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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양재윤 / 적막한 여정과 낯선 만남, 그 이후

김성호

양재윤 작품론 
적막한 여정과 낯선 만남, 그 이후

김성호(Kim, Sung-Ho)

양재윤의 작품에는 파스텔 톤처럼 은은한 바탕 위에 멀리서 관조하는 원경의 세계가 펼쳐진다. 산도 있고, 그 사이 강도 흐르고, 나무도 있고 모여서 숲을 이루기도 하고, 드문드문 꽃도 피어 있는 그곳은 드넓은 벌판을 가진 사막이거나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숲의 마을처럼 보인다. 그곳에서 ‘빨간 사람들’은 제례의식을 치르는 듯, 군무를 행하는 듯 서로의 손을 잡고 원형으로 서 있거나 삼삼오오 떼를 지어 몰려 있기도 하고 더러는 정처 없이 서성이고 있는 모습이다. 


양재윤, 〈Untitled〉, 50.0x50.0cm 장지에 채색 2016

그녀의 작품 속에는 자연과 인간이 대등한 관계를 맺고 있는 듯이 보인다. 소유하고 있는 풍경을 배경으로 한 채 초상화를 위해 화면 중심에 자리를 잡은 지주(地主)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다. 숲 속에 드문드문 앉거나 누워 있거나 들판에 둘러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저 어떠한 공동체의 수평적인 구성원들처럼 보인다. 실루엣만 간신히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크기의 사람들은 항공 사진을 보는 것과 같은 부감법(俯瞰法)으로 포착된 ‘드넓은 풍경’ 속에 ‘또 다른 풍경’처럼 존재한다. 서구에서 이러한 부감법과 같은 투시법은 기계의 ‘한 눈’이 만드는 왜곡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위에서 아래를 향한 시각이라는 점에서 인체는 과도한 두상에 짧아진 팔다리 등 왜곡의 정도가 심해진다. 그러나 양재윤의 부감법이란 조감법(鳥瞰法)이라 불리는 새의 시점을 견지하는 것이라서 왜곡을 일으킬 만한 근접 거리를 넘어선다. 부감법으로 콩알만큼 작아진 사람들과 나무들이 자연 속에 어우러져 있는 화면은 마치 ‘신’과 같은 입장에서 대상들을 굽어보는 것 같은 문학에서의 ‘전지적(全知的)’ 시점을 엿보게 한다. 
양지윤의 고대 페르시아의 세밀화와 같은 잔잔한 재현의 풍경은 현실이 아닌 공상의 것이다. 잘려진 나무들과 쓰러진 나무들 그 사이에 듬성듬성 쌓인 돌무더기와 강 위에 놓인 징검다리, 그리고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사람들,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의자들이나 사다리 등, 작품 곳곳에는 기묘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이처럼 그녀의 작품 속에는 ‘전치(轉置)’로 번역되는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이 만드는 개연성 없는 사물들의 ‘느닷없는 개입과 만남’으로 가득하다. 이와 같은 조형의 형식은 극작가 브레이트(Bertolt Brecht)의 '소격효과(alienation effect)'를 작품 속에 견인함으로써 작품을 읽은 관객으로 하여금 ‘어떠한 문학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그녀의 작품에서 평형하게 칠해진 옅은 색의 바탕면과 칠해지지 않은 여백을 나누는 ‘가상의 프레임 만들기’와 같은 조형 방식은 그녀의 작품을 색다르게 만드는 지점이다. 이러한 조형 방식은 그녀의 작품을 마치 액자 소설과 같은 내러티브로 감싸게 만든다. ‘적막 여정의 끝에서 보게 되는 장면’이라는 제명은 ‘여정’과 ‘여정 이후’의 내러티브를 상상하게 만들지 않는가? 다만, ‘그려진 것’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가상 프레임이 ‘오브제 액자’의 효과만 거둘 수 있다는 것은 경계할 부분이다. 프레임의 내, 외부를 소통시키고 ‘그려진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 그리고 ‘비워진 것’과 ‘채워진 것’ 사이의 ‘가상의 프레임을 둘러싼 미학’이 상호 교차할 수 있는 어떠한 조형 언어의 개발이 필요해 보인다. ●

출전 / 
김성호, 「적막한 여정과 낯선 만남, 그 이후」, (양재윤 작가론, 성신여대 대학원 동양화과 비평 매칭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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