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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비평│2016창원조각비엔날레/ 예술 속 일상, 오브제 미학의 설치적 조각

김성호

예술 속 일상과 오브제 미학을 실천하는 설치적 조각


김성호(미술평론가)


제3회 창원조각비엔날레가 '억조창생’이란 주제 아래, 15개국, 118인의 작가들의 출품작들로 구성되어, 9월 22일부터 10월 23일까지, 용지호수공원, 성산아트홀, 문신미술관에서 펼쳐졌다. 올해 비엔날레가 창설 당시의 초심을 회복했다는데, 그러한 평가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오브제 미술: 예술 속 일상, 일상 속 예술 
윤진섭 총감독이 제안한 ‘억조창생(億造創生)이라는 주제는 ‘세상의 모든 사람’ 또는 ‘수많은 사람’을 의미하는 고어인 ‘억조창생(億兆蒼生)’을 음차하고, 조(造)와 창(創)이라는 다른 한자들로 치환하여 만든 합성어이다. “수많은 사물에 생명을 부여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 주제는 ‘사물에 예술가의 혼을 담은 예술 작품이라는 오브제 미학을 함유한다. 
20세기 형식주의 미학 아래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하면서 일상과 별리되었던 추상 일변도의 전문 미술이란 대중에게 언제나 ‘이해하기 어려운 멀고도 먼 존재’였다. 반면 뒤샹을 추종하는 ‘일상 속 예술과 예술 속 일상’의 관계를 되묻는 작업들은 대중에겐 ‘이상야릇하면서도 친밀한 것’이었다. 1960년대 프랑스의 누보 레알리즘이나 미국의 네오 다다 또는 팝아트의 계보가 그러했고, 미술사 속 앗상 블라주, 컴바인 페인팅, 정크 아트 등이 사물에 예술(품)의 의미와 지위를 덧입히는 오브제 미학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수하고 있다.   

총감독 윤진섭 


이번 비엔날레의 ‘억조창생’이란 주제는 난해한 현대미술의 자리로부터 내려와 이해하기 쉽고 대중과 친밀한 현대미술의 장을 펼친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오브제 미술은 성산아트홀에서 열리는 실내전인 《오브제-물질적 상상력》전에 집중되었다. 7개 전시실 약 800여 평의 전시 공간에 국내외 89인의 작가들이 초대되었는데, 올해 다다(Dada) 탄생 백주년을 맞이한 의미마저 더해졌다. 이 전시에는 마르셀 뒤샹과 다다이스트의 후손들이 ‘재현(representation)의 패러다임’으로부터 ‘일상의 제시(presentation)’라는 새로운 문맥을 펼쳤던 오브제 미술의 다양한 경향들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특히 이 전시는 프랑스의 사상가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4원소(물, 불, 공기, 흙)에 대한 물질적 상상력(imagination matérielle)의 개념을 빌려와 동양철학의 오행과 융합한 ‘불, 물, 나무, 쇠, 흙’의 소주제들로 섹션을 구성했다. 이러한 구성 안에서 관객은 ‘오브제의 연금술적 변환’을 체험할 수 있다. 오브제가 근간이 된 조각, 미디어아트, 설치의 언어들이 횡단하는 이 전시는 궁극적으로 미술 작품을 물성으로 간주하고 3차원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조각화하는 시도들을 선보인다. 바슐라르 식으로 말할 때, ‘세계관이란 물질적 4원소가 주체와 만나 굴절되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즉 미술가들이 ‘흙, 물, 공기, 불’이라는 물질을 직접 지각하고 체험하면서 비로소 대상과 맞닥뜨린 저마다 고유한 작품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이다.     
출품 작가들의 오브제에 대한 해석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보라! 전시장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볼 수 있는 송필의 작품은 낙타 조각상이 엄청난 양의 신발 오브제들을 등에 지고 있는 모습이다. 그것들은 실제로 누군가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사용된 신발들’이다. 사람들의 체취가 담긴 신발들이 예술의 장으로 들어와 예술 작품이 된 것이다. 중국 작가 신광(Shen Guang)의 출품작은 일상 속에서 수집한 관광 기념품과 같은 자질구레한 오브제들로, 창원시에 거주 중인 외국인들의 물건을 수집하여 전시한 것이다. 일상으로부터 예술로 자리를 이동한 오브제들은 관객들에게 저마다 다른 일상 속에서 체험된 자신들만의 고유한 경험을 되새기게 만든다. 
한편 근원적인 물질의 존재 방식을 상상력으로 탐구함으로써 인간 존재론을 성찰하는 작품들은 우리로 하여금 오브제에 대한 깊은 사유를 요청한다. 순간적으로 지각되는 ‘형태적 이미지(image formelle)’에 비해 ‘질료적 이미지(image matérielle)’는 근원적이고 지속적이기 때문이다. 숯 덩어리들을 묶음으로 만들어 전시장에 덩그러니 놓은 이배의 작품은 대표적이다. 나무로부터 기원하는 숯은 ‘나무의 주검’이라는 ‘현재적 존재’이면서도, 이내 불을 머금고 새로운 생명력으로 살아날 ‘미래적 존재’이기도 하다. 신미경의 출품작들은 또 어떠한가? 그것들은 고대 로마의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비누 조각이다. 사람과 물이 만나 자신의 몸을 녹이고 형태적 이미지를 변화시키면서 이내 소멸할 비누의 질료는 근원적인 물질들의 존재 방식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책을 세밀하게 찢어 가벼운 물질의 이미지로 제시하는 이지현의 작품은 책 자체의 물질성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변주하는 시각적 연금술을 도모한다.  

밈모 팔라디노 Mimmo Paladino(이탈리아 Italy)_말 Cavallo, 3.1x7x1.4m, F.R.P, 2008




첸 웬링 Chen Wenling(중국 China)_世外桃源 No3 The peach Colony No3, 
3x1.6x1.2m, copper painting, stainless steel, 2015



미술 주체가 된 오브제 - 설치적 조각과 조각적 설치
용지호수공원 일대의 본전시는 전통적인 조각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일상 속 예술, 예술 속 일상’의 문제의식에 천착하는 오브제 미술의 가능성을 도처에서 탐구한다. 일상적 재료로 크기를 키운 물 위에 부유하는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작품이나, 퍼포먼스 조각인 에릭 스캇 넬슨의 유목하는 작품은 시민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도모하면서 ‘일상 속 예술’을 실천한다. 그 뿐인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진 ‘창원시민의 조각’은 책, 필통, 신발 등의 일상용품이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설치 작품으로 ‘예술 속 일상’을 실천한다. 
오늘날 일상의 오브제가 예술이 되고, 예술이 일상 속으로 파고들면서 회화 조각, 공예, 미디어아트와 설치의 영역별 구분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오브제가 미술 주체로 등극한 시대의 ‘설치적 조각’전 혹은 ‘조각적 설치’전이라고 할만하다. 카탈로그 서문에서 “일상 속의 예술, 예술 속의 일상의 사건적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이번 창원조각비엔날레는 관객을 수동적인 자리로부터 능동적인 위치에 이동시키는 노력들을 지속적으로 실험한다. 
더불어 시민 관객에게 약속했던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창설 당시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되찾고자 하는 노력 또한 아끼지 않는다. 즉 2012년 제1회 창원조각비엔날레를 통해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20인의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을 마산 합포구 소재 돝섬에 설치함으로써 도시의 조각공원화를 도모했던 초심을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다시 실천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니까 2014년 제2회 창원조각비엔날레에서 시도되었던 탈조각전 경향의 다양한 커뮤니티 아트 프로그램 대신에 조각비엔날레 본연의 정체성에 집중하면서, 행사 이후의 결과를 남겨 보존하고자 하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라 할 것이다. 
한국 최초의 조각가로 거론되는 김종영(1915-1982), 추상조각의 거장 문신(1923-1995)을 비롯하여 김영원, 박석원 등 한국 현대조각의 거장들을 배출한 창원시는 한국조각사에 있어 기반이 되는 중요한 도시이다. 2010년에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으로부터 출발해서 창원조각비엔날레로 전환되었던 만큼, 조각 작품을 통해서 시 전체를 공원으로 만들려는 야심찬 포부가 다시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특히 이번 비엔날레에 르네상스 조각 예술을 꽃피웠던 나라인 이탈리아의 조각가들을 대거 초대했다는 사실은 세계 조각계의 산지인 이탈리아의 조각계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지금, 여기’에 재조명하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이탈리아 조각계의 거장인 노벨로 피노티를 비롯하여 밈모 팔라디노,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가 출품했다. 더불어 중국의 첸웬링, 양치엔 등 중진 작가들과 더불어 김영원, 박은선, 이일호, 한진섭, 신한철, 한효석, 이경호, 김승영, 이재효, 홍지윤, 윤진섭, 박원주, 이응우, 전원길, 고승현 등 한국 조각계의 중견 및 중진 작가들의 작품들을 대거 초대했다. 

김인경 (한국) SILENT VOYAGE 2009-몽환포영, 120 x 250 x 360cm (4 pcs), 철, 섬유등 혼합재료


예술로 지역 사회에 기여하고자 했던 조각가 문신의 애향 정신을 이어받아 조각의 도시로 거듭나고자 하는 창원시의 원대한 포부가 이번 제3회 창원조각비엔날레를 통해서 향후 보다 더 발전적적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


출전/

김성호, '예술 속 일상과 오브제 미학을 실천하는 설치적 조각', 월간미술,11월호,  2016년, 창원조각비엔날레-억조창생, 창원성산아트홀, 용지호수 외 2016.09.22.(목)∼10.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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