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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손민광 / ‘육신의 주체’를 소환하는 ‘만인의 타자’

김성호

'육신'의 주체'를 소환하는 '만인의 타자'



김성호 Kim, Sung-Ho, (미술평론가)




I. 만인도
손민광은 무수히 사람들을 그려 나간다. 따라서 그의 회화는 가히 만인도(萬人圖)라 할 만하다. 만인이란 ‘모든 사람’을 지칭하고 ‘무수히 많은 사람’으로 풀이된다. 만인은 특정 인물이든지, 불특정의 인물이든지 사람들이라는 복수의 인간 주체 속에서 뒤섞이는 존재가 아니던가? 생각해 보자. 혈연, 지연, 학연의 이해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존재는 필요에 의해 ‘우리’를 외치기도 하지만, 필요에 따라 ‘너’와 ‘나’를 분별하기도 한다. 여기서 후자의 태도는 홉스(Thomas Hobbes)가 언급했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처럼 만인(omnes, all)을 ‘나라는 주체’로부터 쟁투의 대상이 되는 ‘타자’로 전제하는 것이다. 
반면에 손민광의 자신의 회화 속에 담고 있는 만인, 즉 무수한 사람들은 마치 고은 시인의 연작시 『만인보(萬人譜)』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같다. 1981년 고은 시인이 대구교도소로 이감되기까지 수감했던 독방에서 사람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때문에 ‘만인보’를 쓰기 시작했던 것인 만큼, 여기서 만인은 심정적으로 ‘나에 대한 타자’이기보다 많은 부분 ‘우리라는 복수 주체’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만인이 문법적으로 마땅히 ‘타자’로 해석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쟁투와 능멸의 네거티브 대상이기보다 그리움과 애정이 담긴 포지티브의 대상을 의미함은 물론이다.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손민광의 만인도는 고은의 만인보처럼 ‘잡다한 모든 것들’이라는 ‘만인지(萬人誌)’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지점을 노정한다. 고은의 만인보가 모든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아내기 위해 족보, 계보의 역사가 필요했다면, 손민광의 만인도는 그러한 계보의 전통과 역사를 털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고은에게서는 ‘만인보’에 담을 손자와 할아버지의 실명과 더불어 구체적이고도 개별적인 미시적 인구 탐구가 매우 주요했던 반면, 손민광에게서는 ‘만인도’에 펼쳐지는 익명의 ‘아버지 없는 아들’, ‘할아버지 없는 손자의 모습’ 그 자체가 주요했기 때문이다. 
 

() 고요한 사람 65.1X53cm Acrylic on canvas 2017

() 부드럽지만 강한 사람65.1X53cm Acrylic on canvas 2017

() 우직한 든든함이 있는 사람 65.1X53cm Acrylic on canvas 2017



II. 만인의 타자
손민광의 회화가 내세우는 주제는 ‘다양한 관점(Various points of view)’이다. 그것은 ‘계보를 알 수 없는 익명’의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자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이다. 그것은 타자로 보편화된 인간 대상에 대한 관점들이자, ‘우리’라는 개념으로 끌어안는 복수의 주체가 품고 있는 관점들이기도 하다. 혹은 ‘만인의 타자’라는 개념으로 영원히 ‘타자화된 복수의 주체’의 관점들이기도 하다. 즉 ‘타자화된 대상, 개별의 주체, 복수의 주체, 타자화된 주체’의 관점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손민광의 회화에서는, 대개 두상이 크게 부각된 상반신의 실루엣을 통해서 얼추 인물의 성별,  나이, 대중성의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그럼에도 관객이 실제로 그의 회화 속의 개별 인물에 대한 포지티브의 감정 자체를 읽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그가 인간의 정체성을 강력하게 표상하는 얼굴의 구체적 형태를 일부러 해체하고 있는 까닭이다. 게다가 그가 작가노트에서 밝히고 있듯이, 프로이트가 “사디즘이나 마조히즘 등의 이상 심리에서 사랑과 미움, 복종과 반항, 쾌와 고(苦)등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양향성(Ambivalence)”이라고 했던 것처럼, 손민광 역시 감정의 이러한 양방향성을 자신의 회화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즐거움과 화기애애한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이자, 동시에 슬픔과 공포 그리고 두려운 감정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모호한 것이자 동시에 명쾌한 것이기도 하다.  
손민광은 작가노트에서 “느낌에 대한 표현과 보이지 않는 것을 눈앞에 토해내기란 쉽지가 않았다”고 진술한다. 작가 스스로도 인물에 대한 느낌과 표현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하는 일이 쉽지 않았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관객의 입장에서도 그림 읽기의 어려움에 봉착한다. 얼굴의 구체적 표정을 살필 수 없는 그의 인물화 속에서 인물의 특수성도 그러하지만 표현된 감정을 특정화하는 일은 쉽지 않다. 희로애락의 구체적이고도 변별적인 감정을 읽어내려는 관객의 노력이 그가 만든 해체된 얼굴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그의 ‘인물화 아닌 인물화’가 지니고 있는 딜레마임이 분명하지만, 한편 역설적으로 그것은 작가 손민광의 창작이 지향하는 목표점이기도 하다. 
거의 대개 인물에 대한 판독 자체가 어려운 ‘인물화 아닌 인물화’에 천착하면서 그가 말하려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개별 인간 주체의 미시적인 정체성과 구별된 감정이기보다 사회적 인간 주체의 다양하고도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변화와 진폭 그 자체에 대한 조형적 연구라 할 것이다. 그의 그림을 보자. 그는 인물들의 눈매와 입 꼬리 등의 미묘한 표정을 더러 남겨 놓으면서 인물 속 감정을 일정 부분 드러내기도 하지만, 대개 눈, 코, 입의 형태를 불완전하게 일그러뜨리거나, 아예 표현주의의 조형 언어로 이목구비의 구별조차 확인할 수 없도록 얼굴 형상을 완전히 뭉개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쏟아낸 것처럼 아크릴 물감 덩어리로 얼굴을 뒤덮어 버리거나 스트로크와 스크래치가 가득한 상처투성이로 만들어낸 그의 다양한 인물 군상 속에서 또 최근의 구조적이거나 기하학적 추상의 형태로 변모된 얼굴 표정에서 분별되지 않은 ‘다양한 관점’의 감정의 진폭과 다양한 표정들을 읽어낸다. 

() Untitled-201 24.5X18.1cm Acrylic on Paper 2016

() Untitled-371 24.8X17.7cm Acrylic on Paper 2016 



III. 무제의 타자
손민광이 그리는 사람들은 무척 다양하다. 그것은 마치 고은의 『만인보』에 등장하는 세 범주의 인물들처럼 현재의 현실과 과거의 역사를 넘나든다. 주지하듯이, 『만인보』에 등장하는 5,600여 명의 인물들은 “시인이 삶의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만난 실제 인물, 역사와 시대 속에서 만난 역사적 인물, 불교적 체험에서 만난 초월적 인물” 등으로 크게 세 부류로 대별된다. 
손민광의 만인도는 작가가 ‘직접적으로 만난 사람들, 간접적으로 만난 사람들’처럼 크게는 두 범주의 것이지만, 대체적으로 네 범주의 인물들을 담고 있다. ‘첫째는 현실에서 직접 만난 사람들, 둘째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만난 사람들, 셋째는 역사 속 인물, 넷째는 역사 속 예술인’이 그것이다.  
셋째와 넷째의 범주는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인물들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명이 담고 있는 ‘무제(untitled)’의 효능은 사실 실효성이 있다. 그가 아무리 인물의 이목구비를 해체하고 마치 못 그린 그림처럼 인물을 왜곡시킨다고 하더라도 익숙한 도상으로 알려진 인물화 속에서 특정 인물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석고 데생으로 미대 입시를 치렀던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석고상 안의 역사적 인물들, 즉 시저(Gaius Julius Caesar), 줄리앙(Julien de Médicis), 아그립파(Marcus Vipsanius Agrippa)는 차치하고서라도,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과 같은 클래식 음악의 거장들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아이콘으로서의 형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를 후끈 달구었던 채플린, 마를린 먼로, 루치오 파바로티 등 대중적 인물뿐만 아니라, 달리, 피카소, 앤디워홀, 백남준과 같은 유명 미술가의 모습 역시 우리에게 흔한 아이콘의 모습으로 회자된다. 이러할 경우 작품 제명에 유명 인물의 실명을 표기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이미지에 대한 텍스트의 강력한 고정, 지시 기능을 고려한다면 외려 순수 회화의 작품 감상에 있어 텍스트 자체가 방해가 될 수도 있다. 

() Untitled-135 38X37X55.5cm Acrylic on gypsum 2016

() Untitled-136 25.5X31X57cm Acrylic on gypsum 2016



관건은 첫째와 둘째 범주의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손민광이 일상 속에서 직접 만났거나 만나는 사람들은 이미 보편과 익명의 상황을 벗어난다. 그들은 손민광에게 특수자이다. 나아가 물리적 공간에서 직접 만나지는 않았음에도 가상의 SNS 공간에서 만난 이들 중 이러한 인간관계의 양태 역시 존재한다. 친구 맺기나 채팅 혹은 메시지 등의 최소한의 소통이 전제된다고 할 때, 그(녀)들은 손민광에게 있어 이미 새로운 특수자이다. 그가 무수하게 그리는 사람들, 즉 만인의 대부분은 손민광에게 있어 바로 이러한 ‘새로운 특수자’들이다. 그에게는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관객에겐 낯설음의 존재일 뿐이다. 따라서 그림 속에 담아낸 무수히 많은 이러한 인물들에게 있어 그의 제명 ‘무제’는 효력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최근에 천착하고 있는 기하학적 색면으로 분할된 인물 형상에 ‘무제’라는 제명 대신에 인물에 대한 해석이 담긴 텍스트를 작품명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세심함과 배려심이 있는 어른〉, 〈어려운 어른!?〉, 〈세심한 어른〉, 〈속 깊으신 어르신〉, 〈긍정적인 사람〉’과 같은 제명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해석과 평가의 관점이 담긴 텍스트의 존재는 관람에 있어 혼돈과 난감함 속에 빠졌던 이전의 관객을 이미지 안으로 이전보다는 어렵지 않게 유입시킨다. 
생각해 보자. 손민광이 ‘인터뷰와 영상 촬영 등의 자료 수집’을 통해서 구체적 인물에 대한 해석을 다각화시키고 그것을 자신의 회화 속에 반영한다고 할지라도 관객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판별하기 쉽지 않다. 작가에 의해 재해석된 인물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다면, 최소한의 의미와 해석의 장치를 부여할 필요성이 제기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미지의 의미를 지시하거나 고정하는 이러한 텍스트라는 것은 매우 유의미하다. 

   

() Untitled-114 116.8X91cm Acrylic on canvas 2016

() Untitled-110 90X72.2cm Acrylic on canvas 2016

   


IV. 주체로의 소환
인물에 대한 해석이 엿보이는 최근의 작품명은 모호한 인물의 이미지에 피와 살을 입혀 그것을 육신화(肉身化)하고 구체화한다. 더욱이 그가 최근에 야심차게 시작한 ‘고암(顧菴) 이응노’라고 하는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조형 연구와 그것에 덧입히는 해석으로서의 작품명은 하나의 실험이다. 손민광의 인물화가 고암 연구에 이르러서 ‘타자로부터 주체로의 소환’이 여실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타자화된 대상, 개별의 주체, 복수의 주체, 타자화된 주체’의 다양한 관점들로부터 ‘나와 같은 육신화된 주체를 소환’하는 일이다. 
한편 그것은 고암을 ‘나에 대한 타자’이기보다 많은 부분 ‘우리라는 복수 주체’로 이해하려는 태도와도 맞물려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물을 그리는 화가 손민광에게 있어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1989년 작고하기까지 ‘인간 군상’ 작업에 매진했던 고암은,  ‘우리라는 복수 주체’로 ‘지금, 여기’에 소환하여 육신화시킬 최고의 예술가일 것이다. 손민광이 ‘이응노의 집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게 되면서 고암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리라.  
고암과 관련한 손민광의 최근작에는 고암의 연대기가 녹아 있다. 고암이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 한 후 출감한 뒤 당시 환갑의 부인 박귀희와 함께 있는 작품 〈서로 다른 평온함〉, 1958년 파리로 떠난 이후 그의 둘째 부인 박인경과 함께 있는 작품  〈타국에서의 평온함〉, 그리고 가족을 담은 작품 〈단란한 가족〉은 모두 아카이브로 남아있는 고암의 사진 이미지를 일차적으로 참조하고 연구하여 제작된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 〈1936년의 기억〉은 또 어떠한가? 이 작품은 고암이 그의 부인 박귀희와 결혼했던 1936년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1935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신문배급소를 운영하면서 《제95회 일본미술협회전》에 입선하는 등 생업과 함께 본격적인 화업의 길에 들어섰던 고암을 떠올린다면, 이 시기가 고암에게 얼마나 장밋빛 희망에 가득했던 시기였는지를 가늠하기는 어렵지 않다. 


타국에서의 평온함, 162.2X130.3.cm Acrylic on canvas 2017


단란한 가족 91X116.8cm Acrylic on canvas 2017

 


프랑스를 위시한 국제적인 예술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1967년 한국 정부에 의해 조작된 동베를린공작단사건으로 고초를 겪었고 끝내 한국에 입국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던 고암의 곤고한 개인사와 예술 세계는 손민광이라는 젊은 화가의 ‘비정형의 표현주의’와 ‘구조화의 표현주의’ 작품 속에서 다시 재해석된다. 그런 면에서 손민광은 역사의 뒤안길로 떠난 타자로서의 고암을 ‘지금, 여기’에 피와 살을 입은 ‘육신의 예술 주체’로 소환하는 샤먼(shaman)이라는 ‘예술적 영매(靈媒)’의 역할을 자처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작업을 계기로 이전의 손민광의 회화에서 부지기수로 선보였던 익명의 타자들은 이제 저마다의 ‘이름다운 이름’을 지니면서 피와 살을 입은 육신의 주체로 소환된다. 그것은 고은이 『만인보』의 초기의 연작시에서 ‘찬밥네' '머슴 대길이' '따옥이'와 같은 이름을 통해서 드러내었던 민초, 민중에 대한 관심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존재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실천해 나가는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인물들이자 동시에 바로 우리 자신이다. 
손민광이 그동안 타자화된 인물에 집중하면서 스퀴즈나 붓으로 물감을 밀어내거나 거친 붓질로 물감의 마티에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다양한 인간상을 드러내는 회화의 표면적 효과에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처했던 딜레마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표현의 실험이 무수하게 동반된 창작의 양이 무수하게 많았음에도, 언제나 일정한 규격의 종이나 캔버스의 사용, 대개 화면 하나에 하나의 인물을 판박이처럼 지속적으로 채워 넣는 방식, 일관된 작품명 〈무제(untitled)〉의 표기 방식'. 그랬던 그의 회화가 최근 변화를 위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필자는 그것을, 손민광의 작업이 최근에 ‘인간을 타자화한 인물화 외면의 형식’이기보다 ‘인간을 주체로 끌어안은 내면의 내용’으로 초점을 옮기면서, 가능해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인간에게 주어진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의 질곡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삶의 내러티브에 대한 미시적 탐구를 방기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 

출전/ 
김성호, 「육신의 주체를 소환하는 만인의 타자」, 손민광 작가론,『자료집』, 이응노의 집 창작스튜디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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