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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갤러리 다임 개관전 - 하우스워밍 파티에 부쳐

김성호

시작점

갤러리 다임 개관전 - 하우스워밍 파티에 부쳐 



김성호(미술평론가) 


I. 시 (始)
시작점(始作點)과 출발점(出發點)은 목적을 향한 첫 단계의 지점이다. 그것은 외출을 위해 준비한 옷의 첫 단추를 끼는 일이자, 새로움으로 가득한 모험의 여정을 위해 첫 발걸음을 떼는 일이기도 하다. 취학, 취직, 결혼, 출산과 같은 가슴 설레는 개인사로부터, DNA의 발견, 컴퓨터의 발명과 같은 인류사의 놀랄만한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출발은 그 자체로도 희망의 불을 지핀다. 
2016년 <갤러리 다임>은 ‘모든 것을 포함한 새로운 것들’이라는 의미를 이름에 담아 새로운 개념의 전시를 기획한다. 문화회관, 박물관, 유엔공원 등 공공 전시 공간이 자리한 부산 남구 대연동에 자리를 잡고 시작하는 하우스갤러리가 그것이다. 주거 공간과 전시를 위한 근린생활 시설이 만난 하우스갤러리 개념은 일상으로부터의 예술, 삶 속의 예술을 표방하는 현대미술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게다가 일반 갤러리에서 좀처럼 찾기 어려운 가상현실(VR) 시스템을 갖추고 디자인, 패션, 영상 등 다(多)장르를 아우르는 콜라보레이션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갤러리는 이름만큼이나 다차원적이다. 
《갤러리 다임 개관전》이라는 전시명 아래 붙여진 《하우스워밍 파티(Housewarming Party)》라는 부제는 관객에게 친근함을 더한다. ‘집들이’라는 뜻의 하우스워밍 혹은 하우스워밍 파티란 초대하는이에게는 새로운 출발을 알리고 초대받은 이들에겐 축하를 하는 일상의 소박한 이벤트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현대미술의 지평이 삶으로부터 발원하는 예술, 일상으로 잠입하는 예술에 있음을 재천명하는 의미심장한 선언이기도 하다. 이번 개관전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현대미술의 특정한 담론의 주제를 내세우기보다 소박한 파티의 장임을 강조하는 평이한 주제를 통해서 거주자와 방문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최대화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밑그림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이번 개관전은 18점의 회화, 조각, 사진 장르로 구성된 1부와 함께 50점 내외의 미디어와 영상, 디지털아트로 구성되는 2부로 나뉘어 각기 한 달간의 일정으로 펼쳐진다. 이러한 면에서 1부가 순수 미술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전이라고 한다면, 2부는 IT 기술과 융합된 디지털 아트가 중심이 된 관객 참여형 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글에서는 1부 전시에 초대받은 15인의 작가의 참여작을 중심으로 《갤러리 다임 개관전》의 의미를 살펴본다. 


II. 작(作)
정봉채의 우포 풍경 
정봉채는 지금까지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반도의 최대 습지인 우포에 자리하면서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우포의 풍경들을 기록해 왔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신비함을 기록하던 다큐멘터리 사진 형식으로부터 점차 다양한 모색을 거치는 실험 사진으로, 다시 피사체의 우포 풍경을 절제된 표정으로 비워내는 예술 사진으로 변신하기까지 그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정화(淨化)의 이미지를 렌즈 속에 포착해 왔다. 시원(始原)의 생태인 자연을 담아 인간의 마음마저 정화하는 그의 사진은 가시연의 생명 탐구로부터 늪의 존재 탐구로 확장하면서 심연(深淵)의 고요와 침묵을 획득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사진은 이미지로 펼쳐내는 한 편의 철학이라 할 것이다. 


정봉채, JBCWUPO061107


신홍직의 즉발적(卽發的) 풍경 
신흥직은 빠른 필치로 자신이 목도한 풍광과 일상 속 정물들을 캔버스에 담는다. 국내·외 휴양지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거리의 풍경들, 파도가 넘실대는 해안가의 풍경들, 높은 빌딩을 배경으로 항구에 정박해 있는 요트들, 부산을 삶의 거처로 작업 활동을 하는 그에게 낯설지 않은 풍경들이다. 선명한 원색의 물감 덩어리가 서로의 몸을 활발하게 뒤섞으면서 화면에 떠오르는 그의 회화는 인상주의적 풍경과 표현주의적 의지가 맞물려 창출된 즉발적 만남의 회화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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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선의 기억의 풍경
류승선의 회화는 저장된 기억을 캔버스에 옮기고 그 기억의 시간을 재생하면서 시작된다. 기억은 중력의 관성으로부터 점차 소멸되면서 망각의 저장고 속에 숨어 있다가 현실의 연결 고리를 만나면서 갑자기 튀어 나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살아나 재생되는 기억이란 이성적 사유의 연결 고리 없이 뛰쳐나오는 까닭에 낯설게 재생된다. 마치 스냅 사진으로 급하게 포착한 ‘잘려진 건물과 가로수의 낯선 풍경’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에게 언제나 ‘견딜만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 따뜻한 것들’로 소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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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수의 푸른 풍경 
이지수는 어스름한 해질녘 혹은 달빛 아래의 새벽처럼 희미한 풍경을, 장지 위에 푸른 안료를 풀어, 한가득 올려놓는다. 작가가 만드는 ‘개와 늑대의 시간’ 속에서 풀잎, 하늘, 땅은 뒤섞이며 하나가 된다. ‘사물을 판별할 수 없는’ 불명료한 시·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바람에 몸을 실은 풀잎들의 아우성치는 소리는 이미지가 선사하는 환청(幻聽)이다. 그녀는 우연과 필연 사이에서 기억을 지우고 되살리는 푸른 안료를 손으로 매만지고 문지른다. 그래서일까? 몸의 언어가 부스러진 작가의 푸르디푸른 풍경은 희뿌연 유령 혹은 검은 그림자처럼 자리하면서 현실의 풍경이기보다 심상(心像)의 풍경으로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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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의 이미저리 
김선태의 회화는 풍경이면서 풍경이 아니고 대상이면서 비대상이고, 형상이면서 추상을 지향한다. 그의 작업에는, 물감과 다양한 재료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회화적 실험과 더불어 작가의 내면으로부터 분출하는 회화적 몸짓이 일렁인다. 이전에 형상이었던 이미지는 이내 지워지고 새로운 형상과 기호를 쌓아 올리는 추상적인 바탕으로 거듭나면서 그의 추상은 이미저리(imagery)가 된다. 그것은 끊임없이 회화적 바탕과 회화적 형상 사이의 간극을 오가는 회화적 몸짓이자 그것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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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의 음악적 추상 
구광모는 추상 회화의 본질적 미학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한다. 특정한 지점, 넘어섬의 단계, 영원성, 그것에 이르는 순례의 행보가 그것이다. 작품명에서 언뜻언뜻 엿보이는 이러한 미학의 탐닉은 그의 회화를 혼돈(混沌)에 가까운 ‘방황’으로부터 자유로이 소요(逍遙)하는 ‘방랑’ 사이를 오가게 만든다. 그것은 가히 감성에 몸을 싣고 휘몰아치는 음악적 추상이라 할 것이다. 질료가 쌓이고 다시 닦이고 또 쌓이기를 반복하는 그의 미분화의 이미지 덩어리는 추상이라는 이름으로 20세기 이후의 거장들이 던졌던 화두를 오늘도 지속적으로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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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환의 현대적 만다라 
서상환의 작품 안에는 동양적 세계관으로 가득하다. 더러는 사각의 프레임도 있지만 원형 패널 안에 자리한 기호적 추상은 소우주·대우주에 관한 해석들로 빼곡하다. 그의 작품명 ‘일즉다’는 ‘하나가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은 하나’라는 의미의 화엄철학의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을 되뇌게 한다. 개개의 사물이 우주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이 사유는 그의 작업에서 ‘개안(開眼)한 하나의 눈’이 또 다른 눈들을 만나 집적되면서 세계를 구성하는 ‘기호적 형상’이다. 우주의 거시적 움직임 역시 하나의 작은 움직임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그의 작품의 세계관은 가히 우주의 진리를 표현한 ‘현대적 만다라(Mandala)’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서상환, 일즉다, 53 x 33.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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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봉규의 현대적 풍속도 
임봉규는 꽃, 나비, 새가 등장하는 초충도, 화조도와 같은 민화 풍의 배경에 여인의 인물화를 그린다. 더러는 단발의 현대적 여인도 있지만 대개는 한국 전통의 비녀와 쪽머리를 한 여인들이다. 이 여인들은 대개 큐비즘의 인물처럼 왜곡된 외양을 한 채, 과장된 포즈를 통해서 가벼운 춘화도(春畫圖) 속 여인의 모습마저 드러낸다. 한국 전통의 민화와 미인도를 재해석한 그의 회화는 등장하는 인물이 다수가 아님에도 현대적 풍속화라 할 만하다. 소박한 정감, 익살과 더불어 현대적 의미의 해학과 사회적 풍자가 일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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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희의 현대적 미인도 
변명희의 인물화는 조선 후기 신윤복의 미인도를 연상케 한다. 얇은 비단 위에 스치고 지나간 가녀린 선묘와 더불어 은은하게 스며든 담채는 투명하고도 선명하다. 여인의 머리 위에 장식처럼 올린 연꽃은 그 꽃말만큼이나 순결하고 청순하지 않은가? 진흙 속에서도 속세에 물들지 않는 군자의 꽃으로서 청렴과 고고함이 담긴 연꽃을 이고 있는 여인상은 전통 초상화 기법으로 표현되었음에도 파격적 구도로 현대적 미인도의 위상을 물씬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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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엽의 시뮬라시옹 풍경
이충엽의 회화는 초현실주의적 화면 속 얼굴이 꽃으로 변해 버린 정장의 한 남자를 담고 있다. 회색빛 풍경은 정적이면서도 꿈 속 이미지처럼 환상적이다. ‘이곳/그곳’은 현실과 꿈이 오버랩된 제3의 세계이거나 두 세계를 흉내 내는 시뮬라시옹의 풍경과 다름이 없다. 풍경 속에 덩그러니 놓인 거울은 이러한 세계에 거주하는 고독한 한 주체의 자기 인식과 자각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주요한 기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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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훈의 본능적 풍자 
성동훈의 조각은 오늘날에 여전히 필요한 풍자와 해학의 끈을 놓지 않는다. 돈키호테 시리즈로 시작된 그의 블랙유머는 비판적 해학이기보다 민중의 걸쭉한 농지거리처럼 직접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다. 용광로 슬러지(sludge)를 질료로 사용한 최근의 그의 조각 실험은 철의 모태로서의 원초적 질료의 질감과 무게감을 고스란히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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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필의 연민과 해학 
송필의 조각에는 중력 위에 직립한 모든 존재들의 힘겨운 삶이 담겨 있다. 실제의 바위를 이고 있는 철로 된 동물 형상은 사물과 동물의 이질적 만남을 통해서 사회적 인간 주체가 개별적으로 감내하고 있는 작금의 여러 상황들을 은유하고 풍자한다. 결국 폭력과 억압, 성인 동화의 잔혹한 내러티브마저 엿보이는 그의 조각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연민과 해학이 함께 녹아 있다고 할 것이다. 


송필, 나날들V, 2013, 자연석, 브론즈, 20 x 20 x 42cm, 


강이수의 뼈 있는 익살 
강이수의 ‘걷는 새’는 제목부터 잔잔한 익살이 어른거린다. 하늘을 드높이 날아다니는 새가 비행을 마다하고 걸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기나긴 비행을 위한 잠시의 휴식인가? 비행을 할 수 없는 암울한 상황인가? 돌과 쇠로 만들어진 새의 귀여운 표정과 제목에 담긴 뼈 있는 농담과 익살이 우리로 하여금 절망 속 희망을 꿈꾸는 일을 포기하지 않게 만든다. 인간 주체가 아닌 의인화된 새의 언어에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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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현의 놀이와 유희
김계현은 자신의 조각을 조립미술(construction art)라 부른다. 그는 레고와는 또 다른 플라스틱 모듈의 조립 방식을 발명하고 대량 생산하는 시스템을 갖춤으로써 21세기에 요청되는 조각가 상을 새로이 구축한다. 공장 생산과 수공, 장난감과 예술의 경계에서 자신의 조각 언어를 극대화하는 그의 조형의 화두는 놀이와 유희 그리고 참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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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원의 물방울 언어
오태원의 유선형으로 만들어진 물방울이란 실상 관념이다. 기체와 고체 사이의 물의 위상을 추출한 정수이면서도 그것은 동시에 여러 의미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동그랗게 만들면서 중력을 향해 추락하거나 어딘가에 맺혀 있는 물방울이란 물의 파편 또는 부분을 의미하면서도, 2차원에서의 점이 훗날 선, 면, 입체로 증폭되는 것처럼 냇물, 강물, 바닷물로 확장되는 잠재적 존재이다. 나아가 그것은 빗물과 눈물의 경우처럼, 소멸, 해갈, 정념, 슬픔, 애환의 의미를 함께 부여한다. 그런 까닭일까? 그녀는 자신의 칼라 시리즈 물방울에 ‘영혼의 물방울’이란 이름을 지어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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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點)
갤러리 다임의 개관전은 출발을 알리는 순간으로서의 시·작·‘점(點)’이다. 그것은 작고 짧다. 앞으로 공간적으로 확장하고 시간적으로 길게 지속될 미래를 간직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오프닝 공연, 리미티드 에디션아트 상품 제작, 디지털아트 특별 강좌들이 마련된 다양한 행사들과 더불어 전시에 동참하는 작가들과 작품들 역시 개별적인 ‘하나의 점’이다. 이 점들이 모여 커다란 무리를 만들고 기나긴 시간들을 만들어 나갈 것을 기대한다. 미래를 향한 <갤러리 다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하여! ●


출전/
김성호, '시작점, 갤러리다임 개관전-하우스 워밍 파티에 부쳐', (하우스 위밍 파티, 2016, 10. 28-11. 26, 갤러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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