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곳’의 심리적 위상학과 타자의 유형적 이미지

김성호(미술평론가)

김내영은 그간 인터넷, 특히 SNS의 공간에서 발견되는 다수의 불특정의 이미지들을 자신의 회화를 위한 소재로 추출하고, 차용하여 왔다. 과도한 치장을 통해 자기 과시를 일삼는 나르시시스트의 이미지는 물론이고 결점을 가리고 사실을 은폐하여 실체를 왜곡하는 리터칭과 합성 몽타주 이미지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유명인이 되려는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실명 주체’이거나, 이니셜 또는 가성명(假姓名)으로 치환된 불특정의 주체 그리고 이미지의 생산자는 분명코 있으되 결코 특정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평범한 주체들로부터 생산된 것들이다. 김내영이 간파하고 있듯이 이러한 전형적(typical)이고 유형론적(typological)인 이미지를 생산하는 주체들은 저마다의 욕망으로 가상공간에 잠입하는 불특정한 보편적 주체들이다. 바로, 우리의 친구, 가족, 이웃과 같은 주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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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내영은 이러한 보편자들이 생산한 이미지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그곳’이라는 주제 아래 자신의 것으로 가져온다. ‘그곳’이라는 공간적 위상 개념이란 ‘그때’라는 시간적 개념과 떼려야 뗄 수가 없듯이, 우리는 그녀의 작업을 ‘그때, 그곳’이라는 심리적 위상학의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그럼으로써 그녀의 회화에 담겨진 이미지의 유형론을 어떻게 논할 수 있을지를 검토한다.

‘그때 그곳’_위상학과 심리적 위상학의 시공간

먼저 김내영의 ‘그때 그곳’을 설명하는 심리적 위상학의 차원은 무엇인가? 주지하듯이, 위상학(位相學, topology)이란 공간의 개념과 연동된 여러 성질들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이다. 대개위상수학 혹은 위상기호학으로 대체해서 이해하는 경향을 생각해 본다면, 김내영의 전시 주제인 ‘그곳’은 이러한 x, y, z축의 공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위상학인 것이다.

그런데 김내영의 ‘그곳’은 연속성과 불연속성, 열린 집합과 닫힌 집합의 범주화를 야기하는 공간의 위상학으로부터 뫼비우스 띠처럼 이면과 배면을 지속적으로 오가는 꼬인 공간학을 정초한다. 왜냐면 김내영의 ‘그곳’의 위상학은 ‘그때’라는 시간의 차원이 연동되는 체험의 심리적 공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청춘열차〉라는 제목의 기차 밖 철로 풍경은 그녀의 체험이 녹아든 것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응시하는 프레임 속 풍경화는 그녀가 촬영한 사진 이미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그녀가 SNS의 공간에서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서 얻어 낸 ‘타자들이 생산한 이미지’인 것이다. 즉 다른 이들이 촬영한 이미지일 뿐 그녀의 실제적 체험과는 아무런 연관성을 갖고 있지 못하는 ‘공간 이미지’이다. 심지어 놀이기구가 있는 한 유원지 풍경은 그녀가 실제로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공간이다. 따라서 ‘그곳’이란 화자(話者)가 있었던 곳이라는 대과거를 전제하는 지시대명사임에도 실제로 그녀의 ‘그곳’은 그녀가 한 번도 체험하지 않는 공간마저 거리낌 없이 포함한다. 그럼으로써 그녀의 회화는 공간의 차원으로부터 심리적 공간의 차원으로 변모되는 것이다.

마치 프로이트가 지형학적 이론(topographical theory)를 통해 공간화되기 어려운 정신세계를 의식(consciousness), 전의식(preconsciousness), 무의식(unconscious)으로 공간화했던 분석처럼, 김내영의 ‘그곳’은 심리적 공간으로 치환되고 분절된다. 관음증을 부추기는 관능적인 이미지로부터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을 자고 있는 개인의 내밀한 일상의 이미지, 반려동물들과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친밀한 일상의 이미지, 주말 저녁 벗들과 노래방에서 한바탕 노래 솜씨를 뽐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미지들에 이르기까지 김내영의 ‘그곳’의 풍경들은 희로애락의 감정들로 가득하다. 결코 분절될 수 없는 정신과 심리를 범주화했던 프로이트의 시도처럼, 김내영 또한 ‘그곳’이라는 심리적 공간을 자잘하게 분절한다. ‘그곳’이라는 심리적 풍경을 관객들이 의심조차 하지 않고 자신의 실제의 일상 이미지로 봐주길 기대하는 마음과 더불어 숨겨진 이미지의 진실을 알아차리길 기대하는 마음을 지속적으로 교차시키면서 말이다. 마치 아래의 작업 노트에 나타난 작가의 바람처럼 말이다: “현실과 가상의 일상을 구분 짓는 일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는지 모른다. 다만 나의 작업이 실상인지 허상인지 판가름되기 보다는 재현된 화면 그 자체에 집중되길 바란다.”

이미지의 유형론과 전형적 시선

김내영은 2016년 1월부터 시작되는 개인전의 테마를 ‘그곳_Attractions’으로 설정하고 이전까지 선보여 왔던 ‘그곳’ 혹은 ‘그때, 그곳’의 심리적 위상학의 시공간을 본격적으로 탐구할 예정이다. ‘그곳’의 영문을 ‘구경거리들 혹은 명소들(Attractions)’로 구체화한 그녀의 전시 제명에서 드러나듯이 그녀가 계획하는 전시는 이전의 인물과 동물들의 이미지를 되도록 배제하고 풍경과 같은 공간의 위상학에 보다 더 집중한다.

구체적으로는 김내영은 춘천시문화재단의 레지던시 공간인 아르숲 아틀리에에서의 작업을 위해 서울과 춘천을 오가면서 만나게 된 기차 밖 주위 풍광이나 춘천시의 명소들을 대상으로 한 회화들로 출품작을 범주화할 예정이다. 조형 방법론으로는, 인터넷 속 타자가 생산한 사진 이미지를 취합하고 그것을 참조하여 재현의 언어로 자신의 회화를 만드는 이전의 창작 방식을 계승한다. 그녀는 “춘천을 바라보는 이방인과 뜨내기의 시선”이라는 자신의 시각을 접고 춘천 시민이든, 관광객이든 순전히 타자의 시선에 의해서 포착되었던 춘천의 명소 사진들을 인터넷을 뒤져 취하고 그것을 자신의 회화로 변환한다.

그러나 춘천의 명소라는 대상을 바라보는 모두 제각기인 다양한 시선들은 의외로 다양하지 않다. 관자들의 관성화된 보기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일련의 ‘유형론(typology)’의 범주들을 만들어 내는 까닭이다. 특정한 명소들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도록 대상을 사진의 프레임 속에 가두는 방법은 우리에게 이미 유형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뱃놀이를 할 때는, 배의 일부분과 풍경을 함께 담아 뱃놀이에 참여하고 있는 사건을 기록하려는 습관이 있다든가, 기차역을 담을 때는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하는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거나 이미 도착한 기차를 사선으로 한꺼번에 담으려는 습관들이 우리의 무의식적 심층에 분절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결국 그녀가 취한 다양한 이미지들은 ‘유형론’ 안에서 그것의 다양성이 범주화된다고 하겠다.

실제로 김내영은 인터넷에서 동일한 검색어로 특정 명소의 이미지들 여럿을 찾아 한꺼번에 비교, 분석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회화를 취한다. 철저하게 타자들(만)의 기억을 취합해서 여러 화면으로 재구성하면서 그녀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유형론의 범주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나의 시선에 포착된 불특정 다수의 일상들은 이상하게도 서로가 서로를 닮아 있다. 누군가의 특별한 하루, 값진 추억은 전형적인 시선 속에 얄팍하게 달라붙어 있다. 그러한 일상을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면서 현재 나의 일상을 자각해본다.”

작업 노트에서 보듯이, 김내영은 우리가 언급하는 ‘타자들의 유형화된 이미지’, 달리 말해 ‘이미지의 유형론’을 “전형적인 시선” 혹은 ‘전형성’이라는 말로 포착하면서 특수자들의 경험이 보편화되는 현상을 지각한다. 전형성(typicality)이란 “특정한 사회의 성격과 내부적 모순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 주는 대표적인 성질들”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구체적 상황 속의 특수성의 뚜렷한 현상 방식’을 통해서 사회적, 역사적 보편성을 추출해 낼 수 있는 성질을 의미한다. 춘천의 명소의 이미지들이 특수자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춘천시를 대표하는 매우 익숙한 보편적인 이미지로 비추게 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작가는 이러한 전형성의 표현을 위해 작은 캔버스를 반복적으로 집적해서 특수성을 무화시키거나 홑겹(sigle layer)의 빠른 붓질을 통해서 스냅 사진과 같은 드로잉의 형식을 그녀의 회화 속에 부여한다. 

타자의 위장된 이미지로부터 

한 주체가 익명의 타자들에게 자신을 내보일 때, 이미지의 무수한 결점들을 감추고 위장하면서 이미지의 실체를 과장, 변형 재생산하는 것은 보이기(showing) 전략의 일반론이다. 인터넷의 SNS 공간 속 이미지는 따라서 ‘존재하는 이미지들’ 중에서 최상의 것으로 선택된다. 최상의 이미지는 타자의 시선을 붙잡는 가장 최소한의 조건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상 속 과장되고 왜곡된 이미지를 특수자의 것으로부터 추출해서 보편적 이미지로 치환하는 김내영의 회화 전략은 동시대 미술에서 ‘가상과 실재’라는 매우 유의미한 미학적 지점을 건드린다. 타자의 가상공간으로부터 ‘위장된 이미지’(비예술로서의 사진)를 추출해서 ‘또 다른 위장된 이미지’(예술로서의 회화)로 전환시키면서 ‘실재로부터 온 이미지’(춘천 풍경)을 자신의 가상의 예술 공간 안으로 편입시키는 여러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타자의 경험을 자기화하는 음험한 음모를 의도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삼은 정내영의 회화 전략은 역으로 매우 단순하고 순수하다. 익명화된 타자들의 특수성이 보편화되는 작금의 상황 속에서 “현실과 가상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괴리에 관해 자문하는 것”을 목표 지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처럼 단순 명쾌한 질문 속에서 회화적 방법론의 발상적 전환을 시도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녀의 작업이 컨템포러리의 시대적 맥락을 이지적으로 간파하고 있음에도, 타자의 것을 자기화하는 이러한 발상적 전환이 오늘날 동시대미술에 있어 의외로 많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오리지널리티의 확보와 차별화의 차원에서 풀어 나가야 할 하나의 관건으로 보인다. 물론 그녀가 이번 전시에서 ‘작품의 이미지와 명소에 대한 설명을 함께 수록한 여행 소책자’를 소개하여 선보임으로써 이미지와 텍스트의 제 관계를 심층적으로 모색할 예정이긴 하지만, 그것을 특별히 독창적인 조형 태도로 살피기에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이러한 개념적 과정은 차치하고서라도 작가의 회화적 결과물이 지닌 동시대 표현주의 미술의 조형 언어와의 유사성을 어떻게 극복할지도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작가가 풍경 실험을 거쳐 다시 인물을 대상으로 같은 주제를 탐구할 예정인 만큼, 이러한 문제의식이 개념적 과정에서보다 그녀의 회화적 물성과 표층으로부터 보다 더 구체적으로 발현되길 기대해 본다. 혹은 그녀가 현재까지 시도하고 있는 물체 자체보다 물체와 물체 사이의 관계 지점과 그 사이에 존재하는 빈 공간에 대해 기울이는 회화적 관심이 보다 더 구체화될 때 그녀가 갈망하는 미지의 새로운 지점이 발현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출전 / 

김성호,「‘그때, 그곳’의 심리적 위상학과 타자의 유형적 이미지」, (김내영 작가론), 춘천시문화재단 아르숲 비평 매칭, 『6기 입주작가 비평집-시각적 갈망: 탐』, 춘천시문화재단 창작 공간 아르숲,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