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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임선이 / 침묵의 지층으로부터 탈주하는 풍경

김성호


침묵의 지층으로부터 탈주하는 풍경
 

김성호(미술평론가)
 


I. 사물 주체로 전환하는 자연, 탈주하는 풍경
임선이의 작업은 사진, 입체, 설치 작업으로 특정된다.
회색의 시멘트로 무수한 선인장을 캐스팅한 〈쉘터-랜드스케이프(Shelter-landscape)〉 시리즈 작품이나 등고선을 따라 오려낸 수천 장의 지형도(topographic map)를 한 장 한 장 쌓아올린 종이 작품인 <붉은 눈으로 바라본 산수> 시리즈는 대표적인 입체, 설치 작업이다.
한편, 그녀에게서 사진 작업은 대개 〈트리포컬 사이트(Trifocal Sight)〉 시리즈 또는 〈메커니컬 사이트(Mechanical Sight)〉 시리즈처럼 지형도를 쌓아 제작된 종이 입체 작품을 재해석하면서 등장했던 것이다. 또는 〈트럼블링 아이즈(trembling eyes)〉 시리즈처럼, 처음부터 사진이라는 매체의 존재 방식에 문제 제기를 하면서 사진 자체를 전면에 등장시키기도 한 것이다.
사진이든, 입체이든, 그녀의 작품 속에는 보기(seeing), 지각(perception), 인식(cognition), 그리고 ‘사물 주체의 존재 의식’에 관한 지적인 사유와 질문들이 자리한다. 그녀의 작업에서 ‘섬’처럼 부유하거나 혹은 ‘산’의 ‘골과 마루’처럼 겹쳐지는 자연의 풍경들은 네거티브/포지티브, 닫힘/열림, 해체/구성과 같은 이항 대립적 요소들을 빈번하게 드러내면서도 ‘주체로부터 대상화된 사물들’의 지위를 벗고 ‘사물 주체’로 변주한다. 작가 임선이가 지형도의 속살을 얇게 여며 삼차원의 xyz 좌표 위에 켜켜이 쌓아 올리면서 ‘풍경과 살의 대화’를 지속하기 때문이다. 침묵하는 풍경의 지층들을 작은 소란들로 동요시켜 풍경을 비로소 인간 주체에 맞서는 사물 주체로 등극시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러한 사물 주체로의 전환을 표방하는 ‘풍경으로부터의 탈주’는 그녀의 초기작에서부터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II. 몸속에 은신처를 짓는 풍경과 지형도
인간 주체의 대상이었던 풍경으로부터 탈주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대상으로서의 ‘풍경’ 자체를 해체하거나 인간과 대면하는 또 다른 주체인 ‘사물 주체’로 변신해야 되는 까닭이다.
2003년 임선이의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작품 〈쉘터 랜드스케이프(Shelter-landscape)〉를 다시 보자! 변신하는 풍경 또는 전환된 사물 주체는 성장을 멈추고 대신 자신의 몸속에 은신처를 짓는다. 회색빛 시멘트로 캐스팅이 된 무수한 선인장들은 잿빛 전시장 바닥이나 좌대 위에 널브러져 방치된 채 ‘재배(栽培) 또는 사육(飼育)’된다. 생존이 절박한 사막의 피폐한 자연 환경 속에서 선인장의 두터운 피부와 날카로운 가시는 자신의 본질적인 연약함을 은폐하고 방어하기에 제격이다. 그것은 더 이상 식물의 자리에 머물기보다 수성(獸性)의 존재로 탈바꿈한다. 몸속에 은신처를 짓고 끊임없이 생채기를 남기며 그 속으로 들어가려는 수성의 선인장은 작가 임선이의 또 다른 변신체(變身體)이자, 오늘을 사는 불안한 현대인의 초상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은신처의 개념은 2005년 개인전에서 ‘갇힌-섬’이라는 개념으로 연장된다. 보호와 은폐의 개념이 <쉘터-시스케이프(Shelter- seascape)>는 물론이고 <적층>, <섬의 그늘> 등의 작품들에서 자연스럽게 단절, 고립, 소외와 같은 개념들을 불러온다. 바다 속에 점점이 떨어져 있는 고립된 섬들은 오늘날 소외된 현대인을 은유한다. 현대인은 수많은 타자들과 연계되어 있으나 모두와 소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공황장애(恐慌障礙)라는 절벽의 끄트머리에 홀로 서 있기 십상이다. 고립된 섬처럼 오늘을 사는 현대인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채 제 속살을 깎아 먹는 자해(自害)를 마다하지 않으며 오늘도 자폐(自閉)의 은신처로 몸을 숨긴다.
그렇지만, 임선이의 ‘갇힌-섬’의 은유는 음울하고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다. 풍경이 스스로의 호흡과 심장 박동을 유지하면서 인간으로부터의 구속을 벗고 인간 주체와 대화에 나설 ‘사물 주체’로 스멀스멀 변신하고 있는 까닭이다.
 



III. 부조리한 여행 - 해체되는 침묵의 지층, 탈주하는 풍경
임선이의 입체, 설치작인 2007년 작품인 <붉은 눈으로 바라본 산수>는 인왕산으로부터 출발한다. 수천 장의 인왕산 지형도를 등고선을 따라 오려낸 후 ‘오린 것’과 ‘오리고 남은 것’의 두 종류의 종이들을 어떠한 접착제도 없이 한 장 한 장 일일이 쌓아올려 만든다. 하나는 인왕산의 포지티브 형세로, 또 하나는 협곡의 네거티브 모양으로 3차원의 거대한 구조물이 된다.
인왕산의 복잡다기한 자연의 질서와 풍경의 지층들은 작가 임선이를 통해 ‘마루와 골’로 크게 해체되고, 포지티브/네거티브, 상승/하강, 있음/없음으로 잘게 쪼개어진다. 인간에게 보기와 정복의 대상이었던 풍경이 낱낱이 해체되고 종국에 ‘사물 주체’가 된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 ‘붉은 눈’은 실핏줄이 맺힌 충혈된 눈, 풍경에 대한 인간 주체의 과도함과 집요한 추적의 극점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극점의 끝에서는 변화가 일어난다. 0℃ 빙점(氷點)을 만나 물이 얼음으로 변하고, 100℃ 비등점(沸騰點)을 만나 물이 수증기로 변하듯이 말이다. 보라! 오려진 지형도 종이들의 집적으로 협곡을 이룬 네거티브 3차원 구조물을 촬영한 사진 작품인 〈트리포컬 사이트(Trifocal Sight)〉 시리즈와 반대 형상의 포지티브 3차원 구조물을 촬영한 사진 작품인 〈메커니컬 사이트(Mechanical Sight)〉 시리즈는 극점(極點)에서의 변화를 이끌고 수용할 최대 적지(適地)이다. 임선이는 지형도를 수직으로 잘라 사진으로 포착한 〈평평한 나뉨〉 시리즈와 안개 장치(fog machine)를 통해 극지의 산세를 가상현실처럼 구현한 〈극점〉 시리즈로 나눠 선보인다. 주지하듯이, 사진으로 포착된 지형도 지층(地層)의 굵은 ‘레이어’는 얇은 종이들이 집적된 지층(紙層)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이와 같은 단순한 모델링, 미니어처와 같은 가상의 이미지에 안개 장치와 같은 시간성을 개입하는 해체와 변주의 전략을 가속화함으로써 침묵의 지층은 깨어나고 활성화된다. 보라! 희뿌연 안개를 헤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설산(雪山)을, 또는 침묵의 지층을 깨고 선보이는 ‘흰 듯 붉은’ 속살을 가진 거대한 협곡을 말이다. 해체되고 변주하여 ‘사물 주체가 된 풍경’은 새로운 생명으로 꿈틀거린다. 작가 임선이가 창출하는 파노라마와 같은 풍경에는, 인공 조명이나 안개 장치와 같은 시간성이 개입하는 해체와 변주의 전략으로 인해, 꿈틀거리는 가상현실의 임장감(臨場感)이 극대화된다.




그런 까닭일까? 작가 임선이가 관객을 초대하는 ‘인왕산 여행’ 자체는 그의 작품 제목처럼 ‘부조리한 여행’이 된다. 실제의 인왕산으로부터 지형도로, 지형도의 해체와 변주를 통해 새로운 사물 주체로, 그것의 시뮬라크르인 사진 이미지로, 신비감과 임장감을 극대화하는 가상현실 장치로 변증법적 변주를 거듭하면서 실제의 ‘인왕산 여행’과는 철저히 이격된 가상현실 체험을 지속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체험의 궁극은 실재와 이격된 모든 것들에 대한 현실화를 꿈꾸는 것이다. 비행기 조종을 가상 체험하면서 우주여행을 꿈꾸고, 피안(彼岸)으로부터 죽은 자를 소환하여 차안(此岸)에서 함께 사는 일을 꿈꾸는 것이다. 마치 예술이 부조리의 삶을 일상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연이든 인공이든, 침묵의 지층들을 해체하고 ‘층-겹-결-주름’에 이르는 변주를 지속하면서 풍경을 탈주하는 작가 임선이의 예술 세계는 현실 위에 자신의 ‘부조리한 여행’을 꾸준히 올려놓는 일과 관계한다. 그것이 불가능해 보이고 현실로부터 자꾸 미끄러진다고 할지라도.●


출전 / 김성호, '침묵의 지층으로부터 탈주하는 풍경', 카탈로그, 우수상 수상자 임선이 작가론/작품론, (Jcc 프론티어 미술대상전, 2017. 1. 1-3. 31. JCC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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