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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김미영 / 반영의 이면 속, 초인을 향한 여정

김성호

반영의 이면 속, 초인을 향한 여정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창작은 한 예술가가 선택한 지극히 이기적인 삶인 동시에 평생을 지고 갈 천형(天刑)이다. 그것이 미술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작가 개인의 이름으로 세계를 대면하는 기쁨과 창작의 즐거움을 얻는 대신, 그것을 뒤따르는 창작의 고통을 홀로 감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미술가에게 창작의 결과는 즉각적인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도권 내 구성원들의 허울 좋은 호평 뒤에 숨어 있는 세상의 무관심과 냉대에 맞서 날마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결연히 일어서야만 하기 때문이다. 김미영의 개인전이 제시하는 ‘반영의 이면 - 숨겨진 존재를 보다’라는 주제는 오늘의 사회 속에서 당면한 이러한 예술가의 ‘존재론적 고민’을 모자람 없이 담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김미영, 반영의 이면-variation2. 240x120cm. mixed media on pannel. 2018 (2)



I. 반영의 이면을 성찰하는 인간 존재론  
인간 군상이 등장하고 있는 작가 김미영의 작품에는 표면적으로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되묻는 ‘사회적 인간학’에 대한 관심이 앞서고 있지만, 그 근저에는 거울에 반영되는 ‘이미지로서의 시뮬라크르(보이는 주체)’와 자신의 ‘본질적 자아(보는 주체)’의 문제를 되묻고 있는 한 주체의 ‘인간 존재론’에 대한 관심이 깊숙이 자리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의 그릇에는 세상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자신의 예술가적 위상에 대한 고민이 한데 겹쳐져 담겨 있다. 
그녀의 작업에서 인간 존재론를 성찰하게 만드는 매체는 무엇보다 이미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특히 〈반영의 이면〉 시리즈의 다수를 차지하는 ‘흑경(黑鏡)’이라는 특수 거울이나 그 효과를 나타내는 ‘검은색 아크릴 미러(black acrylic mirror)’는 이러한 인간 존재론을 심층적으로 성찰하게 이끄는 매체이자, 메타포가 된다. 생각해 보자. 사실 거울의 반영 이미지를 볼 때 우리는 ‘보려는 것만 본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는 실재(얼굴과 머리 혹은 옷에 묻은 얼룩)를 보고 확인하는 도구로 거울을 사용하지만, 자신이 경험하고 볼 수 있는 실재를 성찰하기 위한 목적으로 반영체인 거울을 들여다보지는 않는 것이다. 
반면에 흑경은 일반 거울의 도구적 필요 너머로부터 존재의 성찰에 관한 문제의식을 자연스럽게 가져온다. 흑경은 빛의 흡수와 반사를 한 몸으로 실천하면서 반영체의 이미지를 어둠 속에서 포근하게 감싸 안는 효과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은색 아크릴 미러’는 빛의 굴절과 난반사를 통해 반영된 이미지를 왜곡시켜 일렁이는 이미지로 변주함으로써, ‘실재의 부분적 외피’를 확인하려는 도구적 필요를 애초부터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실재의 외피를 넘어선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주목하게 만들고 깊이 있게 성찰하도록 이끈다. 그녀의 검은 거울은 그런 면에서 인간 존재를 성찰하는 매체이자 동시에 인간 존재의 양면성과 유한성에 대한 메타포가 된다.  
작가 김미영은 〈반영의 이면〉 시리즈에서 흑경, 혹은 검은 아크릴 미러를 전면에 배치하거나 여러 모양으로 절단하여 회화와 뒤섞고 다른 오브제와 함께 배치하면서 변주를 감행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반영의 이면〉 시리즈명을 줄표(-)로 이어 부제를 작명하면서 그 변주의 의미를 인간의 양면성 차원에서 탐구한다. 예를 들어 검은 아크릴 미러를 반달 모양으로 절단하여 부착하고 주변에 무수한 인간 군상을 배치함으로써 ‘보이는 인간’에 관한 ‘반영의 이면’을 탐구하거나(-Variation 3), 흑경을 무수한 인간 형상으로 오려 떼어 내거나 반대편 다른 판 위에 부착하고 회화와 병치함으로써 인간 주체가 다양하게 겪는 희로애락의 삶을 시각화하기도 한다.(-Variation 2, 4, 5) 또한 둥근 흑경의 파편들을 재조합하여 배치하고 다양한 얼굴 표정이나 눈을 반복적으로 크게 그린 회화를 병치함으로써 인간 주체의 양면성을 표현하기도 한다.(-Self-portrait 1, 2)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문제의식도 작품 도처에 나타난다. 17세기 바로크인들이 교훈으로 삼았던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언명, 즉 인간은 누구나 ‘타자의 죽음을 통해서 간접 체험할 수밖에 없는 죽음을 언젠가는 대면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진리를 그녀는 기꺼이 껴안는다. 두렵지만 받아들여야 할 미래적 운명!  회화, 오브제, 흑경이 혼재된 김미영의 작업에는 이러한 ‘죽음을 예감하는 파편과 같은 왜곡된 인간 군상’의 이미지들이 자리한다.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구부정한 자세를 한 인간 군상을 통해서(-꽃길, -꽃밭) 그녀는 죽음을 예감하며 상처와 고통 속에 있는 불완전한 인간의 실존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한다. 아예 팔다리의 실루엣을 크게 왜곡함으로써 ‘죽음을 언제나 대면하는 유한한 인간 존재론’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Love 1, 2) 
작가 김미영의 작업은 ‘흑경에 반영되는 인간 이미지의 이면을 성찰하는 실존적 인간 존재론을 견지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현존재(Dasein)’에 천착하는 하이데거(M. Heidegger)의 실존 철학을 바탕으로 삼는다. 하이데거는 인간이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을 대면한 세계 속에 던져진 ‘피투성(被投性)’의 존재, 즉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로서 인식한다. 이러한 실존적 인식 속에서 인간이란 자신을 다시 미래로 던지는 능동적인 '기투성(企投性)'의 존재로 드러난다. 
이러한 세계관은 인간 주체의 삶을 마냥 고단하게 인식하지 않는다. 인간 존재가 ‘번민하는 실존’이자 ‘유한성의 생명’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정의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작품 〈반영의 이면 - Love 1, 2〉처럼 거대한 하트 상징에 이르러 그녀의 작품 메시지가 ‘희망의 인간’과 같은 긍정적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그렇다. 작가 노트의 언급처럼, “온전치 못한 형태의 이미지들은 이미 세상에서 상처받고 아픔을 겪은 상실된 불완전한 존재들”이지만, 한편으로 “상실된 존재는 스스로 치유하며 총체성을 되찾으려는 존재이자, 미래 지향적 우주의 생명력을 지닌 희망의 존재”이기도 하다. 상실의 이면에서 희망을 모색하는 인간 존재를 탐색하는 그녀의 작업을 우리는 “비록 고통의 삶일지라도 긍정적 미래를 찾아 나아가고자 애쓰는 인간의 아우성이며 활기찬 삶의 변주”라 부를 만하다. 

김미영, 반영의 이면. Self-portrait2 120x120cm. mixed media on pannel. 2018




II. 반영의 이면 속 인간의 욕망   
김미영의 주제 의식인 ‘반영의 이면’은, 하이데거의 실존론을 잇는 메를로 퐁티(M. Merleau-Ponty)의 '세계에 내 속한 존재'(être-au-monde)로서의 ’나‘를 화두로 한 ’지각의 존재론’과 연동된다. 그것은 ‘보이는 것 너머’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소환하는 것이다. 퐁티에게서 본다는 것은 무엇보다 스스로를 볼 수 없는 ‘봄’의 주체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즉 ‘보이지 않는 것’은 먼저 봄의 주체인 ‘나’라는 맹점(point aveugle)을 전제한다. 내가 나를 볼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나는 늘 ‘타자의 응시’를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 다만 내가 나를 봄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는 상황은 거울을 통해서 통해서이다. 그래서 거울은 한 인간 주체의 봄을 견인하는 매체이자, 주체의 ‘봄’과 타자의 ‘응시’를 상호 교차하는 ‘지각의 존재론’에 대한 훌륭한 메타포가 된다. 즉 거울은 퐁티가 언급하는 ‘나’의 신체와 세계의 신체가 교차하는 '상호 신체성'(intercorporéité), 감각하는 자와 감각되는 것의 상호 얽힘(chiasme), 가시성과 비가시성이 교차하는 ‘살(chair)’의 존재론을 여실히 드러내는 메타포가 되는 셈이다. 
김미영이 제시하는 ‘반영의 이면’은 퐁티가 언급하는 ‘거울 현상’이자, 라캉(J. Lacan)이 언급하는 ‘거울 단계’와 연동된다. 즉 주체의 ‘봄’과 타자의 ‘응시’가 교차하는 시각장으로서의 ‘거울 현상’ 속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되묻는 존재에 대한 성찰이면서 동시에 유아가 나르시시즘적인 ‘상상계(l'imaginaire)'로부터 이성적 언어가 작동하는 ‘상징계(le symbolique)’로 넘어서면서 비로소 인간 주체성을 획득하는 ‘거울 단계’ 속 자아 성찰과 유사한 것이다. 그녀는 ‘거울 반영의 이면’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질문한다. 즉 ‘보이는 것’의 이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첫 번째로 거울을 통해서 비로소 스스로를 볼 수 있는 ‘봄’의 주체인 작가 김미명 자신이며, 두 번째로 보이는 현상 너머에서 잠재하고 있는 무엇이다. 그것은 환상이나 허구가 아니라 현실화되지 않을 뿐인 실재의 무엇이다. 라캉이 그 힘을 욕망으로 보고 있듯이, 김미영 또한 그것을 욕망과 관계하는 것으로 살핀다. 그것은 ‘인간 욕망의 양면성’이다. 선/악, 순종/반항, 희망/절망이 맞물린 인간의 욕망은 대개 진실을 은폐하고 거짓을 내세운다. 페르소나(persona)라는 ‘외적 인격’의 가면을 쓰고 욕망의 양면성을 숨기는 것이다. 소외, 윤리와 결별하는 현대인의 욕망은 늘 미끄러진다. 라캉의 언급대로 ‘주체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까닭이다. 
회화와 오브제가, 자르기와 덧붙이기가, 재현, 추상, 표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그녀의 작업은 현대인의 다양한 욕망과 더불어 그것의 미끄러짐이 야기한 파괴 충동 그리고 우울한 자폐적 징후에 대한 작가적 연민과 애정이 한데 녹아 있다. 즉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야기한 절망으로부터 희망을 도모하는 치유에 대한 의지인 셈이다. 때로는 침잠의 화면을 때로는 혼돈의 풍경을 선보이는 그녀의 작업에는 이러한 전환에의 의지로 가득하다. 
작품을 보자. 표현주의적 추상화 같은 양식에 물고기, 해골, 그리고 희로애락의 감정이 담긴 상징적인 인간 두상이 배치된 작품 〈Life-Ambiguity 2016-2, 3, 4〉에서처럼 인생은 알 수 없는 모호한 것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퀭한 눈을 한 채 불안과 번뇌에 사로잡힌 현대인을 그린 작품 〈Life-Ambiguity 2016-5〉과, 〈현대인의 초상〉에서처럼 인간은 헐벗고 불안한 정체성으로 방황한다. 보라!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사람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잿빛 배경을 걷고 있는 작품 〈안개 섬〉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작품 〈연민 1〉에서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의 삶을 갈망하거나, 고통을 승화시키는 춤의 몸짓을 간구한다. 추상화 같은 화면 위에 거꾸로 되어 있는 고구려 벽화에서 차용한 춤추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 〈Life-finiteness〉는 인간의 유한성 자체를 끌어안고 고통을 춤으로 승화하는 사람들을 형상화한다. 작품 〈달빛 춤〉을 보자. 이 작품은 삶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고독과 허무, 고통이 내재한 삶도 사랑하며 춤을 출 수 있음을 증언한다. 또한 고통과 좌절의 현실계를 탈주하는 방식은 간절한 기도로 가능하다. 그녀는 작품 〈연민 2〉에서처럼 자신과 누군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기로 한다. 그 기도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소망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춤과 같은 현실 속 낙관적 태도나 기도와 같은 경건한 기원은 ‘부정으로부터 긍정의 삶’을 이끈다. 임산부의 옆모습과 같은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 〈신의 새〉는 인생의 비관적 모호함이 외려 무한한 긍정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작가는 매우 단순하고도 관조적인 작품 〈신의 꽃〉에서 무고한 고난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을 ‘신의 성품을 닮은 거룩한 사람’으로 칭하고, 그(들)을 위한 작품 〈성스러운 의자〉를 예비하기를 원한다. 


김미영 작품. 반영의 이면-paradise. Acrylic on canvas. . 91x182cm. 2016




III. 초인의 여정    
고통 속에서 춤을 추는 이는 누구인가? 그 누구란 그녀가 언급하듯이 ‘신의 성품을 닮은 거룩한 사람’이자. 부정으로부터 긍정의 삶을 이끄는 사람이다. 그것은 마치 니체(F. W. Nietzsche)가 언급하는 ‘초인(Übermensch)’과 같은 존재로 투영된다. 
그녀는 세상 속에서 기독교인으로, 예술가로 일견 상반된 삶을 병행하면서 ‘이상적인 주체적 인간’의 모델을 니체의 ‘초인’에서 모색한다. 초인은 신을 대신하는 모든 가치의 창조자로서, 기독교의 강압적 윤리를 배척하고, 자율적 윤리인 군주의 도덕을 찬미하는 사람이다. 불멸의 영혼 대신에 영겁회귀를 꿈꾸고 선과 참 대신에 생과 예술의 근원에 잠재하는 ‘힘에 대한 의지’를 실천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즉 그녀가 언급하고 있듯이, “주체적 의지로 살아가는 사람, 허무에 결연히 맞서는 사람, 비극적 운명도 받아들이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좀 더 강한 인간과 좀 더 강한 자유정신의 소유자”를 말한다. 
작가 김미영에게 이 ‘초인’ 또한 하나의 메타포이다. 그것은, 오늘날 21세기를 불완전성이나 제한을 극복한 이상적이고 초극적(超克的)인 인간인 ‘초인(의 여정)’을 지향하며 살고자 하는 작가의 희망이자, 오늘도 늘 새롭고도 정열적인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속하려는 결단인 것이다. 욕망이 야기한 실패와 좌절 그리고 음울한 병적 징후로 신음하는 오늘날 현대인의 상황 속에서도 트라우마, 소외, 고난, 고통으로부터 탈주하기 위해서 ‘춤을 추는 사람’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면서 말이다. ●


김미영, 반영의 이면-variation(변주)4. 60x120cm mixed media on wood pannel. 2018


김미영, 반영의 이면-Variation5. 60x120cm. mixed media on pannel. 2019

출전/
김성호, 「반영의 이면 속, 초인을 향한 여정」, 서문, 『김미영』, 2019. (김미영 展, 2019. 5. 22-28, 남산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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