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서문│ 제3회 뉴드로잉 프로젝트 전 / 심원으로부터 발원하고 확장하는 드로잉

김성호


심원으로부터 발원하고 확장하는 드로잉 


김성호 (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제3회 뉴드로잉 프로젝트》전을 개최한다. 이 프로젝트는 장욱진의 작품 세계에 내재한 드로잉의 미학을 기리기 위해서 전국 미술대학(원)생 및 청년 작가를 대상으로 마련한 공모전이다. 이번 전시에는 공모와 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된 163점(평면 144점, 입체 11점, 뉴미디어 8점)의 다양한 드로잉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 ‘뉴드로잉 프로젝트’는 공모 대상과 전시명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새롭고 신선한 젊은 청년 작가들의 작품 전시를 통해 새로운 ‘드로잉’의 개념을 제시”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아울러 이 프로젝트는 “시립미술관으로서 차세대 (예비)예술가를 발굴 및 지원하고”, “심사를 통한 선정 작품을 미술관 소장품 매입 대상으로 하여 미술관 소장품을 확대”하려고 시도한다. 즉 이번 전시는 ‘①새로운 드로잉의 개념 제시, ②신진 예술가 발굴과 지원, 그리고 ③미술관 소장품 확대’와 같은 세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고자 한다. 
 

임소진, Blue ink series #7, 종이 위에연필, , 아크릴 물감,59.7X42cm , 2017




II. 심원(心源) 미학으로부터 발원하는 드로잉
‘뉴드로잉 프로젝트’라는 이 전시명은 기존의 드로잉 개념이 변주, 확장되고 있는 오늘날 미술 현장의 흐름을 긴 호흡으로 살펴보면서 재정의하려는 의지를 천명한다.   
그렇다면 드로잉의 원래적 의미들, 즉 심원(心源)의 드로잉 미학은 과연 무엇인가? 
드로잉의 어원적 개념은 불어의 데생(dessin), 에스키스(esquisse)와 같은 것이며, 영어의 스케치(sketch)와 동일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線)에 의하여 어떤 이미지를 미리 그려 내는 기술”을 지칭하는 ‘드로잉’은 주로 ‘구체적인 재현을 위한 대상을 미리 재현해 보는 시도이자 그 결과물’이었다. 또한 그것은 ‘비대상적 표현을 위한 추상적 시도이자 그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드로잉은 형식적으로 사물의 껍질이나 대상의 피부를 걷어내고 그 뼈대만 개괄적으로 드러내는 ‘밑그림’이 되거나, 내용적으로 대상의 외관보다 정신에 집중하는 표현주의적이고 정신적인 추상의 ‘초벌 그림’이 되기도 한다. 서구의 전통에서는 대개 양자 모두가 ‘완성 전에 미리 행하는 완성을 위한 습작’으로서의 존재일 뿐 그 스스로 완성물이 되지 못하는 존재였다.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수많은 펜화 드로잉들은 적절한 예가 된다. 그것들에는 사물에 대한 꼼꼼한 관찰력을 드러내는 다빈치의 뛰어난 재현적 데생뿐 아니라, 자신의 상상력으로 이끌어 내었던 수많은 비재현적 드로잉인 공상 과학적 설계도가 함께 자리한다. 전자가 대개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움직이는 인물이나 생물체를 포착하여 그리는 '생물 드로잉(life drawing)'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대개 19세기 대유행이 된 사물의 대량 생산의 시작을 알린 ‘산업 드로잉(industrial drawing)'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양자의 목표 지향점은 오늘날 크게 ‘순수 미술’과 ‘디자인’으로 양분되지만, 공통된 드로잉의 형식적 개념은 파울(W. B. Fowle)이 피력하는 ‘선 드로잉(linear drawing)’(1825)에 연동된다. ‘생물 드로잉’은 해부학에 근거한 채, 일련의 인간이나 생물체의 움직임 자체를 포착하여 개별 회화 작품의 서사 안에 적절히 배치하는 입장에 골몰했다면, ‘산업 드로잉’은 아주 단순한 원근법에 기인한 사물들의 외관을 따서 선묘로 표현하는 ‘기하학적 드로잉(geometric drawing)’에 골몰하게 만든다. 그것은 마치 설계도면과 같은 것이다. 19세기 이 드로잉의 대상 자체가 건물 평면도와 같은 오브제로서의 사물이거나, 증기 기관, 자동차, 기중기, 재봉틀과 같은 기계 부속들의 집합체인 경우가 다반사였던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그래서일까? 후자의 산업 드로잉은 직물의 문양 연구에 골몰하는 ‘패턴 드로잉(pattern drawing)’ 또는 필(Rembrandt Peale)의 ‘그래픽(graphics)’(1836) 개념으로까지 연결된다. 필은 “드로잉은 가장 단순한 언어이고 예술에서 가장 유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러한 견해는 ‘순수 미술’보다 ‘디자인’의 개념에 보다 더 가까운 것이다. 
이처럼 ‘순수 미술’과 ‘디자인’에 공통되게 언급되는 ‘심원(心源)의 미학으로부터 발원하는 드로잉’이란 형식적으로 선(line)이라고 하는 ‘1차원의 존재가 만드는 평면성의 2차원 영역 내 존재’라는 점이다. 나아가 그것 자체로 ‘예술의 시작이지만, 스스로는 결코 완성이 아닌 존재’라는 것도 드로잉의 개념이 태생적으로 지닌 근본적인 미학이라고 할 것이다.    


현미, 미끄럼틀, acrylicon canvas, 45.0cmx53.0cm, 2016



이홍한, ISO100IMG5986,43.2x30.5cm,디지털C프린트, 2017, ed11



채효진, 사람, 장지에연필, 45x45cm, 2016




III. 심원(深遠)의 미학으로 확장하는 드로잉
심원(心源)은 불교에서 ‘모든 법의 근원이라는 의미에서 마음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것은 이 글의 II장에서 드로잉이 발원시키는 가장 근원적인 미학을 되묻게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찾고자 하는 드로잉이 확장시키는 심원(深遠)의 미학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심원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다’는 의미의 어근으로, ‘멀다, 깊다, 많다’의 의미들을 모두 아우른다. 
따라서 III장에서의 우리의 논의는 오늘날 다변화된 드로잉의 새로운 확장이 가능한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따져 묻는데 집중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 글의 전체 제목인 ‘심원으로부터 발원하고 확장하는 드로잉’이란 다음처럼 ‘심원(心源)으로부터 발원하고, 심원(深遠)으로 확장하는 드로잉’이라는 해설로 부연 설명될 필요가 있겠다. 
전통적 의미에서, 서구의 드로잉이란, 바자리(Giorgio Vasari)의 다음과 같은 언급, 즉 “드로잉은 예술에서 모든 것의 시작이다. 드로잉이 없다면 화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진술처럼, 완성을 향한 예술의 시작점에 자리해 있었다. 그것은 대개 미완의 것이었다. 또한 코샤츠키(W. Koschatzky)가 언급했듯이, 서구에서 “드로잉은 보조적 예술 수단으로 평가되고, 회화나 조각보다 열등하다고 간주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동양화의 전통에서 드로잉은 이미 ‘미완인 채로 완성인’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예를 들어 동양의 전통에서 ‘드로잉이 지닌 재현적 구상 개념’은 그 자체로 ‘형식적 완성으로서의 응물상형(應物象形)’을 지칭하고, ‘드로잉이 함유한 표현주의적 추상 개념’은 작가 특유의 ‘골법용필(骨法用筆)’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내용적 완성으로서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을 지칭하는 개념이 된다. 여기서 후자의 개념은 동양의 전통에서 일찍이 문인화나 수묵화와 같은 ‘사의(寫意)적 회화’를 지칭해 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해가 어렵지 않겠다. 
그러나 동양의 전통에는 이원론적 사유가 애초에 없었기에 미완성/완성, 형식/내용이 이분화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점을 유념한다면, 궁극적인 ‘심원으로 확장하는 드로잉’이란 서구의 현대적 시각에서의 ‘해체적 일원론’의 사유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다. 
보라! 현대미술 속 드로잉은 최근의 담론 속에서 독립된 ‘하나의 장르’로서 인정받고 있다.  오늘날 드로잉은 더 이상 ‘완성을 위한 시작’만으로 정초되지 않으며, ‘시작이자 끝’임을 선언한다. 그것은 더 이상 ‘미완의 존재’가 아니며 ‘미완이자 그것으로 완성인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드로잉은 어떠한 모습으로 다변화되고 변주, 확장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어떠한 것들인지 살펴보자. 
오늘날 드로잉은 자신의 다른 이름들인 ‘스케치, 밑그림, 에스키스’는 물론이고, ‘삽화, 드로잉’ 그리고 나아가 ‘설계도, 산업 드로잉, 멀티미디어 드로잉’ 등과 같은 개념들을 한데 아우르면서 확장한다. 오늘날 드로잉은 더 이상 회화의 주변을 벗어나지 못한 채 회화를 기웃거리는 미완성의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전통적인 장르인 회화, 조각은 물론 판화, 사진, 도조, 설치, 애니메이션, 미디어아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형 언어로 변주한다.  
《제3회 뉴드로잉 프로젝트》에 선정된 출품작들도 예외는 아니다. 출품작들은 ‘평면, 입체, 뉴미디어’라는 매체에 관한 세 범주의 장르적 구분 외에도 무수하고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아우른다. 먼저 형식면에서 출품작들의 재료를 살펴보면, 펜, 연필, 색연필, 목탄, 먹, 잉크, 마카, 돌가루, 크레용, 수채, 아크릴, 오일, 스프레이와 같은 다양한 드로잉 재료는 물론이고, 모조지, 갱지, 장지, 트레싱지, 모눈종이, 가죽, 하드보드지, 캔버스, 광목천, 나무 패널, 조합토, 유리와 같은 다양한 지지대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게다가 드로잉 재료와 지지대 사이에 잠입하거나 둘을 뒤섞어 놓는 다양한 미디엄과 오브제들, 예를 들어, 핸디코트, 젯소, 오공 본드와 같은 미디엄이나 비닐, 박스 테이프, 스카치테이프, 동물의 털, 철사, 아크릴, 전구, 선풍기 등의 오브제와 설치물들의 오버랩도 주목할 만하다. 
한편, 드로잉의 목표 또는 지향점으로 ‘생물 드로잉’과 ‘산업 드로잉’이 영향을 미치고 있긴 하지만, 이번 전시는 디자인의 영역이 아닌 순수미술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생물 드로잉’의 범주 외에도, 풍경, 건축적 구조, 기계적 구조, 화첩 혹은 책의 형식 위에 전개한 드로잉 등 여러 세밀한 범주들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것을 간단하게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표) ‘제3회 뉴드로잉 프로젝트’ 출품작 분석 


김아라, 흔들흔들_캔버스에아크릴채색_35×35cm_2017



송채림, 역할 인식종이에 마카  29.7cm x 21cm 2018


  

윤빈, Eyelid  혼합매체  212113 2017


 

임도현, 바라다,mixed media, 48.2x78.5cm, 2018





IV. 에필로그

《제3회 뉴드로잉 프로젝트》는 드로잉의 개념을 확장하는 뉴드로잉으로서의 위상을 검토한다. 작가라면 누구나 창작의 과정 속에서 맞닥뜨린 ‘드로잉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드로잉들은 무엇보다 그 자체로 완결된 작품을 지향한다. 구체적으로는 드로잉의 실제가 ‘작업을 이끌어 가기 위한 습작의 유형’으로, 또는 ‘창작을 모색하기 위한 아이디어 스케치’의 형태로, 나아가 ‘대량 생산을 전제한 간이 설계 도면’의 형식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목표 지점은 바로 완성된 작품으로서의 드로잉이다. 

과거의 드로잉 개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바로크 시대의 렘브란트, 그리고 20세기의 피카소와 같은 서구의 미술사 속 거장들은 물론이고 드로잉 개념이 크게 확장되지 않았던 시대의 박수근, 이중섭 그리고 장욱진의 작업에서 우리는 그러한 일단을 보아왔다. 생각해 보라! 오늘날 드로잉은 완성을 향한 시작이자 그 자체로 완성임을 선언하는 ‘제도권 속 보수의 조형 언어’이기도 하지만, 거리로 뛰쳐나간 채, 제도권 밖에서 ‘제도에 저항하는 진보의 조형 언어’이기도 하다. 그것은 제도권 미술의 안팎에서 정갈하고 정제된 미학을 담기도 하지만, 감성을 분출시키는 표현주의적 미학을 담기도 한다. 
틸트 브러쉬(tilt brush)로 가상의 공간에 3차원의 드로잉을 구축하기에 이른 오늘날, 드로잉은 더 이상 구식의 육화된 조형 언어로만 머물지 않는다. 장욱진의 작품 세계를 계승하고 드로잉의 다양한 확장을 도모하는 ‘제3회 뉴드로잉 프로젝트’의 소기의 성과가, 한국의 현대미술을 거시적 관점에서 재성찰하려는 오늘날의 다양한 실험과 노력들을 풍성하게 살찌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다니엘 김, PA208- - あかとんば, 혼합재료, 43cmx25.5cmx2.5cm, 2017



출전/ 
김성호, 「심원으로부터 발원하고 확장하는 드로잉」, 『제3회 뉴드로잉 프로젝트』, 카탈로그 서문, (제3회 뉴드로잉 프로젝트,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2018. 2. 13~ 4. 8), pp.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