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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권용택 / 현실 지평에 직립한 새벽의 몸짓

김성호

 현실 지평에 직립한 새벽의 몸짓


 김성호 Kim, Sung-Ho (미술평론가) 


I. 새벽으로부터 
이 글은 화가 권용택(權容澤)이 2000년 평창 이주 이후 최근 개인전1)에 이르기까지의 기간 동안 우리에게 선보여 왔던 작품 세계를 조망한다. 그의 작업을 분석하는 평자들의 일반적인 시기별 구분에 근거할 때, 2000년 이전까지의 작업 세계는 순차적으로 ‘극사실 - 초현실주의 - 민중미술 - 환경 미술’2)로 특정화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글은 최근의 그의 개인전의 주제인 ‘새벽의 몸짓’을 주목한다. 전시 리플렛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주제어는 “지난 수년간 형식과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담대하게 걸어온 권용택의 작가적 신념을 반영한 것”3)이라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업은 만물의 깨어남을 준비하는 신선한 새벽의 기운처럼 “특정한 형식에 안주하거나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연속”4)이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새벽이라는 주제어가 실상 그가 수원 시절 ‘대표로서 이끌었던 미술 그룹인 〈새벽〉 동인’5)으로부터 발(發)하고 있다는 것을 유념하면서, 그의 전체 작품 세계로부터 ‘새벽’이라는 일관된 개념어를 추출하여 그것의 의미를 되묻고자 한다. 자신의 작품 세계에 깊이 영감을 주고 있는 권용택의 ‘새벽의 미학’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지 이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II. 현실의 지평 
화가 권용택의 작업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창작의 태도와 내용에 있어서 몇 차례 변화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실제로 그의 작업에서 일련의 변화의 계기는 ‘1987년, 88년경 수원에서 구성된 미술 운동의 인자들과의 만남을 통한 변화’6)때문이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을 계기로 ‘민중미술’의 흐름에 몸을 싣게 되면서 그는 “예술 그 자체가 중심이거나 목적이 아니라 사람과 삶이 중심이 되는 예술이 바로 예술의 진정한 몫”7)임을 깨닫게 된다. 달리 말해, 그의 작업의 궁극적 변화는 그가 ‘자신의 작품이 다른 이들의 작품과 늘 다르길 원하는’ 미학 내부의 실험적 아방가르드를 지향하며 살짝 걸터앉아 있던 ‘미술을 위한 미술’의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인간을 위한 미술’로서의 또 다른 순연(純然)한 기능을 되돌아보게 된 일이라 하겠다.  
이러한 본질적 변화 이후 그의 작품은 몇 차례의 형식적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으나 일관성을 지속하는 노력들이 언제나 함께 뒤따랐다. 먼저 그것은 형식적으로 재현에 기초한 재현 회화(representative painting), 혹은 형상 회화(figurative painting)의 기조를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그의 작업에서의 본질이 아니다. 주요한 것은 재현(representation)에 기초한 조형 언어라는 ‘작품의 외적 형식’이기보다 현실(reality)에 기초한 조형 내용이라는 ‘작품의 내외적 맥락’이다. 현실의 맥락에 집중하고 신화나 상상의 세계를 그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쿠르베(Gustave Courbet)의 리얼리즘 미학처럼, 권용택 역시 ‘현실의 지평(외적 맥락)’에 단단히 발을 디디고 서서 ‘현실을 가감 없이 투영하고 반영하는 내용(내적 맥락)’을 자신의 회화 안에 지속적으로 담고자 했다. 그것은 그가 언급했듯이, 가히 “땅에 발 딛는 그림”8)이라 할 만한 것이다. 민중미술에 안착한 이후 그가 향후 일관되게 견지해 나간 것은 ‘현실적이며 과학적인 미학, 건강한 생각과 논리적 당위성’9)이라는 ‘내적 맥락’ 그리고 “스스로 겪은 화단의 관료적 폐단과 생존의 터전마저도 위협하려는 기득권층의 작태”10)에 대한 피부적 체감이라는 ’외적 맥락‘이 함께 맞물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그의 작업은, “예술을 위한 예술적 자세를 지양하고, 이 시대가 처한 모순과 갈등의 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비판적 자세를 지향하며, 수용의 토대조차 상실한 소외된 사람들과도 함께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는 내용과 양식을 추구하고자 했다.”11) 즉 그는 근본적인 작품의 변화 이후에는 일관되게 “생각 따로, 행동 따로, 작품 따로”12)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사실 민중미술 참여로 구체화된 것이긴 하지만, 분단에 대한 그의 역사적 인식과 관심은, DMZ의 끊어진 철로를 형상화한 작품 〈폐철〉(1979)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이미 오래된 것이었다. 그러한 차원에서 그가 오산중학교 근무 당시 출퇴근길에 늘 보았던 실제의 철로는 민중미술에 몸을 담기 이전부터 늘 관심을 기울였던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하나의 상징처럼 간주되었다.13) 그런 까닭이었을까? 한국이 민주화에 접어든 이후 민중미술의 기치가 자연스럽게 수그러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수원 지역을 중심으로 환경 운동과 같은 능동적인 사회 참여와 더불어 그것과 관련한 주제의 미술 창작을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그러한 점에서 이러한 일관된 창작 태도는 그가 현실의 지평에 꼿꼿하게 직립한 채, 미술을 중심에 둔 ‘실천적 삶’을 지속적으로 펼쳐 올 수 있게 했던 근원적 힘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권용택, <그리운 금강산>, 캔버스에 아크릴, 97X195cm, 1995



III. 실재를 견인하는 '돌 그림' 
화가 권용택은, 2000년대부터 부쩍 자연과 환경을 작품의 주제로 삼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평창으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이 시절부터 처음으로 ‘돌 그림’을 선보이게 된다. 이 ‘돌 그림’은 그가 아내와 함께 집 주변에 식물들을 가꾸기 위해 화단의 경계석으로 사용하려고 ‘청석(靑石)’또는 ‘녹니편암(綠泥片巖)’이라 불리는 돌을 찾아 다듬던 중, 착안된 것이었다. 
굴곡진 틈새를 가지고 있는 작은 조각의 돌들은 작가의 눈에는 저마다 특별한 형상을 갖고 있는 듯이 보였다. 검푸른 돌의 피부 위에 물감으로 형상을 입혀 풍경으로 불러오니 어떤 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을 달리 했던 슬프기 그지없는 ‘부엉이 바위’가 되었고, 어떤 돌은 운무(雲霧)로 가득한 눈 쌓인 ‘한계령’으로 태어났다. 그 뿐인가? 커다란 굴곡은 마치 산맥처럼 쪼개지고 갈라지니 어느새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되었고, 작은 틈새 사이로 꽃송이를 그려 넣으니 보랏빛 금강초롱이 핀 금강산과 두메양귀비를 노랗게 피어올린 백두산이 되었다. 
이 때, 그가 발견한 오브제로서의 ‘돌’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그림’으로 변주를 거치지만, 돌의 모양은 물론이고 굴곡과 틈새 역시 그대로 유지된 채, 그 “어떤 가공도 전혀 하지 않는 상태”14)에서 실명의 현실계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주지할 것은 회화의 비물질성은 자연의 속성을 허구(fiction)의 차원으로 불러오는 역할을 하는데, 3차원 입체의 물질성이 자연의 실제(fact) 그대로인 까닭에, 그의 돌 그림은 자연 이미지의 환영이기보다 실제적인 자연에 기초한 또 다른 실제(實際)의 존재, 즉 ‘실재(實在)’가 되었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산속에서 돌을 통해 산을 보고 산의 옷을 그려 산을 불러오는 돌 그림’은 몇 년간 지속되었다. 아니 작정하고 “몇 년 동안 돌 그림만 그렸다”15)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어떤 돌 그림은 입체 안경을 쓰고 보는 풍경 사진처럼 벽에 부착되는 부조형의 입체 조각으로 등장하고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삼차원의 ‘조각 작품’용으로 제작된 것처럼 조각대 위에 기념비의 형식으로 놓여 전시되기도 한다.
캔버스 위에 아크릴이나 유화로 전통적인 매체로서의 회화를 견지해 왔던 그의 작업에서 이러한 ‘돌 그림’의 등장은 매우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것은 피상적으로 매우 획기적인 변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돌 그림의 등장은 충분히 예견될 만큼,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가 돌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이미 오브제에 그림을 남기는 작업을 시도했었기 때문이다. ‘장고 그림’이 바로 그것이다. 
소가죽과 돼지가죽으로 되어 있는 장고의 양쪽 면 위에 물감을 얹어 물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리던 경험을 ‘청석 위’에 번안하고 확장시킴으로써 이제 ‘허구적 회화’보다 ‘실제적 회화’를 천착하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장고의 가죽 면 위에 그린 그림은 ‘습도에 예민해서 아주 건조한 곳에서 실밥이 터지고 하는 까닭’16)에 작가 스스로도 더 이상 장고 그림이 아닌 다른 형식의 그림, 즉 돌 그림과 같은 작업을 어렵지 않게 만났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함으로써 돌하고 정겨운 대화를 나눌 만큼,17) 작가 권용택은 대상과 동화된 작업에 매진해 왔다고 하겠다. 
  

권용택, <부엉이 바위>, 돌(청석) 위에 아크릴, 2009.


권용택, <한계령 12>, 돌(청석) 위에 아크릴, 2013.


권용택, <수항사지>, 돌(청석) 위에 아크릴, 2012.



IV. 조화와 통섭을 견인하는 '나눔 그림' 
화가 권용택이 평창에 와서 처음으로 선보인 시리즈 작품이 ‘돌 그림’이었다면, 평창 시절 이전부터 천착했었고, 평창 이주 후에 본격화했던 또 다른 시리즈 작품은 일명 ‘분할 그림’이다.  
풀어 언급하면 화면 분할과 더불어 분할된 화면을 서양화와 한국화처럼 각기 다른 표현 방식으로 탐구하는 대표적인 시리즈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화면을 분할해서 대비적 풍경을 선보였던 그림들은 실상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품 〈추곡수매〉(1992)처럼 풍요로운 농촌의 풍경과 그 이면에 힘겨운 노동의 댓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농부들의 시름 깊은 표정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효율적인 방식으로 분할 화면이 사용된 것이었다.18) 또한 한국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고 있는 작품 〈사필귀정〉(1995)에서처럼 피해자인 위안부 소녀가 맞닥뜨린 공포와 가해자인 일본 군인이 저지른 폭력적 만행을 대비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방식으로 이 분할 화면이 사용되기도 하였다.19)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분할 화면이란 표피적인 이미지 밑에 숨겨진 본질적 국면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것인 만큼, 캘린더의 앞장이 일부 찢겨져 뒷장의 이미지가 드러난 것과 같은 ‘전후 대비’의 방식을 통해서 ‘좌우 대비’가 드러난 것이었다. 이러한 화면 구성의 방식은 마치 관객에게 음모론에 덧씌운 실체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려는 전략처럼 보인다. 
한편 여기에 덧붙여 권용택은 평창 이주 이후 본격적으로 전혀 다른 필치의 화법을 하나의 화면 속에서 대비시키고 싶어했다. 즉 색을 가득 담은 서양화식 조형 언어와 먹을 가득 담은 한국화의 조형 언어를 대비시킴으로써 하나의 작품 안에서 이질적인 시공간이 횡단하고 교류하는 화면을 만들고자 한 것이었다. 표현 기법 자체도 색이 있는 부분에서는 임파스토 기법의 서구적 회화의 방식을 시도하고 있는 반면, 흑백으로 구성된 부분에서는 먹을 올리는 한국화의 방식을 실험했다.   
화가 권용택이 이러한 복합적인 화면 구성 방식을 통해서 드러내려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것을 조화와 통섭을 견인하는 ‘나눔 그림’으로 살피고자 한다. 여기서의 ‘나눔’은 ‘쪼개어 분할하다(divide)’는 의미뿐만 아니라 ‘공유하다(share)’의 의미를 동시에 함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나눔 그림’은 대비되는 여러 개념들을 넉넉하게 공유하고 함유한다. 그것은 공시적(共時的)이고 공간적이면서도 동시에 통시적(通時的)이고 시간적인 관점을 한꺼번에 하나의 화면에 드러내기에 효율적인 방식이 된다. 
한 예로, 작품 <한 여름 밤의 꿈>(2012)과 <내도리 예찬>(2012)은 이러한 방식을 극대화한 작품으로 보인다. 두 작품이 같은 장소를 표현한 서로 다른 두 개의 작품이면서도 흥미롭게도 두 작품이 좌우로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루기 때문이다. 전자는 반딧불이가 가득한 무주 내도리의 밤 풍경이며, 후자는 같은 장소의 낮 풍경이다. 
이처럼 권용택의 ‘나눔 그림’에서는 가히 양자 모두 자신의 특징을 견지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포용하는 음양의 조화와 통섭의 미학을 드러낸다. 즉 정반(正反)의 대립이 아닌 음양과 요철(凹凸)의 합(合)을 지향한다. 주지할 것은 여기서 통섭은 진화생물학자 윌슨(Edward O. Wilson)의 1998년 저작에서 언급된 컨슬리언스(consilience)에 대한 최재천의 번역20)인 '도맡아 다스리다, 통치하다'는 의미의 ‘통섭(統攝)’을 가리키지 않는다. 대신 ‘사물에 널리 통함’, ‘서로 사귀어 오감’이라는 의미로 원래부터 존재했던 사전적 용어인 통섭(通涉)21)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즉 권용택의 회화에 나타난 통섭의 세계는 윌슨 식의 과학 환원주의적 통섭이 아닌 조화와 소통이 전제되는 후자의 통섭으로 정초(定礎)된다. 이러한 통섭은, 다음 장에서 살펴볼, 권용택의 회화에 나타난 원효의 개합(開合)의 사상으로 안내하는 길목이 된다.    


권용택, <한여름밤의 꿈>(좌), <내도리 예찬>(우), 캔버스에 아크릴, 먹, 2012.

 
권용택, <그리운 금강산 2017>, 캔버스에 아크릴, 먹, 2017.

권용택, <청심대>, 캔버스에 아크릴, 먹, 2017.


V. '일심의 시원'을 탐색하는 개합(開合) 
필자가 ‘나눔 그림’이라 칭했던 권용택의 ‘풍경화 아닌 풍경화’들은 역사의 내러티브를 나누고 서구와 동양의 가치를 나누고 현재적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나누면서 숨을 쉰다. 여기서 나눔이란 ‘구별과 분리’만을 향하여 내달리지 않고, 분할(division)과 공유(sharing)를 아우르는 ‘나눔(분할/공유)’을 실천한다. 때로는 시간과 공간을, 때로는 과거와 현재를, 때로는 서양과 동양을, 때로는 상하좌우 그리고 부분과 전체를 나누면서 다름을 ‘다르다고 흉보지 않고’ 함께 아우른다.
그의 작품 〈바이칼에서 오대산천까지〉(2016)를 보자. 그곳에는 시베리아의 바이칼(Baikal)호수의 풍경과 작가가 살고 있는 평창의 오대산천의 풍경이 분할된 채 그려져 있다. 커다란 두 폭의 그림은 양자를 매개하는 수묵의 풍경화(바이칼호/오대산천)로 인해 가운데서 합치된다. 그곳은 진화론적으로 한민족의 시원(始原)인 바이칼 호수로 가는 길목이다. 그 접경의 공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호수인 바이칼에서 생성되고 전승된 문화의 원형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한민족의 원고향인 그곳에서 작가는 바이칼의 오래된 노래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화답하듯이 들려준다. ‘작가의 평창에서의 새로운 삶과 이전의 수원 시절 이야기들, 아내의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뒤섞인 채 자라는 많은 이야기들’22)은 두 폭으로 연결된 풍경을 통해서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이동한다. 더 나아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이동하는 수다한 이야기는 종국에 이쪽과 저쪽의 구분이 없는 하나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서로가 서로를 공유하고 나누는 까닭이다. 
이처럼, 단순한 풍경화가 아닌 권용택의 분할된 풍경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나눔(분할/공유)’이자 ‘통섭’이다. 주요한 것은 무엇보다 이러한 나눔과 통섭이 ‘원효’가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의 방법론으로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 ‘개합(開合)’의 사유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합’이란 전개(開)와 통합(合)을 아우르는 말이자, 엶(開)과 닫음(合)을 함께 아우르는 논리이며 세계관이다. 23)
원효의 ‘개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금강삼매경의 종요(宗要)를 언급한 다음의 말을 곱씹어 봐도 좋겠다. “이 경의 종요에는 전개한 것과 종합한 것이 있으니 종합하여 말한다면 일미(一味)의 관행(觀行)이 요체가 되며, 전개하여 말한다면 열 가지의 법문이 종지가 된다.”24) 또한 원효는 이 경의 종요를 “전개하여도 하나에서 더 늘어나지 않고, 종합하여도 열에서 더 줄어들지 않으니,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것”25)이라고 강조한다. 
보라! 화가 권용택이 역사적 화면 속에 현재적 일상을 개입시키거나, 역으로 현재의 풍경 속에 겸재 정선이나 김홍도의 산수를 오마주의 방식으로 개입시키는 방법론은 ‘엶/전개’라고 할 수 있는 ‘개(開)의 방식’ 속에서 펼쳐진다. 이러한 개입들은 ‘하나’로부터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 즉 이러한 개입들은 권용택이 애초부터 견지한 “이 땅에 발 디디고 있는” 현실의 지평과 실제의 맥락이라는 주제 의식 안에서 ‘하나’로 결집되는 것들이다. 게다가 여러 가지 내러티브를 하나의 작품 속에 ‘합(合)의 방식’으로 ‘닫음/통합’을 실천하여도 ‘열’에서 더 줄어들지 않는다. 마치 이것은 원효의 사상에서 ‘발생과 소멸이 없는 진여(眞如)와 상대적이고 현상적인 생멸(生滅)이 모두 일심(一心)의 두 가지 측면에 불과하며, 이것들은 하나이면서 둘이며 둘이면서도 하나의 관계에 있는 것’26)과 같은 ‘일심’의 사상을 되새기게 한다. 


권용택, <바이칼에서 오대산천까지>, 캔버스에 아크릴, 먹, 각 130.3X162.2cm, 2016.



VI. 다시 새벽에서 
‘새벽’은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부단한 몸짓이다. ‘새벽의 몸짓’이라는 그의 전시 주제처럼 말이다. 그것은 그가 민중미술의 장에서 미술 그룹 〈새벽〉을 이끌었던 그의 초심을 되뇌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화가 권용택의 비장한 초심에 또 다른 새벽의 주인공이 중첩된다. 원효(元曉)가 바로 그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효’는 당시 신라말로 새벽(始旦)을 가리켰다고 한다.27) 원효라는 호칭은 ‘부처님의 광명이 빛나게 한다’는 의미로 지어진 것이지만, 한자의 의미만으로도 ‘가장 으뜸(元)으로 새벽(曉)을 여는 이’가 된다. 
원효의 ‘일심’을 전승하는 방법론이 ‘개합’이듯이, 권용택의 ‘나눔 그림’과 그것의 확장 버전들이 또한 그러했다. 그러면 원효의 ‘화쟁’의 세계관은 또 어떠한가? 원효에게서 그것은 ‘일심’을 천명하고 드러내는 방식으로, 다른 개별자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다름을 화합시키는 논리이자 세계관이었다.28) 그것은 권용택에게서 전개와 통합이 함께 작동하는 ‘개합’의 조형 방법론으로 가시화되었다. 그것은 이쪽과 저쪽을 늘어놓고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일이자, 이쪽과 저쪽을 하나로 묶어놓고 전체로 보는 일이기도 하다. 미시적 세계를 굽어보는 일이자, 그 미시적 세계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엶/닫음’을 그리고 ‘전개/통합’을 함께 체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원효에게서 그랬듯이 권용택의 작업에도 ‘개’와 ‘합’은 함께 존재하고 동시에 일어난다. 
우리는 안다. 그가 언급하는 ‘새벽’이 ‘땀 냄새 가득한 직유와 같은 은유’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기대한다. 그가 우리에게 온몸으로 던지는 ‘새벽의 미학’을 보고 듣기를 말이다. 그는 오늘도 누구보다 일찍 잠자리로부터 일어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고 ‘새벽’을 맞이할 것이다. 새벽을 맞이하는 ‘고요한 영가(詠歌)’와 함께 바지런한 ‘새벽의 몸짓’들로 말이다. ● 


권용택, <오대산에서 동해를 보다>, 캔버스에 아크릴, 먹, 2017.



주석 /
1) 《권용택, 새벽의 몸짓》 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2017. 10. 24~2018. 2. 4.  
2) 이영욱, 「사는 生(생), 그림 그리는 길」,  『권용택, 물의 표정』, 카탈로그, (권용택 전, 갤러리 그림시, 1998. 11. 10~11. 24) 
3) 『권용택, 새벽의 몸짓』, 전시 리플렛. 2017-2018. 
4) 위의 전시 리플렛. 
5) 박신의, 「차분하고 건강한 형상, 그리고 재현 회화의 강점을 위하여」 『권용택』, 카탈로그, (권용택 전, 그림마당 민, 1990. 9. 14~9, 20. & 수원선화랑, 1990. 9. 21~9. 25)
6) 박신의, 위의 글, 1990.
7) 권용택, 「작가 노트」, 『권용택』, 카탈로그, (권용택 전, 나무화랑, 1994. 11. 9~15 & 장안갤러리, 1994. 11. 17~23)
8) 이채영, 「권용택 화백과의 인터뷰」, 『미술관 구술채록 자료집』, hwp파일, 2017. 9. 13, p. 21.  
9) 박신의, 위의 글, 1990.
10) 박신의, 위의 글, 1990. 
11) 권용택, 「작가 노트」, 『권용택』, 카탈로그, (권용택 전, 수원선화랑, 1989. 9. 1~9. 10)
12) 권용택, 「작가 노트」, 『권용택』, 카탈로그, (권용택 전, 나무화랑, 1994. 11. 9~15 & 장안갤러리, 1994. 11. 17~23)
13) 이채영, 위의 인터뷰, 2017. 9. 13,  p. 21.  
14) 이채영, 위의 인터뷰, 2017. 9. 13, p. 23.
15) 이채영, 위의 인터뷰, 2017. 9. 13, p. 23.   
16) 이채영, 「권용택 화백과의 인터뷰」, 『미술관 구술채록 자료집』, hwp파일, 2017. 8. 31, p. 16.
17) 이채영, 위의 인터뷰, 2017. 9. 13, p. 24.
18) 이채영, 위의 인터뷰, 2017. 8. 31, p. 13
19) 이채영, 위의 인터뷰, 2017. 8. 31, p. 14.
20) Edward O. Wilson, Consilience : The Unity of Knowledge, (New York: Alfred A. Knopf, 1998), 에드워드 윌슨, 최재천 역, 『통섭, 지식의 대융합』, 사인언스 북스, 2005.
21) 이숭녕 감수, 『최신국어대사전』, 민중서관, 1997. p.860  
    원래 '널리 통한다'는 사전적 의미인 통섭(通涉)을 컨실리언스의 개념으로 보고 사용하는 학자들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의 예. 최민자, 『통섭의 기술』, 모시는 사람들, 2010.   
22) 이채영, 위의 인터뷰, 2017. 8. 31, p.11
23) 고영섭, 『원효』, 예문서원, 2002, p. 329, & 박종홍, 원효의 철학 사상, 한국 사상사, 서문당, pp. 87-88  
24) 은정희, 송진현(역주), 『원효의 금강삼매경론』, 일지사, 2007, p. 22. 
25) 은정희, 송진현(역주), 위의 책, 2007, p. 28. 
26) 고영섭, 위의 책, 2002, p. 62. 
27) 일연(저), 리상호(역),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까치, 1999, p. 379. 
28) 은정희, 송진현(역주), 위의 책, 2007, p. 18. 

출전 /
김성호, 「현실 지평에 직립한 새벽의 몸짓」, 『권용택 -새벽의 몸짓』, 사후 카탈로그, (권용택 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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