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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가론│박이도 / 이미지의 메타포: 이미지가 감춘 실재, 질료가 낳은 이미지

김성호

이미지의 메타포: 

이미지가 감춘 실재 질료가 낳은 이미지


 김성호 Kim, Sung-Ho (미술평론가)


I. 옆과 옆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사이 
박이도의 작품에 있어 이미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출발한다. 즉 그의 이미지는 서구의 모노크롬처럼 ‘그려진 2차원 평면’이기보다 동양화의 여백의 경우처럼 ‘그려진 것의 옆’에서 생성되는 그 무엇이다. 마치 그것은 종이 위에 빨간색의 줄무늬를 연속으로 그려 넣은 사이에서 저절로 생겨난 흰색의 줄무늬와 같은 것이다. 풀어 말하면 행해지지 않았으면서도 행해진 것들 옆에서 행해진 결과를 갖는 여백이거나 또는 그 자체로 이미지로 출발하지 않았으면서도 ‘그려진 것들의 옆’에서 저절로 만들어진 이미지라 할 것이다. 
박이도의 작품 중 〈휴먼 패턴(Human Pattern)〉 시리즈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혹은 ‘그려진 것들의 옆’에서 생성되는 이미지의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그가 주변에서 실제로 만난 사람들을 이미지의 형태로 사료화하는 이 시리즈 작품은 정사각형 (22×22cm)의 석고판 위에 한 인물의 측면 얼굴을 좌우로 배치하여 마주 보게 한 상태에서 그 프로필 사이를 마치 잔(盞)의 형상으로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부조적 오브제와 색으로 가득 채운 것이다. 박이도의 이 시리즈는 '형의 인식은 주변과의 관계에 의존한다'는 덴마크 심리학자 에드거 루빈(Edgar Rubin)의 ‘루빈의 잔’ 이론을 역상으로 실현한 개념적이고도 지적인 회화가 된다. 
‘잔’의 내부의 공간을 가득 채움으로써 역으로 정작 그려야 할 재현의 대상을 여백처럼 만드는 효과는 애초부터 그가 의도하는 바이다. 행해지고 그려진 것들 옆에서 여백처럼 생성되는 박이도의 인물들은 실상 그가 그리려고 한 것들이다. 다만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린 것과 같은  효과를 낳음으로써 ‘부재의 장’에 ‘존재의 의미’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것이다. 즉 그려지지 않았음에도 그려진 것들의 옆에서 그려진 효과를 꾀하는 그의 초상 〈휴먼 패턴〉 시리즈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주체가 형성된다는 ‘사회적 인간’이라는 인간 존재의 문제의식마저 우리에게 제기한다. 그것은 분명코 쉽사리 ‘보이지 않는 이미지’가 ‘보이는 것의 옆’에서 제기하는 매우 강력한 메타포가 된다.   
  

II. 밖에서 안으로 - 이미지가 감춘 실재
박이도의 〈휴먼 패턴〉 시리즈가 ‘옆과 옆’의 관계로부터 생산되는 이미지의 강력한 은유를 탐구했던 것으로 평가된다면, 또 다른 작품인 〈정물(Still Life)〉 시리즈는 ‘밖과 안’의 관계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밖에서 안으로’의 관계로 이미지를 자리 이동시키는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 ‘밖’은 가시적인 이미지를 지칭하고 ‘안’은 감추어진 실재를 의미한다. 
보라! 그의 정물은 온통 나무로 깎여 만들어진 조각들처럼 보인다. 접시 위에 차려진 사과들은 나무로 만들어진 조각인가? 아니다. 플라스틱 접시와 실제의 사과 위에 나이테와 나뭇결이 진짜처럼 보이는 목문(木紋)을 아크릴로 그려 올린 것이다. 나뭇결무늬를 선보이고 있는 바나나는 어떠한가? 그것 역시 실제의 바나나 껍질 위에 목문을 아크릴로 그린 것이다. 껍질이 벗겨진 채 바나나 속살을 드러낸 장치를 통해서 비로소 관객은 이미지(나뭇결무늬) 속에 감추어진 실재(바나나)를 알게 된다. 나뭇결무늬의 냉장고는 또 어떠한가? 그것 역시 냉장고의 표면을 모두 나뭇결무늬로 그리고, 그 안에 나뭇결무늬를 입힌 실제의 음료수 병들을 가득 넣어 배치한 것이다. 


나뭇결무늬만이 아니다. 대리석 기둥과 그 위에 올라선 구(球)는 어떠한가? 그것은 나무 기둥의 표면과 실제의 수박 위에 대리석 무늬를 아크릴로 꼼꼼하게 그려 만든 것이다. 관객은 쪼개진 수박의 속살을 보고 비로소 그것이 실제의 수박이었음을 알게 된다. 대리석 무늬의 와인잔과 접시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대리석 무늬이든, 나뭇결무늬이든 그는 왜 ‘오브제’(하나의 실재) 위에 ‘무늬’(또 다른 실재의 이미지)를 그리는 일에 집중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사물이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허무하다. 청량한 과일도, 시원한 음료수도 즐길 수 없는 세상에 무슨 낙이 있을까? 그런 면에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더스 왕의 ‘마이더스(Midas)의 손’은 축복이기보다는 형벌임을 우리는 안다. 원하는 것만이 아닌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는 손을 가지게 된 미더스 왕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것은 분명 상상할 수 없는 극도의 형벌이자, 축복처럼 가장된 비극이다.  
그렇다면 실재는 그대로이지만 껍질만 바뀌는 세상은 어떠할까? 그의 작품에서 실재는 표피를 둘러싸고 있는 허구의 이미지에 의해서 은폐되고 감추어진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시각을 기만하는 이미지란 얼마나 허망한 존재인가? 그의 〈정물〉 시리즈는 ‘밖’에 드러나는 이미지가 실재의 본질적인 면모를 ‘안’으로 감추고 은폐시키는 상황을 조각적 설치의 양상으로 제시함으로써 시뮬라크르로서의 이미지의 위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질문한다. 더불어 이미지(밖)가 은폐하는 실재(안)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것을 촉구한다.
한편,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단순한 아포리즘(aphorism)의 의미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그의 작업은 역설적으로 “은폐된 실재 혹은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는 이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적 은유’를 내던진다고도 할 수 있겠다. 


III. 안에서 밖으로 - 질료가 품은 이미지, 질료가 낳은 형상
박이도는 조형적인 관점에서, 〈휴먼 패턴〉 시리즈에서는 '옆과 옆'의 관계를, 〈정물〉 시리즈에서는 '밖에서 안으로'의 관계를 그리고 최근의 〈몬스터 스톤(Monster Stone)〉 시리즈에서는 '안에서 밖으로'의 관계를 천착하다. 즉 최근작에서는 이전 시리즈보다 더 ‘안’에 집중하는 조형 미학을 드러낸다고 하겠다. 달리 말해, 그의 작품들의 표면 위에 일렁이던 이미지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이제는 그것이 은닉하고 있는 내부의 실재 그리고 그 실재가 잉태하고 있는 질료라는 본질적 문제에 보다 더 천착하고 있는 셈이라 하겠다.  
물론 〈몬스터 스톤〉 시리즈에 이르러서 ‘안’에 대한 관심으로 처음 이동한 것은 아니다. 이전 작품들에서도 ‘안’에 대한 관심은 기본적으로 존재했다. 〈휴먼 패턴 시리즈〉는 작가의 주변에서 만났던 실재의 지인들을 애정 어린 시각으로 그린 것이고, 〈정물 시리즈〉 역시 시뮬라크르로서의 허구적 이미지를 경계하고 내부의 실재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몬스터 스톤〉 시리즈에 이르러서 ‘안’에 대한 관심이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하기보다 이전보다 더 본격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몬스터 스톤〉 시리즈는 그가 중국 후난성 여행 중에 발견한 거석(巨石)들을 하나씩 캔버스에 단순히 재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미학이 담겨 있다. 지질작용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암석들의 본질은 광택, 색깔, 질감과 같은 표면상의 이미지가 아니라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 등과 같은 질료적 차원에서의 실재에 관한 것이다. ‘밖’에서 살펴지는 이미지의 본질은 허망하다. 그의 작품은 따라서 이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언을 신뢰하듯이 ‘안’을 탐구하면서 ‘질료가 품은 이미지’와 ‘질료가 낳은 형상’을 탐구한다. 즉 ‘안(질료 혹은 실재)’에서 ‘밖(이미지)’으로 모색되는 조형 언어에 천착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조형 태도는 자신의 미학의 본질을 이미지 표층의 껍데기가 아닌 심층에서 발견하려는 동양적 선문답(禪問答)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다만 이 시리즈가 올해 처음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인 만큼, 조형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숙성되고 구체화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

출전 /
김성호, 「이미지의 메타포: 이미지가 감춘 실재, 질료가 낳은 이미지」 , 박이도 작가론,『미술과비평』, 겨울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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