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미술작가론│강성은 / 타자적 풍경으로부터 포월하는 피아

김성호

타자적 풍경으로부터 포월하는 피아


김성호(미술평론가)

 

강성은은 2003년부터 꽤 오랜 시간을 타자들의 삶의 공간을 배회하고산책하면서 그 풍경으로부터 자신의 미술적 언어를 추출해 왔다쉽게 간파하긴 어렵지만 타자,피아관조체험구조유형학과 같은 개념들과 연동되면서 말이다그 첫 작업은 변두리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골목길 풍경으로부터 포착한 보이지 않는 삶의 주체 혹은 타자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이었다창문과 대문이 있고 더러는 작은 마당도 지니고 있는 서민들의 삶의 공간은 저마다 다르게 꾸며져 있지만그녀는 그곳에서 일련의 패턴화된 삶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그것의 유형화를 시도한다.

 



타자(他者)의 이미지관조적 풍경과 익명(匿名)의 유형학

생각해 보라어떤 집의 마당에서 발견된 옷걸이와 각목을 이용해서 굴비를 널어 말리는 방식이 다른 집의 신발을 보관하는 방식에 적용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일은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다강성은은 이처럼 한 집의 깨진 유리창을 복원해 놓은 방식과 또 다른 집의 벽면을 꾸민 방식에서또는 어떤 집의 화분을 놓아둔 방식과 또 다른 집의 물건들을 쌓아 놓은 방식에서 패턴화된 공통의 유형을 발견하고 그것의 다른 듯 같은’ 이미지들을 채집해서 병렬 혹은 대치의 방식으로 자신의 드로잉회화사진설치에 담아낸다마치 사진가 베허 부부(Bernd and Hilla Becher)가 독일 곳곳에서 동종의 건축물을 촬영분류한 사진으로서의 유형학(typology)’의 실천을 떠올리게 만든다그것은 대상을 분류할 수 있다는 주체의 관조적 신념에 근거한다물론 강성은은 실제의 공간에 개입해서 일련의 설치의 언어를 감행하기도 하지만대개 그것은 관조적 풍경화라 할 만큼그녀가 대상과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풍경이었다집의 외관들을 변용하는 소소한 행위들은 각 삶의 주체마다 특수적이고 제각각이지만그녀는 그곳에서 일련의 패턴화된 공통의 익명적 유형들을 발견하고 드러냄으로써 우리의 삶이 얼마나 판박이 같은 삶의 유형학 속에서 지속되고 있는지를 성찰한다.

 






이어지는 그녀의 시리즈 작업인 <남의 집(2007-2009)>도 이러한 타자의 익명적인 삶의 유형들을 관조적 풍경으로 옮겨온 것이다특수적 타자로부터 익명적이고 보편적 타자를 드러내는 방식은 유사하되다른 것이 있다면이전보다는 더 철저하게 대상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베허 부부의 사진이 그러했듯이골목길에 자리한 다양한 표정들의 다세대 주택들이나거리의 관공서 건물빌딩들의 다양한 건물들을 그녀는 모두 정면(façade)의 모습으로 포착해 서 특수자의 모습을 지우고 개체의 특수성을 중성화(中性化, neutralization)한다게다가 작가의 감정과 주관성이 철저하게 배제된 채 가느다란 한지에 세필의 선묘로 그려진 건물의 외관은 마치 설계도의 입면도처럼 차갑고 건조하다종이에 쉽게 퍼지는 까닭에 태생부터 가느다란 직선의 선묘를 표현하기 어려운 매체라고 할 수 있는 먹과 모필을 그녀가 의도적으로 선택하고그것의 고유의 특성을 무화(無化)시키는 방식으로 재료의 한계를 극단적으로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녀가 세필을 세워 일정한 굵기의 수많은 직선을 그리기 위해서는 붓으로부터 연필의 효과가 나올 수 있도록 오랜 훈련의 시간을 거쳐야만 한다그래서 그녀의 실험은 일견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다.

 

나는 이제 오히려 집에 대한 사적인 향수와 기억 그리고 감정들을 모두 제거하고 그 물리적 외관을 형태적으로 파악하여 그림 그리기로 건물의 견본을 만들어 나간다.”

 

그렇다그녀는 농묵과 담묵으로 풍부한 감정적 표현이 가능한 한국화의 질료적 특성을 고의적으로 버리고 단지 그려지는 도구로서 먹과 모필을 선택하고 그것으로 결코 그리기 쉽지 않은 강약 없는 일정한 굵기의 직선들을 고단하게 그려 나가면서 불편한 회화적 실험을 감행한다게다가 건물 개별체의 표정을 감추고 마치 건물들의 견본인 것처럼 그려 나가는 방식은 회화의 독자적 개성이라는 표현주의적 자유로움으로부터 낙하하는 자멸(自滅)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의도하는 것이다자신만의 풍부한 표현의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그러나 하기 쉽지 않은건조한 조형의 언어를 통해서 회화의 가장 근원적인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흔하디흔한 건물이라는 진부한 회화적 대상에 관한 문제뿐 아니라 그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그것을 담담한 어조로 기록한 회화적 결과물은 그리다는 회화의 본질적 질문 자체에 더욱 집중하려는 창작 태도를 여실히 드러낸다이러한 태도는 남이 걷지 않는 길에서 회화의 본질적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역발상(逆發想)으로서의 실험이다생각해 보라평범하지만 다양한 건물들을 정면으로 포착하여 단순화시킬 뿐 아니라 그것들을 유형화하여 그려나감으로써 그녀는 그린다는 회화의 본질적 문제와 정면으로 맞닥뜨리면서피상적인 다름이란 결국 같음의 변종이며 타자들이란 자아의 뿌리에서 다른 줄기를 만든 유형학일 뿐일 것이라는 개념을 구체화시킨다.


 







피아(彼我)의 이미지체험적 풍경과 포월(匍越)의 탈유형학

2011년부터 연필로 도구적 전환을 꾀한 일련의 작품들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풍경을 그린다밤이라는 시간이나 숲이라는 공간으로 혹은 추상적이거나 구상적으로 달리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풍경이다도구적 재료의 역발상적 실험도 여전하다이전의 세밀한 건물 풍경이 먹과 모필을 사용해서 마치 연필이나 펜으로 얇은 선들을 그린 듯한 효과를 드러냈다면숲과 밤의 풍경은 얇은 연필을 사용해서 마치 먹과 모필로 표현한 듯한 숲의 음영과 어둠의 깊이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전자가 한국화의 재료가 지니는 고유한 질료적 특성을 의도적으로 무화시키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재료로 전환하는 작업이었다면후자 역시 연필이라는 고유한 질료적 특성을 거부하고 먹과 모필과 같은 재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하는 작업이라고 하겠다이러한 역발상적 실험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일견 무모해 보이기조차 하다.특히 흑연보다 점토를 많이 함유하고 있는 연필 혹은 HB 연필로 어두운 색을 내겠다는 무모함은 단단한 연필심을 종이 위에 무수히 반복해서 올려 그리는 고된 노동과 무수한 시간을 요구한다효과적인 표현 수단을 거부하고 외려 표현 효과에 부적합해 보이는 극단의 재료를 고수하면서 원래의 질료적 특성을 중성화하려는 역발상은 그녀의 작업을 그리다라는 회화의 본질적 문제에 더욱 더 잠입시킨다.

  

강성은의 2011년 이후의 작품에는 풍경 탐구와 도구적 재료의 역발상적 실험이 여전하지만새롭게 선보이는 것이 있다면 필자는 그것을 타자의 풍경으로부터 피아의 풍경으로 이동해 가는 전환의 과정이라고 하겠다그녀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나에게 풍경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장소이자 실제 삶의 환경내가 스스로 적응하고 체화하는 시공간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즉 관조적인 타자의 풍경이자 체험적인 피아의 풍경이라는 이질적인 관점이 그녀의 작업에 공히 내재하고 있음을 피력하는 것이다전자를 주체가 풍경을 타자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라 한다면후자는주체가 풍경을 피아적으로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피아(彼我)’란 사전적 의미로그와 나 또는 저편과 이편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그녀의 작업에서 피아란 풍경을 끝없이 대상화하는 작가의 관조적 인식으로부터 벗어나는 또 다른 주체이다.달리 말하면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의 견해 식으로 그것은 더 이상 보이는 대상으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함께 대화하는 주체로서의 풍경이라 할 것이다. ‘탈대상화된 주체로서의 풍경을 인식하게 만드는 힘은 시각 주체인 우리를 체화된 몸으로서의 주체로 이해하는 일이다.

     

작가는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가면서 숲을 볼 때속도 때문에 오래 제대로 응시할 수 없는 이란 더 이상 보이는 대상에 머물지 않는 존재임을 체험하면서 을 탈대상화된 주체로서의 풍경으로 그리고 감각적인 또 다른 주체의 모습으로 자신의 화폭에 담기 시작한다밤의 풍경은 더욱 그러하다작가가 밤 산책을 통해 체감한어둠의 온도와 질감은 낮에 느꼈던 것과 확연히 다른 낯설지만 분명한’ 것이다그녀가 최근의 밤 풍경을 내 몸을 완전히 둘러싼 밤의 분명함을 그릴 수 있을지 스스로 시도해 본 작업이라고 진술하고 있듯이그녀는 체화된 몸으로서의 주체로서피아의 밤를 대면한다밤의 어두움은 낮의 풍경을 덮는 대신어두움을 체감하는 작가에게 선명한 피아의 이미지를 드러낸다어두움으로 능선의 음영을 덮고 숲의 구성원들을 덮는 대신 은 작가와 대화하는 또 다른 주체로서 등극하는 체험적 풍경이 된다즉 작가에게 체험되는 밤이란 주체/대상을 넘나드는 풍경이란 점에서 김진석의 사유 식으로 포월(匍越)’의 존재적 장이 된다. ‘기어 넘기로 풀이되는 포월이란 전통적 현상학에서 탐구되는 초월을 세계--존재라는 현존재로부터 탐구했던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철학적 개념을 김진석이 보다 더 현실의 지평 위에 올린 채 한국적 사유로 변형한 용어이다그것은 대상을 분류하는 유형학과 족보로 체계화하는 일반적 의미의 계보학(genealogy)을 거부한다이러한 포월의 미학은 강성은의 작품에서 밤과 숲이 만드는 탈대상화된 또 다른 주체로서의 피아의 풍경,피아의 이미지로 드러난다.

 








 



에필로그_2015 최근작 프롤로그

필자로선강성은의 작업이 타자의 이미지로부터 피아의 이미지로 그리고 유형학으로부터 탈유형학으로 넘어섰다는 단언적 진단을 경계한다단지 넘어서고 있는 중이라는 조심스러운 평가만이 가능할 뿐이다아니진행형이라는 진단조차도 최근작에 이르는 일련의 변화를 언어화하려는 시도에서 근거한 것이기에우리는 그녀의 작업에서 다시금 유형학을 화두로 작업에 천착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것과 연동한 또 다른 자유로운 변모의 지점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그녀는 2015년부터 먹도 연필도 버리고 유화라는 매체 속으로 들어와 새로운 작업에 천착하고 있는 중이다역발성의 재료 탐구라는 그간의 강박으로부터 일정 부분 자유로워진 상태에서(혹은 거리를 둔 상태에서그녀는 캔버스에 유화라는 지극히 전통적인 회화의 언어를 통해 그리기의 본질을 지속적으로 탐구한다모든 재료를자기화하는 능력이 출중한 그녀가 이 재료를 자신만의 독자적인 미학으로 승화시킬지 아니면 단지 재료라는 수단으로 삼아 또 다른 주제를 펼쳐 나갈지는 미지수이다다만 우리는 그림 그리는 사람의 우직함에 대한 신뢰가 있다고 고백하는 그녀의 회화가 최근에 지극히 개념적이고 이지적인 면모를 조금씩 벗고 조금은 더 감성적인어떤 면에서는 표현주의적인화면으로 이동하고 있는 일련의 흐름을 흥미롭게 주목할 따름이다화가로서의 우직함에 대한 신뢰가 그녀의 작품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된다.

 

전 / 

김성호, 타자적 풍경으로부터 포월하는 피아, (강성은 작가론), 익산문화재단 비평 매칭, 2015.익산문화재단 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