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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부평 영 크리에티브 / 창의적 기획과 비평적 기획 사이

김성호

심사평 - 창의적 기획과 비평적 기획 사이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올해 2회째가 되는 부평구문화재단의 신진 기획자 공모 프로그램인 ‘부평 영 크리에티브(Bupyeong Young Creative)'에는 총 10인(팀)의 신진 기획자가 응모했다. 서류 조건에 미비해서 일차적으로 탈락한 3인(팀)을 제외하고 심사에 올라온 지원자는 총 7인이었다. 
 7인의 기획자는 ‘미술 매체 실험에 기초한 기획으로부터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이고 미학적 탐구, 사회적 갈등과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 사회적 문제 인식에 기초한 공공적 미술에 대한 역할 모색, 미술가의 미시적 세계에 대한 탐구, 장애인을 관객으로 설정한 콘텐츠, 문화 담론으로서의 전시의 역할, 공생에 관한 화두’와 같은 다양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었다. 대개 사회적 문제를 고민하는 전시들이 주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지원자들의 경향이 많은 부분 미학 내부보다는 미학 외부를 지향하고, 텍스트보다는 콘텍스트를 지향하고 있다고 분석될 수 있겠다. 




7인의 기획에 대한 평가 중에서 주요하게 언급될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심사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다음과 같다.   
첫째, 전시 기획의 콘텐츠를 기획서에 효과적으로 담는 방식에 대한 연구에 관한 것이다. 몇 지원자의 기획서에서는, 전시 주제와 전시 제목 사이도 괴리가 있는 경우도 있었고, 기획자가 설정한 주제나 제목 자체가 참여 작가들의 작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우 또한 있었다. 이 경우 ‘내용(기획 의도, 전시 방향)과 구성(공간 연출 방법, 작가 및 작품 구성)’으로 구분된 양식에 작가의 작품 내용만을 기술하는 방식으로 같은 내용의 텍스트를 담고 있기도 했다. 기획은 구현하려는 주제 의식을 위해서 참여 작가들의 작품을 재료로 삼아 서로의 관계를 구조화시키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작품보다 기획 의도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몇몇 기획자의 경우 동일한 주제를 탐구하는 작가들을 단순히 모아 놓는 수준에 그치는 기획이 아쉽기도 했다. 
둘째, 전시 기획에서 필수적인 기획 내용의 구체성과 논리적 구성에 관한 부분이다. 기획서는 큐레이팅의 설계도이다. 토대와 뼈대가 없이 지붕을 얹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만큼, 전시 제목 안에 콘텐츠를 담아 제시하는 일은 그 콘텐츠를 구조화하는 일과 병행되어야 한다. 구조화란 콘텐츠의 논리적 구성이며, 구조에 담긴 콘텐츠는 곧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논리를 의미하게 된다. 기획서 안에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고 전제하기보다 제안된 내용의 구체성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이번 지원자의 경우 참여 작가의 1~2명의 추가 가능성을 부기하는 것은 심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좋은 기획서가 아니다. 그것은 기획의 유연성으로 인식되기보다, 불성실한 기획으로 오인되기 쉽다는 사실을 유념해 둘 필요가 있겠다. 
셋째, 최근 신진 기획자의 큐레이팅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는 관객 참여형 전시가 드러내는 상투적인 기획에 관한 것이다. 관객을 전시의 또 다른 주체로 만드는 수용론이 전시 현장에서 콘텐츠로 기획되면서 출품 작품보다는 관객 참여를 위한 프로그램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공모에 참여한 지원자의 경우에도 큰 차이가 없었다. 문화 콘텐츠 기획이 전시 기획에 유입되어 발현되는 시너지보다는 참여 작가의 출품작이 기획 프로그램에 희석되는 부정적 면모가 더욱 눈에 띄었다는 평이다. 
넷째, 개인전 기획에 관한 것이다. 이번에는 1인의 참여 작가, 즉 개인전을 기획안으로 제시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내용의 유의미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신진 기획자의 기획전을 지원한다는 이 사업의 취지와는 부합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뤘다. 물론 타인의 개인전을 주관하고 완성하는 매개자의 역할도 주요하다. 다만, 설정한 전시 주제에 부합하는 여러 미술가의 조형 언어와 세부적인 주제들을 연동하고 종합하는 기술을 발휘해야 할 기획자의 능력에 대한 평가를 거치는 이러한 공모 사업에 개인전 기획은 적합한 모델이 아니다. 기획자의 여러 능력이 개인전을 하는 1인의 작품 세계에 대해 매몰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창의적 기획과 비평적 기획에 관한 것이다. 창의적 기획은 오늘의 시대를 직면한 기획자가 큐레이팅을 위해서 펼치는 상상력에 기초한다. 다만 이러한 기획은 비평적 관점이 뒷받침해야만 한다. 이번 지원자의 경우, 주제와 전시 공간 연출 방식에서 때론 엉뚱하고, 때론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넘치는 기획들이 있었지만, 그 내용이 대개 비평적 관점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경우가 눈에 띄었다. 선행된 기획 내용이나 기존의 기획에 대한 구성 방식을 탈피하려는 창의적 노력은 기획자에게 필수적이지만, 그와 같은 상상력은 비평적 인식이 동반할 때, 그 기획의 매력을 발산한다. 따라서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전시 콘텐츠 역시 20세기 전시기획의 영향권의 뿌리가 어딘지를 검토하면서 그것의 차별화된 의미는 무엇인지를 탐구하거나, 상상력을 뒷받침할 논리적 근거와 구조가 무엇인지를 제시할 필요가 있겠다. 

3인의 심사위원은 위와 같은 관점을 공유하면서 협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신진 기획자 이정은의 《아워 피크닉_레퍼런스》 기획을 선정, 지원하기로 했다. 
‘이정은’은 흔히 휴식과 여가의 공간으로 간주해 온 ‘공원’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기획안을 통해서 제시한다. 즉 ‘인공화된 자연’ 혹은 ‘대체 자연’으로 간주될 수 있는 공원에 담긴 여러 사회, 문화적, 생태적 담론을 미술가들의 작업을 통해서 제시하고 공원의 의미에 대해서 재성찰할 것을 제안한다. 전시 기획을 위한 주제 구현을 위한 꼼꼼한 자료 조사와 의미화의 작업이 돋보였고, 전시와 아카이빙 라운지로 구성해서 관객의 참여와 이해를 도모한 점과 강연 워크숍과 작가와의 대화와 같은 부대 행사로 전시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 또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신진 기획자에게 흔히 요청되는 창의적 기획과 같은 면모가 아쉬웠고, 주제 구현에 있어서 리서칭과 현장 탐방 등을 실행해 온 참여 작가 4인의 작품에 많은 부분 의지한 채, 기획자만의 특별한 콘텐츠가 없었다는 점은 비판을 받았다. 그렇지만 주제에 대한 비평적 시각에서의 관점이 튼실할 뿐만 아니라, 무형의 컨텐츠를 전시라는 형태로 구조화하고 시각화하는 방식도 정직하다는 점에서 다른 기획자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미술가의 작품이 관객에게 전하는 시각적 메시지라고 한다면, 전시는 그것을 분석하고 종합해서 연결 고리를 만들어 제시하는 시각적 메시지이다. 큐레이팅은 미술가들의 다양한 시각 예술(비언어)을 종합하고 다시 큐레이팅(비언어)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제2의 시각적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전시 기획자로서는 엉뚱하지만 유의미한 창의적 기획과 그것을 구조화하고 체계화하는 비평적 기획을 함께 담아 작가와 관객 사이에서 적극적인 소통을 도모하는 매개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주요해진다. 많은 예비 기획자, 신진 기획자가 유념할 내용이다. 선정된 기획자를 위시하여, 공모에 지원했던 많은 예비 기획자와 신진 기획자들 역시 이러한 매개자의 역할에 사명을 갖고 앞으로도 매진해 주길 기대한다. ●


출전/
김성호.  「창의적 기획과 비평적 기획 사이」, 심사평, 《부평 영 크리에티브(Bupyeong Young Creative)》, 홈페이지, 부평구문화재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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