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서문│2020띠전 / 경자가 전하는 말

김성호

경자가 ‘2020 띠전’에 전하는 말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경자의 귀환 
‘경자(庚子)’가 돌아왔다. 한옥마을에서 태어나 깻잎 머리로 사춘기를 보내면서 성장했고 동문길을 누비면서 미술학원 강사로, 청년 작가로 활동했던 자신의 고향 전주로 근 30년 만에 돌아온 그녀로서는 감회가 새롭다. 지역의 후배 작가들이 우진문화공간에서 《2020 띠전 - 쥐와 고양이와 방울》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한단다. 30대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가 국제결혼을 하고 아예 그곳에 눌러앉아 창작 생활을 포기한 채 ‘그저 그런 전시 기획자’로 살고 있는 경자는 전주의 띠동갑 후배 작가 K로부터 전시 개막일 초대를 받고 전시가 시작되기 며칠 전에 부랴부랴 한국에 들어왔다. 약 두 달간의 일정으로 체류할 예정이니, 1960년생 ‘쥐(鼠)띠’인 경자는 만 60세가 되는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고국에서 맞이하게 된다. 어느새 “육십갑자의 갑(甲)으로 돌아온다”는 환갑(還甲)이 되다니! 전시가 2019년 12월 26일부터 2020년 1월 29일까지 진행된다고 하니, 경자는 이번 겨울 두 달을, 《2020 띠전》도 꼼꼼히 살펴보고 35인의 참여 작가 중 친한 후배들과 함께 종종 술잔도 기울이면서, 알차게 보낼 생각이다. 아끼는 후배 작가들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덕담도 건네면서 말이다.   





II. 우진청년작가회와 2020 띠전
독일의 경자에게 카톡으로 전시 소식을 전했던 후배 작가 K는 우진청년작가회(회장 이철규) 소속이다. 이 작가회는 “우진문화재단에서 매년 전북 지역 순수 미술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과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인 작가를 엄정 심사하여 시상하는 우진청년작가상 수상 작가의 모임”이다. 1991년에 개관한 우진문화공간이 1994년부터 《청년작가 초대전》을 시작한 이래 매년 6차례의 전시를 진행해서 최근까지 제71회 초대전을 했으니, 우진청년작가회 현재 구성원이 모두 청년인 것은 아니다. 최근에 이 모임을 갓 시작한 신진 작가뿐 아니라, 1990년대 수상을 했던 이미 중견과 중진이 된 작가들 또한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이 모임의 이름은 여전히 ‘우진청년작가회’다. 마치 1980년대 말 yBa(young British artists)로 불리던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이 이미 중년의 나이를 넘어선 오늘날에도 여전히 yBa로 불리면서 칭송을 받고 있듯이, 우진청년작가회는 ‘전북 미술의 현주소를 가늠하게 만드는, 전북의 대표적 미술가 모임’으로 현재까지 호평을 받고 있다.  
우진청년작가회는 현재까지 회원들의 왕성한 개인 활동을 통해서 ‘새로움을 창출하는 지역 미술’의 발전을 견인하면서, 작가회 차원의 ‘영향력 있는 평론가와의 교류’, ‘회원들의 중앙 미술 현장 진출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같은 일을 도모한다. 또한 회원들의 ‘해외 미술 현장 탐방’뿐 아니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I-A-M레지던시〉와 협약을 통해 ‘우진 청년작가 입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회원들의 역량 있는 미술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국제 미술계의 다양한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추진하기 위해서 2018년부터 ‘우진 이니셔티브500’이라는 크라우드 펀딩 모금액으로 국내 명망 있는 평론가와 함께 평론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2019년 겨울에는 ‘일반인 미술과 관계 맺기’ 사업을 통해 ‘우진 이니셔티브500’ 펀딩 후원인들이 함께하는 연말 축제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우진청년작가회는 정기전을 통해서 관객과 만나는 일을 지속한다. 2017년부터 ‘올해의 띠 동물’을 소재로 한 전시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해 왔는데, 《Dak》전(2017), 《복 받으시개》전(2018), 《꽃길만 걸으면 돼지》전(2019)이 그것이었다. 2019년 12월부터 시작하는 ‘2020 띠전’은 《쥐와 고양이와 방울》전(2020)이라는 제명으로 기획되었다. ‘2020 띠전’은 무엇을 화두로 삼고 있는 어떠한 전시인가?   


III. 쥐와 고양이 그리고 ‘고양이 목에 방울 걸기’
쥐띠이면서 2020년 환갑을 맞이하는 경자에게, 이번 전시 《2020 띠전- 쥐와 고양이와 방울》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참여 작가인 후배 K에게서 ‘전시 개념’을 전해 들은 경자는 ‘2020 띠전’이 실제 자신의 모습이 모조리 발각된 것과 같은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쥐띠인 그녀가 실제로 쥐가 된 기분’이랄까? 
그런데 왜? ‘고전에 나타난 쥐’가 예지와 다산 그리고 부지런함을 상징하는 것과 달리, 실제 ‘생활 속 쥐’는 창고의 쌀을 축내는 존재이거나 ‘쥐꼬리’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보잘것없는 존재로 은유된다. 게다가 ‘묘두현령(猫頭懸鈴)’으로 표기되거나 『순오지(旬五志)』에서 ‘묘항현령(猫項懸鈴)’으로 표기된 사자성어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가리키는 말로, “실행할 수 없는 공론”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 말은 쥐들이 무서운 고양이를 막기 위한 대책 회의에서는 고양이를 막자는 공론에는 모두 동의하면서도 “누가 직접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지”와 관련한 실행의 차원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못하는 탁상공론(卓上空論)의 상황을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경자는 자신이 묘두현령의 삶을 보낸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한다. 
경자는 전주 태생으로 이곳에서 미술을 배우고, 청년 작가로서 활동하던 중 독일로 미술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결혼 후 결국 창작을 포기하고 베를린에서 전시 기획자로 전업해 활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녀에겐 여전히 창작에 대해 꺼지지 않는 갈망이 남아 있었다. 경자는 한 때, “1980-90년대 신진 작가들이 열심히 활동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문화 예술 기관’이 전주에 있었더라면 내가 창작을 포기했을까?”라는 아쉬움 가득한 푸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도 붓을 꺾지만 않았다면 후배들처럼 지금쯤 우진청년작가회 회원이 될 수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아서라! 그녀가 공론화되길 원했던 푸념은 물론 변명이다. 그것이 ‘묘두현령’ 또는 ‘묘항현령’이었던 셈이다. 서울과 수도권으로 대별되는 중앙과 달리 열악한 문화 예술 지형도를 그릴 수밖에 없었던 1980-90년대 당시의 전주 미술 현장을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경자가 미술가로 살기를 진정 원했다면 청년 시절 환경을 탓하지 말고 좀 더 열심히 창작에 매진했어야만 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정과 신념으로 작업해서 훌륭한 작가로 살아남은 지금의 선배와 동료는 그럼 ‘뭐’란 말인가? 그래! 그녀의 푸념은 그들 앞에서 결코 ‘읊조릴 수 없는 변명’일 뿐이다.
사자성어 ‘수서양단(首鼠兩端)’은 “쥐가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나갈까 말까 망설이는 모습”을 표현하는데, 이것은 “어떠한 결정도 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존재”를 의미한다. 이 말뿐 아니라 쥐에 대한 또 다른 사자성어인 오서오기(梧鼠五技) 또한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만 같아 경자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러 가지 재주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변변한 것이 하나도 없어 도움이 되지 못하다”는 의미를 가진 것이니까 말이다. 실제로 그녀는 전시 기획자로 전업을 했지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있는가 싶기도 했다. 그뿐 아니다. 닭과 함께 싸잡아서 쥐를 비판하는 “도량이 좁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서두계장(鼠月土鷄腸)도 ‘문화 상징 속에 나타난 쥐’는 대개 칭찬할 만한 것이 없는 ‘결함투성이’의 존재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띠동갑 후배 작가 K는 이러한 내용이 모두 이번 전시에 포함된다고 침을 튀기며 이야기한다. 또한 이것이 “쥐의 해에 제기하는 자기 부정과 자기 성찰”의 전시 취지라고도 했다. 아고! 경자는 그 모든 것이 후배 K보다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만 같아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경자는 ‘문화 상징과 사자성어 속 쥐의 모습’을 다시 떠올린다. ‘고양이 목에 방울 걸기'! 이 말을 실제 현장에서 탁상공론이 아닌 실천 전략으로 실현할 수는 없는 것일까?


IV. 경자가 띠동갑 후배 K에게 전하는 말
경자가 고향 후배 K를 본 것은 베를린의 〈I-A-M레지던시〉에서였다. K는 레지던시 선정 작가였는데, 관련한 전시 오프닝에서 자신과 K가 띠동갑인 것을 우연히 알게 된 이후로, 둘은  급속히 친해졌다. 
경자는 K를 통해 전주와 전북 그리고 한국의 미술 현장 소식을 들었고 그때 우진문화재단과 전주 천변길에 있는 우진문화공간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청년작가 초대전》과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북 작가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들었다. 1991년 개관한 이래 2000년에 이 공간이 개관 10주년을 맞이했다니 2020년이면 30주년 기념이 될 터이니 얼마나 뜻깊은 쥐띠 해가 될 것인가? 더욱이 2001년 재단법인을 설립하고 2006년부터 ‘미술 작가 지원사업’을 신설해서 현재까지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를 지원하고 있다니, 고향의 후배 작가들에게는 ‘든든하고 멋진 벗’이 된 듯싶다.  
우진문화공간에서 개최하는 《2020 띠전 - 쥐와 고양이와 방울》전은 그런 면에서 쥐띠 경자의 기대를 듬뿍 받기에 족하다. 이 전시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의미하는 사자성어 ‘묘두현령’, 혹은 ‘묘항현령’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만큼, 이 전시명은 경자에게 하나의 화두가 된다. 이곳 전주에서 청년 작가로 살았던 시절 그리고 베를린에서 전시 기획자로서 지내왔던 시간 속에서 “불평과 불만만 앞세우는 탁상공론으로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었다”고 자책하는 경자로서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는 새로운 도전 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경자는 이제 ‘묘두현령’이나 ‘묘항현령’이라는 사자성어를 ‘실현 불가능한 것을 머리로만 구상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닌 ‘무모하지만, 모험적인 실천 전략’으로 받아들일 책무를 통감한다. 전주 출신으로 작가 활동을 했던 독일의 전시 기획자로서 말이다. 지금까지의 활동이 미미했다고 그 미래까지 미리 좌절로 보낼 필요는 없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기 8장 7절)고 하는 아포리즘(aphorism)을 되새길 필요가 있겠다. 
경자는 전주의 띠동갑 후배 K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화두를 이제 탁상공론이 아닌 실천 전략으로 삼고자 하는 ‘구체적 계획’을 담은 편지를 말이다. 그것은 《2020 띠전》에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베를린의 〈I-A-M레지던시〉의 경우처럼, 자신도 한국 고향의 후배 작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베를린에 만들겠다는 계획과 후배 K를 전속 작가로 지원하겠다는 계획 그리고 베를린 소재 몇몇 갤러리와 연합하여 베를린-전북 작가의 교환 전시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계획 등을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고향의 후배 작가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여기, 지금’에서 실천 가능한 구체적인 계획들을 거쳐 ‘무모하지만 실행할 장기적 계획’들이 상상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경자는 머리를 후루룩 턴다. “후배들에게 이제는 나처럼 과거를 후회하는 일이 없게 해 주자. 그래, 실천 가능한 것부터 먼저 적어 보자.” 순간, 《2020 띠전》 오프닝에서 후배 K에게 슬며시 편지를 건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꼭 집에 가서 보라”는 당부 인사말도 떠오른다. 
그녀는 평소에 아껴 쓰던 만년필을 오랜만에 꺼내어 잉크를 가득 채웠다. 의자를 책상 앞으로 바짝 끌어당겨 앉은 경자는 심호흡을 길게 한 번 내뱉는다. 그리고 그녀는 ‘띠동갑 쥐띠 후배 K에게’라는 제목으로 하얀 종이 위에 글자를 또박또박 적기 시작한다.  ●   

*이 글 속에 등장하는 ‘경자’와 ‘후배 작가 K’는 필자가 팩션(faction)으로 구성한 허구 인물이다. 

출전/
김성호,  「경자가 ‘2020 띠전’에 전하는 말」, 서문, 전시 카탈로그, 2019
(2020 띠전 - 쥐와 고양이와 방울展, 2019. 12. 26 ~ 2020. 1. 29, 우진문화공간)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