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서문│김지훈 전 / 홈과 주름의 미학

김성호


볼록 반영체의 표면에 투영하는 '홈'과 '주름'의 미학 

김성호(미술평론가) 



I. 홈: 주름의 조형적 번안
조각가 김지훈의 다섯 번째 개인전이 근 10년 만에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05년(덕원갤러리), 2006년(시안미술관)의 두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주제 ‘구멍(Hole)’과 2007년(갤러리차이, 갤러리G)의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주제 '뿔(Horn)'이라는 주제 의식에 대한 성찰이 오랫동안 숙성된 후 열리는 전시이다.  
스테인리스 스틸을 지난한 노동의 시간을 통해 단조(鍛造)의 기법으로 절단하고 용접하면서 반영 효과를 가진 볼록의 반구체를 만드는 장인적 기술 속에 함유된 미학은 이번 전시 주제인  ‘홈(Home)’과 연동된다. 주지하듯이, ‘홈’이란 ‘물체에 오목하고 길게 팬 줄’이다. 그것은 영어로 번역할 때, ‘퍼로우(furrow)’나 ‘그루브(groove)’와 같은 말이 제격이다. 그럼에도 작가 김지훈이 ‘홈’을 음차(音借)하는 영문 ‘Home’을 사용한 이유는 자신의 작품 속에 ‘가정(家庭)’이라는 따뜻한 주제 의식을 일정 부분 내재시키고 싶은 까닭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품에서 주제 의식으로 자리 잡은 ‘홈’은 실제로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던 중에 노모(老母)의 손바닥에서 그가 매일같이 보아왔던 ‘주름’에 관한 조형적 번안이기 때문이다. 그가 한 때 매일같이 맞닥뜨렸던 어머니의 손바닥에 깊이 패인, ‘홈(furrow/groove)’ 혹은 ‘주름(crease/pli)’은 이처럼 ‘삶이라는 시간’이 ‘각인된 흔적’임과 동시에 돌아갈 근원으로서의 ‘가정, 본고장, 고향’이라는 의미의 ‘홈(Home)'이 되기도 한다. 
그런 차원에서 올해의 개인전은 이전의 두 시리즈 작품들의 맥을 잇는다. 그 하나는 '구멍(Hole)' 시리즈로, 건축적 조형으로 거대 덩치의 콘크리트나 FRP로 탐구했던 ‘불투명한 요(凹)’의 세계이다. 또 하나는 동물의 공격성(뿔)과 식물(가시)의 방어 개념이 뒤섞인 ‘뿔(Horn)’ 시리즈로, 반영체의 스테인리스 스틸로 탐구했던 ‘투명한 볼록(凸)’의 세계라 할 것이다. 올해 김지훈의 개인전은 이 두 시리즈를 각각 탈주하면서도 그 맥을 잇는다. 이번 전시의 주제 의식은 아래처럼 이전의 두 시리즈의 세계가 한데 어우러진 ‘반(半)투명’과 ‘요철(凹凸)’의 세계로 잠입한다. 

(표) 김지훈 작품의 의미 분석 



II. 주름: 변곡의 운동체
이번 전시는 한마디로 들뢰즈와 가타리(Gilles Deleuze & Félix Guattari)의 철학이 메타포로 삼았던 ‘주름(Pli)’의 세계와 상통한다. 
보라! 김지훈이 만든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스틸의 피부에 자리한 주름은 피상적으로 스스로 내부에 홈을 만드는 네거티브(凹)의 공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주름은 공간과 공간 사이에 골과 마루를 만들면서 서로를 구분하면서도 서로를 이어주는 연접(連接)의 공간으로 정초된다. 즉, 주름은 ‘네거티브/포지티브’의 합치(凹凸) 공간으로 이해된다. 
생각해 보라! 모든 안의 공간은 밖의 공간과 위상학적으로 접지한다. 주름이란 대개 ‘골(凹)’에만 거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 접지함으로 인해 ‘마루(凸)’에도 함께 존재한다. 주름이란 피부나 직물의 접혀진 상태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소위 변곡을 만드는 ‘굴곡진 주름’이다. 즉 김지훈의 작업에서 주름은 피상적으로 네거티브의 공간으로 보이나, 네거티브와 포지티브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골/마루(凹凸)’의 세계를 지향한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철학적 개념에서 이러한 ‘주름’이란 정지체로 존재하지 않고 골과 마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운동체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주름(pli)’은 변화를 지속하는 전이층(transition layer) ‘내/외’의 운동체이다. 그런 면에서 주름이란 실상 복수성의 ‘주름들(plis)’ 또는 겹주름(replis)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주름 위의 주름’이자 ‘주름 안의 주름’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주름 위의 주름은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두 흐름들 또는 인식의 두 흐름들'을 형성한다. 그 흐름 중 하나는 함축(im-pli-cation)이라는 '주름 접기'(plier)이며 또 다른 흐름은 설명(ex-pli-cation)이라는 '주름 펼치기(déplier)'이다. 들뢰즈에게서 사유하기란 ‘주름 접기’이며 그것은 ‘밖과 같은 외연을 가지는 안’으로 밖을 이중화하는 것이고 ‘주름 펼치기’는 사유의 실천이며 위의 개념을 역으로 행한다. 그러니까 ‘주름 접기’에는 강도적 계열적 상태, 즉 미분화와 잠재화의 운동 상태에 있으며, ‘주름 펼치기’에는 “질적 연장의 상태', 즉 분화와 현실화의 운동 상태에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김지훈은 자신의 작품에서 무수한 단조의 창작 방식을 통해서 골 사이로 주름을 접고, 볼록체의 표면 위로 주름을 펼치는 일을 지속한다. 창작 과정에서 골(凹)을 향한 ‘접다-다시 접다'와 마루(凸)를 향한 ‘감싸다-펼치다'의 운동이 연쇄되는 것이다. 게다가 깔끔하게 마감된 그의 완성품에서도 이러한 ‘주름 접기’와 ‘주름 펼치기’의 운동은 지속된다. 철학적 개념뿐 아니라 실제로 반영성과 버핑 효과로 가득한 볼록 반구체의 표면이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이미지를 일렁이게 만들면서 운동성으로 반응하는 까닭이다. 즉 스테인리스 스틸의 매끄러운 공간 위에서 시각적으로 ‘접힙-펼침-다시 접힘'의 운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III. 볼록거울 : 반투명한 심적 반영체
김지훈의 작품은 네거티브 개념의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홈’으로부터, 들뢰즈의 철학적 개념으로서의 ‘주름’으로 확장하고, 또 인생의 세월과 같은 흔적으로서의 ‘주름’과 인생의 거울과 같은 반영으로서의 ‘표면’의 개념들이 한데 뒤섞이면서 어우러진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스테인리스 스틸 표면에 대한 버핑 작업으로 인해 생겨나는 거울(mirror)과 같은 반사성(反射性)과 반영성(反映性)의 효과는 그의 작품의 의미를 보다 더 풍부하게 해석하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 그의 버핑 효과를 통한 스테인리스 스틸의 반영체는 ‘유리판 뒷면에 수은(水銀)을 바르고, 그 위에 습기를 막기 위하여 연단(鉛丹)을 칠한 실제 거울’과 다르다. 스테인리스 강판의 볼록거울은 투명한 반영성이 흐려진 채 이미지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반(半)투명한 반영체인 것이다. 
이러한 반투명성은 투명함/불투명함을 함께 끌어안으면서 가시성/비가시성을 한꺼번에 선보인다. 즉 지각의 차원과 더불어 심리적 차원을 한데 드러내는 것이다. 볼록거울의 탈평면이라는 3차원적 위상학과 더불어 버핑 작업을 통해 빛나는 슈퍼 미러 강판의 표면이 그의 작품을 물리적 볼륨의 변주와 더불어 시간성에 관한 존재론적 개념의 미학적 전이를 함께 실천하기 때문이다. 
먼저, 김지훈의 최근작에서. 개별 작품마다 함유되는 볼록거울에 관한 심리적 면모이다. 그의 작품 개별체들은 ‘반영의 효과를 가지는 볼록의 반구체’라는 점에서 가히 ‘볼록거울(convex mirror)’이라 부를 만하다. 그것은 반사면에 물체가 위치하는 거리에 따라 바른 상(정립상)과 거꾸로 된 상(도립상)으로 달리 나타나는 ‘오목거울(concave mirror)’과 달리, 언제나 물체가 바로 선 형태의 정립 허상이 나타난다. 빛이 반사된 경로의 연장선이 거울 면 뒤에 모이는 ‘허초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축소된 크기는 반영된 이미지가 허상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보다 더 강화시킨다. 볼록거울에 비추인 반영 이미지들은 실물의 크기보다 항상 축소되어 반영된다. 다만 그것은, ‘자동차 백미러’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부분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최대한의 전체상이다. 물론 그것은 허상이다. 더욱이 볼록의 표면을 쪼개는 여러 홈(주름)들로 인해서 반구체의 볼록 이미지는 원형의 반사체 모양을 깨트리고, 비정형으로 분할되고 찌그러뜨리면서 허상을 한층 더 왜곡한다. 그것은 허상 위의 허상이 된다. 
빛의 반사를 왜곡하는 찌그러진 볼록 거울들이 만드는 허상(虛像)은 자연스럽게 관객으로 하여금 표피 너머의 실상(實相)을 사유하게 만든다. 그것은 이미지의 환영주의 너머의 심리적 차원에 관한 무엇(들)이다. 그것(들)은 오목과 볼록이 늘 대립하는 ‘홈 패인 공간’이 아니라, 변곡점의 ‘안/밖’에서 오목과 볼록의 몸을 서로 연장하면서 운동(개념적이고도 심리적인)을 지속하는 ‘매끈한 공간’을 향해 달음질해 나간다. 






IV. 에필로그
조각가 김지훈이 이번 전시에서 탐구하는 철학적 존재의 공간인 ‘주름’은 어둠 속에 보이지 않는 잠재태로서의 존재를 껴안은 채, 밝음 속에 거하는 실재의 세계를 지향한다. 그것은 때로는 손바닥의 주름처럼 공간을 횡단하고, 때로는 손가락의 지문처럼 똬리를 틀고 자리하면서 주름 사이에서 대립하는 이쪽과 저쪽의 연접의 공간들을 화해시키고 소통시키는 매개자의 역할을 자임한다. 그런 면에서 김지훈의 최근 조각이 견지하는 ‘주름의 미학’이란 ‘주름 접기(plier)’와 ‘주름 펼치기(déplier)’라는 대립적인 조형의 속성을 넘어, ‘접힘(pli)’과 ‘펼침(dépli)’ 그리고 ‘다시 접힘(repli)’과 같은 주름과 관련한 다양한 존재적 위상을 실험하고 그 과정을 선보이는 것이라 하겠다. 
김지훈의 작품에서, 버핑된 스테인스 스틸의 볼록거울을 통해 ‘허상’은 찌그러지지만, ‘실상’은 사방으로 열리면서 매끈한 공간을 그린다. 이 사방으로 열려 있는 매끈한 공간 위에서 ‘주름 접기’와 ‘주름 펼치기’를 지속하면서 관람을 안내하는 작가 김지훈은 관객들에게 ‘지금, 여기’에서 과거로 혹은 미래로 혼돈스럽게 오가게 만드는 불친절한 여행 안내자이다. 그렇지만, 그가 안내하는 ‘반투명한 여행’은 결과적으로 관객에게 관객 스스로의 길을 찾게 만드는 무한한 자유의 ‘열린 소통’이 된다고 할 것이다. ●

출전/
김성호, '볼록 반영체의 표면에 투영하는 '홈'과 '주름'의 미학', 카탈로그 서문, (김지훈 전,2017 )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