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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무경계 프로젝트 - 온새미로展 / 행동주의 미술의 정치학

김성호

무경계 프로젝트 - 온새미로, 행동주의 미술의 정치학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작가들의 연대와 연합으로 이루어진 ‘무경계 프로젝트’는 동시대 남한의 땅에서 살고 있는 작가들의 시대 의식을 읽은 바로미터(barometer)가 된다. 이 프로젝트는 서구의 열강들이 만든 식민 지배의 산물인 ‘한반도 분단’의 엄혹한 현실 속에서 한국의 미술가들이 통일 시대를 염원하면서 연합한 ‘행동주의 정치미술’이기 때문이다. 






       
I. 무경계 프로젝트의 목표와 실천 전략 
이 그룹이 밝히고 있는 프로젝트의 목표는 단순하고 명징하다: “DMZ(韓半島 非武裝地帶, Korean Demilitarized Zone)의 모든 철책 선(철조망)을 걷어 내는 것이다. 경기도에서 강원도에 걸쳐 있는 동서 약 250km에 달하는 남북한의 철책을 걷어 내, 가운데서 만나는 지점에 대규모 원형 구조물을 세우는 장기 프로젝트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서 예술 정치를 작동시키는 프로젝트인 것이다. 즉 최종 실현의 목표를 위해서 DMZ의 환경들을 리서칭하고 연구하며 실제로 DMZ의 공간들을 탐방하는 일련의 실천들을 통해서 프로젝트의 최종적인 성취를 위한 단계별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23차례에 이르는 답사를 통해서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다큐멘터리와 예술적 결과물을 축적시켜 나간다. 즉 답사 공간과 연관된 역사와 사회적 맥락의 정보를 담은 아카이브, 답사 현장을 기록한 사진, 영상물과 지역민과의 인터뷰, 답사의 노정에서 실현하는 퍼포먼스와 설치 작업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결과물들을 전시의 형태로 재점검하고 논의하는 단계를 지속적으로 거치면서 프로젝트는 진행되어 나간다. 
긴 호흡의 순차적인 단계를 거치는 이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해서 팀원들과의 공유, 연대, 동행은 필수적이다.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선발대의 사전 계획, 프로젝트의 실행을 위한 역할 분담, 프로젝트의 참여를 독려하고 동행하길 요청하는 열린 연대, 답사가 이루어지는 현장에 대한 치밀한 기록과 자유로운 형식의 참여 예술의 실천 그리고 프로젝트의 개선을 위한 난상 토론과 답사 후 프로젝트를 기념하는 전시와 난장과 같은 축제는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이 프로젝트의 연속적 프로그램들이다.  




II. 온새미로 - 경계의 봉합과 탈주   
유념할 것이 있다면, 이 그룹이 단언하고 있듯이, 이것은 장기 프로젝트라는 사실이다. 조속한 시일 내에 100% 실현의 목표를 염원하고 언젠가는 구체적인 실현의 가능성을 담지하는 것이지만, 국제 정치 질서의 틈바구니에서 이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의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이다. 통일 이후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 불허일 뿐만 아니라 통일이란 염원이 이 시대에 실현 가능할지에 대한 여부조차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현 가능성에 대한 미지수, 구체적인 실현에 이르는 난제와 같은 부분을 이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러한 예측이 가능한 ‘난제’와 ‘최종적 목표의 실현 가능 여부의 미지수’ 앞에서도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진행해 나가는 까닭이 무엇인가? 
무경계 프로젝트의 기획의 변은 다음처럼 밝히고 있다: “경계가 지어진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다시금 우리 눈으로 직시하게 한다. 이에 ‘예술 정치’라는 화두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는 경계 안의 제한된 선택을 넘어 모든 경계들을 다시 인식하고자 한다. 그 경계를 걷어 낼 수 있는 정치적 방법 모색과 실천 행위를 자유롭게 실험, 연구하고, 예술을 넘어 다방면의 관점과 소통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는 전 세계의 미(예)술계가 노골적인 부패와 ‘투기’의 장이 되어 버린 형국에서 새로운 예술 실천 방안이기도 하다.”
그렇다. 무경계 프로젝트가 각각 주제와 화두로 내세운 ‘온새미로’와 ‘예술 정치’는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된다. 갈라지고 쪼개진 그리고 오염되고 변형된 한반도의 영토를 ‘온새미로’의  상황으로 회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벌이는 행동주의와 실천의 ‘예술 정치’가 주요할 따름인 것이다. ‘온새미로’의 예술 정치의 실현, 이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따라서 ‘DMZ의 철조망을 걷어 내 세우는 거대한 원형 구조물’은 이 목적의 실현을 위한 하나의 가상 목표일 따름이다. 물론 실현을 전제하는 것이지만 이 목표는 ‘온새미로’라는 주제와 ‘예술 정치’라는 화두 그 이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경계 프로젝트가 주제로 삼은 ‘온새미로’란 무엇인가? 이것은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김새 그대로, 자연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이 주제어는 ‘지금, 여기’의 한반도 현실을 ‘갈라지고, 쪼개지고, 원시향의 자연이 변형된 상태’로 진단하고 있는 이 미술 그룹의 인식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이들이 지향하는 ‘정치미술’은 이데올로기의 전투적 반향을 의도하기보다 한반도에서 온새미로의 상황을 되찾으려는 근본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예술 정치’를 열망한다. 그것은 식민 종주국으로부터 잃어버린 평화의 지대, 오염된 피식민의 땅, 변형되고 갈라진 영토를 회복하고자 하는 ‘예술을 통해 실천하려는 정치적 열망’인 것이다. 그것은 ‘경계의 넘나듦 - 경계의 봉합 - 경계의 탈주 - 무경계’와 같은 순차적인 노정들에 대한 실현을 열망한다. 즉 무경계 프로젝트는 ‘자유로운 월경(越境)’으로부터 ‘경계 없는 넘나듦’을 열망하는 것이다. 




III. 행동주의 미술 - 예술 정치 혹은 예술의 정치화    
이들의 행동주의 미술은 저항하고, 혁신해야 할 대상을 설정하는 정치적 프로파간다(propaganda)와는 다른 지점에서 ‘예술 정치’ 혹은 ‘예술의 정치화’를 작동시킨다. 이들의 예술 정치는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현실적 이상을 공유하면서 ‘당연히 그래야 할 실천’을 모색한다. 이를테면 이 그룹은 ‘한반도의 통일’을 모토로 삼는 일에 망설임 없이 나설 뿐 아니라 그것에 장애가 되는 불의에 분연히 일어서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분단의 나라에 사는 국민으로서 이러한 일들을 ‘마땅히 그래야 할 덕목’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들이 생각하는 ‘예술 정치’이자 ‘예술의 정치화’이다  
‘예술의 정치화’란 용어는 원래 벤야민(Walter Benjamin)으로부터 온 개념이다. 그는 예술을 나치즘 이데올로기의 선동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히틀러의 ‘정치적 미학화’에 맞서기 위해 이 개념을 고안했다. 여기서 유념할 것은 벤야민의 ‘예술의 정치화’라는 테제는 아우라(Aura)의 예술이 아닌 '비(非)아우라'의 예술로 실현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비아우라의 예술? 그것은 ‘예술을 위한 예술’, ‘예술의 일품성을 중시하는 순수 예술’에 반대하는 모든 예술들이다. 즉 아우라의 예술이 종국에는 나치즘과 같은 이데올로기의 도구화가 되는 것을 반대하고 비아우라의 예술로 정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즉 ‘예술의 정치화’인 것이다.
‘무경계의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예술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프로젝트는 참여 구성원들의 독자적인 개인의 예술 작품을 버리고 공동의 예술을 통해서 정치를 실천한다. 개별 작가의 작품 세계가 형성한 아우라는 공동의 ‘예술 정치’에 있어서 외려 방해 요소이다. 벤야민은 이러한 점을 자신의 논문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 속에서 간파했다. 무수한 에디션과 복제를 통해 복수의 예술 작품이 가능해지는 시대에, 예술 작품은 아우라를 상실한다. 그것은 작품이 지닌 제의적 가치로부터 전시적 가치로 변동된다. 벤야민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예술의 ‘제의적 기능’은 ‘정치적 기능’으로 대체되고, 대체되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한다. 즉 그의 ‘예술의 정치화’란 예술 본연의 ‘제의적 기능’이 소멸된 자리에서 ‘정치적 기능’이 부활하면서 가시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벤야민이 진술하는 ‘변증법적 전회(Dialektische Umschlag)’이다. 
정권과 이데올로기의 시녀로 봉사를 일삼던 ‘아우라 가득한 제의적 예술’이 사라진 곳에서 ‘비아우라의 전시적 예술’이 자란다. 벤야민이 사진과 비디오 영상과 같은 복제 예술 속에서 현실 사회를 변혁하는 대중의 정치적 실천의 가능성을 찾았던 것처럼, ‘무경계 프로젝트’ 역시 수차례의 현장 답사를 통해 프로젝트의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면서 이 가능성을 실천한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다. ‘아우라가 탈각된 예술’을 통해 실천하는 벤야민의 ‘예술의 정치화’가 미디어를 통해 ‘시공간이 뒤섞이는 몽타주(montage)’를 주요 전략으로 삼듯이, 같은 방식을 실천하는 무경계 프로젝트의 ‘예술 정치’ 역시 몽타주의 철학과 전략을 공유한다. 그것은 이른바 ‘산포(散布)적 행동주의 미술’로 정의될 수 있겠다. 단선적인 노마드적 행보, 산발적으로 등장하는 무작위적인 퍼포먼스, 특별한 주제 없이 벌어지는 난상 토론, 프로젝트 중간에 개입하는 예정되지 않는 일정, 전시와 프로젝트가 뒤섞이는 혼성의 프로그램, 특별한 중심과 경계가 없는 개방과 연합 등과 같은 양상이 바로 그러한 예들이다. 
이 산포적 행동주의 미술은 1980년대 한국의 민중미술이 견지했던 걸개그림, 목판화, 회화 등에서 표현되었던 비판적 리얼리즘, 사회적 리얼리즘이 표방하는 ‘응집(凝集)적 행동주의’와는 사뭇 그 결이 다르다. 즉 하나의 거시적 목표와 하나의 이념과 같은 공유의 지점을 설정하는 일은 양자가 같을진대, 목표에 이르는 과정이 양자 간 확연히 다르다고 하겠다. 달리 말해 ‘민중미술’의 행동주의가 전복하고 혁파해야 할 대상을 늘 설정하는 경직된 실천인 것과 달리, 무경계 프로젝트에서는 전복할 대상이 특별히 없다. 다만 완수할 목표 설정과 그것에 이르는 자유로운 과정이 보다 더 주요할 따름이다.  



IV. 에필로그     
위험은 있다. 무경계 프로젝트가 시공간이 혼성되는 자유로운 몽타주식의 실천을 자유롭게 감행한다고 할지라도, 완수할 거시적 목표와 근본적인 목적을 향해 가고 있는 이상, 이 그룹의 구성원인 예술가 개인의 작품 세계는 공동의 목표와 목적 뒤에서 퇴색되거나 도구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전체를 위해서 구성원 개인의 희생을 각오해야만 될 상황이 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단이 지금의 상황에서 ‘기우’라는 것은 자명하다. 무경계 프로젝트가 거시적 목표와 근본적인 목적을 향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이제 첫 걸음을 떼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프로젝트는 뜨거운 열정으로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참여하는 평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상상에까지 이르고 있는 중이다. 시작의 발걸음이 활기찬 만큼, 향후의 행보가 더욱 신명나길 바라마지 않는다. ●


출전/
김성호, 「무경계 프로젝트 - 온새미로, 행동주의 미술의 정치학」, 『2018예술정치, 무경계 프로젝트-온새미로』, 카탈로그 서문, 2018. 
(온새미로展, 2018, 10. 6-10. 23, 실험공간 U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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