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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시모코가와 츠요시 / 그때, 그곳의 추억과 지금, 이곳의 기억

김성호

‘그때, 그곳’의 추억과 ‘지금, 이곳’의 기억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시모코가와 츠요시(SHIMOKOGAWA Tsuyoshi)의 작업은 개인적인 미시적 서사와 집단의 공동체 서사를 조합하고 혼성한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현재 개인적 서사로부터 집단의 서사로 이동하는 노정에 있다. 양자 모두에서 자신의 개인적 과거사와 체험이 녹아 있다는 것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주요한 특징이 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전자가 ‘그때. 그곳’에 대한 추억과 기억을 소환해서 현재화하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그때. 그곳’의 기억을 ‘지금, 이곳’의 현재에 재조합하는 작업이 된다. 


I. 그때, 그곳의 추억 
작가 시모코가와는 ‘그때, 그곳’의 추억을 묻고 산다. 누구나 그렇듯이 가슴에 묻고 사는 애절했던 기억은 추억이 되어 가슴 한편에 비밀처럼 쌓여 있는 법. 그는 이성에 대한 동경과 흠모의 기억을 아물지 않는 상처로 오랫동안 간직한 채 성장의 시간을 보냈다. 그 시절 대개의 젊음이 그러하듯이, 소녀에 대한 소년의 사랑은 가혹했다. 뜨거운 열망만큼이나 사랑을 성취하지 못하는 실패로 인한 낙망과 그것으로 인한 가혹한 좌절이 출발부터 예정된 까닭이다. 이러한 실패는 ‘상상 속에 실현되는 사랑’을 추동하는 근원적인 힘이다. 
그는 그 추억을 오래전, 오랫동안 현실 속에 소환해서 작업으로 현재화하는 시간의 과정을 거쳤다. 그로서는 사랑의 열병에 대한 애절한 추억이 다 사그라지기 전에 작업을 시작했던 셈이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대변하는 한 에세이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무지개를 찾는 한 소년의 내러티브’를 모티브로 자신의 작업을 전개시켜 나갔다. 
그는 자신의 애절했던 과거의 기억을 소환해서 드로잉, 회화, 사진, 설치 등의 다양한 방식의 작품 속에 녹인다. 보라! 무지개의 내러티브를 고스란히 자신의 작업 속에 투영한 작품 〈Rainbow〉(2006)는 작은 조각상 둘로부터 출발한다. 이것은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의 미니어처 흉상이, 각자의 위치에서 모터의 작동에 따라 360도로 회전하는 작품이다. 둘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붉은 실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다가설 수 없는 이성을 늘 갈망했던 그의 청소년 시절의 추억을 소환해서 정감 어린 키네틱 조각으로 조형화한 것이라 하겠다.  
소년의 소녀에 대한 열망은 지속된다. 작품 〈무제〉(2008)에 등장하는 교복을 입은 소녀는 작가의 과거 속에 열망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던 사랑의 대상이다. 두 개의 패널로 구성된 캔버스의 한편에는 교복을 입은 채로 해변에 누워 있는 소녀의 상반신을 또 한편에는 소년의 누워 있는 몸을 대비시켜 선보인다. 하얀 백사장,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릴 것 같은 푸른 바다, 그리고 그 위에 떠 있는 커다란 뭉게구름은 낭만적인 소년 시대의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기에 족하다. 그러나 얼굴이 화면 밖으로 밀려난 이 회화는 따뜻한 사랑을 추억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랑의 실패와 좌절과 같은 상처의 감정을 조용하게 간직한다. 소년의 몸은 소녀와 멀찌감치 떨어져 있기에, ‘가까이 있기’를 열망하지만, 끝내 다다를 수 없는 실패의 내러티브가 해변을 무대로 잔잔하게 펼쳐진다. 이러한 ‘실패한 사랑’을 기억 속에서 소환하는 꺼지지 않는 열망은 조개껍질을 헤드폰으로 만든 공예적 조각인 〈For love song〉(2008)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바다의 소리를 듣기에 족한 이 헤드폰은 소년 시대의 사랑에 관한 하나의 메타포처럼 작가에게 자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Non title 345×275×30mm, acrylic paint on canvas, 2008, 

한편, 거대한 구를 키네틱아트로 형상화한 작품 〈In a dream〉(2009)은 천장에 연결된 펌프에서 떨어지는 하얀 액체가 커다란 풍선을 타고 표면을 적시면서 바닥에 떨어지는 작품이다. 그것은 소년의 소녀에 대한 꿈틀대는 욕망이 좌초하는 지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바닥에 떨어진 액체는 다시 호수를 타고 올라가 순환의 욕망을 지속한다. 이 작품은 욕망이라는 것이 결핍과 좌절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기보다 자생적인 욕망의 지평을 따라 끊임없이 생성되는 것임을 웅변한다. 그렇다. 소년에게 사랑은 가혹했다. 작품 〈Romance〉(2013)에서는 분리된 침대 혹은 테이블의 저편에서 꿈꾸는 상대에 대한 사랑의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유추하게 만든다. ‘기억 속 소년’의 욕망은 잔잔한 관조의 시선으로부터 때로는 강박적 관음증의 세계로, 때로는 구토와 같은 도착적 피학의 세계로 소년을 몰아세웠던 시절이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In a dream, 1600mm balloon, 900mm. 
tank Aquarium balloon, iron wood acrylic plate cloudy liquid, water pump timer, 2009


Romance, Mixed Media, 2013, Exhibition at OMOTESANDOU Gallery

그러나 소년에게도 사랑을 나누던 소녀가 있었다. 이제는 어른이 된 예전의 소년은 ‘그때, 그곳’의 추억을 소환하여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소녀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소년의 머리 위에 올라서 있는 소녀의 모습을 형상화한 시리즈 작품 〈Virgin〉(2015)은 성인이 된 이후 과거를 농담처럼 떠올리는 수컷의 저속한 읊조림처럼 소녀의 모습을 떠올린다. 소녀는 과거의 그에게 모든 위협으로부터 지켜주어야 할 소중한 존재였다. 소녀를 자신의 머리 위에 온통 채우고 영웅처럼 포즈를 취한 교복 입은 소년은 스스로도 자랑할 만한 과거의 초상이었던 셈이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하려는 한 소년의 결단이, 작품 속에 절절하게 투영된다. 소년은 작품 〈Virgin 8, 11〉(2015)에서 소녀의 사소한 이야기도 귀 닮아 듣고자 ‘토끼 귀’를 했고, 작품 〈Virgin 7, 12〉(2015)에서는 흐드러지게 핀 꽃밭에서 상상의 사랑을 키운다. ‘그때. 그곳’에서의 사랑의 추억은 ‘이제, 그렇게’ 소년의 기억 속에만 남았다. 


(좌)Virgin 7, About 130×130×300 mm, Mixted Media, 2014.
(중)Virgin 8, About 130×130×300mm, Mixted Media, 2014.
(우)Virgin 9, About 130×130×300 mm, Mixted Media, 2014.






II. 지금, 이곳의 기억 
소년의 기억이 그저 추억의 한편으로만 남게 되는 시점, 시모코가와는 삶의 방황에서 만났던 공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곳은 이별의 상처를 잊기 위해 배회하던 곳에서 만난 현실계의 공간이었다. 장소는 아무런 일도 벌이지 않았으나,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김으로써, 그에게 새로운 창작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한국의 ‘청주레지던시’ 시설부터 본격화하던 새로운 작업은 무심하게 다니던 낯선 장소와 풍경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가 자주 다니던 버스 정류장, 빵집, 귀가 길에 늘 만나게 되는 역의 풍경, 그가 간만에 시간을 내어 갔던 여행지에서의 풍경 등, 그 모든 과거의 장소는 그저 소소한 것들이었다. 그 공간은 그에게 특별한 사건의 기억을 남기지 않았으나 그는 특별한 영감을 건져 올린다. 소소한 풍경들 속에서의 존재적 가치를 찾는 일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때, 그곳에 있었음’에 대한 기억을 건져 올려, ‘지금, 여기’에서의 존재적 가치를 되묻는다.  
그가 맞닥뜨린 풍경을 무심하게 촬영하는 방식으로부터 시작된 ‘그때, 그곳’에 대한 기억을 그는 드로잉으로 현재화한다. 아틀리에서 재현의 방식으로 풍경을 종이 위에 담거나, 현장에서 즉석으로 스케치한 작은 드로잉을 인화된 사진 속에 콜라주의 형식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또는 풍경 드로잉 속에 풍경의 일부였던 사진을 병존시키기도 한다. 일상의 사진으로만 존재하던 풍경이 ‘드로잉 사진’으로 작품화된 예라고 하겠다.   
한편, 그는 비디오 영상으로 움직임의 사건을 정착시키기도 한다. 전시 공간 밖의 풍경을 기록한 영상을 투명한 유리창이 있는 전시 공간에 배치하여 ‘지금, 여기’의 실제 풍경과 ‘그때, 그곳’의 풍경을 한 자리에 배치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미 지나간 시공간의 기억을 기계로 포착하여 현재의 시공간과 함께 병치하는 작업은 가상과 실재에 대한 질문을 넘어 관객으로 하여금 현재를 사는 바쁜 현대인의 삶과 존재 가치에 대한 잔잔한 성찰을 이끈다.  
드로잉 위에 콜라주를 시도한 사진, 사진 위에 물감으로 그린 회화 등을 시도했던 작은 크기의 작업들이 쌓이게 되면서, 그는 한 도시에서의 인상 깊은 풍경을 선정해서 프로젝트로 구체화하는 시리즈 작업에 천착하기 시작한다. 도시의 〈8경〉 시리즈가 그것이다. 〈Daejeon City Scene 1,2,3,4,5,6,7,8〉(2018)은 대표적이다. 하나의 프레임 안에 2곳의 풍경을 담은 총 4점의 분절된 액자가 일종의 셰이프드 캔버스(shaped canvas) 형식으로 모여 완성된 이 작품은 동양 전통의 익숙한 ‘8경 회화’가 아니다. ‘8경 회화’라는 전통화의 형식만을 빌려왔을 뿐, 그가 선정한 8경은 그저 단순하고도 소소한 풍경일 따름이다.     


Old Chungam Provincial office, Video installation, 220×130cm, 
VTR Canvas on acrylic paint, Projector, SD player, 2018.

멀티플 형식으로 천착하는 이러한 〈8경〉 시리즈는 훗날 하나의 작품 안으로 다양한 장르의 매체가 혼종되는 작품으로 변모하게 된다. 〈Old Cungnam Provincial Office〉(2018)는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된다. 옛 충담도청의 오래된 건물 사진을 보게 된 작가는 영감을 떠올리고 현재의 건물을 회화로 그린 작품 위에 이 사진의 복사본을 프린트하고 그 위에 현재의 건물 주변의 풍경을 기록한 영상을 투사한다. 과거와 현재, 사진, 회화 그리고 영상이 혼합된 이 작품은 영상 속 건물 주변의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로 인해 부유하듯이 일렁이는 화면을 창출하면서 시간과 존재의 의미를 우리에게 질문한다. 박제화되었던 과거가 살아서 꿈틀거리고, 현재가 미래의 지평으로 확장하는 ‘살아있는 작품’을, 새로운 창작과 전시를 통해 경험하면서, 그는 재현 이미지가 단순히 ‘시뮬라크르로서의 허구’가 아님을 체득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한 〈Old Daejeon Station〉(2018)이나 다양한 풍경들은 앞으로 그의 작업의 방향성을 예견하게 만든다. 이번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기간 동안 제작하고 선보인 인천의 옛 건물을 둘러싼 풍경들은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최근 그의 작업은, 그가 경험한 인천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회화와 드로잉으로 해석하면서 집적한 ‘도시 경험에 대한 시각적 일기’라 할 만하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그동안의 미시적 내러티브의 시간들로부터 탈주한 채, 사회적 구성원들이 주고받던 기억들을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라 하겠다. 즉 최근에 천착하는 작품들은 자신이 목도하는 현재의 시공간에 대한 타자들의 경험과 기억을 가져와 오버랩시킴으로써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길을 놓은 것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DDP 300×170cm, VTR projection Paint, VTR on Canvas, Video 
Installation, Exhibition at Chongju, 2016.



III. 에필로그 
사랑의 대상이었던 ‘과거 속 소녀’가 현재의 작가에게 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졌던 것처럼, 작가에게 있어 망각 속으로 사라진 것들은 무수히 많다. 작가 시모코가와에게 있어 인천이라는 도시 역시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런 까닭일까? 그는 현재 그가 목도하고 있는 인천의 시공간에 대한 기억을 붙잡고자 한다. 그래서 낯설었던 인천은 그에게 어느새 친구처럼 익숙해지거나 연인처럼 친밀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도시의 풍경 속에 자신의 기억과 타자의 기억을 중첩시켜, 때로는 통시적으로 때로는 공시적으로 재편성하면서 사회적 내러티브가 무엇인지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미시적 내러티브로 사회의 거시적 내러티브로 전환하고 있는 시모코가와의 최근 작업은 인천이라는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는 중이다. 어떠한 새로운 작업이 나오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그때, 그곳’에 대한 추억과 ‘지금, 여기’의 기억이 끊임없이 충돌하여 서로 영향을 미치는 ‘어떠한 작업’이 될 것임을 예견해 볼 수 있겠다. ‘지금, 여기’는 언젠가는 ‘그때, 그곳’이 될 것임을 유념하면서 말이다. ●

출전 /
김성호, 「그때, 그곳의 추억과 지금, 이곳의 기억」, 『인천아트플랫폼_레지던시_결과보고』, 이론가매칭 비평문, 자료집,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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