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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임영선 / 동시대 현실에 대한 ‘뼈 있는 팩션’

김성호

동시대 현실에 대한 ‘뼈 있는 팩션’  


김성호(미술평론가)


임영선은 조각과 다매체를 통해 ‘조각적 설치’를 구현한다. 그는 인간을 둘러싼 삶의 맥락을 마치 무대 장치처럼 만들고 그 속에 자신의 인체 조각을 연극배우와 같은 양상으로 등장시킨다. 그의 인간 탐구는 80년대에 관념적인 실존을 탐구한 인체 조각으로, 90년대 초에 소외된 민초들의 삶을 시각화한 인간 조각으로, 90년대 후반에 현대 도시인의 갈등과 실존적 상황을 연극적 공간으로 시각화한 ‘상황 조각’으로 전개되어 왔다. 흙, 돌, 세라믹, 합성수지, 브론즈와 같은 전통적인 조각 매체는 물론이고, 강화유리, 발포 고무, 모터, LED 조명과 같은 산업 재료를 혼성하던 그의 작업에는 밥알, 의복, 카펫 등 각종 오브제와 비조각적 재료가 빈번히 침투한다. 그의 최근작은 이러한 혼성의 재료와 함께, 사운드, 음악, 비디오 영상과 같은 비물질적인 멀티미디어를 한데 섞어 자신의 미술 창작을 ‘공간 예술’로부터 영화와 같은 ‘종합 예술’로 확장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 중에서 단연코 돋보이는 것은 재현의 기술을 마법처럼 구사한 사실적 형상의 인체 조각이다. 여기에 덧붙여 인체 조각을 인간 조각으로 확장시키는 다양한 연극적 상황, 인간이 처한 삶의 맥락을 투사하는 영화적 스토리텔링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한 곳을 향하여 - One Zone e
임영선은 1997년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한 사건으로 인해 창작 활동에서 커다란 난관에 봉착한다. 경기도 광주에 소재한 작업실이 전소된 것이다. 연이어 닥친 아내의 부고는 가족의 해체를 불러오기에 이르렀고, 그로 하여금 창작을 지속할 동력을 잃게 만들었다. 비교적 오랜 침묵의 시간을 보낸 뒤, 간헐적인 발표를 위한 창작을 지속해 왔지만, 그에게는 본격적인 창작과 발표를 위한 ‘다시 일어남’이 절실했다. 다행히 교수로서 학생들의 창작을 지도하는 일은 그에게 치유와 더불어 새로운 창작을 위한 성찰의 시간들을 허락했다. 다시 작업실을 짓기 시작했고 연구를 하면서 작업의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곳을 산실로 삼아 태어난 신작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60세! 어느덧 황혼의 나이에 접어든 그가 분연히 일어났다. 새로운 전시를 위해서이다. 전시명은 ‘One Zone e’. 여기서 마지막 이(e)는 입구(entrance)를 의미한다. ‘한 구역의 입구’ 혹은 ‘입구를 향한 하나의 구역’으로 번역됨직한 이 주제어는 작가에게 ‘하나의 절대적 길, 방향’이라는 의미로 각인된다. 그것은 그에게 예술가로서의 삶을 추동하는 목표이자, 동시에 그가 대면하고 있는 세계를 읽는 방식이 된다. 그것은 작금의 글로벌 자본주의가 획책하는 세계를 진단하는 ‘키워드’임과 동시에 그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하나의 창’이다. 
이 세계는 아름답고 살맛나는 세상이지만, 너무, 자주 비루할 뿐더러 가혹하기조차 하다. 서구 열강이 주도하던 식민 시대가 종결되었음에도 문화식민주의라는 이름으로 후기식민주의가 여전히 세계 도처에서 횡행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의 망령이 ‘지금, 여기’에 살아서 꿈틀거린다. 그간 사회 속 개별체 인간의 소외의 문제를 탐구하고, 보이지 않는 지배 권력에 대항해 온 ‘사회적 인간’의 면면을 탐구해 왔던 작가 임영선에게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가 곱게 보일 리가 없다. 그는 ”권력과 자본, 그리고 그 사이의 예술의 경계와 위치를 진지하게 물음으로써 나의 예술이 어떻게 나아가야 되는지를 살피고 그 속에서 신선한 담론들의 방향이 생성되어가는 과정들을 발견하는데” 이번 전시의 목적이 있음을 천명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잉태된 7점의 설치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기계적이고 전자적인 테크놀로지, 비디오 영상 등이 결합되어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한다.




제국의 아이들 - 김뚱운과 또람프 외 
드넓은 전시장을 ‘조각적 설치’로 꾸민 이번 전시에는 영화적 스펙터클과 더불어 팩트와 픽션이 맞물리는 팩션(faction)의 스토리텔링으로 가득하다. 
작품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The show must go on)!〉에서 관객은 김정은과 트럼프의 인물상에 덧씌워진 작가 임영선의 상상력 가득한 영화적 팩션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두 지도자는 이 작품에서 ‘제국의 아이들’로 그려진다. 김뚱운과 또람프로 희화된 등장인물의 이름도 그러하고, 그들이 오늘날 핵을 둘러싸고 힘겨루기를 펼치고 있는 국제 정치 상황의 일단을 ‘아이들의 전쟁놀이’와 같은 ‘희화된 서부극’으로 풍자한 작업 역시 그러한 작가의 관점을 잘 보여 준다. 보라! 제목과 같은 네온의 텍스트가 벽에 설치되어 있는 장소에서 팩션의 인물인 김뚱운이 권총을 들고 서 있다. 그와 가까운 곳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팩션의 또 다른 인물인 또람프의 시신은 김똥운이 살인 사건의 주역임을 분명히 우리에게 알려 준다. 권총과 열려진 돈 가방을 움켜쥔 채 죽어있는 또람프의 시신, 그리고 주변에 흩여져 있는 100달러 지폐들과 15m 길이로 늘어진 레드카펫! 이 모든 설치는 작금에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오늘날 한반도의 일촉즉발의 긴장 국면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거나 한편으로 허탈하게 만들어 풀어 헤친다. 임영선의 팩션의 스토리텔링이 마치 ‘뼈 있는 농담’처럼 빛을 발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그의 엉뚱하고도 재기발랄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개인적으로 파산이 된 김뚱운은 부유한 친구 또람프에게 경제적 도움을 청하였고 또람프는 돈을 빌려줄 것을 약속하게 된다. 2020년 9월 4일 베니스 영화제에 김뚱운과 또람프는 함께 초대되었다. 행사를 마치고 김뚱운은 또람프가 가져온 돈을 약속대로 받게 되었고 계약서를 쓰게 된다. (중략) 계약이 끝난 후 마음이 바뀐 김뚱운은 돈을 받고 또람프에게 계약서를 수정해 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또람프는 이에 격분하며 돈을 회수하여 돌아가려 한다. 이에 김뚱운은 그의 가슴에서 총을 꺼내어 또람프의 가슴에 발사한다. 또람프는 바로 즉사했고 김뚱운은 흐트러진 돈가방을 챙겨 도주하기에 이른다.”
유머와 풍자가 섞인 그의 팩션의 스토리텔링은 또 다른 작품 〈숨겨진 산물(Concealed Product)〉에서도 이어진다. 다만 다르다면 전작이 ‘어른을 위한 잔혹 동화’와 같은 차원이라면 이 작품은 ‘뉴스 만평’과 같은 분위기를 배태한다. 이 작품은 전시장에 20개의 채널로 구성된 비디오 모니터가 거대한 원을 그리며 마주 보고 있는 비디오 설치 작업이다. 관객은 비디오 설치가 만든 대형 원 안으로 들어가서야 작품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다. 20개의 영상의 첫 장면에서는 컴퓨터 자수가 장엄한 교향곡을 만들 듯이 무엇인가 연신 만들고 있다. 컴퓨터 자수가 완성되면서 점차 명료해지는 그 이미지는 천에 새겨진 G20 국가의 각 국기와 지도자의 얼굴들이다. 컴퓨터 자수로 완성된 평면 이미지들은 이내 각 지도자들이 연설하는 동영상으로 살아나면서 전환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면은 점점 연설하는 각국 지도자의 얼굴로부터 ‘입’ 부분으로 클로즈업이 된다. 20개 모니터에서 각기 다른 동영상들과 소리들이 뒤섞여 전하는 혼탁한 사운드와 혼돈의 메시지! 이내 연설하듯 입들의 동작이 멈춰지고 각국의 국가들이 연주된다. 연주가 끝나면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흐른 후 무대 중심으로부터 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영국 락밴드 퀸(Queen)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노래,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The Show must go on)〉가 그것이다. 
실제 노래는 생이 고단해도 무대 위에서 자신의 예술을 지속해야 하는 머큐리 자신의 처절한 삶을 표현한 것이지만, 전시에서는 G20 국가들의 세계 제패의 야망과 더불어 각 지도자들의 개인적 욕망으로 은유된다. 따라서 관객은 세계 평화와 공의를 부르짖는 그들의 영상 속 연설이 제목처럼 ‘숨겨진 산물’과 같은 속내를 감춘 한낱 정치적 멘트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린다. 피지배 식민의 입장으로서 사람들은 그들의 웅변이 그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릴 수밖에 없는 괴리를 느낄 따름이다. 





영원한 민초 - 쿠르디의 주검 
조각가 임영선이 식민 자본주의의 동시대를 읽는 대안은 일 년을 하루처럼 살고 있는 이 땅의 민초에게 주어진다. 이번 전시에서 하얀 세라믹으로 된 50여 인의 민초를 표현한 작품 〈피안의 땅〉은 민중이 이 시대 역사의 주역임을 증언한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두상 내부에 개별 조명을 설치하여 역사의 희생자로 살다 간 그들의 넋을 위무하고, 아픈 역사를 치유하는 진혼제라 할 만하다.      
그렇다. 역사를 이끌 주역으로서의 민중은 또 다른 작품 〈노동자상〉에서도 명료하게 드러난다. 강렬하고도 화려한 색상을 입은 2인의 노동자상은, 높은 좌대 위에 기념비 형식으로 설치됨으로써, 훗날 기계가 노동을 대체할 미래 시대에 되새길 노동의 의미를 질문한다. 이 작품은 한국 근현대사의 주역이자 영웅이었던 노동자, 민중의 역할이 얼마나 주요했는지를 되새기는 작업임과 동시에 오늘날 지나치게 개념화, 상업화되고 있는 현대미술 현장에서 노동의 가치를 준수하는 예술의 필요불가결성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주문이 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 〈정글의 법칙〉(2018)에서 표현되고 있듯이, 이 시대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형국의 ‘경쟁 시대’이다. 또 다른 작품 〈이 찬란한 아름다운 세상을 어떻게 단죄하랴!〉에서 표현되고 있는 처참한 현실은 또 어떠한가? 최근 터키 해안에서 발견되었던 시리아 난민 소년 ‘쿠르디’의 죽음을 소재로 작업한 처참한 풍경은, 이 시대가 여전히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삼는 가운데, 난민, 기아, 질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딜레마를 자초하고 있는 악의 세계’임을 증언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전시 속에 예술가상에 관한 알레고리를 침투시킨다는 것이다. 그것은 권력에 도구화되는 예술, 지배 권력에 침묵한 채 순수 예술의 세계에만 잠입하는 예술에 대한 비판임과 동시에 세계를 대면하면서 동시대를 발언하는 예술가로 살고 있는 자신의 예술 행위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알레고리 혹은 이중 함의는 일견 ‘풍자적 비판’으로만 보일 수 있는 그의 작업으로부터 ‘시대에 대한 진지한 통찰’을 견인한다. 우리가 그의 작업을 동시대의 현실에 대한 ‘뼈 있는 팩션’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

출전/
김성호, 「동시대 현실에 대한 ‘뼈 있는 팩션’」, 『월간미술』 , 12월호, 2018, pp. 110-115.
(임영선 개인전, 2018, 12, 12-12. 19,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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