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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ONE & ALL 기획전 / 다양한 예술들의 만남, 불확정적인 마법의 관계학

김성호


다양한 예술들의 만남, 불확정적인 마법의 관계학


김성호 Sung-Ho KIM (미술평론가)  



I. 다원주의적 통합으로서의 '모두' - 하나 & 모두 
2018년 상반기를 맞이하는 맥아트 미술관의 기획전 제목은 《ONE & ALL》이다. 사전적 의미로 따진다면, ‘모두(모든 사람들)’를 의미한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 & 모두’ 또는 ‘일부 & 전부’로 대립되는 단어들의 조합으로부터 발생한다. 즉 “모두라는 것이 하나로부터 출발하고 결국 하나 안에 모두가 담긴다”는 철학의 존재론적 의미를 함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획전의 제명은 “국내 유리예술 및 현대미술의 전시를 통하여 시각예술의 다양성과 확장성을 고찰”하려는 이번 전시의 취지와 부합한다. 나아가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고 새로운 협력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의 예술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관계 맺음”이라는 전시의 지향점에 도달하고자 시도한다. 
‘하나로부터 모두’ 또는 ‘모두를 아우르는 하나’와 같은 개념은 사실 유리예술이라는 ‘하나’의 중심축을 가지고 현대미술의 ‘모두’를 아우르는 맥아트미술관의 지향점과도 맞물린다고 하겠다. 더 나아가 이처럼 ‘하나에 모두를 담는 복합체’에 대한 지향은 실상 ‘대부도 유리섬’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대부도 유리섬’은 ‘유리예술 문화를 공유하는 유리섬미술관, 유리예술을 포함한 다양한 현대 예술 작품을 위한 맥아트미술관, 유리공예시연장, 유리조각공원은 물론이고 유리공예체험장과 같은 체험 시설과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춘 ‘하나에 모두를 아우르고자 시도하는’ 복합체의 ‘관광 문화 예술 공간’이기 때문이다. 

임정은, 통제된 우연, 사각형의 변주♡ 2017Nov / 
Controlled Coincidence, variation of cube♡ 2017Nov, 
 20 x 20 x 0.5cm(each),  serigraphy &  fused on plate glass, mirror, 2005-2017




II. 불확정적 운동으로서의 '한 두어 개' - 불일 & 불이
태생적으로 통섭(通涉, 統攝) 또는 다원주의적 통합을 도모하는 ‘대부도 유리섬’의 맥아트미술관은 기획전 《ONE & ALL》을 통해서 ‘하나와 또 하나의 통합’이 아닌 ‘한 두어 개들의 통합’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자 한다. 이러한 고민은 세상의 모든 존재를 흑과 백, 요(凹)와 철(凸), 선과 악, 진리와 거짓, 남과 여를 ‘양자 대립’의 존재로 설정한 이원론적 사유가 아닌 ‘양자의 상생과 조화’로 살피고 있는 일원론적 사유로 이해된다. 이러한 사유는 오늘날 예술계에서의 대립들을 상생과 조화의 태도로 한데 아우르려는 시도가 된다. 한편으로 그것은 유리예술을 공예와 상업 예술의 변방으로 내쫓으려는 순수 예술의 폭거에 대한 ‘유리예술의 조용한 반론’이기도 하다. 
이번 기획전은 유리예술과 떨어져 있던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 등의 장르 예술을 ‘하나와 또 다른 하나’로서 간주하기보다 원래부터 ‘한 두어 개’와 같은 퍼지(fuzzy)의 방식으로 함께 존재하고 있는 무엇으로 상정한다. 퍼지는 세상을 대립의 존재로 이해하는 이분법을 거부하는 불이법(不二法)의 사유를 요청한다. 퍼지는 두서넛, 네다섯 혹은 예닐곱처럼 애매모호한 ‘중간 영역’으로 거주한다. 그런데 그 퍼지의 세계는 혼돈이 아니라 다름을 같음 속에 받아들이는 매개와 관용의 세계이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대립하지 않고 서로 짝을 이루어 존재한다는 대대법(待對法)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한 두어 개’, 즉 하나이면서 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존재는 불교가 가르쳐 온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의 세계와 만난다. 이 세계는 ‘하나가 아니면서(不一) 그렇다고 둘도 아닌(不二) 순환의 전체상’으로 존재하는 세계관이며, 양자의 세계를 부단히 오가는 ‘이중적 교차법’의 세계가 된다. 휴지가 자신을 더럽히면서 타자를 깨끗하게 하는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떠오르는 여러 생각들을 하나의 논리 속에서 지우는 일이며, 예술을 한다는 것은 분출하는 예술 욕망을 일정한 조형의 언어 속에서 다스리고 묶어 두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불일이불이’의 세계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자기 스스로 홀로 서는 실체가 아니라, 반드시 다른 것과의 관계에 의하여 생기고 또한 다른 것과의 관계가 끝나면 사라지는” 불교의 연기법(緣起法)이 지배하는 세계가 된다. 
‘존재(das Sein = Being)’란 부재 옆에서 양자의 사이를 오가는 교차와 연기의 세계이자, 작동하는 꿈틀거림이며, 명사화가 불가능한 ‘동사적 사건(Ereignis = event)’이다. 수증기란 무엇인가? 액체가 100°C의 변곡점을 만나 기화되어 가는 과정들을 드러내는 운동으로서의 동사적 사건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가의 예술 의지가 매체를 만나 가시화되는 운동으로서의 동사적 사건이다. 그것은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언제나 불확정성의 존재이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최진희, 바다-아버지의 마음, 75 x 40cm, fusing, 판유리, 유리에나멜



III. 마법의 관계학으로서의 '만남' - 코드 맺기 & 코드 풀기
자! 이번 기획전의 참여 작가들이 자신들만의 코드로 꽁꽁 묶어 놓은 작품들을 분석하고 해설해 보자. 작가들이 자신의 출품작들에 ‘코드 맺기(coding)’로 구축한 것들을 예민한 눈으로 간단하게나마 ‘코드 풀기(decoding)’를 시도해 보자. 그렇게 함으로써 앞서 언급한 불확정적 운동으로서의 ‘한 두어 개’가 과연 무엇인지를 출품작들 속에서 밝혀보자. 또한 개별 출품작들이, 불교의 이중적 교차법과 연기법처럼,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만나고 스스로 어떠한 ‘동사적 사건’으로 존재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자. 이러한 우리의 성찰은 가히 ‘마법의 관계학으로서의 만남’과 더불어 ‘예술 작품의 존재론’에 대한 성찰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1. 김지용은 철판 위에, 둥근 머리를 가진 핀들을 무수히 꽂아 제임스 딘, 바스키아, 스티브 잡스 등 유명 인사의 얼굴을 형상화한다. 작가 자신을 대상과 일체화시키거나 배반시키는 일련의 고된 반복 행위를 통해서 체득하는 심리적 치유의 경험들을 관객과 공유한다. 한 모듈의 비확정적 증식이다.    
2. 노해율은 원과 직선으로 대별되는 모듈의 체계에 LED를 장착하고 불빛이 이동하는 과정 자체를 통해서 라이트 아트와 키네틱 아트의 면모를 드러낸다. 빛의 움직임이란 실재의 존재이지만 관객의 부단한 움직임으로 잠재성(virtuality)의 현시화(actualization)를 드러낸다. 
3. 신한철은 구체를 쪼개고 다시 분할하는 방식으로 스테인리스 스틸의 질료를 유연하게 재구성한다. 눈에 보이는 지속적인 반복과 증식은 실상 지루한 ‘동어반복’이 아니라 음각의 네거티브와 양각의 포지티브를 오가는 마법의 ‘비가시적인 이란성 쌍생아들’이자, 동사적 사건들로 구축된 ‘이형동체’이다. 


신한철, 증식, 50 x 50cm, 스테인레스 스틸


4. 손정희는 동화, 설화, 신화 속 인물들을 형상화한 도조 설치를 통해 옛 것의 전통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지금, 여기’의 현실에 신화의 세계를 매개하고 덧입힌다. 마치 그녀의 도조가 불을 만나 흙으로부터 형상 예술이 되듯이 그녀의 신화적 상상은 공상으로부터 현실을 이끌어 낸다. 
5. 안효찬은 네오다다적이고 팝적인 제스처를 통해서 대중적인 기호품 위에 자신의 추억을 되새기고 관객에게 낭만과 판타지의 세계를 선사한다. 발견된 오브제인 ‘골드애플쥬스’병에 집어넣은 오브제들이 창출하는 연상 작용과 더불어 작가의 숨겨둔 이데올로기가 맞부딪히는 생경한 만남이 인상적이다. 


안효찬, Remembrance_rainbow, 58 x 30 x 10cm, 골드애플쥬스, 오브제


6. 오정희는 물감의 흔적들로 숲을 가꾸고 자라게 한다. 숲이란 나무 개별체가 이웃하고 있는 나무들과 ‘옆으로 자라는 나무들’로 집단을 이룬 나무 공동체이다. 그녀의 숲에는 우연과 필연의 물감 흔적들이 숲을 지우면서 숲을 만드는 불교의 연기법의 세계가 끊임없이 펼쳐진다. 
7. 원보희는 전통을 재해석하고 쓰임새를 전제하는 칠보 공예 작품을 선보인다. 은선이 칠보의 지지대를 이루고 가마에 반복 소성시키는 수고스러운 노동을 통해서 만들어진 그녀의 은기물과 칠보함은 질료를 변화시키는 연금술적 마법과 더불어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주선한다.
8. 윤두진은 FRP로 공상과학 속 인물을 창출한다. 하얀 인물들은 작품명 ‘엘리시움(elysium)’에 사는 신화 속 인간 혹은 미래의 이동 수단으로서의 천사의 날개를 가진 사이보그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실과 가상,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오가는 불안과 판타지가 공생하면서 우리 앞에 끝없이 펼쳐진다. 
9. 이경호는 불도저 위를 덮은 커다란 흰 천을 통해서 북극의 녹아가는 빙산을 형상화한 설치, 퍼포먼스 영상을 출품한다. 맨 위에서 뻥튀기 과자를 하나씩 쏟아내는 기계는 관객에게 ‘오병이어’라는 성경 속 신의 기적을 전하면서 이제는 ‘우리가 함께’ 빙산을 지키는 인간의 기적을 만들자고 손짓한다. 
10. 임정은은 유리판에 샌딩 작업으로 만들어진 상처의 흔적을 화려한 색으로 입혀 치유하는 빛과 색의 판타지를 만든다. 납작한 큐브라 할 만한 사각의 유리판을 설치하는 방식에 따라 곡선의 유려한 하트 문양과 다양한 도상들이 나타나는 그녀의 작품은 작은 유리 모듈들로 실험하는 총체 예술이다. 
11. 전용환은 철조로 사과의 조형과 내러티브를 다양하게 변주한다. 철판 자체를 원하는 문양으로 절단한 후 구체로 다시 만드는 지난한 과정과 더불어 매혹적인 붉은색, 흰색의 도색 과정은 마치 명상과도 같다. ‘공간 - 하나로부터’라는 작품명은 그의 투과체 조각의 다양한 변주를 암시한다. 
12. 전희경은 일필휘지의 필체가 엿보이는 표현주의 회화로 ‘이상적 산수’를 모색한다. ‘그린 듯 지운 듯, 지운 듯 그린’ 물감의 겹침은 생성/소멸이 교차하는 불교의 이중적 교차법과 연기법의 세계를 드러낸다. 그녀의 ‘이상적 산수’는 정지된 명사의 세계를 벗고 변하는 동사의 세계를 따라 움직인다. 
13. 조현영은 ‘램프워킹(Lampworking)’ 기법으로 만든 유리 기물을 통해서 만남의 관계학을 탐구한다. 뜨거운 열을 가하는 시간과 식히는 시간이 만나 만들어진, 연한 보랏빛이 매혹적인 작품은,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라고 하는 작품명처럼 불교의 연기법적 만남에 관한 주제 의식을 여실히 드러낸다. 


조현영,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 #2, 

7 x 7 x 170cm, 6.3 x 6.3 x 10cm, 7 x 7 x 6cm, Borosilicate glass, Lampworked

14. 최진희는 판유리 위에 ‘퓨징(fusing)’ 기법으로 조합된 다양한 ‘유리 조형 언어’를 섞어서 회화적 느낌의 부조를 선보인다. 특히 씨앗, 나뭇가지, 흙, 식물의 싹과 같은 자연물을 오브제의 형식으로 작품에 도입함으로써 자연과 인공의 만남을 주제 속에서 풍부하게 실천한다.  
15. 황혜성은 캔버스 위로 즉발성과 자유로운 표현주의 붓질이 넘실대는 회화를 선보인다. 그곳에는 정열적인 노랑과 빨강, 그리고 갈색과 파랑의 환상적인 만남이 서로를 밀치면서 펼쳐진다. 그것은 일관되게 규정할 수 없는 ‘무엇과 무엇 사이의 불확정적 만남들’로 현시화된다.●
  
출전 /
김성호, 「다양한 예술들의 만남, 불확정적인 마법의 관계학」, 『ONE & ALL』, 전시카탈로그,  (ONE & ALL, 2018. 6-8, 맥아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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