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서문│박경진展 / 삶과 미술 현장을 포월(匍越)하는 공간회화

김성호

 삶과 미술 현장을 포월(匍越)하는 공간회화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1. 돌아오다  
작가 박경진이 돌아왔다. 2014년 개인전에서 ‘재난’을 화두로 그것에 미술의 언어로 화답하던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개인적 서사와 내면의 관심 안으로 말이다. 개인적 야망으로 국가 경영을 실험하던 탐욕의 위정자를 국민이 단죄해야만 했던 비속(卑俗)의 시대를 그 역시도 맘 편히 살아갈 수는 없었다. 화가 박경진은 이 비루한 시대와 난망(難忘)의 재난을 붓을 들어, 그리고 또 그렸다. 그의 캔버스에는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이 휩쓸고 간 폐허 속에서 삶의 전부를 잃은 농축산민의 울분이, 썩어가는 강물에 치를 떠는 환경운동가의 분노가, 난파하는 세월호를 넋 놓고 지켜봐야만 했던 유족의 오열이 그리고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와 그 아픈 후유증이 깊은 생채기를 남긴다. 그 상처와 슬픔 그리고 분노를 위무해 주지 않는 위정자를 떠올릴 때 그의 붓은 칼이 되었다. 때로 그 칼은 자신을 해치기도 했다. 당시의 시대를 민낯으로 대면하고 발언하는 화가 자신에게 그의 ‘칼 같은 붓’은 또 다른 아픔이자 커다란 형벌이 되었다. 그로서는, 상처와 형벌을 기록하는 붓을 잡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 스스로 너무 우울해지고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돌아왔다. 오늘날의 정치, 사회 참여의 현장으로부터 그가 사는 삶의 현장으로 말이다. 




2. 미술이 된 삶의 현장 
박경진은 언제나 현장에 있었다. 시대에 참여하고,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회인으로, 예술 세계를 펼치는 미술가로 말이다. 일과 미술을 나누고, 일을 마치 짊어지고 갈 멍에처럼 여기던 한때의 시절은 그의 마음을 편치 않게 했으리라. 그런 까닭일까? 작가 박경진에게 최근의 상황은 삶의 현장과 미술 현장을 양분할 수 없는 ‘무엇’으로 정초하기에 이른다. 영화나 뮤직비디오의 세트장에서 ‘작화(作畫) 노동자’로 사는 ‘삶의 현장’을 자신의 예술 안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생계의 현장에서도 자신의 미술 창작을 다른 방식이지만 연장할 수 있게 되었고, 미술 현장에서도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삶의 지혜를 적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의 이번 개인전 《현장(Site)》은 자신이 생계를 위해 일하는 ‘영화나 뮤직비디오의 세트장’을 미술의 언어로 번안해서 전시장으로 옮겨온 것이라 하겠다. 세트장은 박경진의 작품 속으로 들어온 ‘생계의 현장’이자, ‘삶의 현장’이다. 그곳은 ‘허구의 조경이나 건축 또는 미술과 이미지’가 유령처럼 떠도는 공간이다. 영화나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서 찬란한 무형의 콘텐츠가 ‘마술의 옷’을 차려입고 임시로 머물다 사라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보라! 그곳에는 조각적 설치와 같은 구조물이 날마다 세워지고 사라지며 회화와 같은 색의 향연이 날마다 펼쳐지고 지워진다. 그곳은 마치 어린아이가 한 장의 도화지 위에 이 그림과 저 그림을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낙서장 같은 공간이기도 하다. 그곳에서는 생각과 생각이 맞물리고 과거와 현재가 스스럼없이 교차하며 실재와 허구가 그리고 상상과 환상이 끊임없이 중첩한다. 
이번 전시는 설치와 철거가 일상처럼 벌어지는 ‘영화, 또는 뮤직비디오’의 세트장에서 작화 노동자로 일하던 그가 보았던 흔하디흔한 한 풍경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이전 세트에서 여러 번 사용하고 남은 재료를 재활용하여 만든 한 구조물에서, 다양한 질료와 색들이 층층이 엉켜 있는 것을 보고 큰 영감을 받아 새로운 작업을 구상한다. 재활용을 통해 만들어진 한 세트 구조물로부터 ‘색과 물질이 추상적으로 중첩된 시각적 결과물’을 발견한 그가 ‘변주되는 공간’과 그것이 함유한 ‘집적되는 시간’의 의미를 성찰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는 이번 전시에서 “추상적인 중첩들과 미완의 거대한 조형물에서 느낄 수 있는 비현실적인 풍경들을 설치 작업물로 제작”하게 된다. 즉 생계의 전선에서 ‘허구를 만드는 삶의 현장’이 ‘허구와 상상의 세계인 미술’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박경진, 무제, oil on canvas, 91x72.5cm, 2017



3. 회화의 공간 실험, 공간회화의 경계
그는 자신의 작품을 위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한다. 그가 작가 노트에서 언급하는 ‘회화 공간 실험’ 혹은 ‘공간회화 실험’이 그것이다. 이것은 ‘회화의(적) 공간 실험’과 ‘공간의(적) 회화 실험’이라는 쌍을 만난다. 소유격을 가지는 주어가 바뀐다고 해도 의미상 방점은 ‘회화’라는 단어에 찍힌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최근 작품을 ‘공간회화’로 그리고 작업의 방향성을 ‘회화의 공간 실험’으로 명명하기로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영화 세트의 존재적 면모(내용)와 구조적 차원(형식)을 비틀어 미술의 장으로 침투시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영화 세트’라는 현실 속의 허구적 존재는, 촬영이라는 ‘개입’과 ‘번안’의 과정을 통해서 ‘허구의 영화’ 속으로 침투하면서 그것이 마치 ‘현실(réel/réalité) 또는 즉 실재(réalité)의 모방처럼 인식된다. 즉 세트장을 실제의 장면인 것처럼 오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세트장이란 그 스스로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충실한 재현”을 도모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허구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존재임을 말이다. 박경진의 ‘공간회화’ 혹은 ‘회화의 공간 실험’은 바로 이 ‘현실과 허구의 경계’로부터 출발한다. 허구를 감추고 실재를 흉내 내는 세트장과 달리 그의 작업은 처음부터 상상의 허구임을 전제한다. 그런 까닭에 ‘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는 언제나 투명하게 드러난다. 마치 세트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 경계 속에서 매일같이 살면서 자신이 일하는 곳이 가짜의 환상을 만드는 곳임을 인지하듯이 말이다. 
박경진은 세트장에서 자신이 재현과 모방으로 ‘가짜의 환영’을 만드는 ‘기만의 비술(秘術)’을 소개하는 ‘내부 고발자’가 되기로 한다. 물론 그 비술이란, 오늘을 사는 현대인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는 ‘비밀 아닌 비밀’인 까닭에 그는 ‘세트장에 대한 사실적 묘사’를 자제하고 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드러내는 일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세트장 위에 엄청난 높이로 일으켜 세워 현실과 환영의 공간을 나누는 ‘가설 벽’으로 표상된다. 가설 벽의 안쪽은 페인트칠뿐 아니라 소품과 장식들로 ‘현실의 어디’처럼 위장된 환영의 공간이지만, 그것의 바깥쪽은 각목들이 얼키설키 덧대어진 날 것의 상태로 남아있는 현실의 공간일 따름이다. 박경진은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가는 안쪽의 공간과 각종 집기와 부자재들로 쌓여 있는 혼돈의 세계인 바깥쪽의 공간을 함께 조망한다. 보라! 그의 캔버스 안에는 가설 벽 안쪽에서 페인트칠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과 그 바깥쪽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 한눈에 보이고, 환영이 구축되고 있는 과정과 완결된 지점이 혼재한다. 
‘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는 또한 영화적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과 아닌 것의 ‘접점’이기도 하다. 가설 벽의 안쪽 공간에서도 이것은 ‘취함’과 ‘버림’의 공간으로 나뉜다. 영화 촬영을 위한 용도로 사용될 내벽은 색이 칠해져 있고 ‘현실의 무엇’처럼 위장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내벽 즉 ‘카메라 앵글 안으로 포섭되지 않는(않는 것으로 예정된) 내벽’은 그저 창백한 민낯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따름이다. 그는 환영을 입힌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이 처음부터 하나의 공간 안에 설계되었던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의 작품 속 이미지를 보라! 회색의 거대한 축대벽은 영화 이미지로 소비될 한쪽 공간만 흰색으로 칠해져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 납작하게 붙어 있거나 중첩된 까닭에, 때로는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보이지 않기도 하는 그 ‘경계’는 우리가 그의 ‘공간회화’를 읽어내는 주요한 키워드가 된다.





4. 박경진의 공간회화, 추상성과 가변성의 함의  
1층 전시장은 전시의 프롤로그, 즉 기(起)의 공간이다. 그곳에는 150호에 이르는 거대한 캔버스들이 벽에 기대어진 채 바닥에 내려져 있다. 그의 세트장 속 어떤 가설 벽처럼 말이다. 그 안에는 군사 독재 시절의 암담한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를 양산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의 고문 현장을 재현하고 있는 세트장 풍경이 있기도 하고, 지하 조직의 비밀 공간처럼 음습한 분위기를 재현한 한 세트장에서 점심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작화 노동자’의 모습이 담겨 있기도 하다. 거기에는 영화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 위한 다양하고도 아기자기한 세트장이 펼쳐져 있기도 하다. 말없이 던져진 거대 캔버스들은 그의 공간회화를 둘러보는 첫 여행지인 셈이다. 


(좌)점심시간, 캔버스에 유채, 227.3x181.8cm, 2017
(우)남영동 대공분실 - 대전영화세트, 캔버스에 유채, 227.3x181.8cm, 2017


2층 전시장은 어떠한가? 그곳은 그의 공간회화가 펼쳐지는 맥락을 읽을 수 있는 승(承)과 전(轉)의 공간이다. 그곳은 회화, 드로잉, 에스키스, 사진 등이 뒤섞인 ‘작가 박경진(만)의 세트장’으로 꾸며져 있다. 비교적 작은 캔버스 작품들과 더불어 노동과 삶의 현장에서 촬영한 다채로운 사진 이미지들은 하나의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을 차례대로 선보인다. 따라서 사진들은 자신의 실제 작업을 구상하는 에스키스와 같은 것들로 전시 안에 편입되어 들어온다. 세트장 이미지의 해체와 재조합을 통해서 구상하는 자신의 ‘공간회화’에 대한 단상들이 실제의 작품들과 어우러져 거대한 자료실처럼 전시되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지하의 공간은 이번 전시에서 그가 제시하는 결(結)의 공간이다. 1층의 프롤로그 같은 세트장 풍경들이, 2층의 공간회화를 구상하는 그의 아카이브와 작품들과 함께 병합된 채, 일련의 시뮬레이션을 거친 후 이 지하 공간에서 하나의 작품을 마치 화두처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트장이 함유한 ‘현실과 허구의 경계’, 박경진이 고민하는 ‘삶과 예술의 접점’, 그리고 그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공간회화의 ‘추상성과 가변성의 함의’가 한 덩어리로 제시되고 있는 작품이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1층에서 작품 제작과정을 시뮬레이션과 아카이브의 방식으로 선보였던 실제의 작품이다.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한 세트장임을 유추하게 만드는 〈IDOL-커피 한 잔 드시고 하게요〉라는 작품은 의미심장하다. 이 작품은 커다란 세 개의 대형 캔버스로 구성되어 실제의 세트장 풍경처럼 펼쳐진다. 그것은 그가 전념하고 있는 가변성의 실험을 거친 결과물이다. 거기에는 즉물적인 색의 덩어리와 붓질의 흔적이 실제의 세트장과 달리 분출한다. 해체, 재구성, 재구축으로 이루어진 그만의 가상 세트장이 된 셈이다. 더불어 그것은 허구적인 추상성이 물질로 각인되는 그만의 세트장이기도 하다. 그것에는 세트장 구조물에 쌓이는 시간의 집적과 더불어 추상적 결과물이, 세트장을 삶의 현장으로 삼은 ‘작화 노동자’의 추상적 존재가 마치 때로는 ‘무덤덤하게’ 얹혀있고 때로는 ‘아픈 기억’처럼 각인되어 있다.  


IDOL- 커피 한 잔 드시고 하게요, 캔버스에 유채, 227.3x545,4cm, 2018

글을 정리하자. 필자는 그의 ‘회화의 공간 실험’을, ‘삶과 미술 현장을 포월(匍越)하는 공간회화’라 부르고자 한다. 여기서 ‘포월’이란, 전통적 현상학에서 탐구되는 초월(超越)을 ‘세계-내-존재’라는 현존재로부터 사유했던 하이데거(M. Heidegger)의 철학적 개념을, 철학자 김진석이 보다 더 현실의 지평 위에 올린 채 한국적 사유로 변형한 용어이다. ‘포월’은 한자의 의미대로 ‘기어서 넘는’ 일련의 모든 사유와 행위를 지칭한다. 그것은 현실 극복과 이탈을 주도하는 ‘초월’과 대립한다. 그것은 탈주의 결과에 박수를 보내는 초월과 달리, 현실을 안고 ‘마주하는 모든 경계’를 엉금엉금 느리게 기어 넘는 지난(至難)한 넘어섬의 과정 자체에 방점을 찍는 행위이다.
우리는 이 전시에서, 작가 박경진이 ‘작화 노동자’로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삶의 현장’으로부터 ‘예술 현장’으로 넘어가는 쟁투에 가까운 ‘포월’의 미학을 읽는다. 그의 ‘회화의 공간 실험’또는 공간적 회화는 ‘미술이 된 삶의 현장’이며,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탐구하면서 넘어가는 고된 노동’이다. 그의 작업은 우리의 삶 속 시공간이 분절된 채 한 덩어리로 소환되는 장소이자 우리가 소유하던 서사의 파편들이 경계를 넘어 한 곳으로 모여든 담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삶과 예술이, 현실과 환영이, 추상성과 가변성이 함께 일렁이는 그의 작업 앞에서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언뜻언뜻 발견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출전/

김성호, 「삶과 미술 현장을 포월(匍越)하는 공간회화」, 『박경진展』, 전시 카탈로그 서문, 2018, (박경진 전, 인사미술공간, 2018. 11. 30 - 12. 29)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