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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2017 미술농장 프로젝트 - 황폐한 문명에 침투하는 녹색 게릴라

김성호

황폐한 문명에 침투하는 녹색 게릴라

-2017 미술농장 프로젝트


김성호 Kim, Sung-Ho (미술평론가)

2006년부터 《미술농장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대안미술공간 소나무는 올해 프로젝트의 부제로 ‘녹색 게릴라’를 제안한다. 그것은 생태적, 자연환경 미술을 무기로 삼아 오늘날 삭막한 도시 문명에 유격대(遊擊隊)로 침투하면서 벌이는 ‘작은 전쟁’이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나 휴식을 위한 피난처로 상정한 오늘날 현대인의 인식과 그들이 구축한 반자연적 문명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 자연의 본질을 구해 내고자 하는 ‘작은 전쟁’인 것이다.  







I. WHAT? - 자연환경 미술 프로젝트와 녹색 게릴라
여기서 《2017 미술농장 프로젝트》가 제안하는 ‘녹색 게릴라’가 무엇인지를 두 개념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첫째로, ‘녹색 게릴라’에서 ‘녹색’은 이 예술 프로젝트를 이끄는 식물성의 자생(自生)적인 생명력을 의미한다. ‘자생’이란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自然)의 한자적 의미처럼, ‘저절로 나서 자라는’ 근원적 생명체로서의 자연의 존재를 의미한다. 거기에는 자멸(自滅)마저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자연미학이 담겨져 있다. 즉 이번 전시의 부제인 ‘녹색 게릴라’에는 약육강식(弱肉強食)이라는 포학한 야수성이 아닌 생멸(生滅)의 순환(循環)이라는 식물성에 관한 존재 담론으로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녹색 게릴라’는 ‘씨앗이라는 인(因)’이 스스로 ‘생명이라는 과(果)’를 낳는 녹색의 담론들을 포함한다. 결국 자생, 생명, 식물성의 개념들이 ‘녹색 게릴라’의 ‘녹색’으로부터 나오는 의미들이라 할 것이다. 
‘녹색 게릴라’는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길을 모색”하고자, “자연을 물질 혹은 자원으로만 인식하려는 인간의 태도를 전환”하길 요청한다. 그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녹색 게릴라’는 자연의 모습을 한 채, 황폐한 현대 문명 속으로 잠입한다. 어쩌면 이 프로젝트는 ‘자연과 평화를 무기로 삼고 황폐한 현대 문명과 그 안에 거하는 오래된 인간을 적(敵)으로 삼아 벌이는 전쟁’과 같다고 하겠다. 즉 풀잎으로 머리를 때리고, 꽃의 향기로 가슴을 밀치면서 꽃과 풀을 무기로 삼은 ‘평화의 전쟁’이다.  
둘째로, ‘녹색 게릴라’에서 ‘게릴라’는 이 예술 프로젝트의 규모가 작지만 매우 치열함을 의미한다. 주지하듯이, 게릴라(guer(r)illa)의 어원은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탈에 맞서 유격대를 결성하여 저항했던 스페인 민중의 소규모 전투를 지칭하는 게리야(guerrilla)에서 유래했다. 그것은 정규군이 아닌 비정규적 군인들이 벌이는 ‘작지만 치열한 전투’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프랑스를 위시로 한 레지스탕스(résistance), 소련의 파르티잔(partizan), 한국전쟁 전후의 빨치산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게릴라들의 전투 행위는 대개 적의 배후나 측면에서 기습, 교란, 파괴 행위에 집중하는 뷸규칙적인 전술과 전법에 의지한다. 거기에는 무기, 병력, 군사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작은 전투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해방에 대한 국민의 막강한 열망과 정신적 지원을 그 자산과 배경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전투 의지만큼은 그 무엇보다 드높다.  
많은 미술가들이 자신의 예술 행위를 통해 예술적 소망과 자유를 성취하는 때 전념할 때, ‘녹색 게릴라’는 예술가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오늘날 인간 본연의 소망들에 관심을 둔다. 이 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은 예술가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그리고 개별적 인간이기 전에 사회적 인간으로서 감당해야 할 마땅한 일들을 고민한다, 즉 개별적 인간의 욕망에 집중하기보다 사회적 인간의 마땅한 윤리와 책무에 집중하고자 한 것이다. 달리 말해 인간 공동체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노력을 예술의 언어에 담고자 한 것이다. 
‘녹색 게릴라’의 유격대로서의 모든 노력은 ‘예술을 위한 예술’과 ‘인간을 위한 예술’ 중에서 후자에 방점을 찍고 그것을 지향하는 일이며, 인간, 예술, 생태를 하나의 범주 안에 넣고 잃어버린 세상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되살려 내는 일에 집중된다. 





II. WHO? HOW? - 녹색 게릴라의 침투 전략과 방법들
황폐한 문명과 현대 문명인에 자연환경 미술을 가지고 침투하는 녹색 게릴라는 꽃과 풀을 무기로 삼는다는 점에서 언제나 ‘평화의 전쟁’을 벌인다. 그래서 녹색 게릴라는 전투 의지가 언제나 충만하지만 늘 그(것)들이 벌이는 전쟁은 ‘작은 전투’일 따름이다. 
여기 작은 전투가 있다. 경기문화재단의 ‘지역예술활동지원사업’으로 이루어진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의 《2017 미술농장 프로젝트 - 녹색 게릴라》가 그것이다. ‘대안미술공간 소나무’는 2002년 설립한 이래 그동안 “자연과 생태를 새로운 방식으로 미술에 접목하는 실험해 보임으로써 새로운 예술 운동을 연구, 보급하는 역할”을 실행해 오고 있다. 2006년과 2008년에 ‘미술로 자라는 식물, 식물로 자라는 미술’을 주제로 《미술농장 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하였는데 이번 ‘녹색 게릴라’는 이 프로젝트의 후속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울러 2012년에 기획했던 전시 ‘동그라미 속의 자연’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프로젝트라 할 것이다. 
이번의 《2017 미술농장 프로젝트 - 녹색 게릴라》에 참여하는 6인의 작가들은 2014년부터 ‘소나무자연미술 워크숍’을 통해서 교류해 온 이들이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자연미술, 생태미술의 취지를 이해하고 함께 참여해 온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아 6인의 참여 작가들은 이 ‘녹색 게릴라’ 프로젝트를 통해서 회화, 설치, 사진, 드로잉 등 각자 자신의 조형 언어를 통해서 게릴라적인 창작 태도로 자연미술, 생태미술을 실천하고자 한다. 
임승균의 작업은 ‘녹색 게릴라’에 대한 선언적 예술 행위로 시작한다. 자신의 거주지로부터 안성천 일대로 무대를 옮긴 작가는 도시와 전원이 중첩이 되어 있는 ‘새로운 환경의 문명’ 속에서 자연환경 미술의 언어를 적용하고 실험한다. 보라! 그의 조형적 실험은 ‘도시/전원의 평범한 이미지들을 수집하고, 관찰한 것들에 대한 보고서와 표본을 작성하고, 때로는 안성천에 임시 테스트기를 담그는 식으로 자연을 인간의 다른 몸으로 간주하거나 둘 사이의 분별의 방식을 위반한다. 그것은 작가의 말대로 ‘시와 삶의 구별을 원치 않는 것’이자, 대립적 개체들을 화합으로 만나게 하는 예술의 게릴라적 실천이 된다. 

전원길은 문명/자연이 맞물린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와 그 주변의 공간 자체를 자신의 작업으로 끌어들인다. 자연의 풀잎과 땅들을 헤치고 편의의 목적을 위해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입구까지 잠입한 콘크리트 도로는 더 이상 자연을 거스르는 적으로서의 문명이 아니다. 어느새 자연/인간/문명이 하나가 된 삶의 풍경이다. 작가는 그 풍경을 마치 건축물의 축소 모형인 마케트(Maquette)처럼 작게 만들어 자신의 아틀리에 안으로 옮긴다. 그것은 밖으로부터 안으로의 귀환이자, 마치 자연과 문명의 합체가 인간의 삶 안으로 들어온 변환과 같다. 그 뿐인가? 프로젝트 기간 동안 자연의 한 끝에 하얀 조각대를 놓고 그 위에 주위에서 발견되는 자연물을 매일하나씩 올려놓는다. 무표정했던 그 하얀 조각대는 이제 자연의 오브제를 초대하고 귀를 종긋 세운 채 그(것)들의 말을 청해 듣는 ‘연단(podium)’이 스스로 되고자 한다. 따라서 이것은 자연에 끝자락에 게릴라로 침투한 ‘하얀 상자’이자 ‘녹색 예술’이 된다.  


전원길

최예문의 작업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 맺기는 획득/상실 사이에서 그리고 생성/소멸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작가에 의해 자연으로부터 제거된 잡초들은 무수히 연접하는 반투명한 플라스틱 병 속으로 들어가 자연/문명의 합체를 만들면서 자연환경 미술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햇볕으로 인해 수분을 잃고 식물의 주검인 건초가 될 뿐인 자신의 미래가 ‘자연환경 미술’이 될 것이라고 기대나 했을까? 녹색 게릴라로 침투했던 죽은 식물들을 담고 하늘 높이 솟구치고 있는 플라스틱 병들은 이제 ‘자연 스스로’를 위한 위령탑이자 ‘자연 스스로’를 기리는 모뉴멘트가 된다. 


최예문


권오열의 ‘녹색 게릴라’는 냉소적이다. 도시 미화를 위한 목적으로 인간에 의해 무자비하게 잘려나간 가로수의 초상을 담아 가면서 자연에 군림하는 인간의 욕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거나, 너른 목초 밭에 행사용 의자를 쌓아올려서 인공의 기념탑을 만들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낯선 만남과 그것이 만드는 풍경은 ‘녹색 게릴라’로서 그가 창출한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마치 그것은 은밀하게 푸른 초원의 자연에 침투하면서도 종국에는 그곳에 뻔뻔하게 남아 있는 반영체의 스테인리스 입방체처럼 말이다. 

권오열

마틴 밀러(Martin Miller)는 자연을 주술적 신앙으로 받아들인다. 무속인이 흩뿌려진 쌀들을 보고 점괘를 풀고 운명을 점치듯이, 그는 글씨 위에 모이를 올려놓고 그 사이에서 점괘를 풀어 갈 ‘샤먼(shaman)’으로서 ‘닭’을 자신의 ‘자연/정원’ 속으로 초대한다. ‘닭’이 선택한 단어들을 조합하여 어떠한 예언적 텍스트를 만들 수 있을까? 인간과 자연의 모든 존재들이 불확정적인 미래를 향해 살고 있지만, 그러한 미래를 ‘예측 가능한 놀이’로 끌어들임으로써 ‘우주-자연-인간’의 관계 맺음을 유희하는 그는 자신의 ‘녹색 게릴라’를 ‘무장한 유격대’로부터 ‘평화 유지군’으로 망설임 없이 전향시킨다. 

김순임은 일상과 현실 속에서 발견한 ‘녹색 게릴라’들을 배양실에 잔뜩 풀어놓고 그들의 ‘생명을 향한 작은 전투들’을 응원한다.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에 마련된 온실 속에 그녀가 파종한 모든 씨앗들은 국내의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포장된 식자재들로부터 왔다. 예를 들어 블루베리, 참외, 고구마, 수박, 마늘 등은 ‘인천 이마트’에서, 고추, 감자, 대파, 딸기는 ‘인천 홈플러스’에서 그리고 배, 밤 등은 ‘안성 하나로마트’에서 산 것들이다. 그녀는 해당 대형 마트의 이름과 더불어 식자재로부터 추출한 씨앗의 파종 날짜를 적어 게시한다. 온실 속에서 자라는 그녀의 식물들은 ‘포장된 식자재’로부터 왔지만 본질적으로 생물체이자, 생명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녹색 게릴라’는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이 생명’임을 어김없이 알려 준다.      


김순임




III. WHY? - 에필로그 
《2017 미술농장 프로젝트》인 ‘녹색 게릴라’는 자연환경(적) 미술, 혹은 생태(적) 미술로 오늘날의 식물성의 존재 담론을 조형적으로 실천한다. 그런데 왜 주최 측은 상징으로 가득한 ‘녹색 게릴라’를 황폐한 현대 문명 속에, 혹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침투시키려 하는가? 
대답은 단순하다. 황폐한 문명에 생명의 호흡을 주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대립과 불균형을 치유하기 위함이다. ‘대안미술공간 소나무’는 이 프로젝트가 “자연과 환경, 생태의 문제를 미술의 방법으로 풀어내고 자연의 가치와 생명력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관심이 인간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자연계와 인간계가 균형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되었음을 강조한다. 미술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대립을 치유하고 불균형을 해소하는 ‘생명의 매개(체)자’가 될 수 있음을 피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환경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인간과 자연 사이에 개입하는 ‘녹색 게릴라’는 때로는 자연에 흡수되고 때로는 인간에 흡수되는 유연한 매개체(자)로 존재한다. 따라서 ‘황폐한 현대 문명에 침투하는 녹색 게릴라’의 행동 양식은 ‘침투’와 ‘공격’이기보다 실제로는 ‘잠입’이자 ‘매개’를 지향한다. 그것은 분명 미술가들이 행하는 무엇(what)으로서의 수단과 도구이지만, 어느새 그 스스로 누구(who)로서의 주체가 되어 있다. ‘녹색 게릴라’는 객체이자 주체이다. 그(것)은 낯설다. 마치 1980년대 뉴욕에서 해학과 정치가 맞물린 페미니즘으로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 개입했던 ‘게릴라 걸스(Guerilla Girls)’라는 여성 미술가 그룹처럼, ‘녹색 게릴’라는 아방가르드와 레지스탕스 그리고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오가는 낯선 존재이다. 실제의 게릴라처럼 예고나 통지도 없이 일상의 문명과 자연 사이에서 산발적인 소규모 전투에 나서는 까닭이며, 그들이 제복이나 계급장 등도 없는 낯선 주체로 혹은 낯선 도구로 변신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일까? ‘녹색 게릴라’는 자연환경 미술에 부여된 모든 과제들을 형벌처럼 떠안고 번뇌하지 않는다. ‘녹색 게릴라’에겐 현대미술의 주류와 비주류, 예술의 목적성과 자율성, 생태미술의 윤리성과 순수성 등의 구분과 범주화는 그다지 주요하지 않다. 대립하는 둘 사이를 지속적으로 오가면서 ‘오늘날의 황폐한 문명’ 속에서 ‘인간-미술-자연’의 관계 맺기의 변주를 수용하는 실천이 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2017 미술농장 프로젝트》의 실행을 준비하는 봄, 여름 두 차례의 자연미술워크숍을 시작으로 5일간의 실제 프로젝트인 심포지엄, 그리고 관객의 체험을 도모하는 체험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녹색 게릴라’의 이러한 ‘변주’와 ‘실천’을 잘 반영하는 것들이다. 현재는 비록 작은 노력이지만, 미래의 풍성한 담론 중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한, 생태미술, 혹은 자연환경미술의 개입에 대한 다양한 ‘변주’와 ‘실천’이 ‘지금, 여기’에서 지속되길 기대한다. ●


출전/
김성호, 「황폐한 문명에 침투하는 녹색 게릴라」,  『2017 미술농장 프로젝트 - 녹색 게릴라』, 전시 카탈로그 서문, (2017 미술농장 프로젝트 - 녹색 게릴라전,  2017. 5. 6-7. 31,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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