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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허단비展 / 부재와 상실을 치유하는 마음속 고백

김성호

부재와 상실을 치유하는 마음속 고백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작가 허단비의 이번 개인전의 부제는 ‘12월의 고백’이다. 12월의 끝은 한 해의 마무리와 새해의 준비로 늘 분주하다. 그런 면에서 12월은 한 주체의 개인적인 ‘삶의 시작과 끝’을 한꺼번에 은유한다. 그것은 ‘죽음 앞에 선 현존’에 대한 명상이다. ‘삶의 끝자락’에서는 어떠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가? 그것은 ‘지금, 여기’의 차안(此岸)에서의 번뇌와 고통을 종결하는 피안(彼岸)에서의 영생 혹은 이 생에서의 마지막에 대한 예비가 될 것이다. 
주지하듯이 죽음의 존재는 타자의 주검을 통해서만 인식되는 간접 경험의 소산이다. 그것은 남은 자에게 죽은 자의 부재를 강력하게 인식하게 만듦으로써 남은 자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안긴다. 더욱이 어느 누구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죽음에 대한 인식은 주체로 하여금 ‘불안’을 낳는다. 이 불안은 때로는 정상적 삶을 지속하는데 있어서의 장애물이자 죽음으로 이르는 길을 재촉하는 질병의 증후이거나 때로는 삶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희망의 좌표를 남기는 추동력이 되기도 한다. 
작가 허단비에게 있어, 상실과 부재에 대한 처절한 인식과 남다른 관심은 그녀의 할머니의 죽음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그녀가 삶을 의지하는 근원적 모태(母胎)였던 할머니’의 죽음은 당시 ‘살아남아 있던’ 작가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했다. 그녀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식탁 위 빈 접시와 포크, 나이프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부재의 풍경은 할머니의 죽음이 야기했던 총체적 부재와 그로 인한 불안한 상황을 여실하게 은유한다. 있어야만 될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는 방이나 식탁의 풍경은 그런 면에서 할머니의 죽음으로부터 기인했던  ‘부재에 대한 연민’ 또는 ‘모든 죽음에 대한 한편의 애도가(哀悼歌)’의 형식을 띄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 면에서 허단비의 작품에 등장하는 방, 식탁, 천, 의자, 침대와 같은 사물들은 죽음/삶, 소멸/생성 사이에서 현현(顯現)되는 존재론의 문제의식을 함유한다. 그런 면에서 허단비가 감정이입한 소소한 사물들은 인간 존재론을 유추케 하는 하나의 암시적 메타포(implicit metaphor)’가 된다.   
여기에서 생각해 보자. 존재자의 갑작스런 부재가 한 주체의 기억에 오랫동안 살아남는 일련의 상황은 참담하다. 타자의 ‘부재’라는 결핍과 맞닥뜨린 인간 주체의 ‘불안감’은 질병의 징후로 심화되고, 현실에서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심각한 사건으로 변화되기 십상이다. 주지하듯이, 부재를 현재에 되살리는 방식은 망각으로부터 기억을 소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형상에 대한 기억이란 얼마나 관념적인 것인가? 그것은 언제나 실재로부터 미끄러진다. 증빙할 실재 자체가 지금, 여기에 부재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처럼 기억한다는 것은 증빙할 수 없는 실재에 대한 부분적 소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부재에 대한 기억은 훗날 존재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짐을 우리는 안다. ‘존재’란 부재 옆에서 양자의 사이를 오가는 교차와 연기의 세계이자, 작동하는 꿈틀거림이며, 명사화가 불가능한 ‘동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자로서 존재 주체인 작가 허단비는 부재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고 그것을 형상화한다. 충만했던 존재들이 부재할 때 발현되는 일련의 상실감을 작품화하는 것이다. 보라! 방에 덩그러니 놓인 침대 위에 껍질처럼 놓인 옷들은 부재의 짙은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마치 식탁 위에 흩뜨려진 남은 음식과 빈 접시들이 상기시키는 부재의 여운과 연동된다. 그녀는 ‘방’이라는 공간과 ‘식탁’의 공간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부재의 흔적을 회화의 언어로 탐구함으로써 부재가 야기한 상실과 심리적 공허를 치유하고자 시도한다. 들판으로 펼쳐진 외부의 풍경 속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와 그 위로 영혼처럼 흩어지는 천 자락의 흩날림을 보라. 또는 깊은 수심의 물속에 부유하는 듯, 허공에 떠있는 듯 일렁이는 천의 펄럭임과 의자의 위태로운 유영을 보라. 









위태로움과 자유로움 사이에서 혹은 떠나는 자의 아쉬운 마음과 보내는 자의 안타까운 마음이 얽혀 있는 이러한 상징적 화면은 부재의 기억을 붙들어 쥐고 슬픔 속에서 그것을 떨쳐내지 못했던 작가가 ‘이제는 그 기억을 놓아주려고 하는 결단’의 지점마저 엿보게 만든다. 어둡고 푸르른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색조가 결코 우울한 분위기로만 감지되지 않는 이유이다. 
작가 허단비는 자신의 창작을 통해서 궁극에는 ‘타자의 부재’를 수용한다. 부재의 기억을 망각으로부터 길어 올림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치유하고, 부재로부터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는 셈이다. 부재 속 존재의 의미는 그녀의 작품 속 숨통을 틔우고 있는 ‘햇살이 쏟아지는 작은 창문’과 같은 희망의 기운을 내포하면서 가시화된다.  



여기 또 한 작품이 있다. 회화와 설치가 어우러진 회화적 설치 작품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껍질 같은 검은 천이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위에 난민촌 텐트가 즐비한 황량한 한 폭의 그림이 설치되어 있다. 검은 천 위에는, 흰 글씨로 무엇인가가 빼곡하게 쓰여 있는 사각의 검정 종이들이 흩뿌려져 있다. 그것은 깊은 상실을 분위기를 가득 안은 폐허와도 같은 칠흑의 어둠의 바탕 위에 쓰여 있는 작가의 심정적 내러티브이다. 한편 그것은 이번 개인전의 주제에서 드러나는 ‘12월의 고백’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녀의 회화 속에서 스며들어오는 한 줄기 빛과 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함유한다. 실제로 중동의 난민을 대상으로 선교와 봉사 활동을 펼쳤던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는 난민을 위한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인 셈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예술을 통해서 타자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는 섬기는 자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기독교인으로서 작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결연한 결단의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12월의 끝자락, 작가 허단비는 평온함과 따뜻함에 스스로 머물고자 한다. 신에게 기도하는 마음을 담은 다음의 글처럼, 그 간절한 바람을 타자들과 함께 나누면서 말이다.  

“오늘 터키에 있는 시리아 아이들이 저의 영상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았어요. 아이들의 그림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지고 아름다웠어요. 저에게 이 사진 한 장은 그 어떤 물질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선물이에요. 저에게 이런 선물을 보답으로 주시는 당신을 저는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제가 때로는 일에 지쳐있고 크게 기뻐하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그런 못난 저에게 당신은 꾸짖는 대신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 주시며 힘과 응원이 되어 주시네요. 그런 당신에게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부족하겠지만, 더 보답하려 노력할게요. 그리고 어떠한 노력보다도 당신을 오늘보다 더 사랑할게요.” (작가노트, 2018) 
 
출전/
김성호, 「부재와 상실을 치유하는 마음속 고백」, 『허단비展』, 전시 서문, 2018, (허단비 전, 서진아트스페이스, 2018. 12. 21 -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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