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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양효순 전 / 삶의 이미지 : 사실과 해석 사이를 매개하는 회화

김성호


삶의 이미지: 사실과 해석 사이를 매개하는 회화 

김성호(미술평론가)
 

I. 현재까지 : 재현적 표현과 사실의 해석
양효순은 이번 개인전에 이르기까지 대상을 포착하고 재현하는 ‘손의 기술과 능력’에 신뢰감을 주는 사실적 화풍에 천착해 왔다. 그녀의 회화는 대상의 외피를 고스란히 옮겨 오는 1960년대 후기 팝아트의 건조한 포토리얼리즘의 방식보다 그 대상의 심층으로 주관을 투여하고  감성을 실어 나르는 1980년대 한국의 민중미술의 관점에 보다 더 가까이 들어와 있다. 그녀의 회화가 민중미술의 뿌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재현의 언어를 사회 비판적 메시지의 도구로 사용하기보다 따뜻한 감성 소통의 매개체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즉 재현의 언어를 정보와 메시지의 전달의 방식으로 사용하기보다 감성을 실어 나르는 표현의 방법론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양효순에게 있어 회화의 대상은 오래전부터 ‘바다’와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일구고 있는 ‘사람’ 더 정확히는 ‘어부’에 집중되어 왔다. 화가들에게 있어 ‘자연환경과 인간’이라는 오래된 화두가 그녀에게는 ‘바다’와 ‘어부’라는 화제(畵題)로 귀착된 것이다. 그것은 부산에서 성장해 온 작가에게 있어서 자연스러운 귀결처럼 보인다. 그녀는 자신의 회화 속에서 고기잡이에 나선 어부들의 분주한 일상을 관찰자의 객관적 시선으로 담담하게 포착하고 그들의 분주하고 고단한 일상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투사하는 주관적 시선을 함께 견지해 왔다. 달리 말해, 사실적 재현 언어로 기록한 어부들의 일상을 통해 인간 보편의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해석의 지평을 함께 열어젖힌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해석이라는 주제 의식을 보다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 양효순은 캔버스 대신에 생선 상자의 나무틀을 회화의 지지대로 사용한다. 생선이 실제로 담겼던 나무 상자를 해체하고 그것을 회화의 지지대로 재구축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재현적 회화가 허구(fiction)의 것으로 남지 않기를 기대한다. 즉 생선 상자로 썼던 나무라는 ’삶의 흔적(실재)’ 위에 유화로 그린 ‘이미지(가상)’를 얹으면서 자신의 작품 세계가 사실(fact)에 대한 해석(interpretation)으로 이해되고 소통되길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브제 생선 상자로부터 가져온 나무 패널 지지체는 고기잡이용 목선(木船)이라는 회화의 대상을 질료적 차원으로 변환시키면서 실제적 임장감(臨場感)을 극대화한다. 즉 생선 상자의 부분이 목선의 일부처럼 여겨지도록 장치함으로 회화 지지체의 리얼리티를 가시화할 뿐만 아니라, 사실적인 현장성을 강조하고 ‘어부의 삶’이라는 화제(畵題)를 실재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보라! 나무 패널의 나이테 무늬가 마치 바다의 물결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것은 순전히 원목으로부터 판재를 뽑아내는 제재(製材)의 방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우리는 거기서 바다와 목선의 이미지를 만난다. 들리는가? 투박하게 마감된 재질을 드러낸, 그리고 어부의 손때가 묻어 있고 바닷물의 소금기와 고기들의 살 냄새가 배어 있는, 생선 상자에는 어부들의 ‘만선(滿船)’을 외치는 힘찬 목소리가 환청으로 깊이 배어 있다. ‘시각/청각/촉각’의 공감각을 자신의 몸 안에 간직한 생선 상자 패널을 지지대로 삼은 그녀의 회화에서 우리는 바다와 목선 그리고 어부들의 삶과 같은 현장감 가득한 실재를 만난다.  
전통적으로 회화의 지지대로 간주되어 온 캔버스 대신 생선 박스의 나무 패널을 지지대로 사용하는 제작 태도는 1970년대 프랑스 그룹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 Surface)가 지향하는 ‘물질적 형태의 환원’이라는 입장을 일정 부분 공유한다. 즉 그룹 ‘쉬포르 쉬르파스’가 캔버스의 나무틀을 떼어 놓고 회화의 지지체(Support)를 단지 화포(畵布) 혹은 화포의 표면(Surface)으로 간주하고 그 위에 표현된 ‘순수 회화 행위’를 주요하게 다루면서, 미국형 회화의 ‘시각적 형태의 환원’으로부터 유럽형 회화의 ‘물질적 형태의 환원’을 강조했다고 한다면, 양효순은 캔버스를 버리고 현장의 오브제를 지지체로 가져와 물질적 형태의 환원을 강조한다. 양자가 다르다면, 전자가 회화 자체를 신화화하는 일련의 시도들(캔버스 틀, 서명, 제작 일자, 타이틀 등)을 일체 배제하면서 회화적 행위의 결과가 야기하는 순수한 물질성을 강조했다면 양효순은 재현적 회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의 의미를 한층 강조하기 위해 ‘회화의 물질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자가 다분히 유물론적 입장의 추상적 회화에 천착했다면, 양효순은 인간의 감성을 담은 육질의 물질성에 기초한 채, 구상이라는 재현 회화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II. 현재부터 : 지도라는 희망의 매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지도를 펼친다. 여러 패널로 구성된 낙엽송 합판 위에 유화로 그린 세계 지도 위에는 물고기, 어선, 배, 시계, 나침판 등의 이미지가 매우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녹색을 표현한 작품은 50호의 패널 3개를 이어 붙여 만들고, 합판의 고유한 미색과 연갈색을 살려낸 작품은 20호의 패널 6개를 셰이프드 캔버스(shaped canvas) 형식으로 배치하여 만든 작품이다. 세계 지도를 통해 그녀는 이전의 작품 세계로부터 어떠한 연결 고리를 찾고자 하는 것일까?  

“어부가 또 다른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 어딘가 여러 곳으로 떠난다는 의미로 지도를 표현하였다. 세계 어느 곳으로든지 자유롭게 배를 타고 이동하는 어부, 시간 앞에서 유한한 인간들의 삶 속에서 어부의 힘겨운 어로의 여정은 계속된다는 의미로 시계를 표현하였고 바다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희망으로 나아가리라는 의미로 나침판을 표현하였다.”

그녀의 작가노트는 우리의 궁금증을 명료하게 풀어 준다. 또 다른 물고기를 포획하기 위해 어로(漁撈)의 여정에 나서는 어부의 유목적인 삶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세계 지도의 형식을 택한 것이다. 지도의 사전적 의미는 “지구 표면의 일부나 전부의 상태를 일정한 형식을 통해 약속된 기호를 사용하여 실제보다 축소해서 평면에 나타낸 것”이다. 세계 지도는 기호 표기의 대상이 전 지구를 포함하는 만큼, 지구를 터전으로 삶을 영위하는 인간 존재론의 위상을 자연스럽게 함유한다. 
사실, 지도라는 것은 “객관적인 정확성을 지향하고, 위치를 구별하기 위해 지명이 함께 기재되기 때문에 사물의 미(美)나 본질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회화(繪畫)와는 차이가 있다.” 허구이기보다 사실을 지향하는 객관화된 지리 정보가 우선인 까닭에, 형식은 이미지이지만, 내용은 예술을 지향하지 않는다. 지도라는 비예술적 자료를 순수 미술의 장으로 끌고 온 양효순의 회화가 지향하는 유의미한 지점이 여기에 있다. 



지도라는 것은 근대의 시대 이후 비로소 객관화된 좌표나 정보로 인식되기에 이르렀지만, 이전 시대에는 주관적 해석이 개입된 ‘삶의 지침도(指針圖)와 같은 것이었다. 근대 이전의 지도 제작자는 대개 독도법(讀圖法)이 그다지 필요치 않는 삶의 장소를 표현하는 일에 골몰했다. ‘고을의 전체적인 경관과 장소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일에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인 것이었다. 우리의 전통에 지도 제작자가 화가였다는 점은 지도라는 것이 주관적 해석의 가능성과 더불어 미적 가치마저 함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조선 후기에 활발하게 제작되었던 목판본 지도책에 실려 있는 다양한 지도들 중 원형의 천하도(天下圖)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세계 자체를 하나의 원으로 표상하면서 우리와 인접한 국가들인 중국, 일본, 안남국(베트남), 섬라국(타이) 등의 실제 나라를 표기하면서도 확인조차 되지 않은 ‘상상 속 지명’을 등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형식을 통해서 천하도는 당시 조선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해석’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시 수목 신앙과 유불도교 등의 혼합적 세계관마저 여실히 드러낸다. 
양효순의 지도에는 이러한 작가만의 주관적 해석이 담겨 있다. 객관적인 정보를 건조한 지도의 형식으로 표시했음에도 각 대륙을 어긋나게 배치했다든가, 지도와 특별한 관련이 없는 물고기, 어선, 배, 나침판 등의 이미지를 그려 넣음으로써 작가만의 ‘세계 속 삶’이라는 의미를 해석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지도 아닌 지도’는 오늘날 일상의 지도가 드러내는 내용적 측면을 많은 부분 공유한다. 정보론의 관점에서 고찰되는 ‘지리 정보의 생산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매개자의 역할’이 그것이다. 
지도가 함유하는 매개의 역할은 그녀의 세계 지도로 이루어진 최근작 이전에도 ‘밧줄’이라는 소재로 줄곧 가시화된 주요 주제어였다. 정박한 어선을 붙들고 있는 밧줄과 어망을 연결한 밧줄, 그것 모두는 ‘주체와 타자 사이’의 소통의 매개를 은유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늘 타자들과의 관계로부터 주체적 위상을 확인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대한 메타포(metaphor)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지금은 절망과 비루함에 묶여 있지만, ‘삶’에 대한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작가의 미래적 비전마저 포함되어 있다. 
작가 양효순에게 있어 지도는 객관화된 사실을 주관화된 해석의 미술로 치환하는 삶의 매개이자 희망에 대한 메타포이다. 삶을 형상화하는 그녀만의 도상인 것이다. 앞으로 이 도상에 대한 작가만의 고유한 해석들이 점진적으로 전개되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

출전 /

김성호, '삶의 이미지 : 사실과 해석 사이를 매개하는 회화', 카탈로그 서문, (양효순 개인전,  2016. 11. 1-11. 12, 이젤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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