똬리를 틀고 있는 형상처럼 보인다. 자세히 보면 회전축을 중심으로 비틀어진 유닛이 반복적으로 이어져 만들어진 것이다. 이 반복적 증식이 평면적 대칭을 넘어 로테이셔널 시메트리를 만들면서 토러스 매듭 구조와 연동되기에 이른다. 그것은 어찌 보면 토러스 매듭 구조 위에 뫼비우스 띠 구조를 얹는 방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경계를 지우고 안팎을 넘나드는 두 모델이 박민수의 로테이셔널 시메트리 조각과 혼성된 셈이다. 
또 다른 조각 〈Knots_3, 4〉(2019)을 보자. 이 작품은 비운 중심의 크기가 줄어든 대신 마치 토러스 매듭이 외곽을 커다랗게 회전하고 있는 형상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의 표면이 마치 얼룩진 듯한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차갑고 건조한 회색 톤의 철선들을 하나하나 용접할 때 생긴 산화(酸化) 피막을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긴 탓이다. 용접 과정에서 철이 산소와 결합한 후 녹슬어 가고 있는 이 흔적은 어떤 면에서 조각의 표면이 햇빛을 받는 것 같은 이미지를 창출하기도 한다. 조각의 표면을 옷 입히고 있는 회색 철선과 그것이 녹슬고 있는 엷은 갈색의 대비는 중심축을 중심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탈경계의 조각 몸체를 극도로 구조적이고 경직된 무엇으로 보게 하는 우리의 관점을 수정하게 만든다. 단순히 과학 이론을 적용하는 모델 만들기로부터 탈주하게 만드는 이러한 의미심장한 효과는 우리에게 그의 조각을 ‘n차원 다양체’ 더 구체적으로는 ‘n-1차원 다양체’로 바라보기에 족하게 만든다.     
‘n-1차원 다양체’가 무엇인가? 먼저 다양체는 기하학적 용어이기도 하지만,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의 범신론적 존재론으로부터 추출되는 ‘절대자(일자)로부터의 무한자(다자)’의 철학적 개념으로도 풀이된다. 스피노자를 계승하는 들뢰즈의 ‘욕망하는 다양체’ 역시 특이성(singularité)이 하나의 보편자나 절대자로 환원되지 않고, 강도를 지닌 채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철학적 존재론의 위상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n-1차원’이란 무엇인가?  n-1차원은 수학적 구조이기보다 복수적 존재를 지칭하는 철학적 개념이다. 여기서 n은 일반적 개체이고 1은 우월한 어떠한 존재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리좀(Rhizome) 이론에서 다양체의 규칙(Principe de multiplicité)’에 대해서 설파하고 있듯이, n+1차원이 어떤 개체 n에 하나의 우월한 어떤 존재를 덧붙임으로써 가능한 다양체라면, 리좀으로 비견되는 n-1차원은 오히려 반대로 우월한 어떤 존재를 없앰으로써 가능한 다양체이다. 여기서 주요한 것은 차이의 다양체들이 ‘단일체(unités)’를 형성하지는 않지만, 운동체(mouvantes)로 존재하는” ‘탈중심의 존재라는 것이다. 
박민수의 조각은 토막난 철선들의 군집이 만드는 비틀어진 유닛으로 다시 상하축을 중심으로 한 시메트리로 또 다시 회전축을 중심으로 한 로테이셔널 시메트리로 완성체를 만들어 나간다. 이때 결과적으로 비틀어진 유닛의 처음과 끝이 이어진 완성체는 처음과 끝이 이어지고 안팎의 구분이 없는 ‘경계를 탈주하는 운동체’를 만든다. 특히 토러스 매듭이나 뫼비우스 띠 구조라는 운동체의 모델을 정지된 조각의 몸체 위에 덧입힘으로써 ‘대칭으로부터 운동으로 변환’하는 시각적 일루전을 강화하는 그의 조각은 구분과 경계가 한 덩어리로 인식되는 들뢰즈의 철학적 비유인 n-1차원을 성취한다. 그것은 중심과 주변이 없고, 모든 것이 중심인 다중심과 탈중심의 세계관을 은유한다.  
 







IV. 에필로그 -  유연한 세계   
유념할 것은 회전하는 운동을 연속적인 패턴으로 구조화시킨 그의 조각이 “수많은 선재를 절단하고, 연마, 용접”하는 고된 창작의 노동을 거쳐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조각의 복잡한 몸체를 구상하면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을 거치고 그것을 공간 속에서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선들을 나열하고 철선 하나하나를 일일이 용접하여 이어 붙여 나간다. 철선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몸체에 용접하기 위해서 그가 고안했던 일종의 ‘특수 거치대’는 창작의 과정에서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이것은 최종적으로 전시에 선보이지 않지만, 그의 창작에 있어서 매우 주요한 요소라 할 것이다. 이처럼 철선을 이어붙이는 면밀한 공정과 더불어 고된 반복적 행위는 그에게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무념무상에 이르게 하는 쾌(快)를 선사하기도 한다. 
공간을 채우는 동시에 비우게 만드는 그의 투과체의 철선 조각은 최종적으로 관자의 시점에 따라 일렁이는 물결의 파동과 같은 옵티컬 아트의 시각적 효과를 창출함으로써 고정된 조각의 몸체 위에 활력을 입혀 낸다. 또한 이러한 시각적 일루전은 묵직한 철조각을 시작적으로 가볍거나 유연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마치 살아 있는 조각처럼 말이다. 
‘대칭으로부터 운동으로’ 변주하는 그의 로테이셔널 시메트리 조각에서 선보인 다양한 조각적 실험은 조각의 몸체 위에 유연한 세계를 함유하려는 다양한 문제의식을 보다 더 심층적으로 탐구해 나가는 데 있어 일정 부분 새로운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의 작업이 자못 기대되는 까닭이다.  ● 

출전 /
김성호, 「운동체의 매듭 조각 - ‘로테이셔널 시메트리’」, 전시 카탈로그 
(박민수 - 시메트리展, 2019. 11. 14~12. 31, 갤러리 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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