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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일반│1980년대 이후 한국의 다원주의 추상미술

김성호


1980년대 이후 한국의 다원주의 추상미술


김성호(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이 글은 1980년대 이후의 한국의 추상미술을 ‘다원주의 추상미술’로 정의하고 1980년대의 추상미술의 위상을 살펴보는 것을 필두로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추상미술의 전반적인 지형도를 살펴본다. 1980년대 이후의 추상미술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동시대의 한국의 추상미술이 왜 다원주의인지를 분석할 것이며, 그것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루고자 한다. 아울러 1980년대 이후의 추상미술의 다양한 경향들을 작가들의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을 구체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당면한 난제들을 미리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먼저 “모든 미술이 추상”이라는 주장은 추상의 본질적 속성과 형식을 고려한다면 수긍할 만하다. 다만 그것은 모든 미술을 구상(형상)이라 정의하는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일방성의 차원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유념할 것은 오늘날처럼 다원화된 예술 경향에 있어서 특정 작가의 미술을 추상미술, 혹은 구상미술이라 정의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작가가 현재 추상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다른 경향의 작업을 함께 하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뿐만 아니라 작가들만의 독특한 변화의 의지가 훗날 추상이라 부를 수 없는 경향의 작업에 천착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미술 작품은, 현재 어떠한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추상이나 구상이라는 형식으로 정의하는 일이 쉽지 않다. 향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구상을 포함하여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 추상 작업을 함께 선보이고 있는 작가들은 될 수 있는 한 제외하고, 현재까지 일관된 추상 작업에 천착하고 있는 작가들에 주목했다. 다만 1980년대 이후의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이 글의 후반부에서는, 195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작업을 펼쳐 오고 있는 원로를 포함해서, 현재 60세가 넘는 중진들의 작품은 분석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글은 따라서 현재 30대부터 50대에 이르는 작가들의 과거와 현재 작업이 분석의 주 대상이 되었음을 밝혀 둔다. 


II. 기(): 한국적 모노크롬 회화와 한국적 미니멀 조각의 모색
1980년대의 미술 상황에 대한 설명은 논의의 한계는 있지만, 한 평론가의 언급처럼 ‘낡은 모더니즘과 험악한 리얼리즘 미술의 대립’으로 대략 정리될 수 있겠다. 즉, 한쪽은 오늘날의 단색화로 호칭되는 모더니즘 계열이 또 한쪽은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풀이되었던 민중미술이 비교적 뚜렷하게 양분되었던 당시의 상황 자체가 이 글의 출발점이다. 
양 진영의 미술가, 이론가들의 첨예했던 대립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제안되었던 1980년대 중후반-1990년대 초 비평가들의 대안적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이전의 양분된 미술계를 트라이앵글 구조로 변모시키기에 이른다. 대립하는 두 진영, 더 나아가 아웅다웅하던 세 진영의 목표는 엄연히 달랐음에도, 그들에게는 한 가지 확실한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것은 ‘한국적인 것’에 관한 탐구였다. 풀어 말하면 ‘민족적 전통, 한국성의 계승과 재해석 그리고 변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모색이었다. 모더니즘 미술(추상)과 민중미술(형상)의 양 진영에서는 ‘미술의 미학적 성찰(미술 내적 탐구)’와 ‘미술의 사회적 발언’(미술 외적 탐구)이 대립하는 가운데, 저마다 한국성(Korean identity = Koreanity)이라는 한국의 전통적 정체성을 계승하자고 입을 모았다. 대개 모더니즘 미술은 문인화적 전통을 한국성으로 풀이하고, 민중미술은 민화적 전통을 한국성으로 풀이했다.  그럼에도 한국성의 보편적 공통항인 자연주의 미학은 양 측에서 동일하게 지향하는 바이기도 했다. 즉 전자가 사대부적 사유를, 후자가 기층 민중의 생활을 한국성으로 받아들이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이면서도 김원룡(金元龍)의 ‘자연주의’와 고유섭(高裕燮)의 ‘비정형성, 비균제성, 무기교의 기교’와 같은 미학들은 고스란히 계승하는 것이었다. 한국적 미감을 현대에 계승하려는 양 진영 모두에서 자연주의란 다음과 같은 언급처럼, 별 다른 이견(異見)이 없이 수용되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성이 한국의 지배적인 미의식이라 할 때, 미술에 있어 한국성은 미술 언어의 구체적인 방법론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념이다.” 
추상미술에 해당하는 모더니즘 진영은 한국적 전통과 관련하여 한 발 더 나아갔다. 서구의 모노크롬의 형식을 빌려 와 한국적 정신을 담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하기보다 아예 ‘한국적 모노크롬’의 형식의 창안을 주창하는 것이다. 그것은 서구의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의 형식에 일필휘지, 기운생동과 같은 동양적 미학을 담으려는 국내의 1950년대 말~1960년대의 앵포르멜 회화의 창작 태도에서 진일보하려는 노력이었다. 한국의 모노크롬은 1970년대 등장 이후, 서구의 모노크롬 형식과는 차별화된 색과 형식, 질료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흰색으로부터 검정색에 이르는 무채색을 중심으로 한 단색조, 한지를 덧씌운 캔버스 등 회화의 지층을 만들고 색과 드로잉을 그 위에 반복적으로 입히거나 스며들게 만드는 제작 형식, 단순한 물질로부터 추출하는 ‘비움’이라는 명상적 성찰이나 정신성 그리고 ‘무기교의 기교’와 같은 자연주의 미학은 분명 서구의 모노크롬의 형식과 내용으로부터 일정 부분 탈주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서구로부터 기원한 것이 분명한 추상미술을 새로운 한국적 추상으로 정초하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었다. 
1980년대의 추상미술은 회화에서 단색조 회화의 선구자 격인 곽인식, 이우환을 필두로 홍익대의 박서보, 하종현을 중심으로 한 단색조의 회화를 계승하는 한편, 1980년대 전반에 발흥했던 홍익대의 송수남, 이철량을 위시한 수묵추상 운동을 통해 ‘한국적 정서의 발로’와 ‘70년대까지의 한국화의 반성’이라는 차원의 조형적 성찰을 펼쳐 나갔다.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추상 한국화의 양상은 소재, 재료, 장르에 따른 다양화된 양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서체를 이미지화하는 현대적 서예와 한국화의 접목이 이루어지면서 한국 전통의 문자도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거나, 민중미술의 진영에서 인용하던 민화적 전통의 오방색을 추상회화에 접목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은 비단 한국화뿐 아니라 서양화단에서도 이루어졌다. 
조각에서는 1970년대부터 기하학적 형태의 미니멀리즘 경향을 작품을 발표해 왔던 서울대의 심문섭, 엄태정, 그리고 홍익대의 박석원, 전국광 등의 구축적 추상 조각이 1980년대에도 여전히 ‘전통의 계승’과 ‘한국적 미니멀 조각’이라는 평가 속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더불어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에는 개별 작가들의 전통적인 추상 조각의 발표가 이어지는 가운데, 신진 작가들을 중심으로 다매체를 활용한 다원화된 추상미술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III. 승():  위협 받는 아방가르드 추상미술로부터
서구에서 20세기 추상미술은 아방가르드, 엘리트주의, 국제주의, 중심 지향주의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의 주역이었다. 시간의 편차가 있지만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의 현대미술의 시작은 1950년대 말 국전의 보수성 짙은 형상미술의 고루한 풍토에 저항하고 나선 〈현대미술가협회〉를 위시로 한 젊은 아방가르디스트들(avant-gardistes)의 앵포르멜 회화였고, 이 흐름으로부터, 그들이 다시 탈앵포르멜의 기치를 외치며 70년대 중반 단색조 회화로 갈아탄 자기 변신의 결과였다. 단색화의 집단 운동의 영향권은 80년대 초까지 이어졌지만, 주지하듯이 단색화의 개별적 흐름은 지속되었고, 90년대에도 이른바 포스트-단색화의 경향의 작가들이 등장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단색화는 1980년대 중반에 등장한, 탈평면을 기치로 한, 젊은 작가들의 그룹인〈난지도〉(1985~1989)’와 〈메타복스(Meta-Vox)〉(1985~1989)’ 등에 의해서 민중미술과 함께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이 새로운 아방가르디스트들은 민중미술의 순수함을 왜곡하는 이데올로기적 성향도 싫었지만, 단색화가 처해 있는 ‘생명력을 잃은 장식적인 진부함’도 싫어했다. 예전의 전설의 아방가르디스트들이 신진의 아방가르디스트들의 공격을 받은 셈이다. 
1990년대에 추상미술은 탈장르, 탈엘리트주의, 탈(脫)이데올로기의 미술을 표방했던 소위 ‘신세대’라 불리는 신진 작가들이 이끄는 여러 소그룹 운동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1990년대의 이 소그룹들은 1980년대 초중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는 대규모적 연대 또는 여타 협회들과는 확연하게 다르게,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자유롭게 추종하면서 느슨한 네트워크를 지향했던 탓에 결성으로부터 해체까지 생명력은 짧았지만, 파급력은 막강한 것이었다. 이 신세대 소그룹들이 탐구했던 ‘대중문화와 키치, 복합 매체와 탈장르, 탈엘리트 미술을 표방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은 ‘전위미술=추상미술=모더니즘=실험미술이라는 등식’이 더 이상 불가능함을 선언하면서 이른바 단색화 그리고 엘리트미술이라 불리는 추상미술에 대항한 것이었다. 
이들이 신뢰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은 1980년대 국내 상륙한 이래 1990년대 미술의 지형도를 바꾸기에 족했다. 더불어 이 새로운 이념은 당대의 추상미술로 하여금 ‘자기 반성과 자기 성찰’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1985년 김복영의 후기 모더니즘 소개 이후 1990년대 서성록, 윤진섭, 이재언, 김홍희 등 많은 비평가들이 시대의 변혁 이론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도입하면서 이것을 새로운 미술 창작의 이념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해석은 성완경, 박모, 엄혁 등 민중 미술 진영 이론가들의 반박과 충돌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은 보다 더 풍성해졌다. 특히 민중미술은 탈중심 의식(decentered consciousness) 즉, 서구의 다국적 세력들에 의해 작동되는 문화식민주의 양상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탈식민주의 담론과 더불어 우리로서는 미국으로 대변되는 문화식민으로부터 탈주하는 민족주의 양식에 근거한 것이었다는 분석들은 당시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을 풍성하게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영향 속에서 신세대들의 ‘형상이 부활된 회화, 다매체, 설치적 미술과 키치적 사유’는 늘어났지만, 선배 세대가 전수한 정형화된 길을 따르던 신진 작가들의 추상미술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비판 대상이 추상미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에서 1970년대 후반 추상의 위기 속에서도 ‘네오 제오(neo geo), 포스트 컨셉츄얼리즘, 또는 모조 추상(simulated abstraction)’ 등의 이름으로 추상미술이 여전히 지속되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1990년대 한국의 추상미술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원주의가 한 특성인 까닭에 ‘형상으로 돌아가는 조류 속에서도 추상미술이 공존하는 현상’을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원주의는 그야말로 단토의 언급처럼, ‘예술작품이 되도록 하는 양식(style)’은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다. 회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는 물론, 구상, 추상 등 ‘모든 양식이 예술이 되는 시대’를 활짝 열어두고 두고 있다. 
다원화된 국내 미술 현장에서도 다를 바 없이, 추상미술에 천착했던 당시의 중진들은 예전의 아방가르드였던 자신들의 추상 작업을 1990년대에도 여전히 천착했다. 또한 당시에 ‘위협 받는 아방가르드 추상미술’의 과거의 명맥을 잇고자, 오늘날 포스트 단색화로 지칭되는, 일군의 추상미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여러 유형의 추상미술이 실험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IV. 전(轉): 1980년대 이후의 추상미술의 다원적 경향 
1980년대 중반에 잉태하고, 1990년대 초반 시작된 다원주의 추상미술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험들로 모색되고 실천되었다. 이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윤난지의 1997년 시점으로 살펴보고, 다음 장에서는 필자가 그것을 2016년 시점에서 순차적으로 분석해 본다.  
비평가 윤난지는 1997년 시점에서 1980년대 이후의 추상미술의 다원적 양태를 어떤 범주로 묶어 설명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모순을 안고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그것을 아래의 4가지 구체적인 범주로 분석, 정리해서 소개하고 있다. 그 내용은 윤난지의 논의와 용어에 근거한 채, 필자가 임의로 편집해 만든 아래의 도표처럼 요약, 정리될 수 있겠다.    


(표1)  1980년대 이후의 추상미술의 다원적 형태 (1997)

윤난지는 위의 분석에서 1980년대 중반 이후의 1997년까지의 포스트모더니즘, 다원주의 미술 담론의 등장과 실제적 현상을 추상미술의 전통적 접근 방법으로부터 현대적 개념에 이르기까지 4가지 범주를 구체적인 작업의 사례와 함께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녀의 분석은 추상의 형식은 물론이고 그것에 내재한 개념과 의미들이 4개의 범주 속에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분석이 다원주의 추상미술의 다양한 경향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고 보기에는 무리이다. 무엇보다 추상회화만을 다루고 있어, 조각, 입체, 설치는 물론이고 당시 부상하고 있던 미디어아트에 관한 추상미술의 경향을 살펴볼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범주 4에서 고찰하고 있는 ‘레디메이드 이미지로서의 추상 형태’는 2000년대 이후 다양화되고 있는 ‘패턴화된 추상 이미지의 반복적 사용, 컴퓨터 그래픽이나 복제 기술을 활용한 추상회화의 새로운 흐름’을 당시의 시점에서 미리 유추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들이다. 
관건은 1980년대 이후의 추상미술이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등장과 연동되는 것 외에는, 이전부터의 관심들이 연장되거나 변형되면서 나타나는 것이 다수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동시대 다원주의 미술의 여러 경향을 살펴볼 다음 장의 논의들이 지금의 분석과 차별화되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겠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유념하면서 1980년대부터 1997년까지의 추상미술에서 고찰되었던 다원적 형태들에 부가되는 또 다른 형태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다음 장에서 보다 세분화된 범주로 살펴보고 그 개념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보기로 한다. 


V. 합(合): 동시대 다원주의 추상미술의 제 경향
윤난지의 분석으로부터 근 2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이전 시대와 확연히 차별화되는 추상의 조형 언어들이 그리 많지는 않는 듯하다. 예를 들어 탈평면의 다양한 추상 경향은 이미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에서 선보인 다양한 노력들로부터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또한 회화, 조각의 구분을 넘어 오늘날 보편화되어 있는 평면, 입체, 설치 등의 장르별 범주화는 이미 1970년대부터 사용되었던 것이고, 오늘날 퍼포먼스나 개념적 지향의 추상미술로 논의될 만한 ‘비조각, 비물질의 개념’ 또한 이승택의 1960년대의 작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설치에서 드러나는 추상의 언어는 또 어떠한가? 오늘날의 설치적 추상은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메타복스를 위시로 한 소그룹들의 여러 복합 매체를 통한 실험미술의 설치 양상에서 한두 걸음의 보폭을 옮기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좀 더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동시대 추상회화 속에서 의외로 다양한 범주를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작업의 태도, 형식, 개념들을 찾아내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아울러 흥미롭게도, 형식은 유사하되 창작의 태도나 이념이 완전히 상이한 경우를 발견할 수도 있고, 반대로 추상의 형식은 매우 다르나 동일한 주제의식 속에서 천착되고 있는 경우 역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번 장에서, 1980년대 이후로부터 2010년대까지 펼쳐졌고,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다원주의 추상미술’의 여러 경향들을 15개의 범주로 정리하고 그것들의 핵심적인 개념과 의미들을 아래처럼 분석한다.   



(표2)  동시대 다원주의 추상미술의 제 경향 (2016)









 (표3)  동시대 다원주의 추상미술의 제 경향 사례 (2016)


위의 (표2)와 (표3)에 나타난 분석들에서 몇 가지 필요한 해설을 첨부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1번의 ‘개념적 추상’은 추상미술의 오랜 전통이지만, 작가들이 천착하는 개념들이 저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거론될 필요가 있겠다. 이러한 범주의 작품들에는 작가들만의 독자적인 미학을 읽는 즐거움이 있다. ‘최선’의 작품들에서, 형식은 단색화이지만, 근본적으로 단색화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의식이 배태해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아무 것도 그리지 않은 듯한 그의 캔버스에는, 작품 내적 미학에 안주한 채, 사회적 상황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단색화 선배 작가들에 대한 분노에 가까운 조롱이 담겨 있다. 그곳에는 작가가 내뱉은 침 자국이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리고 사자의 넋을 달래기 위해 그가 갔던 팽목항에서 바닷물로 흠뻑 적신 캔버스는 망자의 눈물이 되어 소금 결정체로 그려진 하얀색의 단색화가 되었고, 태안반도에서 유출되었던 원유가 만든 검은 기름때는 그의 캔버스 위로 옮겨져 악취가 가득한 검은색의 단색화가 되었다. 그저 추상표현주의 회화처럼 보이는 캔버스의 물감 얼룩들은 그가 안산의 이주노동자와 시민들의 숨결을 담아온 그림이었다. 이처럼 그의 추상회화에는 미술 내적 개념 탐구에 골몰했던 단색화 전통에 던지는 비판적 메시지로 가득하다. 그의 추상회화를 ‘사회적 단색화’로 불러도 좋을 법하다. 고산금의 작업에서도 이러한 태도들을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그녀의 반짝이는 인공 진주들은 국가보안법의 시대착오적 메시지들로 번안되고, 사회면의 끔찍한 사건들을 침묵으로 증언하는 리포트가 되기도 한다. 물론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미학 내부의 개념적 문제들을 가시화한 지니유, 전원근, 박형률의 진지한 작품들도 ‘개념적 추상’에서 주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2번 ‘형상적 추상’과 3번 ‘전통 실험 추상’은 1980년대 이전에도 꾸준히 모색되는 추상의 조형언어이다. 전통과 현대 사이의 맥을 이으려는 부단한 모색은 창작자의 지난한 고통을 우리로 하여금 구상과 추상의 중간 지점 어디에서 들여다보게 만든다. 한편으로 그것은 추상이며 또 한편으로 그것은 ‘형상적 추상’이다. 추상의 익숙한 조형 언어인 4번 ‘표현주의 추상’이나 6번 ‘기하학적 추상’도 앞서의 것들과 같은 관점에서 읽힌다.
5번 ‘포스트 단색화’란 용어는 실상 《한국의 단색화전》이라는 이름의 한 전시로부터 그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이었다. 이 전시에는 1970년대의 ‘전기 단색화’에 해당하는 17인의 참여 작가 외에도 김택상, 문범, 이배, 천광엽 등 14인의 ‘후기 단색화’에 해당하는 작가들이 함께 소개되었다. 이러한 기획은 2012년 당시만 하더라도 단색화가 최근처럼 제2의 붐을 이루지 못한 상태였기에, 쇠잔해진 단색화 작가들의 활동을 계승하는 움직임들을 하나의 전시에 ‘포스트-단색화’의 정체성으로 모아서 단색화를 활성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견해는 당시 기획자였던 윤진섭의 다음 발언에 잘 드러나 있다: “나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불 꺼진 모더니즘의 잿더미를 뒤져 하나의 불씨라도 건지고 싶은 심정이다 (중략), 이 전시는 한국의 단색화 작가들이 40년에 걸쳐 이룩한 ‘마음의 풍경’이다.” 특히 최근에는 해외 미술시장에 대한 장기적 마케팅이 힘을 발휘하면서 최근 단색화가 급부상했다. 아울러 “시장과 평론의 결합 내지는 시장의 필요에 의한 비평, 세계화를 위한 단색화 작품에 대한 언어적 기술의 필요성” 때문에 단색화 논의 역시 무성해지기에 이르렀다. 포스트 단색화의 작가들인 천광엽, 장승택, 김택상, 이들 3인의 작업은 전기 단색화의 비우기, 비물질의 개념을 일정 부분 계승하는 것임에도 전통미의 재해석보다는 형식적인 세련미를 갖추는데 보다 더 골몰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7번 ‘멀티플 추상’은 조각이든, 회화이든 작가들이 널리 사용하는 조형 언어임을 언급해 두어야 하겠다. 특히 조각이나, 설치의 경우 모듈들을 한데 모아 전시 현장에서 임의로 확장 설치 안일하고 편이한 방식으로 전시에 참여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짐으로써 비판의 대상이 된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다.    
8번 ‘여성주의 비(非)조각’과 9번 ‘여성주의 추상 패턴’은 필자가 작명한 다음의 세 범주인 10번 ‘리좀 패턴’, 11번 ‘질료 패턴’, 12번 ‘디지털 패턴’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주지할 것은 앞서 언급했던 단색화와 같은 모더니즘 미술이 견지했던 자연주의 미학과 사대부의 문인화적 전통은 여타 민중 기층민들이 전통으로 귀히 여겼던 민화나 무속, 규방(閨房) 문화의 상징들을 배척함으로써 여성주의 미학을 처음부터 발을 붙일 수 없게 만든 지점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 미술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남성 본위의 모더니즘적 사유로부터 억눌려 있던 여성주의 미술이 빛을 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모더니즘이 억압했던 여성성을 복원시킨다는 차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민중미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역으로 말해, ‘페미니즘이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에로의 중요한 전환의 요인이 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따라서 문인화적 전통을 계승한 단색화의 주류가 왜색(倭色)을 지운다는 명목으로 폄하했던 진채화적 전통, 샤머니즘, 규방적 공예 문화, 그리고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흐리는 생활 예술, 등 다양한 여성주의 미술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부상할 수 있게  되었다. 신문지와 커피가루와 같은 비미술적 재료를 표면 위에 꼼꼼하게 집적해서 회화 같은 조각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최은정의 작업이나 쓸모없이 버려지는 재료인 비닐봉지를 주요한 소재로 삼는 이연숙의 작업은 대표적인 예이다. 하태임의 색상환의 띠의 중첩적 만남이나 조현선의 혼성적 색 드로잉이 무채색 위주의 단색화 전통을 밀어내고 주변의 추상 언어로부터 중심의 추상 언어로 등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벽면 위에 테이프를 붙이고 잘라내는 무계획적이고 혼성적인 남성 작가 정재호의 드로잉이 9번의 범주인 ‘여성주의 패턴 추상’ 속에서 논의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위의 분석에서 10번 ‘리좀 패턴 추상’, 11번 ‘질료 패턴 추상’, 12번 ‘디지털 패턴 추상’ 등 필자가 ‘패턴’이라는 말로 세부를 범주화시킨 용어는 여성주의 미술의 장식주의와 더불어 규방적 공예의 속성으로부터 추상 정신이 추출되고, 구체화된 것이다. 패턴은 들뢰즈(G. Deleuze)와 가타리(F. Guattari)의 철학 용어 ‘리좀(Rhizome)처럼 우월한 어떤 존재를 없앰으로써 가능한 n-1의 차원의 복수성으로 소수자들의 복합체이자, 유약한 것들의 네트워크 집단체로 변환된다. 리좀이 복수성으로 벌이는 소수자들의 미시정치학이듯이, 리좀 패턴은 남성들이 주도했던 문화 속에서 억압받은 여성의 언어이자 남성들이 팽개쳤던 치장과 장식의 언어이다. 복잡계 속에서 자신의 분신들을 지속적으로 연결해 나가는 김주현의 연속체적 조각이나 ‘유기적 기하학’이라 명명되었던 픽셀들의 파편을 모아 모호한 내러티브의 주절거림을 시각화한 홍승혜의 패턴 회화는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11번 ‘질료 패턴 추상’과 12번 ‘디지털 패턴 추상’도 위와 같은 논의에 근거할 때, 여성주의 미학이 야기하는 조형 언어라고 하겠다. 다만 필자가 거론하고 있는 작가들은 김채원만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 작가이다. 특히 11번 ‘질료 패턴 추상’은 단색화가 추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비물질화, 비우기 등의 방식에 대한 반대적 입장이다. 결국 물성이 강하게 남는 작업이라는 것인데, 작품의 실제는 연필이나 물감으로 화면 위에 재료의 물질성이 남는 부분과 거꾸로 물질성이 스크래치의 방식으로 탈각되는 등, 양 차원이 함께 병행되고 있다. 즉 비물질성과 물질성이 병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조형 결과적으로 단색화의 결과물과 다르다고 결론짓기에도 주저되는 지점이 없지 않다. 이 부분은 보다 더 분석적인 방식의 연구로 정리될 필요가 있겠다. 12번 ‘디지털 패턴 추상’은 우리의 논의에서 주목되는 부분이다. 1980년대 추상의 흐름 중에서 가장 최근의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특정 이미지를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서 추출하여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 모듈로 위치시키고 다시 이것들을 무한 증식시키고 다양하게 배치함으로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일정한 패턴의 추상을 만드는 것이다. 경현수의 작업은 지도의 부분 이미지를 컴퓨터 상에서 파편적으로 오려내고 지도가 지닌 원래의 질서를 해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우리에게 낯선 추상의 풍경을 제시해 낸다. 이중근의 경우에는 같은 방식으로 추출된 파편적 이미지를 활용하되 구상의 사진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배치, 집적함으로써 패턴화된 추상 이미지를 만든다. 즉 구상으로부터 패턴화된 추상 이미지를 얻어내는 것이다. 경현수가 사진 이미지로부터 추출된 이미지들을 캔버스 위에 회화의 방식으로 옮겨낸다고 한다면, 이중근의 작업은 사진으로부터 출발해서 사진의 결과물을 얻는다는 점이 다른 부분이다. 이러한 일련의 데이터 활용 방식은 2010년대에 등장한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패턴화시키는 일련의 추상 작업에까지 연동된다.  
한편 15번 ‘공간화 추상’이라는 필자의 작명은 인간의 신체를 전방위로 감싸는 손몽주나 천대광의 작업과 같은 거대한 설치 조형을 가리킨다. 새로운 조형 언어라고 하기에는 매우 구식의 조형 방식이지만, 추상미술과 관련되는 우리의 논의에서는 주요한 미학적 논쟁을 야기한다. 설치의 언어란 일반적으로 조각적 덩어리를 구축하지 않는다면 거의 대부분은 추상적 미술로 결론짓게 만든다. 
여기서는 13번 ‘광학 추상’과 14번 ‘뉴미디어 추상’을 우리의 마지막 논의로 마무리한다. 옵아트의 현대적 변형이라고 할 만한 ‘광학 추상’은 빛의 효과를 탐구하는 추상을 지칭한다. 박현주의 회화를 포함했지만 대개는 자연광이나 인공조명의 빛의 효과가 조각이나 미디어아트의 장치를 통해 발현되는 일련의 추상이다. 임정은의 작업은 샌딩 후 색면을 입힌 유리판이나 유리 입방체를 설치해서 빛의 투영 효과를 실험하는 추상이다. 전가영의 추상 작업은 작품의 배면에서 투영되는 빛의 효과를 센서와 전기적 장치를 통해서 관객 참여를 실험한다. ‘뉴미디어 추상’은 전자적 테크놀로지를 사용해서 추상적 결과물을 창출하는 다양한 유형의 미술이다. 석성석의 사운드아트나 빛의 운동성을 탐구하는 ‘채미현& Dr.Jung’의 레이저아트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 뉴미디어 추상의 범주 안에는 이보다 더욱 다양한 유형의 작업들이 현재까지 다수 실험되고 있다고 하겠다.  


VI. 에필로그
‘기승전합’의 단계로 살펴본, 이 글 ‘1980년대 이후의 다원주의 추상미술’은 다원주의 현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1980년대에는 단색화를 위시로 한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을 기반으로 한 리얼리즘이 대립하는 가운데에서도 양자 모두 자연주의와 같은 한국의 전통 미학을 계승, 재해석하려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었다. 다르다면, 전자는 사대부의 문인화적 전통, 후자는 민중의 민화적 전통을 계승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한편, 포스트모더니즘의 유입을 통해 양자의 대립을 해결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은 1980년대-1990년대의 미술 현장을 다원주의 미술의 양상으로 전개시키는데 일조했다. 더욱이 당대의젊은 작가들의 소그룹 운동들은 당시 미술 내부의 관심에만 안주하고 있던 단색화로 대별되는 주류의 모더니즘 미학에 반대하면서 다원주의적 양상을 확산시켜 나갔다. 아방가르디스트였던 선배들의 화단 활동에 새로운 아방가르디스트들이 집단 반발한 결과라 하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추상미술은 일정 부분 위축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다원주의 담론 속에서 다양화된 추상미술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것은 회화, 조각과 같은 정형화된 장르 속에서도 새로운 개념들을 찾아나서는 추상으로부터 장르별 확산을 도모하면서 새롭게 정초되는 추상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1997년의 시점에서 추상회화를 대상으로 다원주의 경향을 분석했던 윤난지의 분석을 토대로, 필자는 2016년 현재적 시점에서 모든 장르의 추상미술을 대상으로 한 다원주의의 경향을 15가지 범주를 통해서 상세히 분석했다.   
여기에는 형식은 단색화의 경우이나 그 개념이 완전이 극에서 출발하고 있는 몇몇 개념적 성향의 추상으로부터, 비교적 오랜 추상의 노력이었던 표현주의 추상, 기하학적 조형 추상은 물론이고, 구상과 추상의 접점을 연구하는 형상적 추상, 전통을 끊임없이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전통 실험 추상들과 1970년대의 단색화의 관점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포스트-단색화, 그리고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멀티플 추상의 조형 언어들을 살펴보았다. 
이 글은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두 범주에 관심을 기울였다. 하나는 1980년 중반 이후 활성화되기 시작한 여성주의 추상이 이전의 1970년대의 단색화 위주의 남성주의 추상과 어떻게 다른지를 검토하는 일이었다. 또 하나는 2000년대 첨단 매체의 등장으로 변모된 미술 지형도 속에서 추상미술의 다양한 경향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전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속에서 위축하게 만들었던 모더니즘의 남성적 추상미술로부터 여성주의 추상미술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이러한 특성들을 비조각적 추상이나 다양한 특성들로 세분화되는 패턴 추상을 대표적인 예들로 제시했다. 후자는 디지털로 대별되는 급변하는 테크놀로지의 유입으로 형성된 뉴미디어 추상을 중심으로 이전의 기술적 관심이 표방된 광학 추상을 함께 살펴보았다. 향후 이 범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전개될 수 있는 현재진행형의 작업들이라 하겠다.    
구상이든, 추상이든, 1980년대 미술에서 줄곧 제기되었던 것은 ‘우리의 미술을 뒷받침해 줄 우리 자신의 세계관의 정립의 문제’와 같은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화두였다. 2000년대를 넘어선 당시의 한 원로 비평가의 관점도 역시 범자연성, 자연주의와 같은 전통 미술문화의 속성들을 어떻게 현대미술에 담아낼 것인가에 관한 문제였다. 그러나 다변화를 겪으며 2020년대를 달려가는 작금의 동시대적 입장에서 전통을 논하는 것 자체가 고루한 것일 수 있겠다. 추상미술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의 현대 추상미술이 1980-1990년대의 전통을 기반으로 창작과 담론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던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를 염두에 둔다면, 오늘의 다원주의적 추상의 근원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어 왔는지를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국의 추상미술의 미래적 향방 역시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다원주의의 방향으로 좌표가 흘러간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전통에 대한 문제의식은 불가피한 담론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래’의 정체성이란 언제나 인간의 근원적 역사와 더불어 과거를 끊임없이 재성찰하게 만드는 ‘오래된 미래’이니까 말이다. ●

출전/

김성호,「1980년대 이후 한국의 다원주의 추상미술」,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  김달진자료박물관 2016.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전, 2016. 7. 5-10. 29, 김달진자료박물관) * 


##주석 생략 (주석은 상기 책을 검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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