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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생활미학 전- 일상으로부터의 예술과 생활미학

김성호

일상으로부터의 예술과 생활미학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2016 동탄아트스페이스 화성작가조명전》이 ‘생활미학(生活美學)’이라는 주제로 펼쳐진다. 이 전시는 공예작품을 대상으로 한 동탄아트스페이스의 첫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순수미술이 주도하는 비영리 전시 현장에, 쓰임과 실용을 전제로 하는 공예 작품들을 초대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용과 감상을 위해 구매하는’ 공예의 영역으로부터 ‘감상을 위해 전시하는’ 미술의 장으로 옮겨 와 오늘날 현대 공예의 위상을 관객들에게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화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중견 작가들을 초대함으로써 화성 시민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작품 세계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게 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다. 그런 차원에서 이 전시는 지역 작가들의 창작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독려해야 할 지역의 예술 기관으로서의 마땅한 의무를 다한 셈이다. 동탄복합문화센터가 2011년 전면 개관한 이후 열린 첫 공예 전시라는 점에서 외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공예의 생활미학(生活美學) 
전시를 구성하고 있는 김도진, 한미요 배씨토가 푸레도기 연구소(배은경, 배새롬), 진호네목공소(이준규), 이석우 4인(팀)의 초대 작가들의 작품은 도예와 목공예로 대별된다. 이준규 한 작가를 예외로 하고 세 작가는 모두 도예 영역의 작가들이다. 이들 모두는 응용미술(applied art)에 속하는 공예(crafts)를 기계화된 시스템으로부터 탈주시켜 손의 노동력을 통해 예술성을 투여하는 수공예(handicraft)에 골몰한다. 이러한 작업 태도는 동형복제의 산업 시스템으로부터 공예의 예술성을 지키는 일품제작(一品製作)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따라서 4인의 작가들은 공예 산업계의 분업 조직에 참여하되, 자기의 창의성을 적극적으로 실용의 제품에 표현해 보려는 사람들이라 할 것이다. 
기계에 의해 양산되는 생산공예와 대별하여 이러한 수공예를 미술공예라 지칭하는 만큼, 생활미학을 준수하면서도 독창적인 가치를 담고자 하는 미적 태도는 이들 공예가 지향하는 바이다. 여기서 ‘생활미학’이란 일상적으로 ‘쓸모 있는 예술’을 전제하면서도 ‘실용/순수를 넘나드는 일상 속 예술’을 지향한다. 이러한 수공예의 속성은 오늘날 예술의 어원인 고대 그리스어 테크네(technē)의 이상을 실현하는 세계로 우리를 소환한다. 라틴어의 아르스(ars)에 해당하는 이 언어는 오늘날 의미에서 ‘제작을 위한 기술(技術)’과 ‘쾌락을 위한 예술(藝術)’ 양자 모두를 포섭한다. 이것은 오래전 아리스토텔레스의 3개의 범주화된 철학 체계에서 '포이에시스(poiesis, 제작)'의 학(學)이라는 '포이에티케(poietike, 제작학)'로 불려오지 않았던가?  
그렇다. 4인(팀)의 출품 작가들의 생활미학이란 이론(theoria)과 실천(praxis)의 저편에서 ‘실용/순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실천하는 ‘포이에티케’에 다름 아니다. 생각해보라! 예술, 특히 순수 미술이라는 시각예술이란 질료를 손의 기술로 다루면서 자신만의 ‘특수한’ 표현 의지를 드러내려는 창작 행위의 결과임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가 선보이는 주제 생활미학은 쓰임새라는 ‘보편’에 독창적 예술미학이라는 ‘특수’를 한 자리에서 만나게 한다. 
출품 작가 4인의 손의 노동에 의한 공예는 순수미술로부터 폄훼되어 온 공예를 다시 예술의 지평 위에 올려놓는데 기여하면서도 생활미학, 즉 생활 속 미학을 저버리지 않는다. 달리 말해, 이들의 작품들은 인간 생활에 관한 오래된 3범주인 의(섬유, 패션), 식(그릇), 주(가구, 건축)의 자리를 여전히 지키면서도 ‘실용/순수’가 서로 맞물린 생활미학을 저마다의 고유한 색깔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사인사색(四人四色)
먼저 이준규의 작업은 책상, 의자, 장식대 등 우리의 삶에 깊이 침투한 생활 가구를 만드는 목공예에 천착한다. 체리나무, 호두나무, 떡갈나무, 은행나무로 만들어진 의자들은 각기 다른 원목의 질료적 속성에 덧붙여 플레인(Plain), 리프트(rift), 쿼터(quarter) 등의 다양한 제재(製材) 방식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나이테의 무늬와 결을 십분 활용해서 제작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작가 이준규만의 고유한 디자인이 적용된 가구로 태어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원목의 결과 형태를 살린 상태에서, 매끈하게 마감질을 마친 재질을 대비시킨 그의 원목 가구는 볼록과 오목의 원목을 서로 끼어 맞추는 전통의 제작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예술적 장인의 작품으로 거듭나게 한다.    


이준규, Stool, 은행나무1


작가 배은경과 배새롬이 대표로 있는 ‘한미요 배씨토가 푸레도기 연구소’의 출품작들은 도예로 구성된다. ‘푸레 크로키문 도기’, ‘푸레 다래문 도기’, ‘푸레 분장 이형 도기’와 같은 대중에게 낯선 ‘푸레 도기’는 실상 옛 왕실과 상류층에서 사용하던 발효 저장 용도의 고급 옹기를 만드는 전통적 방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푸르스름하다’는 의미의 순 우리말인 ‘푸레’라는 용어에서 간파할 수 있듯이, 그의 도자기들은 짙고 어두운 색을 띤다. 유약 혹은 잿물을 바르지 않고 흙, 나무, 불, 천일염만을 사용하여 전통적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250년째 작가의 가문에서 대를 이어오고 있는 이 ‘푸레 도기’는 경기 양평, 경기 평택, 전라 영암에서 직접 채취한 흙을 배합하고 1300도 이상 장작가마에서 꺼먹이 소정으로 성형해 완성된다. 까다로운 전통적 제작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이 푸레 도기는 일반 옹기나 도자기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기능과 심미감을 자랑하는 예술적 공예로 거듭난다. 


한미요 배씨토가 푸레도기 연구소, 푸레  분장 이형 도기, 2013, 230x320mm

경기 화성 지역의 흙을 채취하여 푸레도기 기법으로 소성, 점력없는 흙으로 자연적인 이형감을 완성


작가 김도진의 작품들은 전방위적이다. 백자토와 조합토를 섞은 일반 자기는 물론이고, 드로잉 기법을 활용한 회화적 평면, 도자를 조각화한 도자 조형, 도자 타일을 활용한 벽화 설치 작업 등 세라믹 작품의 다양한 확장을 꾀하면서 세상과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내는 물론이고 인도, 미국 등의 풍부한 레지던시 경험과 국내외에서 벌인 다양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온 그의 실험 정신에 근거한다. 여기에 덧붙여 대량의 생산 방식보다 맞춤의 형식을 추구하는 창작 태도 역시 그의 공예를 심미적 미학으로 가득 채우며 예술화하는 일에 부족함이 없게 만든다.  


김도진, TOUCH 시리즈 B라인


끝으로 작가 이석우의 출품작은 다른 작가와 달리 생활자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서민의 향취가 그득한 질박한 접시와 그릇, 거기에 덧붙여 도자기와 고목재 그리고 레고 블록을 결합한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들은 철저하게 실용과 장식을 전제로 한 도예의 생활미학을 지향한다. 특히 그의 소박한 생활자기들에는 한국 최초의 미학자인 고유섭(高裕燮)이 우리의 미를 정의했던 ‘구수한 큰 맛’의 감성들이 넘실댄다. 좌우 비대칭의 감칠맛 나는 고졸미와 더불어 고유섭이 한국미로 정의했던 ‘비정형성, 비균제성, 무기교의 기교’와 같은 형식적 특성들이 그의 그릇들에서 감지된다. 흙과 불의 만남으로 만들어진 그의 생활자기들이 이제는 전통과 현대, 예술 작품과 관객으로 만나 공예 속 생활미학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석우, 생활자기, 2015, 지름 27cm



에필로그
여기 4인4색의 출품작들은 실용과 순수, 전통과 현대, 일상과 공예가 맞물리는 가운데 ‘공예의 예술화’와 더불어 동시에 ‘공예의 대중화’를 꾀한다. 이미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는 공예가 기계적이고 산업적인 공예로부터 전통적인 수공예의 면모를 다시 가져옴으로써 기술의 심미화(審美化)를 불어넣고 있는 셈이다. 공예의 예술화는 이 전시의 참여 작가들뿐만 아니라 많은 공예가들이 껴안고 오늘도 고민하고 있는 숙원(宿願)의 과제이다. 예술에 대한 오래된 정의인, ‘테크네’의 이상처럼 예술과 공예의 접점 사이에서 공예의 대중화를 끝내 내팽개치지 않은 채 품 안에 함께 껴안고서 말이다. ●


출전/ 

김성호, '일상으로부터의 예술과 생활미학', 전시 서문 (동탄아트스페이스 화성작가조명전 -생활미학 전, 2016. 10. 18~11. 6, 동탄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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