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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서문│주운항 전 /의식이 현현하는 추상의 세계

김성호

의식이 현현하는 추상의 세계 
               

김성호(미술평론가)


한국적 추상화 - 물질의 비움과 의식의 현현  
주운항의 최근 회화는 추상이다. 
클리멘트 그린버그의 주장 이래 20세기 서구의 추상은 ‘평면’이라는 매체의 물리적 속성에 골몰하는 의사과학적인 존재 문제에 집중했다면, 1960년대 일본의 모노파(物派)나 1970년대 한국의 단색화 전통의 추상은 회화의 비물리적 속성인 정신과 의식의 세계에 집중했다고 할 수 있겠다. 즉 한국적 추상이란 서구 모더니즘의 추상 형식을 물려받으면서도 내용은 전혀 다른 내적 존재 의식의 탐구의 결정(結晶)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다. 국내 단색화가 천착했던 무작위, 범자연주의, 정신성, 비물질성과 같은 맥락이 그것이다. 
그의 작업은 외견상 한국의 단색화보다 서구의 모노크롬 전통에 보다 더 가까이 들어앉아 있다. 한국의 단색화 작가들이 젖은 상태의 한지를 밀어내면서 질료를 실험하거나, 캔버스 뒤로 물감을 밀어 넣으면서 서구 모더니즘의 회화 바탕에 대해 도전하는 일련의 창작의 방법론에 천착했다면, 주운항은 편평한 2차원이라는 서구 모더니즘의 회화 바탕을 계승한 채, 그 위에 거의 완벽에 가까운 황금률의 조형적 구성과 그것이 창출하는 하모니를 지속적으로 실험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철저하게 서구적 형식에 입힌 동양적 사유, 더 나아가 ‘한국적 정신성의 현현(顯現)’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라는 사실이다. 그의 작업에 나타난 철저하게 서구적 조형 요소인 점, 선, 면, 원, 직사각형 등은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우주관이 반영된 것이다. 
예를 들어 그의 회화에는 원(圓)의 형상이 도드라지게 화면의 중앙에 자리하는데, 이것은 “평면 위의 한 점에서 일정한 거리에 있는 점들로 이루어진 곡선”이라는 정의로 해설되는 서구의 수학적 사유의 결정체이다. 동양적 사유에서 이 원은 하늘(天)로 대표되는 우주관을 반영한다. 그것은 영계나 천국이라는 종교관을 아우르는 대우주의 상징이다. 즉 반야심경의 핵심인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即是空空即是色)이라는 존재/부재를 함께 아우르는 ‘비어 있는(空)’ 무한한 우주 공간이며, 만물을 낳는 기본수인 0(zero)의 의미를 함유한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직사각의 형상은 또 어떠한가? 사각형은 “꼭짓점과 변을 각각 4개씩 지니고 있는 4개의 선분으로 둘러싸인 도형”이며, 여기서 직사각형은 “두 쌍의 마주 보는 변이 서로 평행이고 그 길이가 같고, 네 각의 크기가 모두 같은 사각형”이다. 동양적 사유에서 이것은 땅의 세계를 상징한다. 육체를 가진 인간과 물질로 구성된 만물들이 존재하는 공간이자, 네 방위를 표하는 숫자 4의 의미를 함유한다. 
작가 주운항은 자신의 작업에 나타난 원을 “희망, 꿈, 기쁨, 에너지, 확산 등의 추상적 의미”로 파악하고, 화면 위에 오브제로 붙인 사각형의 물체를 “의식의 근원 및 중심, 조화, 질서”를 상징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의 작품에서 무엇보다 주요한 것은 이러한 기초적 조형요소가 각자의 의미의 범주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호관계 속에서 “긴장감과 울림의 에너지를 이끌어 내어 이상 세계를 향한 인간 의식의 미를 표현”하려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그에게 있어 추상의 궁극 지점이란 물질만 덜렁 남는 평면성의 매체적 속성에 집착하는 서구의 추상과 달리, 이처럼 “의식이 현현하는 추상”을 시도하는 일이다. 그것을 통해 서구 전통의 추상과는 상이한 한국적 추상의 가능태를 실험하고, 조화로운 이상 세계의 염원을 자신만의 작업 언어로 구축해 내는 일에 골몰한다.   

주운항, 인중천지일, 30P, 2012


주운항, 인중천지일, 6F, 2012


주운항의 추상 - 인중천지일의 이화세계
그의 작품에 있어 추상적 상징들이 맞닥뜨려 창출하는 상호 조화의 세계는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라는 대우주와 소우주의 만남을 주선한다. 보라! 하늘(天)로 대변되는 원(圓)을 머리에 이고 인간(人)으로 대변되는 사각형의 오브제가 지평선(地) 위에 서 있는 장대한 ‘풍경 아닌 풍경’을 말이다. 그것은 분명코 우주의 상징을 추상적 풍경으로 치환시킨 인간 의식의 세계를 그린다. 보이지 않는 의식을 보이게 만드는 그의 회화는 미술의 언어로 철학의 지평(地平)을 탐구하는 명상화(瞑想畵)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그 명상의 주체는 인간이다. 대우주를 품은 소우주로서의 인간이다. 그의 조형이 담고 있는 작품 세계는 흥미롭게도 천부경(天符經)이 피력하고 있는 만물의 운행 원리(텍스트)를 시각화(이미지)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의 작품 제명 ‘인중천지일’은 실제로 천부경으로부터 빌려 왔다.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이 하나로 일체를 이룬다”는 의미의 이 글귀는 인간이 절대적 인식의 주체임을 명확히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주운항의 작품에 드러난 태극의 4괘를 닮아있는 3개의 사각형 오브제가 나란히 놓여 있는 도상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천부경에서 발견되는 ‘석삼극무진본(析三極無盡本)’이란 글이 “하나가 셋으로 분할되어 드러나도 근본은 역시 하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듯이, 주운항의 3개의 사각형 오브제는 결국 완성된 하나의 인간 주체를 상징한다. 
  보라! 주운항의 작품에서, 3개가 한 쌍을 이루는 사각형 오브제는 우주의 두 가지 기운인 양(―)과 음(--)이 만나 변주를 이루면서 8괘로 발전하고, 5행(五行)으로 운행한다는 동양의 우주 원리의 근본적인 요소를 상상하게 만든다. 즉 천지인이 한 쌍을 이루고, 건(하늘), 곤(땅), 감(남자, 물), 리(여자, 불)라는 4괘가 서로 만나 대우주를 만드는 우주의 생성과 운행의 원리를 그의 작품에서 읽어내게 되는 것이다. 그의 음양오행의 도상 속에서 그리고 푸르디푸른 화면에서 혹은 붉디붉은 추상화에서 말이다. 결국 그의 작품 속 4괘의 변주는 양과 음이 상극이 아니라 상생을 이루는 인중천지일의 근본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실용을 전제하지 않는 순수 예술이 과연 인간에게 유용한 것일까? 창작자의 자기 배설이 휘몰아치는 작금의 현대미술 속에서 주운항은 회화로 접근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弘益人間)를 꿈꾼다. 즉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이치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는 일견 현대미술의 속성과는 멀어 보이는 이러한 의미를 그는 추적한다. 그의 2015년 작가노트에 적힌 다음과 같은 글, 즉 “나는 창조자가 되기 위해 이곳에 존재한다. 나와 민족과 인류를 위한 홍익인간 이념의 진리를 미로 창조하기 위해 이곳에 존재한다”는 말이 의미심장한 까닭이다. 

주운항, 아리랑, 50F, 2013

주운항, 아리랑, 60.6정각, 2013

주운항에게 미술은 세계와 대면하는 침묵의 언어이다. 그는 작업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을 맹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화세계’의 이상을 이 땅에 미술의 언어로 실천하고자 하는데 골몰한다. 혼탁한 가치 혼란의 시대에 치유의 미학과 진선미(眞善美)의 이상을 회화의 언어로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가 관습화된 일상의 관점과 실세계의 경험만으로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미시적 세계인 양자물리학(quantum physics)이나 내적 직관과 인식으로만 접근 가능한 신지학(theosophy)에 관심을 갖는 까닭도 그것이다. 
그는 ‘일상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세계를 ‘미술의 눈’으로 보고자 한다. 즉 침묵의 언어인 미술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그가 작품 속 원형상의 뒤에 성배와 같은 아우라를 표현한 까닭도 ‘보이지 않는 우주와 인간의 에너지인 기(氣)와 파동(波動)의 세계’로부터 이화세계를 구축하는 주요한 원동력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마치 고갱(Paul Gauguin)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D'où venons-nous ? Qui sommes-nous ? Où allons-nous ?)〉(1897)라는 한 작품 제목에서 드러낸 질문들과 공유한다. 그런 면에서 조형의 형식은 서로 다르지만, 고갱의 작품이 그러했듯이, 주운항은 자신의 단순한 추상의 조형 언어 속에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되묻고자 한다. 미술의 가치와 생멸(生滅)의 ‘인간 존재’에 관한 끊임없는 문제의식과 부딪히면서 말이다. ●


출전 /
김성호, '의식이 현현하는 추상의 세계', 카탈로그 서문 (주운항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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