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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박수환展 / 안티-페티시즘으로서의 붉은 아파트

김성호

안티-페티시즘으로서의 붉은 아파트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작가 박수환은 이번 개인전에서 캔버스 화면에 가득 찬 아파트 풍경을 선보인다. 아파트는 오늘날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Symbol)이자 현대 도시인이 소유해야 할 지표(Index)처럼 자리한다. 박수환이 누런 한지의 바탕 위에 그리는 붉은 아파트는 그런 면에서 이러한 상징을 지표처럼 소유하는 현대인을 표상하는 하나의 도상(Icon)이라 할 수 있겠다. 즉 그의 작품에서 아파트는 ‘현대인의 이미지’로 대칭된다. 그는 왜 이러한 아파트를 그리는 것일까? 그리고 그가 그리는 붉은 아파트는 박수환의 작품 세계에 있어서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I. 의식주와 주 - 삶의 공간에 대한 질문   
박수환은 이번 개인전에서 ‘의, 식, 주(衣, 食, 住)와 주(呪)’라는 테마를 내세웠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의식주’에서 추출한 동음이의어인 두 단어 ‘주/주’는 이번 개인전의 주제 의식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 그가 두 단어의 조합을 꾀한 까닭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도시 생활을 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새로운 마을의 형태이자, 삶의 목표 중 하나가 된 ‘아파트’는 이제 ‘살 주(住)’가 아닌 간절히 빌고 빌어야 이룰 수 있는 ‘빌 주(呪)’가 되었다.”
집으로 대별되는 주(住, shelter)는 이제 소유를 염원하는 주(呪, charm)의 대상이 되었다. 인류사에서 보듯이, 유목주의 시대에 셸터의 소유는 그다지 필요치 않았다. 셸터가 “비바람의 위험이나 악천후의 공격으로부터 피신한 인간을 위한 은신처”를 지칭하듯이, 유목민에게 셸터는 몸을 잠시 피신할 수 있는 동굴이나 숲 속 덩굴이면 족했다. 오늘날 ‘집’이라 불리는 건축적 셸터가 시작된 것은 인간이 유목을 마치고 정주를 시작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정주를 시작하면서 비롯된 공동체의 사회에서는 나와 너의 분리, 촌장과 같은 지배자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피지배자가 형성되면서 계급과 위계의 질서를 구축하게 되고 급기야 인간과 공간은 식민화되기에 이른다. 
박수환이 바라보는 아파트는 그런 면에서 물신화의 공간이자, 식민화의 공간이다. 아파트를 둘러싸고 70평을 소유한 이와 28평을 소유한 자의 위계가 형성되고, 그것을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의 자본의 계급이 형성된다. 다음과 같은 그의 인식은 현대인의 다수적 사유를 반영한다: “도시를 대표하는 주거 풍경인 ‘아파트’는 거주의 목적을 넘어 종종 재산을 나타내기도 하며 신분의 표식이자 계급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렇다. ‘아파트=현대인의 이미지’라는 이 시대의 새로운 아이콘은 모든 현대인에게 현실화(actualization)가 된 존재가 아니다. 현실화를 위한 욕망 아래,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를 구분하는 ‘구별 짓기(Distinction)’와 소유한 자들이 벌이는 '상징폭력(Violence symbolique)'이 그리고 소유하지 못한 자들이 벌이는 상징투쟁(Lutte symbolique)이 구성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펼쳐질 따름이다. 특히 박수환과 같은 청년 세대에게 아파트는 ‘현대 도시인이 거주하는 당위(當爲)의 공간’이기보다 ‘현대 도시인이 거주하기를 소망하는 기원(祈願)의 공간’처럼 인식된다. 아파트의 소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많은 돈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 세대들은 ‘더 나은 삶의 공간이라는 미래적 비전의 아이콘’으로 아파트를 상정한다. 생각해 보자. 아이콘의 어원인 고대 그리스어 에이콘(εἰκών, eikon)은 이미지(image)와 그 뿌리를 같이 하는데, 주로 ‘초상’, ‘유사한 모습’, ‘마음에 그리는 상(像)’ 등을 지칭했던 용어이다. ‘에이콘’이란 용어는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호머(Homer)의 서사시 문학에서 시각적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서 쓰였는데, 이 용어는 실재(realité)를 닮은꼴로 재생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닮은꼴이란 초상화, 조각상 등 물리적 현실에 대한 '물질적 모방'(외형적 모방) 이외에도 비물질적 모방(내면적 모방)이란 개념이 주요하다. 즉 인간을 닮은꼴로 재생해낼 때, 에이콘은 '외모의 닮음'이라는 외형적 유사성 외에도 '성품의 닮음'과 같은 내면적 유사성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박수환이 화면 가득 그리고 있는 아파트는 그런 면에서, 현대인이 실재를 소유하고자 염원하면서 ‘마음에 그리는 상’이자, 아파트라는 ‘실재를 닮은꼴로 재생해내는 외형적/내면적 모방 이미지’가 된다. 즉 그의 회화 속 아파트는, 그것의 이미지를 소유함으로써 실제의 아파트를 소유한 것 같은 경험을 간접 체험케 하고, 훗날 실제의 아파트를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신뢰하게 만든다. 이러한 예들은 많다. 가톨릭 신앙인들이 작은 크기의 예수 십자가상을 아이콘으로 소지함으로써 가톨릭적 구원을 염원하거나, 한국의 어머니들이 남근석 앞에서 아들을 잉태하기를 염원했던 것과 유사한 것이다. 이처럼 아이콘으로서의 이미지를 소유한다는 것은 실재의 소유를 대신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왔다. 그것은 마치 ‘부적’과 같은 것이다. 
 



II. 부적 회화 - 삶의 대한 위로와 풍자적 비판 
박수환의 이번 개인전은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의식주에서 ‘주’의 사회학적 담론을 예술적 언어로 발언한다. 즉 아파트로 특정되는 ‘집’에 관한 그의 조형적 진술이 그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노란색 바탕 위에 기념비처럼 올라서 있는 붉은 아파트’는 실제의 부적(符籍)에 사용되는 재료들로 그려졌다. 즉 그의 회화는 감초(甘草), 계피(桂皮), 치자(梔子)를 달여 만든 밝은 황색 염료로 수차례 염색한 한지 위에 붉은색의 경면주사(鏡面朱砂)로 이미지를 그린 후, 캔버스에 배접하여 완성한 것이다. 물론 실제 부적의 제작을 위해서는, 회화나무의 꽃인 괴화(槐花)로 염색한 괴황지(槐黃紙)를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오늘날은 누런빛의 창호지나 화학재인 물감을 발라 쓰기도 하고, 경면주사 대신에 수은과 유황을 고아서 만든 영사(靈砂)를 쓰기도 하는 등, 전통적 기법만을 고수하고 있지는 않다.  
박수환이 나름대로 부적의 전통적 제작법을 고수하면서 아파트를 그린 까닭은 자신의 그림이 ‘현대 소시민을 위한 부적’처럼 간주되기를 의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와 같은 ‘현대인의 삶의 공간’에 대한 질문, 아파트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현대인의 삶의 질과 양’에 대한 문제의식과 비판적 사유가 담긴 그의 회화는 이제 스스로 ‘부적’이 되길 원한다.  
부적의 목적 중 하나가 주력(呪力)으로써 좋은 것을 증가시켜 이를 흥하게 하고 성취할 수 있게 기원하는 것이라면, 또 다른 하나는 사(邪)나 액(厄)을 물리침으로써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박수환의 회화가 의도하고 있는 부적이란 다분히 전자의 것이라 하겠다. 즉 질병, 재난, 액과 같은 것에 대한 ‘척사(斥邪)’의 의미보다 수명의 연장, 관직 등용, 사업의 번창, 재화의 획득, 자손의 번영을 도모하는 기복(祈福)의 의미가 더 큰 부적이라 하겠다. 현대의 소시민들이 부적처럼 바라보는 아파트라는 아이콘은 오늘날 ‘삶의 거주지’라는 주(住)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위상으로부터 ‘주술적 염원’이라는 주(呪)의 대상으로 변질된 지 오래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박수환의 회화는, ‘부적’의 형식을 빌려 아파트를 재현함으로써 오늘날 아파트를 소유하지 못한 소시민들을 위로하는 그림이 된다. 가히 ‘부적 회화’라 할 만하다. 
보라! 그의 회화는 노란색(黃色)과 붉은색(赤色)으로 가득하다. 황색과 적색은 동양의 음양오행적 우주관에 의하면 동서남북 및 중앙의 오방(五方)을 상징하여 오방색 또는 오정색(五正色)이라 불린다. 이 중에서 적색은 만물이 무성하는 남방의 색이자 불(火)의 색으로서, 재앙과 악귀를 막는 주술의 색(呪術色)으로 상징되어 왔다. 민간 풍습에 전하는 벽사의 색(辟邪色)으로 전해진 만큼, 부적의 대표색으로 사용되어 온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박수환의 일명 ‘부적 회화’에는 부적에 주로 사용되는 한자(漢字)나 그것의 파자(破字)를 활용한 줄무늬의 텍스트 대신, 그것을 연상케 하는 아파트의 구조적 외형과 더불어 창문과 베란다를 잇는 격자무늬가 전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즉 ‘텍스트 없는 이미지’로만 ‘부적의 메시지’를 대신하고 있다고 하겠다. 일반적으로 부적의 텍스트로 일월(日月) ·천(天)과 같은 탑형, 계단형 글자들과 그것의 변형체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할 때, 박수환의 회화가 드러내는 격자무늬의 ‘아파트 이미지’는 ‘부적의 텍스트’와 거의 동일한 특성을 견지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박수환은 마치 서(書)의 필획을 긋듯이 한 획 한 획 정성을 기울여 붉은 아파트를 그려 나가는데, 이러한 창작의 과정은 아파트를 소유하지 못한 소시민들에게 위로의 제스처가 됨과 동시에, 작가 자신에 대한 ‘자기 소망과 자기 위로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한편, 박수환의 회화가 이러한 부적의 형식을 통한 기복과 위로의 메시지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회화는 현대의 아이콘으로서의 아파트를 ‘삶의 공간’이라는 장소적 의미로부터 ‘사고파는 물건’이라는 재화의 가치로 전환하여 바라보는 현대의 얄팍한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인의 ‘삶의 질’을 아파트의 크기와 브랜드로 평가하고 재단하려는 오늘날 세태를 풍자적으로 비판하면서 ‘삶의 양’으로부터 오염된 ‘삶의 질’을 회복시키고자 한다. 그가 아파트 단지를 화면에 보기 좋게 위치시키기보다 한 두 동의 아파트를 클로즈업된 상태로 화면 가득히 채워 몰개성과 반복의 형식을 드러냄과 동시에 과밀(過密)과 포화(飽和) 상태의 내용을 가시화한 것도 이러한 비판적 메시지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또한 전시장 밖 일층 바닥으로부터 이층의 천장까지 이어지는 가설목을 세우고 그곳에 그의 부적 회화를 부착하여 아파트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한 장치도 이러한 비판적 메시지를 증폭시킨다.   
박수환은 이러한 장치를 통해서 그의 개인전이 내세우는 ‘의, 식, 주(衣, 食, 住)와 주(呪)’라는 주제를 두 방향으로 시각화한다. 즉 그의 작업은, 한 방향에서는 소시민들(작가 자신을 포함한)의 열망을 대리 체험케 하려는 놀이적 전략을 꾀하는 한편, 또 다른 방향에서는 이러한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목적을 함께 드러낸다. 따라서 그의 회화는 현대 소시민의 애환을 위무하고 희망을 주는 동시에, 현대인의 물질 만능의 자본주의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메시지를 두루 담고 있다고 평할 수 있겠다. 비유적으로 말해, 그의 작품은 소시민의 아픔을 위로하는 ‘위무의 노래(曲)’이자, 소시민의 헛된 주술적 욕망에 대한 ‘풍자적 그림(畫)’이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사태를 낳게 한 지배 권력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說)’의 특성을 한 덩어리로 안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III. 안티-페티시즘 - 아이콘과 물신화에 대한 느릿한 반항   
작가 박수환은 그동안 신진 작가의 열정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찾아나가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조형 실험들을 두루 거치면서 현재의 개인전에 이르렀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작업 유형은 다음의 두 시리즈로 판단된다. 하나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소환하는 자신의 자전적 기억에 관한 진술이고, 또 하나는 사회적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소환하는 유명 인사라는 대중적 아이콘에 관한 대중으로서의 진술이다. 
전자는 자신의 소년기와 청소년기를 ‘어린 시절(childhood)’과 ‘15살’이라는 제목으로 불러온 자화상 시리즈물이다. 교복을 입은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FRP로 빚어낸 환조와 부조의 몸체 위에 커피 얼룩이 듬성듬성 있는 노트나 종이를 부착한 후 그 위에 볼펜으로 그려낸 작업이다.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던 나, 담배를 피우던 나, 미래에 대한 방황으로 갈등하던 나의 모습’은 ‘현재의 나’를 과거로 연장하는 ‘또 다른 나’이다. 
후자는 유명 인사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워서 불러온 ‘사회적 기억’에 관한 시리즈물이다.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정치인, 종교인, 스포츠 스타, 연예인은 체험적 인간관계가 부재하더라도, 미디어의 도움으로 대중에게 이미 친숙한 인물들이다. 즉 대중의 ‘사회적 기억’ 속에 강력하게 포획된 사람들인 것이다. 앞 시리즈와 같은 재료와 방식으로 만들어진 부조의 인물상은 한 인물마다 두 작품으로 제작되었는데, 한 점은 해당 인물의 주소지로 발송되었고, 그 발송 과정과 수신 여부를 추적한 각종 아카이브와 함께 남은 한 점씩의 인물상을 모두 모아 한꺼번에 개인전에 전시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 작업은 앞서의 시리즈와 조형 방식에서 같으나 시간 과정을 포함한 개념적 퍼포먼스가 연동되는 작업이다.     
과거의 두 시리즈 작업과 이번의 일명 ‘부적 회화’ 작업은 조형 방법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일관된 주제 의식이 관통한다. 그것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투영된 회화 혹은 조각’이자, ‘아이콘과 물신화에 대한 관심, 그것에 대한 비판적 풍자, 기득권 세계에 대한 비판’과 같은 키워드들이 교차하는 ‘무엇’이다. 앞서 언급한 첫 번째 시리즈가 물신화의 고민과 이격해 있는 청소년 시대의 순수한 영혼을 다루고 있다면, 이후의 시리즈물은 성년이 된 이후, 신진으로서 기득권 세력에 편입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겪고 있는 작가의 ‘아이콘과 물신화’에 대한 다양한 감정적 면모를 다룬다고 하겠다. 즉 정의감, 분노, 비판, 고민과 갈등이 혼재한 다양한 모습을 다루는 것이다. 
황금만능의 천박한 자본주의, 그 속에서의 이상주의적 삶의 목표와 맞부딪히는 현재적 갈등이 고스란히 읽히는 그의 작업들은 ‘페티시즘(fetishism)’이라 불리는 물신숭배(物神崇拜)의 세태에 대한 작가적 반응들, 즉 안티-페티시즘(Anti-fetishism)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런데 그의 안티-페티시즘은 드세지 않다. 그것은 미세한 눈흘김, 침묵의 조롱과 뼈있는 농담, 그리고 은은한 풍자와 느릿한 반항의 정신으로 지금도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전적 기억과 사회적 기억으로 예술의 사회적 소명에 부응하는 박수환의 작업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


출전/
김성호, 「안티-페티시즘으로서의 붉은 아파트」, 『박수환 - 의, 식, 주(衣, 食, 住)와 주(呪)』, 전시 카탈로그, 2018, pp. 6-9. (박수환展, 2018. 10. 10-17, 경기상상캠퍼스 청년1981 펩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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