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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서문│한국화의 접점 展 /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사유적 관조-비움과 지움

김성호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사유적 관조 - 비움과 지움


김성호(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기획자의 서언에서 드러나듯이, 이번 전시 《한국화의 접점展 - 반영과 여백》은 “빠르게 발전하는 현대 문명 속에서 ‘한국성’을 인지하고,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기획된 전시”임을 명확히 표명한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서 기획자는 한국적 정체성과 한국적 미감의 공통분모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한국화의 정신과 조형에 대한 동시대적 변용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 전시에는,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화두를 부단히 실험해 온 한국미술의 대표적인 작가 12인이 초대되었다. 한국화의 전통적 장르 내부에서 사유적 실험에 천착해 온 작가는 물론이고 평면성이라는 매체의 한계를 탈피하여 한국화의 조형적 확장을 시도해 온 일군의 작가들과 더불어 한국화의 장 밖에서 한국성을 고민하는 작가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II.  반영 혹은 '사유적 관조'
전시명이 제시하는 ‘반영과 여백’은 한국화가 당면한 현재적 상황과 더불어 그것의 고유한 미학을 상기시킨다. 필자는 이것을 ‘사유적 관조’와 ‘비움과 지움’이라는 개념으로 풀이한다. 
여기서, 반영(反映)이란 ‘빛이 반사하여 비치는 것’처럼 ‘다른 것에 영향을 받아 나타난 현상’이다. 달이 스스로 빛을 발하지 않으면서도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태양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반영의 효과 때문이다. 타자와 연결되어 주체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것, 그것은 피아의 세계관과 다를 바 없다. ‘피아(彼我)’란 사전적 의미로 “그와 나 또는 저편과 이편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내 손이 내 몸으로 연결되는 소우주이고, 내 몸이 대우주로 연장되는 소우주이듯이, 피아의 세계관은 언제나 타자의 세계와 교류하는 반영의 미학을 담는다. 따라서 한국화에서 보이는 대상으로서의 풍경은 자취를 감추고 인간 주체와 대화하는 또 다른 주체로서의 산수가 된다. 내가 산수이고 산수가 나인 세계관으로부터 반영의 미학이 드러난다. 
작가 송수련의 작품 제명은 대개 〈관조〉 혹은 〈내적 시선〉이다. 관조(觀照)는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비추어 보는” 반영의 시선이다. 그것은 분석과 관찰을 시도하는 서구 전통의 물리적이고 과학적인 의미의 시선과는 궤를 달리 한다. 그것은 작가의 말대로 “본질을 응시하려는 영혼의 시선”이자, 마음으로 바라보는 “내적 시선”이다. 분석을 시도하지 않고 본질을 보려고 하니, 화면은 형상성을 탈각하고 추상화되어 있다. 푸른 심연, 어둠이 짙은 밤하늘 혹은 우주의 별자리를 오가는 그녀의 추상화는 형상의 다양성을 내적 시선으로 한데 품어 안는다. 
작가 김태호 역시 ‘물리적인 힘이 아닌 이질적인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유기적인 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바위를 만져 꽃잎을 만드는 예술의 힘’은 대상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먹이 지나간 거친 갈필의 흔적을 아주 간결한 방식으로 선보이는 그의 현대적 수묵화는 이러한 ‘유기적인 힘’의 가능성을 탐구한 것에 다름 아니다. ‘스토브’라는 오브제와 평면의 회화가 마주 보고 있는 그의 ‘조응(照應)으로서의 관계 미학’은 이러한 ‘반영’ 혹은 ‘사유적 관조’의 태도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작가 곽훈은 이전 작업에서 창호지나 고래뼈 등과 같은 오브제를 매체화한 설치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작품이라는 텍스트가 작품이 놓이는 컨텍스트와 맞닥뜨리면서  펼치는 관계의 미학에 집중하는 것이었다고 하겠다. 반면, 이번 전시의 출품작은 일필휘지의 즉발적 감성에 몸을 실은 문인화적 기풍이 역력한 표현주의적 회화를 통해 작가의 창작 의지 대 감상자의 시선, 이성 대 감성, 계획 대 무계획 등이 조응하면서 꿈틀대는 하나의 생명체 와 같은 회화 만들기에 집중하는 것이라 하겠다. 작가의 내면으로부터 출발하는 조응과 만남의 관계학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작가 정현은 침목(枕木), 파쇄(破碎)공 등 폐기 처분된 것들의 이전까지의 삶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용광로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고철들을 짓이겨 내는 ‘쇠를 부수는 쇳덩어리’인 파쇄공은 원래 16톤의 육면체였으나 부수어지는 것들로부터 매번 저항을 받아 상처를 입고 이리저리 찌그려져 8톤의 둥그런 구(球)의 형태가 되었다. 세월의 켜를 간직한 침목을 깎아 자신의 작품 안으로 끌어안거나, 상처투성이인 오브제를 가져와 자신의 작품으로 선언하는 정현은 능동적 주체와 당면한 타자의 관계학을 탐구한다. 

송수련_내적시선_205X290(2013)한지에_먹


곽훈_CHI,ACRYLIC ON CANVAS, 2016, 227x162cm



III.  여백 혹은 '비움과 지움'
여백(餘白)이란 유한한 공간 속에서 무엇인가 행하고 난 뒤 남겨진 공간이다. 즉 “종이 따위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남은 빈자리”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유한한 공간을 넘어서는 곳에서 여백은 어떻게 정의되는 걸까? 
작가 이강소는 “눈에 보이는 것은 마음에서 온 결과”로 간주한다. 환영이라는 것 자체가 마음의 내면에서 온다는 것이다. 지각의 범주 너머 마음의 영역은 거의 무한대이다. 따라서 이 공간에서 행해진 예술은 무(無)에 가깝고 남겨진 영역은 원래의 모습인 무한대(無限大)에 가깝다. 일필휘지의 초서(草書)처럼 화면 위에 순식간에 그려진 형상을 보라! 그것은 확연한 기운생동의 힘을 담고 있다. 그 형상은 자신보다 더 넓은 여백을 남김으로써, 그의 작업이 결국 비우기의 행위와 같은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 김호득의 작품은 군더더기가 제거된 사물의 정수를 줄곧 지향해 온 까닭에 검은 먹의 단출한 흔적조차 의미심장해 보인다. 중력에 저항하면서 만들어낸 비교적 간명한 획(劃)들은 분명히 일필휘지의 속도감이 내재한 빠른 ‘서(書)’를 계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흐르는 거센 계곡물 사이에 위치한 바윗덩어리나 산등성이의 능선처럼 형상의 ‘화(畵)’로 변주된다. 그의 ‘계곡변주’나 ‘산등성’이라는 작품 시리즈는 대표적이다. 그는 회화와 설치의 영역을 오가는 대형 작업들을 통해서 텍스트와 이미지의 변주를 시도하고 비움과 지움이라는 여백의 미학을 논한다. 
작가 최병소에게 있어 여백의 미학은 구체적이다. 앞서의 두 작가가 비움의 행위를 통해 여백을 탐구했다면, 최병소는 인쇄물의 텍스트 지움을 통해서 여백의 미학을 탐색한다. 그의 작업에 있어서 신문에 게시된 ‘주식 시세표’의 한 신문 면을 온통 흑연과 잉크로 뒤덮어 지워내는 방식은 실상 지극히 회화적인 드러냄의 행위이다. 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려서 드러내고자 하는 행위가 분명하니까 말이다. 이처럼 그는 칠한다는 미술 행위 속에 정보를 지우는 사회적 행위를 동시에 포함함으로써 지우기와 더불어 비우기 나아가 여백의 문제의식에 천착한다. 
작가 우종택의 작품에서 여백의 미학은 먼저 색으로부터 온다. 검은 먹색을 얻기 위해 부단히  질료적 실험에 투신하는 그의 색에 대한 연금술은 작가를 어둠 속에서 사유하는 존재로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간다. 일견 검은색은 존재를 가리고 감추어 텅 비워내는 부재의 색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어둠이 충만한 존재의 색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알 수 없는 생명의 힘으로 꿈틀거리는 존재 자체로 보이기도 한다. 존재와 부재가 납작하게 만나는 검은색을 가지고 시원(始原)의 죽음을 지금, 여기에 소환하는 작가의 일련의 회화적 제스처는 따라서 샤먼의 영매(靈媒) 행위처럼 무속적이다.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세계를 연결하는 무당의 굿판처럼 그의 붓질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작두를 타는 긴장과 격렬함이 교차한다. 삶과 죽음 사이에 위치한 납작한 검은 회화라는 접점 지대(interface)에서 ‘텅 빈 충만’의 미학을 실험하면서 말이다.     

최병소_Untitled_0110416_신문,_볼펜,_연필_54x80cm_2011


우종택_시원(始原)의_기억,_한지에_혼합,235x576(부분),_2014
 

IV. 소소한 소우주와 '자연주의 미학'
우리의 존재론적 미학이란 항상 심대한 거시적 담론 속에서 싹트는가? 아니다. 그것은 보잘 것 없는 작은 일상, 소소한 삶의 언저리 어디에서도 어렵지 않게 스멀스멀 자라난다. 우주 생성의 원리란 지금 여기의 소소한 소우주의 반영에 다름 아니니까 말이다. 소소한 소우주와 자연주의 미학, 그것은 여전히 한국적 미술의 자연관을 반영하는 주요 개념이다.   
작가 김진관의 작업 세계는 앞서의 부재, 무의 세계들로부터 생성의 가능성을 무한히 탐구한다. 여기서 생성의 가능성이란 대개 보잘 것 없고 유약한 것들로부터 나온다는데 우리의 논의가 집중된다. 씨앗, 콩, 작은 생명체들과 더불어 말라비틀어진 곡물의 이파리들, 낙엽, 억새 잎들이 흩뿌려져 있는 그의 화폭 위에서 우리는 보잘 것 없고 소소한 것들의 소우주가 연동시키는 대우주를 만난다. 우리의 손금과 경락(經絡)이 이미 대우주의 운행 원리와 연동되듯이, “한겨울 모진 추위를 이겨낸 억새풀이나 만추의 씨앗”은 이미 대우주의 운행과 연동되는 생명의 응집체이다. 
작가 조환은 일상의 익숙한 것들로부터 미처 ‘덜 깨달은 새로움’의 존재를 재발견하는 일에 매료되어 있다. 그는 회화 전공자로서 조소에 힘을 기울였던 유학 시절의 경험을 자산으로 삼아 습관적으로 또는 맹목적으로 써왔던 먹의 개념을 다시 정리했다. 또한 철판을 재료로 삼은 대나무 작업은 그를 ‘새로운 깨달음’으로 인도했다. 잎 모양을 무수히 잘라내고 부식이 되도록 방치한 채, 시간의 우연한 흔적을 작업 안에 끌어 들이거나, 이를 다시 우레탄으로 도포하여 부식된 과거를 감추고, 대나무의 풍경을 그림자로 드리우는 그의 조형 언어들은 모두 자연주의 미학을 기초로 ‘동양적 연금술’의 신비 세계와 연계한다. 
작가 이철주의 작업은 일련의 내러티브를 해체시키는 사각형 조각들로 파편을 나눈 후 다시 새로운 형상 언어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즉 텍스트를 해체하고 퍼즐을 새로 구성하는 데 있어, 원래의 텍스트의 의미는 사라지고 우연과 즉흥으로 재구축된 새로운 조형적 의미만이 강조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앞뒤가 해체되고 새로 조합됨으로써 판화와 같은 시각적 효과를 확장시킨다. 그것의 미시적 세계는 그의 작품의 제명 ‘소우주(小宇宙)’처럼 작지만 영묘한 세계를 우리로 하여금 기대케 한다. 
작가 차기율의 작품 세계는 ‘순환의 여행/방주(方舟)와 강목(綱目) 사이’라는 주제 아래 서양의 문명 세계와 동양의 자연관을 융합한다. 그에게서 방주란 기독교 신화의 “대홍수 이후 살아남은 노아의 방주를 의미하고 서양 문명을 상징하며, 강목은 한방에서 쓰이는 약초나 약재의 세세한 기록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따온 것으로 동양사상을 상징”한다. 이는 서양으로 상징되는 ‘문명’과 동양으로 상징되는 ‘자연’과의 융합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것은 양자의 융복합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이지만, 고고학적이고 인류학적인 접근을 통해 양자의 세계를 횡단하는 그의 소우주 탐구는 대개 문명에 대한 자연주의, 서구에 대한 동양을 해답으로 제시하곤 한다. 


김진관.콩,160x160cm,한지에채색,2009



V.  에필로그
 《한국화의 접점展 - 반영과 여백》은 서구 사유에 대면하는 동양 정신의 승리를 일방적으로 강조하기보다 양자의 화해와 교류를 제안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의 화두는 현재까지도 ‘동양화’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한국화’의 범주 내부에서의 고민을 훌쩍 뛰어 넘어 ‘한국인이라는 미술가 주체’가 대면하는 ‘한국적 미술’에 대한 본유적 정체성 찾기에 관한 것으로까지 확장한다. 특히 조각과 설치의 장에서 주로 활동하는 작가들을 초대해서 한국화라는 이름으로 함께 고민하길 강권하는 이번 전시의 제안은 시급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런 만큼, 1980-90년대 여러 차례 고민의 일단을 드러내었던 한국적 미술에 대한 다양한 성찰이 현 시점에서 재정리되어야 할 긴급한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하겠다.
이번 전시는, 오랜 뚝심으로 이러한 길에 천착해 온 작가 12인의 작품 세계를 통해서 ‘반영 혹은 사유적 관조’와 ‘여백 혹은 비움과 지움’이라는 한국 미학의 세계를 풀이한다. 그것은 고유섭, 김원룡, 최순우 등의 한국의 미학자, 미술사학자들의 이론적 고찰에 근거한 것이기보다 창작의 현장에서 땀을 흘려 온 미술가들의 보다 실천적인 해설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후배 세대의 미술가들에게 보다 구체적인 한국화의 미래적 가능성의 길을 선보이는 것이라 하겠다. ●
  

출전 /

김성호,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사유적 관조 - 비움과 지움', 카탈로그 서문, (한국화의 접점展 - 반영과 여백, 2016. 9. 22-11. 10, 이천아트홀 아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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