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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이세린 / ‘정제되지 않은 선’이 만드는 드로잉

김성호

이세린 작품론 
‘정제되지 않은 선’이 만드는 드로잉

김성호(Kim, Sung-Ho)

이세린은 동양화에서의 장에서 흥미로운 드로잉을 선보인다. 동양화에서 ‘윤곽선 없이 색채나 수묵을 사용하여 형태를 그리는 화법’인 몰골법(沒骨法)이 ‘미완인 채로 완성인 하나의 장르’로 용인되는 동양화적 드로잉이라고 할 때, 그녀는 구륵법(鉤勒法)의 첫 단계에서 머무는 드로잉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세린, 〈정제되지 않은 선3〉,162.2x130.3cm, 장지에 먹, 2017

생각해 보자. 문인화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작가 특유의 ‘골법용필(骨法用筆)’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내용적 완성으로서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을 담아내는 것도 몰골법의 한 유형이다. ‘형태의 윤곽을 가느다란 선으로 먼저 그리고, 그 안을 색으로 칠하여 나타내는 화법’인 ‘구륵법’은 ‘색을 채운 완성작’을 위한 기초의 단계일 뿐, 그 자체로서의 하나의 장르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회화 안에 이러한 구륵법의 선묘를 전면에 내세운다. 게다가 그녀는 동양화에서 금기시되다시피 한 조형 방법론, 즉 하나의 화폭 위에 겹쳐지는 선들을 반복적으로 쌓아올리는 조형 언어에 골몰한다. 왜 그럴까?  
이세린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형상을 드러내는 명징한 검은 먹선이 창출하는 선묘의 맛이자, 그 대상이 관자의 시점에 따라 변주시키는 형상이다. 즉 대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운동성의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정제된 선’으로 ‘순간’의 이미지를 포착하려는 일련의 회화를 거부하고, ‘정제되지 않은 선’으로 이러한 움직임을 포착하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마치 서구의 입체주의, 오르피즘, 미래파가 시도했던 동시성 내지 다시점에 대한 동양적 번안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화폭엔 짙은 검정색의 선묘가 꿈틀대듯이 자리한다. 손을 대상으로 삼고 시점을 조금씩 달리 하면서 바라본 손의 형상들을 연이어 그려낸 것이다. 
일견 그녀의 작업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다. 종이에 쉽게 퍼지는 까닭에 태생부터 가느다란 직선의 선묘를 표현하기 어려운 매체라고 할 수 있는 먹과 모필을 그녀가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그것의 고유의 특성을 무화(無化)시키는 방식으로 재료의 한계를 극단적으로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모필을 세워 가느다란 일정한 굵기의 수많은 선들을 얇은 종이 위에서 겹쳐지는 형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점차 검게 쌓여지는 먹색의 깊이 안에서도 형상을 볼 수 있어야만 한다. 
그녀는, 농묵과 담묵으로 풍부한 감정적 표현이 가능한 한국화의 질료적 특성을 고의적으로 버리고 단지 그려지는 도구로서 먹과 모필을 선택하고 그것으로 결코 그리기 쉽지 않은 일정한 굵기의 선들로 형상을 만들어가면서 불편한 회화적 실험을 감행한다. 남이 걷지 않는 길에서 동양화적 감성과 회화의 본질적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그녀의 역발상(逆發想)으로서의 실험은 그런 면에서 도전적이다. 다만, 선들이 중첩되는 과정을 얇은 지층 위에서 ‘특별한 효과도 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에 관한 질문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

출전 / 
김성호, 「‘정제되지 않은 선’이 만드는 드로잉」, (이세린 작가론, 성신여대 대학원 동양화과 비평 매칭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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