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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유진아 전 / 보이지 않는 돌을 찾는 연금술적 회화

김성호


보이지 않는 돌을 찾는 연금술적 회화


김성호 Kim, Sung-Ho (미술평론가)




I. 돌로부터 - 돌의 원형과 회화적 은유
유진아의 작품 안에는 돌(石)이 있다. 그것은 실재(reality)로서의 ‘돌’이 아닌 가상적 허구(simulacre)로서의 ‘돌의 이미지’이다. 돌의 이미지는 돌이라는 실재적 사물을 형상으로 복제한다. 그러나 돌의 형상성은 태초부터 정해진 바 없으니 ‘본디의 꼴’이라는 돌의 원형(原形)은 찾을 길이 없다. 따라서 작가 유진아는 자신의 작품에서 돌의 원형(原形)을 버리고 본바탕이라는 속성 혹은 사물의 근원적 모델로서의 돌의 원형(原型)을 탐색한다.  
후자의 원형은 그녀의 작품에서 광물질(鑛物質)이라는 질료로 정초된다. 무생물의 결정체인 이것은 화학 성분이 일정한 결정 구조의 물질이다. 돌은 이러한 무수한 광물질로 구성된 채 마치 인간의 삶처럼 타자들을 만나면서 그들과의 영향 속에서 자신의 생을 살아간다. 보라! 이 땅의 모든 돌들은 물과 땅을 만나 퇴적암(堆積巖, sedimentary rock)이 되어 있거나, 불과 땅을 만나 화성암(火成巖, igneous rock)이 되기도 하며, 물, 불, 공기, 땅을 만나 변성암(變成岩, metamorphic rock)이 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돌의 순환(rock cycle)’은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마치 화성암처럼 단단해지고(생), 변성암처럼 시련을 겪다가(로병) 퇴적암처럼 흙과 몸을 섞는(사) 삶, 그리고 이어지는 순환은 ‘나/우리’의 인생에 대한 적절한 비유로 간주되기에 이른다. 특히 변성암은 변화의 지점을 내달리는 예측 불가능한 우리의 현재적 삶에 대한 완벽한 메타포이지 않은가?  
돌에게서 자신을 보았던 까닭일까? 유진아는 돌의 형상을 취해 그림을 그린다. 표피 상으로는 재현 어법에 충실한 서구의 하이퍼리얼리즘, 포토리얼리즘의 양식처럼 보이는 자신의 회화에 그녀는 메타포리컬 리얼리즘(metaphorical realis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용어가 합당한지에 대한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는 이 이름을 통해서 그녀가 자신의 회화적 지향점을 분명하게 ‘은유’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녀가 그리는 광물의 덩어리인 돌이라는 것이 무생물, 무기체이며 ‘그 자체로 있는’ 즉자적(An-sich) 존재일 따름이지만,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반성적 성찰을 거듭하는 인간과 같은 대자적(für sich) 존재를 슬며시 은유하고 있다는 것임을 알게 된다. 따라서 그녀의 은유는 최종적으로 헤겔(Hegel) 식의 즉자적 대자(an und für sich)과 같은 변증법적 단계로 고찰되기에 이른다고 하겠다. 




II. 돌의 틈 속에서 - 보이는 것의 이면
그녀는 자신의 돌 작업을 통해서 관객들이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찾기를 갈망한다. 즉 ‘보이는 형식’ 너머의 ‘보이지 않는 내용’이 그녀의 은유적 전략 속에서 발현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회화 〈이미지의 배반(La trahison des images)〉(1929)에서 발견되는 회화 속 파이프 이미지는 현실계 속 파이프라는 실재성을 결여한 시뮬라크르로서의 허구일 따름이다. 고영훈의 회화 〈이것은 돌입니다〉(1974)에서 발견되는 회화 속 돌의 이미지는 또 어떠한가? 그것은 외려 마르리트의 회화적 전략에 반발하면서 회화 속 리얼리티의 임재(臨在)를 고집스럽게 주장한다. 
유진아는 실재와 이미지를 탐구하는 마그리트와 고영훈의 대립적 역설을 ‘즉자적 대자’와 같은 변증법적 단계로 통합해 내는 회화적 언어 찾기에 나선다. 즉 대상을 객관화시켜 ‘거리 두기’로 재성찰하는 마그리트의 입장(대자적)과 더불어 대상에 감정이입하는 ‘대상이 되기’를 실천하는 고영훈의 입장(즉자적)을 변증법적으로 통합시키는 ‘즉자적 대자’의 조형 언어를 발견하기 위해서 하나의 ‘돌로부터’ 부단히 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라 하겠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유진아는 돌 속에서 그리고 돌과 돌 사이에서 일련의 ‘틈’을 발견하고 그것이 내포한 미적 담론을 성찰하는 것으로부터 이러한 실험을 시작한다. 돌에게 ‘틈’이란, 풍파 속에서 자신의 피부와 몸속에 새긴 상처이자 그것의 아픔을 인고하면서 보내왔던 세월의 흔적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의 돌이 다른 돌과 더 나아가 다른 사물들과의 사이에서 만들어내는 타자와의 연접의 공간임과 동시에 하나의 개체가 파열해서 두 개 이상의 개체로 분열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녀의 회화에서 ‘틈’은, 돌의 표면 위 상처처럼 각인된 흔적, 무수한 강돌들이 만드는 연접 사이의 빈 공간, 다른 돌들과의 만남이 형성하는 요철(凹凸) 사이의 흔적 공간 등 ‘돌의 내/외부’에서 투과체(透過體)로 만들어지는 무수한 ‘사이 공간’으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그녀는 바위 표면의 균열이나 파열을 드러내는 시각적 효과뿐 아니라 개별체 돌들의 사이 공간에 화려한 색상의 돌을 개입시키는 방식으로 ‘틈’의 개념을 조형적으로 시각화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각화 방식은 ‘틈’이라는 것이 한 주체가 ‘조우하는/별리하는’ 사물 혹은 타자를 사이에 둔 ‘사이 공간(inter space)’이자 ‘접촉지대(interface)’에 다름 아니라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는 했지만, 재현의 리얼리즘으로 그 이상의 의미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한계는 최근 시도하고 있는 몇 가지의 조형 실험에서 유의미한 결과들을 도출하면서 일정부분 극복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틈’과 같은 ‘어둠’,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본질적으로 함유하는 ‘생성’의 의미론을 다양한 ‘질료적 변환을 통해 조형적으로 고찰하는 실험’이다.     
 



III. 어둠의 공간 - 생성의 변증법
유진아는 최근에 ‘돌’, ‘돌의 틈’이라는 화두를 질료적 변환에 대한 실험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론에 천착한다. 흥미롭게도 그것은 마치 하이데거가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예술 작품의 '틈(Riß)'을 통해 고찰하고 있는 열기(혹은 밝힘)를 지속하는 '세계'와 닫기(혹은 감춤)를 지속하는 '대지' 사이에서의 싸움의 공간처럼 생성적이고 역동적이다.  
그렇다! 그녀의 회화가 담고 있는 ‘틈’의 미학은 이것이다. 피상적으로 이 공간은 구멍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의 어둠의 공간이다. 그것은 소멸의 블랙홀이자, 부재의 공포를 함유한 네거티브의 공간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주체/객체, 시간/공간이 뒤섞인 플라톤으로부터 차용한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코라(Chora)와 같은 외디푸스 이전의 혼성적 공간이다. 그것은 ‘우주의 자궁’이란 별칭처럼 이내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잉태와 생성을 야기하는 포지티브의 공간으로 현현되기에 이른다. 이처럼 그녀의 틈의 미학은 ‘보이는 돌’ 이면에서 ‘보이지 않는 어둠’을 함유하면서 부재/존재, 소멸/생성을 한꺼번에 거론한다. 그것은 마치 매일같이 희로애락을 지속해 가며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이어가는 우리의 인생에 대한 은유처럼 보이지 않는가? 유진아의 회화에 나타난 ‘틈’과 어둠, 그것은 ‘보이는 것’ 이면에 실존하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의미화 과정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이처럼 틈의 공간을 미학적으로 실천하려는 그녀의 회화적 실험은 돌이라는 소재주의로부터 탈주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의미론의 범주에 올리는 일에 집중한다. 크리스테바의 입장에서 그것은 혼돈적 생성의 코라로부터 ‘기호적(sémiotique) 과정’과 ‘상징적(symbolique) 과정’으로 이주시키는 일이 된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작가의 회화하기의 혼란스러운 탐색 과정을 언어로 정교화하여 의미론으로 변주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유의할 점이 있다면, 유진아 회화의 의미화 작업은 기호계로부터 상징계로 올라서는 일상의 의미화 과정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천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분리될 수 없는’ 기호(signe)와 상징(symbole)을 한꺼번에 작동시키는 변증법적 결합이 그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녀가 즉자(돌)로부터 대자(인간)를 은유하고 ‘메타포리컬 리얼리즘’이라 작명한 자신의 회화 방식을 통해서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개념인 ‘은유’와 ‘리얼리즘’을 변증법적으로 만나게 하려는 시도와 관계한다. 회화에서 대상과의 지시성(référentialité)을 출발부터 지니고 있는 개념인 리얼리즘을 메타포리컬(은유적)이라는 이름으로 수식함으로써 새로운 개념으로 포장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의외로 기호와 상징을 변증법적으로 만나게 하는 일은 비언어(non-verbal)인 회화의 장에서 그다지 어렵지 않다. 





IV. 현자의 돌을 찾아서 - 회화적 연금술
그녀는 이러한 두 개념의 변증법적 결합을 위해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을 구상한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다. 서구에서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연금술(鍊金術)을 통해 ‘금의 정령’으로 찾기를 부단히 노력했으나 끝내 찾지 못한 물질이자, 동양에서 ‘만병통치약, 불사약’이란 다른 이름으로 찾고 헤매었으나 찾을 수 없었던 상상의 물질이기 때문이다. 
유진아에게 있어 이 ‘현자의 돌’이란 그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작품 세계의 목적지임은 물론이다. 연금술이 ‘현자의 돌’을 찾는 과정에서 이룩한 놀라운 화학, 물리학, 약학에서의 성과가 오늘의 현대 문명을 일구었듯이, 그녀는 연금술적 과정으로 조형 언어를 실험해 나가면서 자신만의 작업을 하나둘 천착해 나가는 중이다. 연금술사들에게 비금속(卑金屬)을 금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현자의 돌을 찾는 과정 중에 제기된 부수적 목표였을 뿐이었듯이, 그녀에게 획기적인 조형 언어의 발견이란 목적 밖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녀의 작업에서 주요한 것은, 양비되는 개념들의 변증법적 결합을 통한 질료의 지속적인 변성(變性)에 대한 실험 과정 자체가 유의미한 작업이 된다는 사실이다. 




유진아의 작업에서, 마티에르를 강화하는 돌의 재현적 형상을 비재현적 혹은 표현적으로 연구하거나, 아예 돌의 이미지를 해체함으로써 지속적인 다시 쓰기 혹은 다시 그리기를 시도하는 방식들은 조형 실험의 과정 자체를 중시하는 그녀의 창작 태도를 잘 보여 준다. 때로는 전형적인 회화의 형식으로부터 이탈하는 탈장르와 혼성의 제작 방식, 비유적으로 말하면 연금술의 변증법적 방식의 결합도 주목할 만하다. 돌을 이미지화한 회화나 사진 위에 실크 소지로 성형된 흙을 올려 돌이라는 소재 자체를 물질로 환원시킴으로써 이미지와 실재라는 양자를 하나의 ‘회화 장(場)’ 안에서 직접 맞닥뜨리게 하거나 흙의 질료인 1차 초벌, 2차 재벌, 3차 수금을 입혀 금빛 도자기로 만듦으로써 돌이라는 재질의 질료적 변성을 실험하는 연금술적 회화를 실천하기도 한다. 마치 물이 0°C를 만나 얼음이 되거나 100°C를 만나 기체가 되는 변성의 과정을 지켜보듯이 관객은 흥미로운 연금술적 변환을 감상하게 될 것이다. 
그녀의 회화를 잠재성의 존재이자 운동성 자체로 만드는 힘은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식으로 말하면, 그녀가 물질에 투여하는 ‘물질적 상상력’(imagination matérielle)의 힘이다. 바슐라르의 저작 '물과 꿈'(L'eau et les rêves)에 따르면 이러한 상상력에는 두 방향성이 존재한다. 하나는 물질이 스스로 형상을 만드는 상상력이며 또 하나는 물질에 잠입해서 형상을 만드는 인간의 상상력이다. 유진화의 회화는 후자이면서 전자 역시 끌어안는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우연과 의도 모두 창작이라는 생성적 운동 속에서 주요하게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녀가 추구하는 상상력은 바슐라르 식으로 ‘무의식적 활동’으로서의 꿈(rêve)이기보다는 ‘깨어 있는 꿈’인 몽상(rêverie)을 지향한다. ‘밤의 꿈(dream)’으로 정초되려고 하기보다는 ‘낮의 꿈꾸기(dreaming)’로 약동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녀는 오늘도 자연의 본성을 따라 물질을 탐구하는 연금술적 실험들을 통해서 대상의 이미지와 실재를 회화라는 대화의 장에 불러오고 있는 중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 혹은 ‘보이지 않는 현자의 돌’에 대해 여전히 관심을 갖고서 말이다. ●

출전 / 

김성호, 보이지 않는 돌을 찾는 연금술적 회화, 카탈로그 서문, (유진아 개인전, 2017, 6. 29 - 7. 3. 가나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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