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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Suwon Art Space Project 2017 / 통합적 주체로 결속된 수원의 미술 공간들

김성호

통합적 주체로 결속된 수원의 미술 공간들


김성호(미술평론가)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전시 공간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작가들이 직접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수원의 네 곳의 전시 공간인 ‘대안공간 눈’, ‘실험공간 UZ’, ‘복합문화공간 행궁재’, ‘해움미술관’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공간들은 “수원 지역 전시 공간의 긴밀한 소통과 지역 간 동시대 예술을 발굴하고 조망하려는 취지” 속에서 프로젝트 형식의 이번 기획전의 주제로 ‘연대-Solidarity’를 내세웠다. 그것은 바로, 공동의 프로젝트인  《수원 아트스페이스 프로젝트(Suwon Art Space Project) 2017》의 부제이자, 수원의 미술 현장을 이끌어 갈 네 주체가 공동으로 모색해야만 할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카탈로그 


I. 네 곳의 연대
이번 공동 프로젝트의 주제인 ‘연대_Solidarity’는 어떠한 의미들로 구체화되는가? 연대(連帶)란 사전적 정의에서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지는 일”과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지칭한다. 이러한 의미들과 더불어 결속(結束), 단결, 결집 등의 단어들과 공유하는 의미망으로부터 우리는 ‘공동의 목적’, ‘통합적 주체’, ‘소통과 네트워크로서의 연결’, ‘공동 책임’이라는 네 가지의 키워드를 추출한다. 
이 중에서, 검토할 몇 가지가 있다. 먼저 ‘통합적 주체’란 개별 주체를 상실한 채 변환한 ‘한 몸의 통합체’가 아니라 개별 주체가 자신의 역할을 서로 주고받는 ‘순환의 통합적 주체’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연결’ 역시 원활한 소통을 이루기 위한 느슨한 연결체임을 강조한다. 여기서 앞서 언급했던 네 개의 키워드들이 함유한 의미를 풀어 보면 다음과 같다:  네 곳의 전시 공간이 수원 미술 현장의 다각적 활성화를 위한 ‘공동의 목적(1)’을 위해서 하나가 이미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주체(2)’로서 서로가 서로를 인식함으로써 ‘소통과 네트워크로서의 연결(3)’을 도모한다. 그럼으로써 그 결과인 ‘공동의 과실(果實)’을 기쁘게 나누지만, 불가피하게 대면한 ‘공동의 과실(過失)’에 대한 엄중한 ‘공동 책임(4)’을 방기하지 않는다. 
특히 공동 책임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자. 서문에서도 나타나고 있듯이, 이 기획전은 “수원 지역의 현대미술 제반 상황을 보다 견고하게 구축”하려는 당면한 과제와 더불어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야 할 대국적인 방향과 비전”을 수립하려는 거시적 과제를 상정한다. 이러한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요청되는 “수원 지역 전시 공간의 긴밀한 소통”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불가피한 과실과 과오에 대한 ‘공동 책임’은 ‘연대_Solidarity'라는 주제 의식에서 매우 주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이들의 연대가 그처럼 거시적인 것만을 지향하고 무거운 책무의 분위기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이 기획전의 취지 중 하나는 수원 시내에 가깝게 위치한 네 공간의 “특성과 지리적 위치를 고려하여 관람객이 편하고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동선을 개발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기획전은 ‘수원 미술의 활성화 및 세계적 교류’라는 ‘큰 지도’뿐 아니라 ‘국내외 관객의 수원 미술 탐방에 대한 안내’라는 ‘작은 지도’를 함께 그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이번 기획전은 ‘소통의 수원 미술 지도 그리기’와 다름이 없다고 하겠다.    
 


 포스터 - Suwon Art Space Project 2017



II. 네 곳의 공동 프로젝트
네 곳의 공동 프로젝트인  《수원 아트스페이스 프로젝트》는 전시 공간이 지닌 고유한 특성에 따라 차별화되게 꾸려졌다. 신진 작가를 중심으로 교류와 소통을 도모하는 ‘대안공간 눈’, 실험적 미술을 탐구하는 ‘실험공간 UZ’, 섬유 미술을 중심축으로 국내외 미술 교류와 전통의 현대화를 도모하는 ‘복합문화공간 행궁재’,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의 발굴 지원과 지역민과의 소통과 교류를 중시하는 ‘해움미술관’과 같은 전시 공간들의 변별적 특성에 따라 이번 공동 프로젝트 속 네 곳의 기획 전시 내용도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하나의 공동 프로젝트를 ‘네 곳의 전시’로 분별해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 수원 아트 스페이스 프로젝트 개요 

위의 도표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먼저 개관 연도별로 네 곳의 순서를 정한다면, ‘①대안공간 눈 → ②복합문화공간 행궁재 → ③해움미술관 → ④실험공간 UZ’의 순으로 정리된다. 반면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효율적인 관람 동선 개발’의 차원에서 네 곳의 순서는 일반적으로 ‘①대안공간 눈 → ②실험공간 UZ →  ③복합문화공간 행궁재 → ④해움미술관’의 순으로 정리된다. 이번 기획전은 후자의 순서대로 관람을 제안한다. 주지하듯이, 장안문을 지난 ‘대안공간 눈’으로부터 팔달문을 거친 ‘해움미술관’에 이르기까지 간략한 위치 정보를 전시 리플렛에 담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물론 이 기획전은 네 공간의 역사와 정체성도 함께 담는다. 각 전시 공간의 현직 대표인 작가 한 명을 필히 전시에 포함시키는 한편, 그 전시 공간과 관계가 있는 작가 7인을 선정해서 각 공간 별로 8인의 참여 작가를 선정하여 총 32인의 참여 작가를 초대한 방식은 개별 전시 공간의 역사와 정체성을 한꺼번에 끌어안는 유효한 전략이다.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구체화되었는지를 각 전시 공간 별로 살펴보자.  


III.  네 곳의 네 전시
먼저 ‘대안공간 눈’에서는 《hostel.noon》이라는 전시를 통해서 생활 공간을 리모델링해서 전시 공간으로 변환시키면서 출발했던 대안공간 눈의 역사적인 설립 취지를 되새기고 신진 작가 중심의 지원을 펼쳐 온 대안공간 눈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선보인다. 그 동안 ‘대안공간 눈’에서 전시를 했던 작가들 중에서 8인(이윤숙, 김은정, 라오미, 우무길, 유지숙, 장한나, 최경락, 최혜정)을 선정한 것도, 각기 다른 장르의 작가를 섞어 선정한 것도 전시명의 취지와 잘 어울린다. “방의 구조를 띄고 있는 전시 공간에서 작가들의 작업과 작업 세계들이 한 달여 시간 동안 머무르게 되며, 정지된 의미의 전시가 아닌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호스텔’로서의 기능”이 유감없이 발휘되기에 이른 것이다. ‘네 곳의 전시 공간’ 중에서 역사가 제일 오래되었지만 작가의 연령층이 가장 젊다는 제스처를 상징적으로 잘 선보인 것이라 하겠다.   


대안공간 눈 

‘실험공간 UZ'에서는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아포리즘(aphorism)을 전시명으로 선보인다. 1004년 송나라의 도원(道源)이 저술한 불서(佛書)인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있는 이 글귀의 문자적 뜻은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이르러 또 한걸음 더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으로 막다른 위험에 놓이게 되었을 때 그 두려움을 무릅쓰고 목숨을 걸 때에 비로소 살 길이 열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즉 “자신의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극한 상태에 올려놓고 정신의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삶의 지침고 같은 경구(警句)로 받아들이기에 족하다. 8인의 참여 작가들(김성배, 권혁, 김결수, 김수철, 남기성, 송태화, 이득현, 이수연)은 실험성을 화두로 이러한 백척간두진일보의 정신을 함께 하자고 다른 이들에게 당부하고 그것을 잃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그런 면에서 이 전시는 물리적인 ‘젊은 몸’ 대신 실험성을 화두로 끊임없이 ‘젊은 정신’을 이야기한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실험공간 UZ

‘복합문화공간 행궁재’에서는 전시 《Link》를 통해서 한국, 미국, 영국 등 국내외 작가의 네트워크를 찾고, 전통과 현대의 연결 고리를 모색한다. 특히 이 공간이 그간 공예적 범주 안에 놓여 있던 섬유 예술을 융복합예술의 커다란 마당으로 끌어오는데 주력했던 점을 상기한다면, 이번 전시는, 전시명에 부합하게, 상업/순수, 전통/현대, 국내/국외와 같은 대립적 개념을 무화시키고 그 사이에서 융복합의 연결 고리를 찾는데 주목한다. 8인의 참여 작가들(장혜홍, 남부희, 마젠타강, 박종준, 박지현, 오은주, 장은진, 조경애)은 각자 다른 다양한 장르(섬유, 회화, 염색, 설치, 조각, 오브제미술 등)에 천착하면서 앞서와 같은 대립적 개념들을 무화시키고 서로가 서로를 뒤섞는다. 다만 이번 전시는 혼성의 잡종을 만들기보다 각 개념들을 ‘링크’로 연결하는 네트워킹을 융복합의 방법론으로 제시하고 실천함으로써 대립하는 것들의 유효한 만남과 의미 있는 화해를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복합문화공간 행궁재

마지막으로 ‘해움미술관’은 《드로잉적 전회》라는 제목의 전시를 통해, 다양한 장르를 수렴했던 다른 세 공간과 달리, 넒은 범주에서 회화로 대표되는 특정한 장르에 집중했다. 물론 이번 전시에는 크로키에 가까운 선묘적 특성의 드로잉, 그을음과 같은 이미지의 흔적을 통해 모색하는 다양한 실험적 드로잉, 메모장 위에 올라선 수많은 텍스트들의 군집적 설치를 통해서 비주얼 아트로 변신을 꾀하는 텍스트-드로잉, 라이노컷(linocut)을 통해 판화의 형식으로 접근하는 드로잉, 조각 작품의 제작을 위한 에스키스 용도로 제작된 듯한 드로잉 등 무척이나 다양한 드로잉의 변주를 선보였다. 오랫동안 미술적 완결물로 평가받는데 있어 많은 어려움과 맞닥뜨렸던 드로잉의 변신은 무죄이다. 8명의 참여 작가들(이해균, 김억, 김정은, 윤석남, 박근용, 전경선, 차진환)은 드로잉의 무죄 만들기 변론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해움미술관 



IV. 전시 공간으로부터 미술 공간으로
이번 공동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네 전시 공간의 다양한 색채들은 마치 이번의 공동의 기획전이 모색해 나갈 ‘통합적 주체’, ‘소통과 네트워크로서의 연결’에 대한 선문답(禪問答)의 결과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변화를 거듭하면서도 지속적 일관성을 지니는 방향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가야 할 지역의 전시 공간들이 풀어 헤쳐야 할 업보(業報) 같은 당면 과제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오(大悟)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 지금까지 견지해 온 용어인 ‘전시 공간’을 이제는 폐기하려고 한다. 대신 ‘미술 공간’이란 용어로 대치하고 여기에 호흡을 불어넣고자 한다. 이 공동의 프로젝트의 주인공들인 ‘네 곳’은 더 이상 전시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곳’은 각자의 대화들이 넘쳐나 논쟁을 이루고 이윽고 조화의 담론을 생성하는 ‘화쟁(和諍)’의 공간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신라의 원효(元曉)대사가 이루려고 했던 화쟁은 “다양한 종파와 이론적 대립을 소통시키고 더 높은 차원에서 통합”하려는 불교 사상이다. ‘화쟁’이란 용어는, 수원의 미술 공간의 소통과 대통합을 논하는 이 글에서 ‘대립하는 것들의 화해와 화합’을 의미하는 하나의 메타포이다. 
올해의 ‘수원 아트스페이스 프로젝트’에 하나가 은유가 더 필요하다면 그것은 원효가 주창했던 ‘원융회통(圓融會通)’의 사상이라 할 것이다. “거대한 순환으로서의 원, 화합으로서의 융, 모임의 회, 의사소통의 통”으로 이룬 ‘원융회통’은, ‘수원 아트스페이스 프로젝트’가 당면한 개념으로서의 ‘메타포’이자 행동으로서의 ‘프락시스(Praxis)’이다. 즉, ‘원융회통’은 각기 색채가 다른 미술 공간이 모여 구성된 ‘공동의 프로젝트’가 개별 공간의 색을 유지해 주면서도 서로를 조화롭게 하나로 만드는데 긴요한 철학적 개념이자, 실천 철학이라 할 것이다. 
보라! 여행지에서 머무르는 호스텔처럼 정체성이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삶의 정거장을, 백척간두에서 위험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진일보시키려는 노력을, 다른 이들의 관계를 이어주고 소통하게 만드는 링크에 대한 노력을, 그리고 모든 맥락에서 쉼 없이 변화와 변주를 거듭하는 드로잉적 전회를 말이다. 
‘네 곳의 미술 공간’이 구성하고 있는 ‘수원 아트스페이스 프로젝트’는 향후 수원 미술 현장의 장기적 발전을 견인해 내기 위해 ‘전시 공간으로부터 미술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며 아울러 ‘통합적 주체’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이러한 통합적 주체에게 ‘원융회통’은 아마도 주요한 슬로건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제 시작이니 힘을 더 낼 일이다.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아포리즘이 있지 않은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출전 /
김성호, 「통합적 주체로 결속된 수원의 미술 공간들」,  『Suwon Art Space Project 2017』, 카탈로그, 2017, pp.(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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