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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평│한지석 展 /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방법

김성호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방법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드넓은 전시장, 최소한의 조명이 비추는 곳에는 푸른 덩어리가 커다랗게 자리한다. 그것은 울트라마린 블루로 칠해진 커다란 캔버스 회화! 눈이 시릴 만큼 온통 푸른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다. 앞에 놓인 의자에 앉으니 그 ‘아무 것’은 ‘모든 것’으로 변화되고 ‘없음’은 ‘있음’으로 전환된다. 그렇구나. 그 안에서 ‘무엇’을 보길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관객은 ‘무엇’과 맞닥뜨린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관객에게 그것은 지루함으로, 허망함을 못 견디는 관객에게 그것은 허망함으로 되돌아올 뿐이지만,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관객에게 그것은 선명한 무엇으로 돌아온다. 앎의 기쁨으로 혹은 한줄기 눈물로 말이다. 
‘거울 대칭’이라는 전시 부제가 말하듯이, 한지석의 이번 개인전은 거울의 반영 효과를 함유한다. 거울의 반영성은 실재의 좌우를 뒤집는 역전과 전환의 시뮬라시옹을 전개한다. 그 앞에서 관자는 늘 왜곡된 것임을 알면서 허상 속에서 실재의 특정 부분을 확인하려고 한다. 얼굴의 여드름을 짜고, 머리를 다듬고 옷매무새를 다듬는 것이다. 그래 됐어! 거울의 효용성은 바로 이것이다. 사실을 확인하는 것! 거울은 아무리 왜곡된 형상일지라도 실제로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인하고자 하는 관자의 욕망을 잠시나마 해소한다. 마법을 통해 관자를 위무하는 착한 시뮬라크르인 셈이다.    
한지석의 전시는 관자의 뒤틀린 욕망을 품어 안는다. 그의 전시는 거울을 대면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그의 작품명, 〈증거〉처럼 관객에게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증거를 확증하게 만드는 배려의 제스처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넨 위에 짙은 푸른색의 유화물감이 뒤덮인 그곳에서 어떤 관객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기억의 이미지를 포착한다. 어둠 속에서 대면했던 광활한 자연의 위엄을,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만났던 기념비처럼 우뚝 선 건물의 외양을, 나를 놓아두고 떠난 아버지의 영혼을 만난다. 그의 작품 앞에서 소환되는 기억과 기억-이미지는 관자마다 다르다. 그의 짙은 블루를 어떤 이는 저녁의 어스름을 뒤덮는 어둠으로 이해하거나 어떤 이는 새벽이 밀어내는 어둠으로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전시 전경

한지석, 정지된 깃발, 린넨에 유채, 200x260cm, 2018-19


그러나 우리는 안다. 한지석의 짙고도 푸른 물감 속에서 부유하는 희미함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말이다. 그는 관객에게 묻는다. 현실을 위협하는 자연 재난과 사회적 재난 속에서 그리고 복잡다기하게 벌어지는 전쟁과 테러의 위험 속에서 사는 오늘날의 동시대인이 보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했으나 TV와 스마트폰과 같은 또 다른 왜곡된 거울로 바라본 세상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그의 전시 부제인 ‘거울-대칭’은 음험하다. 그의 전시가 실재를 왜곡하는 시뮬라시옹으로 넘치는 이러한 거울-대칭을 통해서 실재를 보고자 하는 관자의 비틀린 욕망을 계속 자극하기 때문이다.
아! 거울-대칭이 반영하는 이미지는 실재와 현실을 왜곡하는 허무의 시뮬라시옹! 그곳에는 진실을 여는 미래란 아예 없는가?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희미한 것들이 마치 진실을 찾기 위한 꿈틀대는 몸부림처럼 보이는 까닭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까? 그런 면에서 그의 전시는 또 한편으로 친절하다. 관객에게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방법을 자신의 회화를 통해서 성찰하도록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


출전/
김성호,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방법」, 전시평, 『월간미술』, 5월호, 2019, p. 154.
(한지석展 - 거울 대칭,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2019. 3. 30 ~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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