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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그 서문 │남성희 / 시(詩)를 그리는 사의적 풍경

김성호

()를 그리는 사의적 풍경

김성호(미술평론가)


풍경에 담는 산수 정신

남하(南河) 남성희의 근작은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자연의 풍광과 정겨운 시골 마을을 담은 다시 봄날이라는 주제의 풍경들로 펼쳐진다.

그의 회화는 표면상 서구적 조형 언어가 올라선 풍경이지만, 그 형식의 심층에는 동양의 사의(寫意) 산수정신이 자리한다. 그것은 그가 이전 작업들에서 탐구했던 수묵 실험들이 서구적 매체 위에 정갈하게 옷을 갈아입고 자리한 것이다. 달리 말해, 그것은 화선지나 장지 또는 골판지와 같은 다양한 지층 위에 농묵과 담묵의 상호 침투와 더불어 갈필(渴筆)과 파필(破筆)을 통한 발묵(潑墨)의 조형적 효과를 모색하던 그간의 수묵 실험이 와트만(whatman)지라는 서구의 매체 위에서 정연하게 질서를 찾은 것이라 하겠다. 즉 매체와 회화의 방식은 다분히 서구적인 것이지만, 그의 회화 정신은 한국화의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남성희는 최근 작업에서 황토, 오공본드, 먹을 섞어 와트만지 위에 엷게 토층을 만들어 올린 회화의 무채색 화면 위에 채도가 높은 안료를 올리고 솜으로 닦아내면서 회화를 완성해 나간다. 와트만지라는 매체도 그러하지만, 화면 위에 입힌 물감을 솜으로 다시 닦아내면서 회화의 지층을 덜어내는 회화의 방식은 한국화의 전통적 조형 언어가 아니다. 진채화의 경우 호분을 입혀 흰색을 만들고, 수묵화의 경우 여백을 남겨 흰색을 만드는 한국화의 전통적 조형 방식을 상기한다면, 그의 닦아내기를 통한 흰색 만들기는 한국화의 장에서 이단이기조차 한 매우 특이한 조형 언어이다. 그것은 스크래치 혹은 데콜라주(décollage)의 방식으로 회화의 지층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서구적 조형 언어에 보다 더 가깝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이러한 서구적 매체와 조형 언어를 통해서 가장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사의(寫意)의 세계를 펼쳐 나간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사의사물의 형태보다는 그 내용이나 정신에 치중하여 그리는 일을 지칭한다. 그가 최근작에서 문인화와 같은 남종화의 필묵(筆墨)이나 용법(用法)을 표면화하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사의의 세계를 펼쳐 나갈 수 있는 까닭은 그가 형상과 바탕을 비움의 과정으로 만나게 하거나 형상을 지우면서 완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서구적 해체와 파괴이기보다는 지움과 비움을 통해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동양적 사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필자가 그의 회화를 마음의 풍경’, ‘사의적 풍경화혹은 풍경에 담는 산수의 정신이라 정의하는 이유이다.


 

남성희, 봄동산에 오르다_와트만지, 토분, 수묵채색_97cm×130cm_2014



지움과 비움으로부터_성주괴공과 생로병사의 미학

남성희의 사의적 풍경은 검붉은 황토를 높은 채도의 안료로 엷게 덮어 나가는 방식에 이어서 그것을 다시 작은 솜으로 닦아내는 방식을 지속하면서 창출된다. 이때 황토의 밑색은 안료와 함께 서로의 몸을 뒤섞으면서 닦이는데, 점묘 방식으로 닦이는 그 표정이 매우 풍부하고 다양하다. 그것은 회화의 지층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흔적으로서의 색이다. 때로는 투명의 백색으로 와트만지의 속살을 드러내거나 때로는 반투명의 얼룩처럼 황토와 먹이 미세하게 와트만지의 표피와 섞인 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다양한 표정이 종이 위에 구축된 황토와 안료가 형성하는 매우 얇은 층 안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즉 얇은 물질의 층에 다중의 조형적 효과를 드러냄으로써 그것이 함유하는 다중의 의미를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점묘의 닦임/지움의 흔적은 대개의 경우는 나뭇가지에 가득한 꽃잎으로 나타나는데, 어떤 경우는 푸른 초원의 풀잎과 고목의 무성한 나뭇잎으로, 때로는 눈부신 햇빛이 가득한 대기로 그 표정을 달리하며 나타난다.


남성희, 붉게 물든날 (Ⅱ)_와트만지, 토분, 수묵채색_65cm×53cm_2014



그의 조형 언어는 이러한 다양한 표정과 더불어 다중의 의미를 함유한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솜으로 닦아내는 조형 언어 속에 담긴 닦음/비움/지움/드러냄과 같은 중의적 의미이다. 그것은 지워서 없애는 일이지만 한편으로 닦아서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채움/비움, 덮음/지움, 가둠/드러냄와 같은 대비의 미학이 지속되는 그의 회화는 성주괴공(成住壞空)’으로 성찰하는 동양의 물질관을 여실히 드러낸다. 또한 그것은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인생사에 대한 메타포마저 함유한다. 즉 그의 작품 속 지우기라는 조형 언어에 의해서 풍경이 생성되고(인간이 태어나고), 머무르고(늙어가고), 파괴되고(병들고), 없어지는 것(죽는 것)이 순환되는 것이다. 이처럼 순환적 시간성을 드러내는 그의 회화는, 아울러 물질이 풍경이 되고 곧 풍경이 물질이 되는 물아일체와 색즉시공의 존재론적 사유를 배태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회화는 자연의 풍경을 담고 있으면서도 동양 철학의 존재론적 사유를 함유하는 것이라 하겠다.


 

남성희, 붉게 물든날 (Ⅱ)_와트만지, 토분, 수묵채색_65cm×53cm_2014



()를 그리는 이미저리의 풍경

남성희는 자신의 조형 언어가 배태하고 있는 존재론적 사유를 드러내고 실천하는데 골몰하기보다는 자신의 풍경 이미지가 드러내는 서정적이고 시적인 감성을 펼치는데 보다 더 집중한다. 즉 철학이기보다는 시를 표상화하는데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는 아름드리나무가 있는 서정적인 풍광 속에 아스라이 펼쳐지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시골 마을의 정겨운 풍경들을 우리에게 선보인다. 낮은 지붕을 지닌 집들과 그것을 품에 안은 마음 든든한 나무들, 그리고 나뭇잎과 꽃잎을 흩뿌리는 바람을 지켜보는 높다란 하늘이 그것이다.

클라크(K. Clark)는 그의 저작 예술이 된 풍경(Landscape into Art)(1949)에서 풍경이란 예술이 아니라 예술이 되는 것으로 성찰한다. 그러니까 풍경은 그것을 해석하고 그것에 개입하여 예술의 언어로 다듬는 작가에 의해서 비로소 예술이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남성희가 해석하고 개입하여 예술로 탈바꿈한 풍경은 화사한 봄의 것이다. ‘다시 봄날이라는 부제는 우리에게 겨울과도 같은 춥고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따사로운 봄을 함께 맞이하길 염원하는 작가의 희망의 시()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대개 풍경을 눈으로 대면하는 이미지(image)로 간주하고 그것으로부터 심상풍경(心象風景)’이라고 하는 내면으로 대면하는 이미지, 즉 이미저리(imagery)를 떠올리는 것처럼, 남성희에게서 시가 되고 예술이 된 봄 풍경은 심상풍경이자 이미저리라 하겠다. 달리 말하면, 그의 입장에서, 봄 풍경은 그의 예술적 인식을 표상하는 매개체인 것이다.

산문적 내러티브이기보다는 간략하고도 상징적인 시적 메타포가 가득한 그의 이미저리로서의 회화는 시로 그린 회화이자, ‘시를 그린 회화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가 앞으로 우리에게 선보일 또 다른 풍경이 어떠한 것일지라도 필자의 예견하는 바는 동일한 범주에 수렴된다. 그것이 형상성을 가득 품은 가을 혹은 겨울의 풍경이거나, 전적으로 비형상으로 대면하는 추상의 풍경이더라도 그것이 시를 그리는 작가의 마음을 담아내는 이미저리가 될 것이라는 점 말이다. 퐁티(M. Merleau-Ponty)가 인용하는, '풍경이 내 속에서 자신을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라는 세잔의 언급처럼, 그가 앞으로도 대상을 대면하면서 주체와 객체가 상호 대화하는 풍경을 창출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그가 지속적으로 풍경 속에 정신과 물질을 통섭하는 산수의 정신을 담아내고 정중동(靜中動)의 방향성 긴장을 선보임으로써 한국화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펼쳐 나가길 기대한다.

 

출전 / 김성호, ()를 그리는 사의적 풍경, (남성희전, 2015. 6. 3~6. 8, 가나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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