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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2018청년미술프로젝트 / 청년 예술가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김성호

청년 예술가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I. 누가, 언제, 어디서
대구의 청년 미술이 올해의 끝자락에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기약한다. 11월 21일부터 25일까지 5일간 대구전시컨벤션센터인 엑스코(EXCO)에서 열리는 《2018청년미술프로젝트(Young Artists Project 2018, 약칭 YAP)》가 그것이다. 대구미술협회와 대구아트스퀘어 조직위원회가 공동 주관하는 이 행사는 2008년 출범했던 대구아트페어가 2009년 대구아트스퀘어라는 이름으로 덩치를 키우면서 파트너로 끌어안은 순수 미술 행사이다. 달리 말해, 청년미술프로젝트는 첫 출발부터 상업과 비상업을 하나의 행사로 아우르면서 등장했던 《대구아트스퀘어(Daegu Art Square)》의 부속 행사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순수 미술제인 ‘청년미술프로젝트’는 아트 마켓인 ‘대구아트페어’와 함께 태어난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이란생 쌍생아인 셈이다. 물론 대구아트페어가 1년 뒤 빠르게 출발했지만, 하나의 이름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유는 유의미하다.   
‘대구아트스퀘어’의 이러한 첫 등장이 신선했던 것처럼, 그 속에서 청년만의 거칠 것 없는 예술 실험과 도전적 패기를 감행해 왔던 ‘청년미술프로젝트’의 존재와 위상은 참으로 빛나는 것이었다. 때로는 지배 권력의 폭거에 저항하고, 정부의 무능함에 미술의 언어로 피켓을 드는 사회적 발언을 마다하지 않아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던 청년미술프로젝트는 ‘푸르름’으로 넘쳐난다. 응원 구호(口號)나 마법의 주문을 연상케 하는 약칭 ‘얍(YAP)’처럼, ‘청년미술프로젝트’는 청년 미술가들에게 늘 새로운 희망의 구호를 되뇌게 하는 ‘벗’이었다.   
‘YAP2018’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자 한다. 김결수 예술감독은 물론이고, 그로부터 초청을 받은 국내외 40세 미만의 청년작가들이 한 마음을 모았다. 해외 5개국(미국, 프랑스, 베트남, 대만, 일본) 5인과 한국 19인으로 구성된 총 24인의 출품 작가들이 ‘미장센에 들어온 청년 미술(Mise en scène in Young Art)’이라는 전시 주제의 구현을 위해 감독의 주문에 따라 자신들이 빚은 자신만의 ‘새 술’을 ‘새로운 부대’에 한가득 담아내고자 한다.   





II. 무엇을
새 술? 그것이 무엇인가? ‘YAP2018’의 출품 작가들이 찾고 있는 ‘새로운 예술’이다. 
아서라! ‘해 아래 새 것이 없듯이’ 새로운 예술이란 없을 뿐더러 그것이 이제는 더 이상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가 원본성, 단품성(單品性)의 의미로 해석되면서 ‘독창성’으로 간주되던 시대에는 새로운 천재들이 나타났으나 이 시대에 천재란 불가능하다고 저마다 이야기한다. 서구의 20세기 미술이 늘 '새로운 것(novelty, nouveauté)'을 찾아 떼 지어 다니면서 그룹의 미술 운동사를 써왔다면, 작금에는 더 이상 써 나갈 미술 운동사란 요원해 보인다. ‘지금, 여기’의 땅에는 20세기 선배들이 맛있는 과실들을 모두 찾아 먹고 버린 씨앗들만이 수두룩하다. 이제 그 후세대인 21세기의 작가들은 그들이 버린 씨앗 속에서 새로운 변종의 새싹이 돋아나길 기다린다.
그렇다! 적어도 이 시대의 오리지널리티는 더 이상 천재들의 ‘독창성’으로 간주되지 않고 ‘창의성(creativity)'으로 해석된다. ‘창의성’은 에디션이 창궐하는 이 시대에 독창성이란 용어의 성을 허물고 재편된다.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경계 너머의 것들과 서로 통합하고 융합하는 최근의 통섭(consilience)의 논리 속에서 ’예전에는 새로운 것들이었으나, 지금은 새롭지 않은 것들’을 재편한다. 한 예로 패러디와 혼성모방은 20세기의 부지런한 예술가들이 찾아낸 ‘새로운 것’이었다. 그렇다고 YAP2018의 참여 작가들이 20세기 선배들이 발견했던 새로운 것들을 여전히 ‘새로운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번의 ‘YAP2018’이 지향하는 ‘새 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장르와 형식의 새로움을 의미하기보다 조형 안에 창의적 정신과 실험성을 담은 ‘새로운 미술’을 의미한다. 미술계가 혼종의 카오스처럼 다원화된 작금의 상황에서, 이러한 창의적 정신과 실험성을 담아내는 작품을 분별하는 것이란 쉽지 않다. ‘창의적 정신’을 “장르와 형식은 유사해도 그 내용만 다르면 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신조로 삼는 ‘안일한 예술가들’ 또한 많기 때문이다. 한창 거래가 왕성한 단색화의 형식을 빌려 와 포스트-단색화의 군단에만 가세하려는 ‘그림 못 그리는 작가’, 역으로 그림 그릴 줄 아는 재능 하나를 뚝심으로 밀고 가 ‘사유 없는 시뮬라크르(simulacre)만을 날마다 재생산하는 작가’, 같은 표현 기법을 일관된 작품 세계로 이해하면서 판박이와 같은 시리즈물을 ‘기계처럼 생산해 내는 작가’,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 좋다”는 대중의 기호를 ‘소파 위에 걸어 두기에 적당한 코리안팝으로만 이해하려는 작가’가 있는 한 ‘유사한 외적 형식을 한 다른 내용’은 늘 터부시되고 곡해(曲解)될 뿐이다.  
‘유사한 외적 형식 속 다른 내용과 다른 태도’는 이미 나올 것이 세상에 다 나와서 더 이상 조형의 언어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이 시대에 억지로 찾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이라는 질문으로부터 찾아가는 동시대 미술의 여러 목적지 중 하나이다. 그도 그럴 것이 더 이상 새로운 조형이 없을 것 같은 이 시대에도 새로운 조형 실험은 계속되고 새로운 조형 언어는 지속적으로 창출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늘 어렵다. ‘새로운 조형 실험’도 그러하지만, ‘형식보다 내용’, ‘외피보다 정신’이라는 화두 역시 쉽지 않다. ‘말이 쉬울 따름이지 그 실천은 늘 어렵다.’ 
‘창의성’, 혹은 ‘창의적 정신’ 그리고 ‘실험성’이라는 것은 사업가의 기발하고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나 비평가의 난해한 해설에서 싹트기보다 작업실에 칩거해서 싸우고 있는 외로움과 어려움 속에서 자란다. 그것은 고독과 노동을 감내하는 예술가들이 만들어 내는 진중하고도 새로운 세상이다. 물론 그것은 음습한 고독의 공간으로부터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바쁜 일상 속에 섬광처럼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며, 때로는 세상과 단절함으로써 스멀스멀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며, 때로는 쳇바퀴를 돌 듯 출근하던 작업실을 떠난 낯선 여행지에서 ‘익숙했던 것을 낯설게’ 만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을 만나는 일은 작가의 몫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떠한 새 술을 담을 것인가? 작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새 술’을 삶의 현장에서 사유하고 자신의 작업실에서 담고 있는 중이다. ‘창의적 정신’과 ‘조형 실험’을 거듭하면서 말이다. 결코 무겁지 않으면서 가볍지도 않게 말이다. 





III. 어떻게  
‘YAP2018’은, 삶의 현장에서 ‘창의적 정신’과 ‘조형 실험’을 사유하고 작업실에서 그것을 실천하면서 저마다 자신의 ‘새 술’을 담고 있던 작가들을 불러 모은다. 그들의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위해서이다. 그런 면에서 ‘YAP2018’이라는 유무형의 주체는 초대된 청년 작가들이 각자의 예술 현장에서 실험하고 있던 새로운 창작을 맘껏 펼쳐 보일 수 있는 커다란 장이 되기를 기꺼이 원한다. 그들의 ‘새 술’을 기꺼이 담기를 원하는 ‘새 부대’를 자처하는 것이다.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만들며, 무엇을 할 것인가? 청년 작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창의적 정신과 조형 실험을 고민하고 있었던 ‘무엇’은 이제 ‘어떻게’의 장으로 나온다. 즉 궁극적인 예술 세계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던 자리로부터 그것을 ‘어떻게’ 펼쳐 보여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자리로 나온 것이다.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그런 차원에서 청년 작가 개개인의 창작 스튜디오는 자신만의 비밀의 ‘코드 매기(encoding)’를 통해 ‘무엇’에 관해서 탐구하던 자리였다고 한다면, 예술감독이 청년 작가들을 불러 모은 ‘YAP2018’은 그들의 작품들로부터 ‘코드 풀기(decoding)’를 통해 ‘어떻게’를 모색하는 자리가 된다고 하겠다. 즉 이번 행사는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는 오리엔테이션을 거치면서 디코딩을 통해 각자의 비장의 무기를 ‘참여 작가들’ 서로에게 해체해 선보이는 한편, 감독이 이들을 다시 전시의 형식으로 통합하는 인코딩을 통해서 각자의 무기들을 통섭적으로 구축함으로써 그 위력을 점검해 보는 장이 된다. 
그렇다면 김결수 예술감독은 이번 행사에서 청년 작가들의 ‘새 술’을 어떻게 ‘새 부대’에 담고자 하는 것일까? 즉 예술감독이 ‘어떻게’를 외치며 모색하는 인코딩, 즉 ‘코드 매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미장센(mise en scène)’이라는 주제 의식이다. 예술감독은 ‘YAP2018’의 주제를, 서두에서 밝혔듯이, “미장센에 들어온 청년 미술(Mise en scène in Young Art)”로 제시한다. 우리의 논의 식으로 언급하면 ‘새 부대’에 들어온 ‘새 술’인 셈이다. 
주지하듯이, 여기서 ‘미장센’은 불어의 사전적 의미로 “무대 위에서의 등장인물의 배치나 역할, 무대 장치, 조명 따위에 관한 총체적인 계획”을 가리킨다. 즉 미장센이란 ‘장면들(scène)’을 ‘배치하는(mise en)’하는 ‘연출’ 혹은 그것을 미리 배치하는 ‘사전 계획’을 지칭한다. 본래 연극 무대에서 쓰이던 이 용어는 1950년대 후반 누벨바그(Nouvelle Vague) 시대에 이르러 영화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연출’이라는 의미보다 ‘사전 계획’이라는 의미에 보다 더 방점을 찍기에 이르렀다. 즉 시나리오에 있는 내러티브를 효율적으로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카메라에 포착되는 모든 장면을 미리 계획하고 밑그림으로 그리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이른 것이다. 생각해 보자. 한 편의 영화를 찍는 중에 발생하는 여러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식은 ‘촬영 이전에 모든 것들을 계획하는 것’이다. 세트, 인물, 의상은 물론이고 인물의 동선과 카메라의 각도 역시 고려되어야만 영화 촬영의 효율성을 거둘 수 있다. 초기 무성 영화나 저예산 영화들이 유행시켰던 롱테이크(long take) 촬영 기법은 이러한 미장센이 완벽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미술에서 미장센은 주로 ‘(전시)공간 연출’이라는 개념으로 파악된다. 공간을 점유하면서 관객과 소통하는 미술의 특성상, 관람객을 위한 효율적인 공간 연출은 필수적이다. 관객의 동선, 관람자의 관습적 특성, 관람의 흥미를 북돋는 스토리텔링, 시각적 주목을 위한 '게스탈트 심리학(Gestalt psychology)'의 적용 등이 필요한 것이다. 즉 연극이나 영화가 그러하듯이 미술 역시 이 미장센은 ‘무엇’을 보일 것인가라는 성찰의 과제로부터 ‘어떻게’ 보일 것인가라는 방법론적인 과제로 자리 이동한 셈이라 할 것이다.  
‘YAP2018’의 예술감독은 주제어인 ‘미장센’이 품은 의미를 다음처럼 제안한다. “어떤 경우든 매력적인 미술은 모든 가상과 현실 공간 속에서 경험하며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미술적 현상을 포착하여 시각화하며, 공간 디자인, 인물이나 사물, 조명, 배열, 구도, 동선의 각도와 움직임은 물론 청년 미술의 정신적 노동과 육체적 노동만의 한정적 장면이 아닌 작가가 가진 미학에 의한 모든 구성 요소들이 예술감독과 함께 작업함을 기초로 한다.” 즉 ‘YAP2018’은 미술전인 이번 행사를 일종의 연극이나 영화와 같은 ‘가상 현실’의 체계로 바라보면서, ‘물리적인 공간 연출’뿐만 아니라 참여 작가들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과 작품 세계’를 종합적으로 아우르고자 하는 것이다. 주요한 것은 이 전시가 예술감독과 ‘함께’ 하는 콜라보 작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즉 감독의 명령이나 지시보다 감독과 참여 작가들 사이의 열린 대화를 도모하는 공동 작업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YAP2018’은 효율적인 미장센을 위해서 엑스코 1층의 공간을 ‘경계 없는 열린 공간’으로 구축했다. 이번 YAP은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되는 행사들에서 엿보이는 획일적인 부스 구성을 의도적으로 탈피했다. 섹션 별 구분도 없이 ‘윤세희 특별전’ 하나만 따로 구성한 채 전체의 전시 공간을 열린 공간으로 구성한 것이다. 각 작가의 작품 세계와 그것이 가장 잘 구현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감독과 참여 작가들과 지속적인 협의는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협의를 통해 모양이나 크기, 어느 하나, 같은 것 없는 개별 공간들은 참여 작품들을 위한 맞춤형 공간으로 구획되기에 이르렀다.        




IV. 왜 
‘무엇’을 탐구하던 출품 작가들의 작품은 이제 YAP2018에 초대되어 ‘어떻게’를 탐구한다. ‘창작’으로부터 ‘전시’의 영역으로 이동한 이들의 작품은 각기 자신들만의 미장센을 구사한다. 작업실에서 완결된 작품은 그저 벽에 걸리거나 바닥에 놓임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선보일 것인가”라는 화두가 야기하는 '보이기의 방법론(How to show)'을 통해서 새 생명을 입는다. 
그렇다면 참여 작가들은 ‘왜’ 예술감독의 초청을 수락했을까? 그들은 전체의 미장센 안에 ‘왜’ 자신만의 미장센을 감행하려는 것일까?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참여 작가들의 개별의 미장센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다. 보라! 회화는 벽에 걸리거나 바닥에 기대어 놓이기도 하고, 더러는 설치의 언어를 감행하기도 한다. 조각은 좌대뿐 아니라 설치 구조물 속에 안착되기도 하고 공중에 매달리기도 한다. 미디어 영상 작품은 벽에 걸린 모니터 안에서 그저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주문한 암실 속에서 자신만을 위한 공간을 운영하기도 한다. 출품 작가 개인의 미장센은 다른 출품 작가들의 미장센과 맞물리고 결국 YAP2018이 마련한 커다란 미장센 안에서 서로 만나 교감하는 것이다. 전시의 총체적 미장센을 한 덩어리 안에서 움직이게 하는 일이란 예술감독과 출품 작가들의 협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기획의 변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미장센 속에 들어있는 청년 미술은 동시대 미술 장르인 개념미술의 관점에서 아방가르드와 실험성, 사물의 관계와 공간 조형, 그리고 알레고리와 상징성 등 대중 예술에 반영한 동시대 미술의 다원성을 추적한다.” 그것이 어떠한 개별의 미장센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YAP2018에 어떠한 작품들이 출품되고 있는지, 구체적인 면모를 여기서 간략하게 살펴본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다음과 같은 미시적 미장센은 YAP2018의 거시적 미장센과 맞물리며 상호 작용한다.
  
아쉬(ARCHE, 프랑스)는 페인팅, 비디오, 포토, 드로잉 등 자신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설치의 방법으로 하나의 미장센 안에 묶어 낸다. 전시장 가운데 흙을 설치하고 그 입구에 검은 흙을 쌓아 둠으로써 본인이 이야기하려는 궁극의 관심이 인류 문명의 근원에 대한 성찰임을 피력한다. 그의 미장센에는 검거나 흰 페인팅과 검거나 붉은 비디오 영상과 사진이 묵시적인 심상의 풍경을 전한다. 
콜린 머라 스미스(Collin mura smith, 미국)의 미장센은 단순하고도 진중하다. 그는 미국의 총기 사용에 대한 위험에 대해 경고한다. 압출 성형한 폴리스티렌 폼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푸르른 빛의 권총, ‘콜트 45 리볼버(Colt 45 revolver)’의 위용은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로부터 지금에까지 이어져 온 총기 사용에 대한 강박을 비판적으로 풍자한다. 무기업체의 강력한 로비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총기 규제에 대한 끊임없는 요청을 통해서 인류의 최소한의 안녕을 소망한다. 
딘 반 손(Dinh Van Son, 베트남)의 회화 속에는 설화, 우화와 같은 이미지들로 넘쳐난다. 외눈을 가진 사람들과 날개달린 사람, 노쇠한 경주마와 달걀을 낳는 닭, 마을이 보이는 오밀조밀한 풍경 등 인간 주변의 동물과, 풍경을 화제로 삼아 삶에 대한 풍자의 메시지를 드러낸다.
슈야 흐슁(Ssu-ya Hsiung 대만)은 이른바 ‘탈출 퍼포먼스(performance-escpae)’를 통해 국가, 권력, 제도의 강압과 인간 소외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시각화한다. 팔에 날개가 자라는 사람들은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Icarus)처럼 속박의 땅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박스 안에서의 ‘자발적 구속’을 실천하면서 연신 수많은 텍스트를 기술하는 일련의 행위는 자유를 갈망하는 현대인의 자유로운 욕망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노우 리에(Inoue Rie, 일본)는 한지를 손바느질로 이어 만든 커다란 구조물을 설치한다. 그것은 장막, 커텐 혹은 셀터(shelter)처럼 구성되어 있어서 관객은 그 안에 들어가 구조물을 살펴볼 수 있다. 이 구조물은 구속과 고립, 은폐와 위장 그리고 피난과 휴식이 겹쳐지는 하나의 상징이자 메타포이다. 우리로 하여금 실제 현장에서의 미장센이 어떻게 발현되어 나올지를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강동우는 한국 사회에서의 남성과 여성에 대한 관습적인 고정 관념과 그것이 낳은 차별에 대해서 조용히 반문한다. 화장실의 픽토그램을 치환하는 작업을 통해서 남성을 파랑으로, 여성을 빨강으로 규정하는 색에 대한 통념을 뒤집거나, 남성의 장신구 착용과 수집에 대한 열망을 설치적 구조물을 통해서 표현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팽만해 있는 사회적 편견에 대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드러낸다. 
공병훈은 자신의 회화를 통해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일련의 기준에 대해 반문한다. 사회적 성취를 통해 인정받는 사회적 기준점은 인간 본연의 자율적 의지와 정체적 위상을 위협하고 억누른다. 작가는, 옷, 차, 집들로 상징되는 사회적 인간의 계급적 신분과 그것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본질적 색을 상실한 채, 배경의 색만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유리 형상’의 회화를 통해서 은유하고 드러낸다. 
김명우는 사진, 영상 작업을 통해서 동시대 사회가 천착하고 있는 SNS와 같은 온라인 네트워크상에 나타난 가상 이미지와 그것이 환기시키는 허위의 측면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그의 작품은 진위의 판별이 어려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면서 날마다 ‘악의 없는 거짓’을 보태고자 하는 현대인의 왜곡된 욕망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김안나는 가상 현실의 이미지를 통해서 가상과 현실의 관계를 사유한다. 3D 프로그램으로 모델링을 한 인물들을 가상 현실 속에 잉태시키고 거주시키는 그녀의 작업은 제작된 영상과 캡쳐된 스틸 이미지의 디지털 프린팅 그리고 회화 작업으로의 변주 등을 통해서 현실을 사는 인간 주체와 타자 그리고 양자 사이의 만남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을 던진다.
김윤섭은 모델에게 특정 사물이 배치된 방식과 유사한 포즈를 취하도록 요청하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한 후 다시 회화로 재현하여 전시하거나 오브제들과 함께 배치하는 미장센을 선보인다. 회화에 충실한 창작과 더불어 회화를 확장하는 전시 방식을 병행하는 그의 작업은 사물과 인간의 존재라는 것이, 모두 이미지로 귀결된다는 자신의 신념을 시각화한다. 
김철환은 인간의 허물들을 통해서 인간 존재론을 탐구한다. 그는 손톱, 발톱, 얼굴의 각질, 수염, 음모, 심지어 항문 털에 이르기까지 인체의 허물과 외피들을 수집하여, 골동의 가구를 연상케 하는 특유의 구조물 안에, ‘원래의 존재 양태’로 배치하여 선보인다.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편집증적 관심이 야기한 그의 작업은 ‘세계 내 주체’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심연에까지 잠입하게 만든다.  
박보배밋나는 ‘죽음’으로 특정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야기하는 ‘불안’의 양상과 그것에 반작용하는 ‘인간의 욕망’을 초현실주의적 화풍으로 드러낸다. ‘여드름이 난 뇌, 출산하는 천사, 통곡하는 가슴, 세 가지 혀’와 같은 재기발랄한 제목과 더불어 한계가 없는 작가의 상상이 만드는 비현실적인 풍광들은 오늘날 현대인의 탈출구 없는 욕망에 대한 근원적 탐구 자체라 할 것이다.  
송연주는 스쿠버다이빙 자격을 취득하고 실제로 자신이 오랫동안 온몸으로 체험했던 ‘오묘한 바다’의 세계를 은박(銀箔)을 통해서 시각화한다. 빛의 반사각에 따라 달리 보이거나 화학 반응에 의해 변색되는 은박의 특성은 수심에 따라 빛과 색을 달리하며 변화하는 바닷속 풍경을 공유한다. 작가는 바닷속에서 목도했던 자연의 신비와 더불어 불안과 환희가 교차하는 환상적인 체험을 관객에게 전한다. 
신광호는 두터운 물감을 임파스토 기법으로 화면에 올리는 방식으로 표현주의 화풍의 인물을 탐구한다. 대상에 대한 내면의 감정적 표현을 중시하는 표현주의의 언어는 그의 작품으로부터 구체적인 인물의 묘사를 탈각시키고 인물이 품고 있는 내면으로 잠입하게 만든다. 주로 아프리카 어린이를 형상화한 그의 작업은 미시적 인물 탐구를 넘어 현 시대의 복잡다기한 국제정치의 질서와 그것이 야기한 인류의 미래라는 거시적 주제 의식마저 관객에게 상기하도록 만든다. 
심윤의 작업은 군사 훈련 중이거나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군인들의 집단 초상을 흑백의 화면 위에 올려놓는다. 짙은 회색에 가까운 어두운 톤과 흐릿한 형태는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그의 재현 언어를 대상의 외형적 모방이라는 차원으로부터 대상이 함유하는 사건의 내러티브의 차원으로 이동시킨다. 덧붙여 이미지를 배반시키는 역설적인 제목은 전쟁에 대한 작가의 냉소적인 시선을 드러내기에 족하다. 
유현은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고 성찰한다. 그는 테이핑으로 선의 패턴을 만들고 그 사이에 먹이나 기름을 흘린 후 헝겊으로 문지르는 과정을 통해서 화면 위 번짐이나 얼룩의 미학을 탐구할 뿐만 아니라, 숯가루와 아크릴 미디엄을 섞은 물감을 겹쳐 쌓아올리는 과정을 통해서 ‘그리기’의 다양한 층위를 만들고 실험한다. 얼룩의 회화 공간과 기하학적 패턴의 대립과 공존을 시각화하는 그의 작업은 전통과 현대, 아날로그와 디지털 매체를 종합하는 방식으로 오늘날 회화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이수연의 작업은 인간의 신체적 질병이 야기하는 증후와 그것을 둘러싼 부정적인 감정들을 표현주의 언어로 담아낸다. 그녀의 회화 속에는 트라우마, 공황장애, 폐쇄공포증, 편두통, 만성무기력, 짜증, 불안, 초조와 같은 질병의 증후와 불안한 심리 상태가 때로는 표현주의 언어로 때로는 그로테스크의 이미지로 표출된다. 현대인이 사회 속에서 타자들과 대면하면서 빈번하게 경험하게 되는 불안한 심리 상태를 담고 있는 그녀의 회화는 그런 면에서 육체와 정신, 주체와 타자의 교감을 통해 세계를 찾는 작업이라 할 만하다. 
이원기의 작업은 죽음과 맞물려 있는 삶의 존재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성찰한다. 검은 바닥 위에 설치된 숯 알갱이들은 ‘주검’의 존재로 은유된다. 그 위에 흰색 테트라포드(Tetrapod)의 무수한 도열이나 흰 벽에 걸려 있는 선인장 이미지의 평면 작업들은 모두 이 ‘주검’을 위무하는 일련의 제의 장치처럼 보인다. 삶이란 모두가 간접적으로 경험할 뿐인 ‘죽음의 사건’을 향해서 가고 있는 여정이다. 그의 작업은 ‘삶’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내려진 지독한 형벌임과 동시에 신의 고마운 선물임을 미술의 언어로 나직하게 진술한다.     
이재형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연동한 미디어아트를 선보인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오선지가 그려진 어항 안에서 유영하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악보로 형상화시키고, 이 악보를 웹캡으로 스캔하여 실시간으로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작품이거나, 소셜 데이터들을 활용하여 특정 지역에 대한 감성적 표정을 만들어 내는 작품으로 나타난다. 그의 작업은 ‘현실계의 실재 - 디지털 정보 - 실제의 기계적 움직임’처럼 DA전환과 AD전환을 지속하면서 실재와 가상이 서로 교감하는 디지털 유토피아를 ‘지금, 여기’에서 대리 체험케 한다. 
임지민은 촬영된 사진 이미지가 환기시키는 과거의 특정 사건과 그것의 부재에 대한 기억을 화두로 삼고 자신의 회화 작업을 전개해 나간다. 그녀는 인물 사진들에서 얼굴을 잘라 내는 방식으로 화면을 재구성한 이른바 크롭페인팅( cropped painting)이라 작명한 자신의 회화에 천착한다. 얼굴이 탈각된 채 손동작이 포착된 인물들은 특수한 자신의 정체성을 거세당함으로써, 보편적 인간으로 전환된다. 한편, 그녀의 회화가 담고 있는 인물들의 다양한 손동작들은 보이지 않는 인물의 내면적 심리 상태마저 수면 밖으로 길어 올린다. 
정석영은 대리석이라는 매체를 통해 대상을 정밀하게 모방하고 객관적으로 재현해 되살려 내는 작업을 펼친다. 작가의 ‘연장(tool) 시리즈’에서 그 대상은 대개 조인트, 프레스, 멍키 스패너와 같은 금속의 연장들이나, 타이어와 같은 고무 재질의 부속이다. 심지어 소위 ‘스위스 칼’이라 불리는 작은 크기의 도구 또한 작품의 대상이기도 하다. 돌조각이라는 방법론을 통해서 세밀한 금속 공구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고도의 숙련된 기술뿐 아니라 까다로운 공정과 지난한 노동을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돌이라는 전통적인 조각의 재료를 가지고 현대적인 재료의 정교함을 표현하는 작가의 작업은 욕망의 배설과 난해함을 무기로 삼는 현대 미술의 반대편에서 수공의 기예에 골몰하는 정직한 예술적 태도를 유감없이 선보인다.
정하눅은 하나의 화면 안에 다양성과 이질성의 존재들이 공존하는 다원주의 회화를 선보인다. 작가의 작품 안에는 현실과 환상, 전통과 현대, 재현과 비재현, 구상과 추상, 정형과 비정형, 풍경과 정물, 전체와 파편이라는 이원 대립적 요소들이 혼성된 채 하나의 화면에 자리한다. 정교한 묘사와 표현주의적 화면, 평면의 배경과 거친 붓질이 만드는 마티에르가 뒤섞인 다양한 화면은 ‘서로 다른 존재들’의 만남과 화해를 도모하고 그것이 공존하는 세계를 초현실주의적 조형 언어로 창출해 낸다.     
허단비는 충만했던 존재들이 갑작스럽게 부재할 때 발현되는 일련의 상실감을 작품화한다. 한 ‘존재’가 소멸하고 단지 주체의 기억에만 남게 되는 일련의 상황은 참담하다. 타자의 ‘부재’로 인한 결핍과 결여가 야기한 주체의 ‘불안감’은 질병의 징후로 심화되고, 끝내 현실에서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 빈번해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방’이라는 공간과 ‘식탁’의 공간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부재의 흔적을 회화의 언어로 탐구함으로써 부재가 야기한 상실과 심리적 공허를 치유하고자 시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궁극에는 ‘타자의 부재’를 수용하고 부재를 메우려는 덧없는 욕망을 극복하는 길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V. 할 것인가? 
YAP2018의 특별전은 어떠한가? 올해의 특별전은 이러한 ‘미장센 안의 미장센’을 매우 효율적으로 실천한다. 윤세희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거대 행사의 특별전이 신진 작가 1인의 작품전으로 개최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 만큼, 윤세희는 이번 YAP2018의 주제 의식인 미장센’과 부합하는 작품들을 선별하여 의욕적으로 선보인다. 전체가 파티션으로 둘러싸인 특별 공간은 ‘일반 조명 공간’과 ‘암막 공간’으로 구분된다. 전자의 공간에는 판화, 평면, 입체 작품들로 구성되고 후자의 ‘암막 공간’에는 조명이 집중되는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윤세희의 작품들은 드라이포인트(drypoint)로 도시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판화의 에디션으로의 정체성을 변주하는 설치의 언어는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판화를 둥글게 말아 원기둥 형태로 만들고 조명을 설치하여 도시의 야경을 형상화한 <illusion of light> 시리즈는 대표적이다. 또한 도시를 조감하는 풍경들을 격자형의 멀티플 형식으로 모아 한꺼번에 선보이는 〈space inside sight 2 - next sight〉나 도시 풍경 이미지를 여러 개의 톱니바퀴 형상으로 오려내, 서로가 맞물리게 배치함으로써 역동적인 도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는 <illusion of sight>도 관람자의 눈길을 끈다. 같은 장소에서 바라보는 낮과 밤의 풍경, 부감법으로 바라보는 도시 전경의 이미지들을 통해 도시의 다양한 면모들을 추적하는 그녀의 작업은 ‘무엇을’,‘어떻게’, 그리고 ‘왜’ 그렇게 선보여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전한다. 달리 말해 윤세희는 판화라는 매우 협소한 장르를 강력한 미장센으로 변주하고 다원화시킴으로써 작품에 담긴 미학을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자. 
출품 작가들은 ‘무엇’을 ‘어떻게’라는 과제를 지니고 YAP2018의 “미장센 안에 들어온 청년 미술”이라는 주제를 해석하는 ‘거시적 미장센’ 안에서 자신들의 ‘미시적인 미장센들’을 실행한다. 때로는 ‘왜’라는 진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때로는 진지한 회화와 조각으로, 때로는 철학적인 개념과 다원적인 설치의 형식으로 실천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미장센 안에서의 미장센의 실천’을 분석하고 해설하는 이 글이 소제목의 뼈대로 삼은 ‘육하원칙(六何原則)의 키워드들’을 정리하는 마지막 어절은 물음표가 달린 “할 것인가”이다. 문장으로 완성되는 이 질문은 청년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인식해야 할 ‘미래에 당면한 과제’를 내포한다. 이 질문은 YAP2018에 출품한 청년 작가들이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묻는(물어야 할) 말’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청년 작가 개개인들이 찾아야 할 몫이다. 그렇다. 언제나 답은 외부에 있지 않고 자신 안에 있기 때문이다. 
보라! 자신의 ‘새 술’을 YAP2018이라는 ‘새 부대’에 담고 있는 청년 예술가들을 말이다. 이제 벅찬 마음으로 그들을 호명하고, 소제목들을 이어 붙여 이 글의 마지막을 마무리 짓자. 

“청년 예술가여!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할 것인가?” ●
 

출전 /
김성호, 「청년 예술가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2018청년미술프로젝트』, 카탈로그 서문, 2018. 
(대구아트스퀘어 - 2018청년미술프로젝트(Young Artists Project), 대구전시컨벤션센터인 엑스코(EXCO), 2018 1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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