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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가론│최해숙 / 생의 근원과 천상의 암호(2편)

김성호

화가 최해숙의 최근작 생의 근원과 천상의 암호

 

김성호(미술평론가)

 

1편에 이어서 


원의 세계 속 각인되는 천상(天上)의 암호(暗號)

〈원의 단상〉(2004-2006) 시리즈에서 우리는 원의 세계에 대한 화가 최해숙의 다음과 같은 진술에 귀 기울인다. “둥근 원상(圓相)은 동그라미 하나로 그리는 것이지만,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우주의 본질이며 근원적 형태이다. 육십갑자로 돌고 돌아오는 윤회의 시간이나 자연의 이치로서 끝없이 되풀이해 온 생멸의 순환도 원상의 고리이다. 또 태극으로 생명의 근원적 씨알로서의 그 본질은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이며, 안과 밖이 없는 시공을 상징하기에 기, 종, 내, 외 등 서로 다른 요소가 하나를 이루는 우주적 조화를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6) 이 시리즈 작품들은 대개 3개의 원으로 구성되어 천지인의 삼극(三極)의 개념을 효율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조화를 도모한다. 원형으로 만들어진 옛 윷판의 구성 원리인 29개의 점이 달의 공전주기를 나타내면서 삼극이라는 우주의 생성 원리를 상징하고 있음을 상기할 때,원의 형상이라는 것이 천부경의 ‘더불어, 하나됨’의 시공간과 화(和)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어느 영혼의 노래〉(2006)라는 제명의 작품들은 또 어떠한가? 여기서는 원의 형태로 둘러 싸여 있는 산의 형상과 그 속에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는 화가의 분신처럼 보이는 한 마리의 새의 모습이 발견된다. 이 시리즈는 원형상 경계의 ‘안과 밖’이 소우주/대우주, 현실/이상, 차안(此岸)/피안(彼岸), 인간/신으로 마주하는 가운데 그 속에 자리한 미물의 존재인 새 한 마리가 우주의 신비를 깨달아 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인다.


그 뿐인가? 병마와 싸우면서 작업했던 〈병상 일기〉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원의 형상은 부분적이긴 하지만 언제나 화면 안에 자리한다. 화가가 카톨릭에 귀의하면서 받아들인 종교의 세계를 화폭에 담고 있는 〈만남-바이블 이야기〉, 〈만남-기도〉 시리즈에서도 이 원의 형상은 자리한다. 때로는 만물의 근원인 창조주를 상징하는 빛의 형상으로, 때로는 일자의 형상으로, 때로는 비둘기를 품은 성령의 형상으로, 그리고 만인을 품은 성자의 형상으로 화가의‘원’은 자리한다.

“원상을 그리면서....... 포용하고 아우르는 화(和)의 마음을 다스린다.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을 담으면서...”7)라는 최해숙의 작업 노트에서도 드러나듯이, 화가에게 ‘원’이란 ‘생의 근원과 인간 존재’라는 거시적 주제를 담는 조형적 그릇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 나아가 원의 이미지는 가장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단군신화’ 시리즈인 일련의 〈아사달의 아침〉 (2014)이라는 제명의 작품들과 ‘우주 암호’ 시리즈인 〈대화〉(2015) 라는 제명의 작품들에서 보다 더 전면적으로 나타난다. 그녀의 최근작에는 숫자라는 산술적 기호와 알파(Α)와 오메가(Ω)가 상징하는 존재론적 텍스트 그리고 상징적 기호 체계들이 원형의 이미지 내외부에서 지속적으로 만난다. “이제 거룩하신 영혼의 상차림에 / 한동안 나를 설레게 했던/ ‘무시무종(無始無終)의 노래’를 초대해 본다. / 문 열고 손 맞잡아 / 우주 창조의 암호를 도형과 수식으로 / (...) ‘화(和)를 위한 대화(對話)’에 / 귀를 기울여 본다.”8)라는 화가의 최근작에 대한 고백적 진술은 카톨릭 신앙에 근거한 최근의 작업이 이전의 관심이었던 천부경, 단군신화와 같은 한국의 전통 정신과 별리되는 것이 결코 아님을 피력한다.

최해숙이 자신의 ‘작업 여정’을 정리한 표에서 기록하고 있듯이, 그녀의 관심사는 최근의 자신의 카톨릭 신앙과 이전의 관심사였던 천부경 사이에서 모색하는 ‘상호 간 대화’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원의 단상이라는 한국적 전통 세계를 자신의 신앙과 맞물리게 함으로써 서구의 세계를 끌어안는 전략이라고 하겠다. 달리 말해 그녀의 회화는 서구로부터 기원한 신(神)의 우주 창조 암호를 동양의 철학으로 풀어내면서 동양/서양, 주체/타자, 주체/객체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를 모색하는 작업이라 할 수도 있겠다.

어긋날 것 같은 카톨릭과 천부경 사이에서의 대화를 시도하는 그녀의 작업은, 인간-나무-숲이 교차하는 이미지를 통해서 아담의 선악과(善惡果)와 환웅의 신단수(神檀樹)의 신화를 오버랩시킨다. 또한 한 존재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신성과 인성을 나눠 갖는 서구의 ‘하나님’과 더불어 환인(桓因), 환웅(桓雄), 환검(檀君)으로 신과 인간의 변별적 정체성을 나눠 갖는 한국의 ‘하느님’은 겹쳐진다. 사람을 한꺼번에 남녀로 만든 창세기 1장과 달리 아담과 하와를 분리해 만든 창세기 2장의 변별적인 카톨릭 신화는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와 더불어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記)의 ‘같은 듯 다른’ 신화들을 하나로 포개 놓는다. 이 모든 대화의 가능성과 서사들이 “오묘한 수수께끼”9)이지만 그녀는 오늘도 “화폭 속 미로에서 길을 묻는”10) 방식으로 화업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최해숙, 만남4_ 기도, 2011



최해숙, 대화I_온_2015


2015년 최근작에서 화가는 원(圓) 이미지 안팎으로 쉬이 판독할 수 없는 도형, 기호와 수식들로 화면을 꾸려낸다. 그것은 “신(神)의 우주 창조 암호”11) 즉 ‘하늘로부터의 암호’를 찾는 일이 일련의 카톨릭 신화와 천부경 신화 사이의 ‘대화’로 가능할 수 있지 않겠는가를 질문하는 일이다. 물론 그것은 무엇보다 신학 혹은 종교학이 아닌 신앙으로 가능한 일이리라. 천부경의 삶의 철학과 그리스도인의 진리가 만나게 하는 일은 신앙의 힘이다. 최해숙의 신앙심 가득한 최근 회화의 언어는 “이제 남은 시간 / 설렘으로 나는 두드릴 것이다. / 천지인(天地人)의 비경(祕境)을!”12)이라는 2001년의 결단이 여전히 빛을 잃지 않게 한다. 그 빛이 2015년에 이르는 현재까지도 살아서 팔순의 삶에 이르는 노년의 화가로 하여금 ‘인간 존재론’에 대해서 끊임없이 사유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년의 연륜에 이르기까지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철학하는 화가로 이끌고 있는 정신이 젊은 작가’라고 그녀를 평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할 것이다. 여전히 겸손한 자세로 ‘세상과의 화해와 대화’를 작업의 모토로 삼으면서 말이다. ●



주석 /
1) 김성호, 「생멸(生滅)의 순환을 여는 원(圓)에 관한 단상」, (최해숙 작가론- 표지 작가), 『미술세계』, 2005, 9월호, pp. 82~87.
2) 최해숙, 「수성아트피아전」, 작업 노트, 2015. 12.
3) 김성호, 위의 글, 2005, p. 87.
4)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5)김규태, 「원형 및 신화비평」, 『문예비평론』, 서문당, 1982, p.78. 
6) 최해숙, 「원의 단상전」, 작업 노트, 2006, 12. 
7) 최해숙, 위의 글, 2006. 
8) 최해숙, 위의 글, 2015.
9) 최해숙, 「열림 소리_천부경전」, 작업 노트, 2003. 12. 
10) 최해숙, 위의 글, 2003.
11) 최해숙, 「나의 작업 여정」, 도표, 2015.
12) 최해숙, 「십이지전(十二支展)」, 작업 노트, 2001.
  

출전
김성호,「화가 최해숙의 최근작, 생의 근원과 천상의 암호」, (최해숙 작가론 『최해숙』,화집, 미술세계, 2015, pp.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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