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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일반│수원미협 50년사 / 수원미협 50년, 궤적과 현황 (하편)

김성호

수원미협 50년, 궤적과 현황 (하편)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V. 2000년대 : 수원미술협회의 도약기 & 밖으로의 확장 
제 15대 지부장에 이석기(2001-2004)가 취임했다. 부지부장으로 안병덕, 윤춘수, 최현식이, 사무국장으로 강상중이 업무를 맡았다. 
2001년 수원미술협회의 1차적 과제는 회원과의 소통을 극대화하는 일이었다. 당시 5개 분과(한국화, 서양화, 조각, 디자인·공예, 서예)로 구성된 회원 수가 100여 명이었다. 이들의 소통은 대개 공문, 우편, 전화였기 때문에 보다 편리한 방식의 소통 시스템이 필요했고, 당시 활성화되기 시작한 인터넷 시대를 미리 대비할 필요에 직면했다. 그 일환으로 ‘수원미술협회 홈페이지 구축’(suwonart.co.kr)을 시도했다. 또 하나는 협회 회원전에 출품료를 없애 다수의 회원을 참여시키는 방식을 도모하였다. 
더불어 분과의 주체적 기획을 통해서 전시를 할 것을 독려해서 회원의 민주적 소통을 강화하였다. 당시 주요 전시로는 ‘새로운 힘의 태동 – 100호전’, ‘한국구상회화 70인전’, ‘묵의 향연 – 월드컵 수원경기 기념전’, ‘내가 아끼는 작품,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의 만남전’, ‘자연 풍경화의 모색 – 서울 한원미술관 초대전’, ‘새로움을 향한 현재 – 경기청년작가 지명전-디자인, 공예’, ‘추상회화 동상이몽전’, ‘지팡이와 방망이 – 전국 포토폴리어 공모전’, ‘서예와 청소년의 만남전’, ‘선생님 조각이 뭡니까? 전’ 등이 개최되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미협의 회원 정기전이 개최될 때마다, 2002년부터 젊은 작가 1인의 ‘초대 개인전’을 개최한 것이었다. 이러한 기획은 신진 작가들의 창작 지원을 통해 수원미술협회의 미래적 비전을 강화시키고자 한 것이었다. 당시 선정자는 2002년 류선형, 2003년 김현숙(김리안), 2004년 최세경이었다. 한편, ‘2002년 한·일 월드컵’이라는 국제적 행사를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개최하게 되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이 수원에 집중되었고, 이러한 기회에 수원미술의 대외적 홍보 역시 필요하게 되었는데, 수원미협이 주관한 ‘2001 드림퍼포먼스아트페스티발’이나, ‘2002 FIFA 월드컵 설치예술제’는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주요 전시로 자리를 잡았다. 당시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다수 참여하였다. 
무엇보다 이 시기 가장 주요한 사건은 2003년부터 수원미협이 ‘수원미술전시관 위탁 관리 운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수원예총이 위탁 관리를 했었으나, 불미스러운 일로 위탁 관리가 해제되었고, 다음 위탁 업무를 수원미술협회가 맡게 된 것이다. 2003년 3대 관장에 당시 미협 지부장인 이석기가, 사무국장이 조진식이 취임하였다. 이렇게 됨으로써 협회의 숙원이었던 협회 사무실과 미술 전시를 위한 전용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부터 수원미술협회는 다른 미술협회와 달리 거대 조직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다만, 수원미술협회의 소유로 수원미술전시관의 위탁 관리에 집중하기보다 수원 미술계의 소유라는 인식을 통해서 경쟁 단체였던 수원민미협의 기획전을 초대하기도 했다. ‘전국 민족미술 수원전-오늘의 삶전’이 그것이다. 수원미술전시관을 플랫폼으로 다양한 사업들이 전개되었다. ‘수원미술전시관 홈페이지’ 구축, 소식지인 ‘수원미술전시관 뉴스레터’를 창간, 그리고 일반 시민까지 대상으로 확장한 ‘이론 강좌’, 교사를 대상으로 ‘직무연수’ 프로그램 등 다양한 기획들은 수원의 미술 인구의 확장에 기여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들로 인해 회원 수는 급증하였다. 2001년 64명, 2002년 11명, 2003년 44명, 3년 동안 총 119명이 새로 입회하였고, 15대 지부장 시절 초기였던 2001년, 100여 명의 회원수는 2003년에 이르러 200여 명에 이르는 거대 단체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제 16대 지부장에 강상중(2004-2007)이 취임했다. 수석부회장으로 채순홍, 부회장에 조진식. 김춘홍이 각각 취임했고, 사무국장으로 홍학선, 사무차장에 유혜란, 감사에 신현옥과 박태균이 업무를 맡았다. 
재임 중 중점 사업은 3가지로 대별된다. ‘화목한 미협, 재정이 튼튼한 미협, 역할 분담하는 미협’이 그것이다. 각종 행사와 더불어 회원지 ‘뉴스레터’를 통해 회원 간의 지속적인 소통을 도모하는 노력을 추구하였고, 미술 대회 유치와, ‘나혜석여성미술대전’의 출품작 수를 500여 점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수익 구조를 창출하거나, ‘수원미술전시관’ 내 문화 교실과 누드반을 운영하여 50% 할인 혜택으로 많은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실천하였다. 또한 부회장, 분과장에게 지부장의 독단을 차단하는 방식의 역할을 분담시키고자 노력했다. 
16대 기간 중 대표적인 정책 및 신규 사업 중 하나는 2004년 수원미술전시관에 김성호, 정유진 등 전문 큐레이터 제도를 도입해서 기획의 전문성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한편 수원 미술인들에게 수원시립미술관 건립이 숙원 사업으로 대두되었다. 이에 부응하듯, 수원미술협회는 ‘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서명 운동 및 기금마련전’을 추진하여 160여 만 원을 조성하였다. 또한 경매를 실시하여 행사 수익금 20%인 1백 14만원을 경로수녀원에 전달하는 등의 활발한 참여 행사를 도모하였다. 
수원미술협회의 주목할 만한 사업으로는 ‘수원미술단체 연합전’을 창립한 것이다. 당시 34개 단체가 참여했다. 한편, ‘수원미술 40년 DB구축 사업’을 통해서 오늘날 수원미협 50년을 조명할 기초 자료를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이 행사의 일환으로 박용국, 배수관, 이윤숙 3인이 수원미술전시관 야외 조형물을 설치하게 기획함으로써 수원미술전시관 인근의 문화 예술적 환경을 구축했다.
그 외 협회가 진행해 온 전시 및 미술 대회 등 다양한 미술 행사를 연계적으로 실행했다. 매교동 지역 미술인을 위한 공동 작업장에 김중, 이우숙, 최세경, 강난영 등의 작가들이 입주하여 활동하게 된 것은 또 다른 지역의 공동 창작 스튜디오를 활성화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제 17대 지부장에는 조진식(2007-2010)이 취임했다. 부지부장으로 박용국, 김춘홍이 취임했고 사무국장으로 박용근이 업무를 맡았다. 
재임 중 자체 사업으로 기존의 행사들을 연계해서 지속하는 중에 2007년 ‘수원미술협회 미술단체 체육대회’(만석공원 운동장)을 처음으로 개최하여 회원들 간의 친목과 단합을 도모하였다. 또한 소통을 위한 온라인 공간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홈페이지를 새롭게 단장했으며, 오프라인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전시들 중 몇 전시들은 분과장의 책임 하에 펼쳐지기도 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신규 사업으로 수원미협 최초로 ‘국제미술교류전’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일본 아사히카와시, 중국 주하이시와 직접 교류한 것이다. 글로벌 시대를 준비하는 이 행사에는 참여 작가뿐 아니라, 수원 시민들이 일본과 중국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기회를 만들었다. 또한 ‘한·터 수교 50주년’을 맞아 한국과 형제국의 우호를 맺은 터키와 공동으로 협력하여 특별전을 개최했다. ‘이스탄불에서 불어온 바람’이라는 주제로 터키의 회화, 사진, 공예품 등의 전시를 선보였다. 지원 사업으로 ‘나혜석미술대전’과 같은 지속형 전국 공모전의 행사와 더불어 다양한 전시와 행사를 추진해 나갔다. 특히 미술대전의 운영, 심사권을 분과장에게 위임하여 추진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한편 수원미술전시관 시설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예산 확대 신청을 도모했고, 로비 갤러리 확보, 기획전 예산 증대, 인문학 강좌 개설, 아카데미 신설 등을 통해 미술전시관의 유무형의 콘텐츠를 확장하는데 주력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미술전시관의 문턱을 낮추고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미술전시관에 시민과의 소통을 위해 개관되었던 ‘배영환의 느리게 읽는 책방’도 이러한 취지로 읽히는 사업이다. 배영환의 ‘컨테이너 라이브러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미술전시관 앞마당에는 ‘내일을 여는 책방’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었다. 누구나 방문하여 영화, 다큐멘터리 등 프로그램을 실행하도록 제시되었으나, 아쉽게도 야외에 위치한 까닭에 실제 운영 및 관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미술인을 위한 전시 전용 공간인 수원미술전시관이 확보되었지만, 또 다른 미술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러한 중에 개관한 ‘어린이미술체험관’은 미래 세대를 위한 문화 예술 교육 양양이라는 취지에서 꼭 필요한 공간이 되었다. 보다 주요한 숙원 사업은 ‘수원시립미술관’ 건립이었다. ‘미술관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했으며, 다수의 기금을 마련을 위한 전시들을 개최하여 수원 시민들과 교감하는 작업을 추진하였다. 


VI. 2010년대 : 수원미술협회의 부흥기 & 안으로의 화합  
제 18대 지부장에는 박용국(2010-2013)이 취임하였다. 부지부장에 김 중, 홍형표, 최기운이 취임했고, 사무국장에 박용근(2010), 이정원(2011), 서길호(2012)가 실무를 맡았다. 
자체 사업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제 6-8회 수원시미술단체연합전’과  ‘제 46-48회 수원미술협회 회원전-오늘의 수원’이 있었다. 지원 사업에서 이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국제전은 ‘2010 한중일 국제교류전’(수원미술전시관)과 ‘2011 한일 국제교류전’(아사히카와 세이부갤러리), ‘2011  한•중•일 국제교류전-EAST ASIA’(수원미술전시관), 2012년 ‘중국 주하이시’ 방문(고원미술관), 같은 해 주하이 작가 내한(수원미술전시관 및 화성행궁), 2012년 ‘제 2회 한중일 국제교류전’(수원미술전시관) 등으로 한일 교류, 한중 교류, 한중일 교류와 같은 다차원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참여한 일본 및 중국 작가들에게 ‘세계 문화유산’인 화성을 소개하여 자매 도시 수원의 훌륭한 전통 문화를 널리 알리고 친밀감을 강화하였다. 
또한 국내의 지역 연대를 위한 전시나 행사도 활성화되었다. 2010년 ‘제 6회 수원예술인축제-도시재생공간을 위한 수원, 오산, 화성의 문화회랑전(수원미술전시관)’은 대표적인 행사로 꼽을 수 있겠다. 아울러 회원들의 전시 기회를 확장하기 위해 노송갤러리와 연화장승화원갤러리 등과 초대전시를 추진한 사업도 거론될 수 있겠다. 그 외 회원 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수원미술협회 한마당 등반대회’(광교산)를 개최하여 회원 간 소통과 화합을 도모하였다. 
또 다른 지원사업에서 제 14-16회 ‘나혜석미술대전’(수원미술전시관) 등의 지속형 대형 전시와 더불어 다양한 전시들이 개최되었다. 특히 미술 대회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제 17-19회 홍재미술대회’(만석공원), 2010년 ‘수원화성문화제 그리기대회’(수원시 연무대)와 ‘수원화성문화제 서예휘호대회’(수원시 연무대), 2011년 ‘노총미술대회’(샘내공원)가 그것이다.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2010년 ‘제 1회 장애인미술대회’(수원미술전시관)가 개최되었는데 2012년 3회까지 진행되었는데, 이 사업은 이전의 ‘장애 사랑의 미술캠프’ 프로그램을 미술 대회 형식으로 변경, 확장하여 진행한 것이었다. 2012년에는 ‘수원화성문화제 그리기. 서예, 휘호대회’(화홍문, 방화수류정), ‘정원그리기대회’(청소년문화공원), ‘청명단오제 미술대회’(머내 생태공원 원천리천 주변), ‘무궁화 그리기 대회’(수원미술전시관 주변 및 만석공원) 등이 진행되었다. 
제 19대 지부장에는 홍형표(2013-2016)가 취임하였다. 수석부지방에는 박봉순, 부지부장에 박태균, 김승호 그리고 사무국장에 유계희가 일을 맡았다. 
자체 사업으로는 지속되는 정기전이 있었다. 2013-2015년의 ‘제 49회, 50회, 51회 수원미술협회회원정기전 -오늘의 수원전’(수원미술전시관), 2014-2015년의 ‘제 10-11회 수원시미술단체연합전’(수원미술전시관)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아름다운 공공기관 만들기’(수원시청), ‘제9회 수원예술인 축제 – 수원미술협회 50주년 기념 100호전’(수원미술전시관) 등의 전시가 있었다. 또 다른 자체 사업으로 특기할 만한 것은 교류전에 관한 것이다. 2013년 ‘포항-수원미술교류전’(포스코갤러리), ‘한•프 국제 교류전’(수원미술전시관) 등이 그것으로, 전자는 국내, 후자는 국제 교류전을 지향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자체 사업은 훗날 2014년에는 지원 사업으로 전환되는데, ‘포항교류전, 수원시연합단체회원나눔전’(수원미술협회전시관)과 ‘한•중•프 국제교류전’(수원미술전시관)’이 개최되었다. 먼저 2014년 국내 교류전에서 ‘수원·포항 교류전’과 ‘연합단체전’ 그리고 ‘미협 정기전’을 묶은 ‘나눔전’을 수원시로부터 삼천만 원을 보조 받아 진행했는데, 수익금의 50%인 천만 원을 ‘수원시장학재단’에 기부한 것이 특기할 만하다. 아울러 수원 내 타 지역 작가 소개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수원미술전시관 P.S 1관’을 수원미협 작가들뿐만 아니라 타 지역의 우수작가의 작품을 초대하여 전시했는데, 이 부분은 열린 교류를 위한 기획으로 평가할 만하다. 
한편, 2014년 국제 교류전은 아시아 권역의 작가들의 교류뿐 아니라 서구 작가와의 교류로 확산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2014년 ‘한•중국제교류전’(중국 주해시 화원미술관)이 지난 18대 지부 사업을 이어서 개최되었고, 2015년 ‘한•중 국제교류전’(수원미술전시관)과 ‘한-스페인수교 65주년’을 기념하는 ‘해외유명작가 특별기획초대전’으로 스페인 작가 ‘헤수스 수스(Jesus Sus) 초대전’과 ‘해외유명작가 특별기획초대전’ 2탄으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금속공예 작가 개인전인 ‘리카르도 달리시 초대전’(수원미술전시관 제1전시실)이 개최되었다. 후자는 ‘수원시미술전시관’과 주한 ‘이탈리아문화원’이 주최/주관하였고, 수원시와 주한 이탈리아대사관의 후원으로 전시가 준비된 것이다. 이 전시가 갖는 의미는 기존의 국제 교류전을 통해서 아시아 작가 작품의 소개는 있었으나, 서구의 작가를 개인전으로 소개하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그 외 지원 사업은 이전의 지회장 시절에서 선보였던 정기전, 미술 대회 등 다양한 전시들이 개최되었고,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은 세계 문화유산인 화성이 있는 수원에 대한 역사적 자긍심과 ‘수원 화성’의 아름다움을 대내외적으로 소개하기 위한 프로젝트형 전시가 개최되었다는 것이다. 1912년 매일신보에 게재된 ‘이원규의 수원8경 가(歌)’에서 이름을 빌려와 2014년 ‘이원규의 수원8경 가(歌)전’(수원미술전시관)을 개최했다. 수원의 화가들이 참여한 이 전시는 수원시가 주최하고 수원미술협회가 주관했다. 
제 20대 지부장에는 이영길(2016-2018)이 취임하였다. 부지부장에는 김혜진, 김원주, 경수미가 취임했고, 사무국장으로 서길호가 업무를 맡았다.   
20대에는 미협 자체 사업이 월등히 많아졌다. 이것은 미협 자체의 여러 문제의식에 직면하면서 협회의 미래적 비전을 모색한 노력의 일환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하겠다. 대표적인 중점 사업은 회원 간 소통과 화합에 관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전의 뉴스레터를 개편해서 ‘수원미술 통(通)’이라는 협회 소식지를 발간한 것은 이러한 중점 사업의 일단을 보여 준다. 2016년 7월에 창간호를 만들어 2018년 12월에 9호를 발간하기까지 회원들의 동정과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의 소식지를 지속적으로 발간해 왔다. 이전의 뉴스레터가 대개 일방적인 정보의 전달의 차원이 강하다면, 이 바뀐 소식지는 회원의 동정과 정보 공유 및 친목을 도모하는 일에 보다 집중했다. 2018년 구축한 ‘수원미술협회 블로그’ 개설도 이러한 회원 간 친목과 소통을 위한 차원의 사업이었다: https//blog.naver.com/suwonfaa 
이러한 차원에서 2016년부터 새롭게 시작한 ‘미술인의 날’ 행사는 소통과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극대화된 형식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것이다. 2016년 1회(삼교리 식당), 2017년 2회(광교 청화대 농원), 2018년 3회(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가 이루어진 ‘미술인의 날’은 수원미술협회 회원들의 단합과 결속을 위한 한 해의 주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미협의 정기전이 미술계에서 ‘서로가 잘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형식적인 소통의 자리였다고 한다면, 매년 말에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송년회의 성격도 함께 지내게 됨으로써, 수원미협의 회원들이 한 해의 삶을 나누고 소통하는 유의미한 자리가 되었다. 
특히 2018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진행했던 ‘미술인의 날’은 다양한 공연과 프로그램들로 수원 미술인의 축제의 장으로 정초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이러한 축제의 양상은 이전 집행부에서 이미 실행한 예술인 축제를 계승하고 극대화된 사업으로 정초한 것이었다. 이전의 사업인 ‘수원예술인축제’ 역시 2016부터 제 12회-14회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또한 소소한 회원을 위한 행사 역시 있었다. 2017년의 ‘화성을 가다-성곽프로젝트 달빛 따라 걷기’(수원화성행궁~화서문)나 ‘수원미술협회 건강걷기’(광교호수공원)와 같은 사업은 특별히 미술 행사가 아님에도 회원 간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는 행사로 주요하게 간주되었다. 이와 같은 자유로운 소통을 위한 자체 사업들의 취지에 부합하는 지원 사업 역시 있었다. 2017-2018년의 ‘수원예술인 워크숍’(청송, 수안보 농협연수원)이 그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원미협 및 고문들을 대상으로 2016년 ‘황금나침반’, 2017년 ‘수원미술 30인 대표작가전’, 2018년 김용근, 윤재상 고문을 대상으로 한 작품 감상 등도 미술인들의 과거와 오늘을 점검하는 회원 간의 친목과 유대 강화에 적합한 행사가 되었다. 또한 임원들의 단합과 결속을 위한 임원 연수를 매년 진행해서 협회의 청사진을 제안하기 위해 고심한 것도 필요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수원미협의 발전을 위해서는 구성원들 사이의 친목 도모 행사는 매우 주요함에도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 요청된다. 미협의 현황과 정책 간의 문제들에 대한 좌담회, 토론회가 지속된 이유이다.  2016년 ‘수원문화예술발전을 위한 현안간담회-수원미술전시관 위탁운영 관련의 건’(수원미술전시관), 2017년 ‘미술인 정책 토론회’(수원미술전시관), 2018년 ‘수원미술전시관 관리 전환에 따른 공청회’(수원미술전시관 시청각실) 등이 그것이라 할 것이다.  
20대 수원미협은 대내적으로 분과 활성화에도 힘썼다. ‘분과 활성화를 위한 아카데미 진행’이 그것으로 수채화, 한국화분과 주관을 해서 미협 회원의 열린 참여를 도모해서 자기 성장을 도모하는 재교육과 자기 성찰의 장의로 삼았다. 대외적으로는 2018년 외부 기관과 MOU를 체결해서 미협 회원들의 발표의 장을 확장하고자 했다. 북수원도서관과의 MOU 체결, 수원시 가족여성회관과의 MOU 체결과 같은 성과가 그것이라 하겠다. 
이 중에서 특이할 만한 것은 수원미협이 2016년부터, 수원시와 수원문화재단의 협력을 통해 ‘수원화성문화제’를 개최하여 최대의 지원 구조를 만들어 냄으로써,  회원의 자생성 구축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2016년 제 53회 행사에서는 목판본 체험 및 아트프리마켓을, 2017년 54회, 2018년 55회 행사에서는 ‘정조능행반차도 시민 참여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동시에, 행사에 대한 ‘2년 연속 최우수 콘텐츠’라는 종합 평가를 받는 등 소기의 성과를 이루었다.   


VII. 나오는 말 : 반백 년의 궤적 이후의 수원미술협회 
수원미협은 이제 50년이 넘는 역사를 써왔다. 가히 반백 년의 역사라 할 것이다. 우리는 반 백 년이라는 용어가 백년의 세월을 전제하고 있음을 안다. 백년은 천년, 만년처럼 ‘오랜 세월’을 지칭하는 상징적인 말이다. 수원미협의 지금까지의 역사가 반백 년이라면 향후 남겨진 세월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세월보다 더 긴 세월이 덧붙여질 것이다. 다만 ‘반백 년 이후의 세월의 궤적 이후’는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하기 쉽지 않으나, 현재의 이 모습과는 매우 다르게 발전해 있을 것이다.
유념할 것이 있다. 역사를 발전적이라는 인식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우리는 역사주의(Historism)라 부른다. 즉 마르크스(K. H. Marx)의 물질적 변증법으로 발전하는 사관, 헤겔(G. W. H. Hegel)의 정신의 발전적 사관과 같은 것이 그 예가 되겠다. 양자는 역사를 풀이하는 방법론에서는 다르지만, 현재의 뿌리로부터 미래의 방향성을 지닌 발전론적 입장에서는 동일한 관점을 드러낸다. 즉 역사적 물질적 매개의 역사와 정신사를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역사를 ‘시대에 따른 특유의 현상’이라고 진단하면서, 진보나 퇴보의 입장으로 보는 것에 반대하는 상대주의적 입장이 있지만, 수원미협 50년사를 추적하는 이 글은 그것보다 역사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미래적 전망을 발전적으로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기술적, 물질적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 인식에 관한 정신적 발전사를 함께 포함하는 것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수원미협의 50년 궤적과 현황’을 살펴보는 이 글은 다분히 역사주의적이다. 즉 과거로부터 현재를 발전적 선형 위에 수원미협의 연보를 올려놓고 기술하면서 미래의 발전적 전망을 보태는 글이 된다. 즉 한 단체의 역사적 전개로부터 튼튼한 뼈대와 다양한 근육들이 입혀지는 과정을 검토하면서, 새로운 것들의 등장을 가치 있게 평가할 뿐만 아니라, 오점과 논쟁의 역사를 건너뛰지 않고 성찰함으로써 반성의 계기를 삼고 미래적 전망을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을 포함한다. 
따라서 이 글을, I장 들어가는 말로부터 VII장 나오는 말에 이르기까지, ‘수원미술협회 창립 이전 - 창립 초기 - 전개기 - 도약기 - 부흥기’로 나누어 과거로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적 전망을 아우르며 살펴보고자 한 구성 방식은 ‘수원미술협회사’를 하나의 거시적 관점의 틀 속에서 기술하기 위한 조치였다. 전개기, 도약기, 부흥기가 먼 훗날 새롭게 위치 이동을 할 수도 있다. 역사란 언제나 ‘현재적 관점에서의 평가’이기 때문에 그것이 훗날 미래 세대에 의해서 재분석되고 재평가될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국내 한국미협이나 미협의 각 지부들의 역사에는, 영욕의 역사를 모두 지니고 있다. 한국미협과 다수의 미협의 지부들이 공통적으로 선보여 왔던 문제점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미협의 수장을 뽑기 위한 선거를 둘러싸고 미협 내부 구성원들의 세력화된 집단 대립, 미협의 임원들 사이의 권력 쟁투, 오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현 미협과 이전 미협 지부장들의 잘잘못을 따져 묻는 소모적 논쟁, 각 분과 사이의 헤게모니 다툼, 신입 회원과 기존 회원 간의 알력, 극히 일부이긴 하나 미협 임원들의 부정에 따른 비판과 고소, 고발 사건, 그리고 회원들 사이의 불화 등, 미협 각 지부의 구체적 문제점들은 ‘결’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대동소이하다. 수원미협의 역사에서도, 특정할 수는 없으나 유사한 일들이 있어 왔다. 이러한 부분들을 이 글에서 구체적으로 모두 기술할 수는 없다. 어떠한 면에서는,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토로보다, 긍정적 면모들을 이야기하고 그것의 가능성을 찾는 일이 보다 현실적일 수 있다. 물론 문제점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더불어 미협 내외에서 문제점들이 악순환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주요하다. 
그렇다. 수원 미술인들의 화합과 결집을 도모하고 복지의 문제까지 고려해야 할 대표 단체인 수원미술협회의 역사를 더듬어 보고, 역대 수원미협 집행부의 공과를 모두 살피는 일은 주요하다. 다만 여기서는 ‘과’보다 ‘공’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수원미협의 위상을 재점검하는 일이 무엇보다 주요하다고 하겠다. 
기실 수원미술협회는 1964년 ‘미술협회 수원지구회’가 결성되고, 1965년 ‘미협 수원 지부’로 인준되는 시점으로부터 역사를 기술해야 할 터이지만, 우리는 이 글을 미협 창립 이전으로부터 살펴보았다. 그 까닭은 수원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싹튼 미술협회의 근본 정신적 토대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한국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인 나혜석의 활동, 1929년 결성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수원 지부, 1930년대 미술평론가 홍득순의 활동, 1940년대 수원 출신의 화가 이영일이 창설한 ‘조선미술가협회’의 활동 등도 수원미술협회의 창설에 이르는 역사적, 정신적, 문화적 바탕을 이해하는데 있어 검토해야만 할 역사적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는 수원미협이 50년 간 고군분투했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훌륭한 정신적인 자산이 될 것이다. 
제 1대-20대에 이르는 수원미협의 지부장 시대를 단락별로 나누어 살펴본 이 글에서 역대 수원미협이 지향했던 4가지 공통의 방향성은 다음처럼 분석된다. 첫째는 ‘전시 공간 확보를 위한 노력’, 둘째는 ‘회원 수 증대와 회원 간 화합 도모’, 셋째는 ‘미협의 외적 확장’, 넷째는 ‘지속적인 일반 대중과의 소통’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네 가지 방향성들은 오늘날에 이르러 관점이 변모되면서 세분화되어 나타난다. 여기서는 다섯째 ‘새로운 과제’라는 항목을 추가하여 함께 살펴본다. 
첫째, 그 간의 ‘전시 공간 확보를 위한 노력’에 관한 변모이다. 수원미협뿐 아니라 수원 미술인의 거점과 전시 공간 확보의 차원에서 요청되었던 미술전시관 위탁 운영과 수원시립미술관의 설립은 이미 실현이 되었다. 다만 수원미협으로부터 수원문화재단으로 운영이 이관된 수원미술전시관 대신 하드웨어 플랫폼으로서의 새로운 모색이 요청되는 현 상황이다. 플랫폼은 무형의 것으로만 족할 수 있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지만, 현재까지는 수원을 예술 활동의 거점으로 삼는 수원 미술인들을 위한 유형의 플랫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방향성이 통합된 플랫폼에 대한 구축이 시급해 보인다. 더불어 21세기에 하드웨어에 국한된 것만이 아닌 다양한 형식의 플랫폼 구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둘째, ‘회원 수 증대와 회원 간 화합 도모’에 관한 변모 지점이다. 회원 수 증대를 도모했던 초, 중기 수원미협의 과제는 오늘날 120만 명이 넘는 수원시 인구와 대비하여 500여 명의 회원 수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관점으로 전환될 필요성에 직면한다. 대도시로 전환되고 있는 수원시의 특성상, 향후에도 회원 수 증대는 간과할 사항은 아니다. 이것 역시 주요하다. 다만 더 주요한 것은 기존 회원들의 소통과 화합의 프로그램과 장치들이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20대 지부를 거치면서 이러한 수원미협 회원들 간의 소통과 화합의 컨텐츠들이 무수하게 개발되고 있는 중이다. 좀 더 고려해야 할 사항은 최근 부상하고 있는 ‘미술인 복지’에 관한 중앙의 노력들을 수원에서도 병행 실천하는 방식들을 보다 더 연구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것은 행정적 지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므로, 수원시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정책의 차원에 반영될 수 있는 제안들을 거듭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미협의 외적 확장’의 변모 지점에 관한 것이다. 수원미협의 외형적 덩치를 키우는 일과 더불어 수원이 아닌 도시의 미술인들과의 교류, 나아가 아시아 권역을 넘어서 서구 미술과의 교류까지 추진하면서 수원미협은 현재 ‘글로벌 네트워크’를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수원시가 지니고 있는 ‘수원 화성’과 같은 전통의 문화 원형 콘텐츠를 활용하는 다양한 미술 실험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내용을 화두로 수원미협으로서는, 향후 전시를 통한 교류뿐 아니라 미협 회원의 해외 기관 MOU 체결과 더불어 해외 레지던시 등 글로벌 교류 프로그램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겠다. 추진할 향후 과제들이 산적하다고 하겠다.  
넷째, ‘지속적인 일반 대중과의 소통’의 변모 지점에 관한 것이다. 이 방향성은 비미술인, 혹은 잠재적 미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시민에 대한 예술 향유의 기회를 충족시켜야 할 책무는 수원의 거대 단체로서 소월하게 할 부분이 절대 아니다. 이것은 향후 잠재적인 수원 미술인들을 기대하거나 차세대 미술인을 육성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들이다. 특히 수원미협이 지속적으로 펼쳐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대회는 그러한 면에서 매우 유효한 지점이라 하겠다. 
다섯째, ‘새로운 과제’에 관한 것이다. 1대-20대에 이르는 수원미협의 집행부가 늘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입안하고 실천하면서 이전 미협 집행부와 차별화하려는 노력을 실천해 왔다. 이러한 노력들의 근간은 실상 수원미협 회원, 나아가 수원 미술인들을 위한 요구와 희망 사항들을 수렴해 주고 독려하는 거시적 목적 때문에 고려된 것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미협 회원들이 주인이라는 점에서 집행부는 이들을 위한 최고의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겠다. 다만 21세기의 변모하는 사회 집단이라는 차원을 고려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앞으로 몇 년, 몇 십 년 뒤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미술협회의 모델이 만들어지게 될 가능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그만큼, 기술적 변모가 삶의 양상마저 변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미래학적 관심을 기울이면서 수원미협이 다른 미협 지부보다 먼저 새로운 모델을 선도적으로 실천해 나갈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새로운 수원미협의 집행부에서 수원미협 백년을 기대하면서 전략을 짜고 실천해나갈 과제임은 물론이다. 
참고로 이 글은 ‘한국의 현대 미술사’라는 거시 테마와 연동하지 않았다. 특히 1980년대를 지나는 특정 시기의 중앙 미술 현장과의 관계, 그리고 중앙 미협 또는 수원 민미협과의 관계를 논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도 자체가 수원미협 50년사를 조명하는데 있어 또 다른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어질 부분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학술 세미나와 같은 장에서 다각도의 방향에서 살펴볼 과제임을 부기해 둔다.     
글을 맺는다. 주지하듯이, 역사는 과거로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성’과 더불어서 유사한 양상의 재출현을 허락할 뿐 결코 반복이라는 것이 없는 ‘비반복성’을 특성으로 삼는다. 수원미협의 역사는 50년을 넘어서 이제 100년을 향해 가고 있다. 역사가 실제적으로는 결코 되돌려질 수 없으나 발전적 측면에서 더 이상 앞으로 진보하지 못하는 양상, 즉 가역성과 반복성의 형국을 초래하는 것을 우리는 상징적으로 말해 ‘퇴행적 역사’라고 부른다. 한국의 산업화를 통한 ‘기술적 진보’ 이면에 제기되고 있는 독재화를 공고히 했던 현대사는 민주적 시스템의 발전을 더디게 만든 ‘퇴행적 역사’이기도 하다. 향후 수원미협의 백년사를 써 나가는 과업이 이러한 ‘퇴행적 역사’라는 상징의 틀 안에 갇히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우리는 또한 기대한다. 차기 집행부가 작금의 수원미협 50년의 궤적과 현황을 곱씹는 노력을 이어 감으로써, 결코 ‘퇴행적 역사’가 없는 수원미협의 발전사를 거침없이 개척해 나가길 말이다. ●


(하편)


출전 / 김성호, 「수원미협 50년, 궤적과 현황」, 『수원미협 50년사』, 한국미술협회 수원지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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