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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박미경 전 / 물레의 꿈

김성호

물레의 꿈 - 소멸로부터 생성, 속박으로부터 자유


김성호 Kim, Sung-Ho (미술평론가)


도조(陶彫), 즉 도자 조각을 통해서 작가 박미경은 8회째가 되는 올해의 개인전에서 ‘꿈꾸는 자유’에 관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2014년 4월 16일 진도 팽목항으로부터 가져온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작가의 메시지이다. 작가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304인을 은유하는 물고기들을 숫자에 맞게 도자로 만들어 전시장 바닥에 배치한다. 아울러 사고로 인해 변모했을 바다 속 풍경을 상상하고 그곳을 ‘지금, 여기’의 전시 공간으로 소환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304인 앞에서 작가 박미경이 흙으로 빚은 애도사(哀悼辭)이자, 도자 가마 속에서 희생자들을 화장(火葬)하는 진혼시(鎭魂詩)이며, 떠도는 슬픈 영혼을 위무하는 위령제(慰靈祭)라 할 만하다. 




I. 속박으로부터 꿈꾸는 자유
주지하듯이, 세월호 탑승인원 476명 중 사망자 295명은 오열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지 오래지만, 바다 속에 침몰했던 세월호와 함께 그곳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수습자 9명의 귀환은 여전히 기약이 없다. 현재까지 사망이 확실시되는 9명의 미수습자를 포함한 304명은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생을 달리 해야만 했던 이 대형 참사의 희생자들이다. 
과적재 및 급격한 변침으로 인한 사고사라는 이유로부터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 해경의 소극적 구조, 정부의 늑장 대응이 더해지면서, 잠수함 충돌이라는 확인할 수 없는 주장들이 ‘합리적 의심’이라는 옷을 입고 제기되면서 한국 사회는 몇 년간 몸살을 앓아 왔다. 세월호 침몰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집단 저항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그것을 은폐하려는 지배 권력의 술수와 음모들이 힘겨루기를 한 대립과 분열로 인한 결과였다. 세월호 참사는 분명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감당하고 수습, 해결해야만 할 사회적 재난이었고, 이 시대의 한국 사회가 총체적 난국으로부터 탈주하기 위해 숙명처럼 맞닥뜨려야만 했던 미래적 책무와 관련한 과제들을 한꺼번에 안겨 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작가 박미경은, 도조 작품이 지닌 조형의 언어를 가지고, 진실을 찾기 위해 그간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던 이 시대의 무수히 많은 양심들을 지속적으로 독려하고, 슬픔에 빠져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차가운 바다 속을 정처 없이 떠돌았을 희생자들을 진혼하기를 시도한다.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던 희생자들의 모습을 상기시키는 304마리의 도조 물고기들은 그런 면에서 희생자들에 대한 하나의 은유이다. 모래 둔덕을 만들고 그 위에 쓰러질 듯 집단적으로 설치된 도조 물고기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의 처연했던 상황을 우리로 하여금 상기시킬 것이다. 아울러 ‘드럼(drum)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는 도자 조각은 세월호 참사의 또 다른 모습이자, 그것과 이웃한 또 다른 재난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태안의 기름 유출 사건’과 같은 또 다른 재난을 연상하게 만든다. 이처럼 한 재난에 또 다른 재난이 겹쳐진 풍경은 총체적 난국이라는 미래적 재난 상황에 대한 불안한 예측처럼 보인다. 재난은 해결되지 않고 파국만을 가져오는가? 
작가 박미경은 재난이 초래한 속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방기하지 않는다. 자유를 구속하는 재난 상황이라는 총체적 난국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보라! 전시장을 둘러싸고 설치된 조각대와 그것 위에 올라선 ‘구(毬)’ 모양의 조각들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부표(浮標)들처럼 우리를 차갑고 어두운 심해로부터 건져 올려주는 구원(救援)의 상징이다. 또한 드럼통 위에 붙어 있는 바다의 미미한 생물인 따개비들의 존재는 어떠한가? 그것은 재난이 야기한 속박 속에서도 그것으로부터 뛰쳐나가려는 자유에의 갈망과 뜀박질하는 생명에 대한 희망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II. 소멸로부터 꿈꾸는 생성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소멸로부터 생성을’ 꿈꾸는 박미경의 작품이 견지하고 있는 주제의식은 쓰임새에 천착하는 공예가 순수미술을 만난 도조, 즉 ‘도자 조형, 혹은 도자 조각’의 특성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그녀의 도조는 그런 면에서 예술의 그리스어 어원인 테크네(technē)처럼 실용성과 심미성이 결합한 예술 본연의 이상을 실현하는 셈이다.  
주목할 것은, 그녀의 도조 작품은, 도자 타일 등 세라믹의 다양한 확장보다, ‘물레 성형을 통해 도자기를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거의 대다수 작품들은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형을 이루는 것들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304마리에 달하는 그녀의 물고기들은 한 두 개의 소조 원형으로부터 캐스팅 작업을 거친 것이 아니라, 304마리 모두 물레 성형으로 하나씩 따로 만든 것이다. 더욱이 처음부터 납작한 물고기 형태로 만든 것이 아니라, 물레로 만든 둥그런 그릇 모양을 최종적으로 납작하게 눌러서 유선형의 물고기 형태로 만들어낸 것이다. 입을 벌린 채 고통에 힘겨워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많은 물고기들의 형상이 ‘같은 듯 다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 박미경에게 있어 ‘물레 성형 기법’은 ‘흙’이란 원초적인 조형 요소와 더불어 가장 주요한 조형적 방법이 된다. 물레란 무엇인가? 그것이 손물레, 발물레, 전기물레이든 모두 심축을 중심으로 하는 회전 운동을 이용해서 도토(陶土)에 힘을 가하여 도기를 성형하는 용구이다. 보라! 타날법(打捺法)으로 흙의 테를 쌓아 올린 그녀의 도자형 도조 작품은 물레를 통해서 ‘한 덩이 흙의 무게’를 가늠하고 만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물레를 통해서 흙을 대면하는 작가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한 겨울에, 추위 때문에 굳어버린 곰팡내 나는 흙덩어리를 물레를 통해서 다시 빚고 매만지면서 마주하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어려움과 대면해서 ‘속박으로터 자유를’ 성취한 그녀의 흙 조형물은 이내 유약과 불을 거치면서 보다 더 유의미한 존재로 거듭난다. 즉 ‘소멸로부터 생성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도조’의 창작 과정은 인간 존재론이라는 철학적 사유를 미술의 장에서 유감없이 실천한다. ‘흙’이라는 자연체로부터 생명 탄생의 의미를 불러옴과 동시에 ‘불’이라는 자연 현상으로부터 장례 의식을 한꺼번에 소환하기 때문이다. 도조, 즉 도자 조각은 일차적으로 ‘흙’으로부터 만들어지지만, 이내 ‘불’을 만나 흙의 생을 마치고 도조라는 제2의 생을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흙으로부터 빚어진 인간이 결국 화장(火葬)되어 차안(此岸)에서의 흙의 인생을 마치고 피안(彼岸)에서의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과 닮아 있다. 흙으로 새 생명을 입은 후 다시 유약을 입고 가마에 들어가 이전의 스스로의 모습을 죽이고 다시 태어나 또 다른 삶을 지속하는 도조의 삶은 분명히 차안으로부터 피안에 이르는 우리 인간의 삶과 닮아 있다. 
‘삶/죽음’이 겹쳐 있는 인간의 삶! 그것은 도조의 은유에 다름 아니다. 도자 조각에서 발견되는 ‘흙/불’이라는 근원적 요소가 인간의 ‘삶/죽음’이 겹쳐 있는 인간 존재론에서 ‘소멸로부터 생성을’ 꿈꾸게 만드는 까닭이다.   
박미경은 ‘흙/불’의 담론을 물레로부터 출발시키고 있는 도조의 은유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상황에 오버랩시키고, 삼백토, 청자토, 무광재유, 광택재유, 투명유, 천목유, 사피유 등 다양한 재료와 유약 실험을 통해 복합적인 조형 언어를 넘나든다. 나아가 그녀의 도조 작품을 연극적 설치의 방식으로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한다. 그녀의 작업은 또 다른 차원에서 ‘삶/죽음’이라는 ‘개별체 인간의 존재론’이라는 미시적 내러티브를 ‘사회적 인간의 존재론’이라는 순환적이고도 거시적인 내러티브로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끌어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채 이야기해야만 하는 까닭이 결국 더불어 사는 ‘사회적 인간’의 본연의 책무와 깊게 관계하는 것이라는 점을, 항상 상기시키면서 말이다.  
2017년 4월 현재, 오랜 기다림 끝에 세월호의 ‘육상 거치’만 남겨둔 채, 성공적인 인양을 눈앞에 두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작가 박미경의 이번 전시가 한편의 초혼사(招魂辭) 혹은 진혼곡(鎭魂曲)이자, 한바탕의 씻김굿 또는 한판의 사령제(死靈祭)로 훌륭하게 자리매김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그녀의 선명하고 희망에 가득찬 시각적 메시지가 ‘재난으로부터 구원을’ 이끌어 낼뿐만 아니라 향후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데 있어서 모든 구성원들에게 큰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2015년 어느 날, 그녀의 미술가로서의 소망이 가득 담긴 다음과 같은 ‘작업 노트’의 내용처럼 말이다. 

“오늘이 내일이듯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도 늘 변화를 꿈꾸고 희망하듯 그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굳건함으로 사명과도 같은 이 자리를 지키고자 함은 내 자신의 의지와 희망이자 소망이다.” 

출전/ 
김성호, '물레의 꿈 -소멸로부터 생성, 속박으로부터 자유', 박미경 카탈로그 서문, (Beautiful Justice 전- 강상훈,박미경,박기도, 금보성아트센터, 2017, 4. 12-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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