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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그 서문 | 류효열 / 가능성의 세계를 향한 하얀 상상력

김성호

카탈로그 서문/ 류효열 
 
가능성의 세계를 향한 하얀 상상력



김성호(미술평론가)




Baum 34 x 17(h) x 5 cm Video, LCD, Plexiglas, Speaker 2012



파란색의 하늘을 이고 한 그루의 하얀 나무가 서 있다. 부는 바람에 몸을 실은 나무가 화답하듯 나뭇잎을 하나 둘 흩날린다. 바람 소리, 그리고 가끔씩 고요를 깨트리는 새들의 소리. 

류호열이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나무(Baum)〉(2010~ )라는 제명의 시리즈 영상 작업들이다. 그것은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일상적으로 보아왔던 이미지이지만, 한편으로는 생경한 이미지가 된다. 이미지의 외형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탈각된 텅 빈 가상의 공간 속에 그려진 비현실적인 나무이기 때문이다. 온통 하얀 색의 피부를 가진 나무도 그러하지만, 바람결에 흩날리는 사각형의 반짝이는 나뭇잎들도 그러한 우리의 인식을 앞당긴다. 


Baum 55 x 18(h) x 10 cm Video, LCD, Plexiglas, Speaker 2011


Baum 52 x 33(h) x 12 cm Video, LCD, Plexiglas, Speaker 2011


1. 상상의 물활론 
그의 영상 작업은 사물이 작가로부터 수혈 받아 꿈틀대는 생명체로 태어나는 물활론(物活論, hylozoism, animism)이 눈앞에 현시되는 듯한 착각을 우리에게 불러일으킨다. 

힐로조이즘(hylozoism)이 그리스어로 '질료'라는 뜻의 ‘hylē’와 ‘생명’이라는 뜻의 ‘zōē’가 만나 만들어졌고, 애니미즘(animism)이 라틴어로 ‘영혼’이란 뜻의 ‘아니마(anima)’로부터 유래했듯이, 물활론은 물질과 생명, 사물과 영혼의 불가분의 관계에 대해서 탐구해왔다. 사물 혹은 동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이 오늘날 대중예술의 영역에서 실현된 것이 ‘미키 마우스’류의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면, 가상으로 빚어낸 나무에 생명과 영혼을 부여한 류효열의 영상작품은 애니미즘의 이상을 순수미술의 영역에서 실현한 것이라 평할 수 있겠다.  

애니메이션이 그러하듯이, 그의 물활론 역시 비현실적인 상상의 세계를 탐구한다. 작품 〈조명등(Lampe)〉(2003)에서 가로등의 그림자를 살아 움직이게 한다든가, 작품 〈로트볼(Rotball)〉(2000)과 〈볼(Ball)〉(2004)에서 입방체나 구(毬)와 같은 단순한 사물에 감정과 물활적 생명력을 입힌 것이 대표적이다.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물활성과 비현실성은 대개 유쾌한 상상력으로부터 유발한 탓에, 관객에게 즐거운 쾌(快)를 선사한다. 목각인형이 앙증맞게 율동을 선보이는 〈선물(Gift)〉(2001), 로봇이 하늘을 날거나 묘기를 부리는 〈로봇(Roboter)〉(2002), 달리는 차 옆에서 고속도로 가드레일이 춤추는 〈고속도로(Autobahn)〉(2004), 고가도로와 빌딩이 한판 댄스파티를 벌이는 〈태그(Tag)〉(2006) 등의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경쾌한 음악과 더불어 흥미롭고도 예측불허의 기대로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를 던져준다. 

그의 영상 작품이 분량은 짧지만 강력한 내러티브와 메시지를 던지는 까닭은 그의 마술적 상상력 안에 내포된 ‘삐딱하게’ 사물을 보는 관점, 즉 ‘다르게 보기’의 창작 태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 하나가 들어있는 컵과 그렇지 않은 컵을 여러 번 자리 이동시켜 맞추게 하는 대표적인 마술놀이를 소재로 삼은 작품 〈공(Ball)〉(2004)은 우리의 일상적인 기대를 통쾌하게 역전시킨다. 우리가 공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던 다른 컵 안에서 공이 하나도 아니고 무더기로 쏟아져 내리기 때문이다. 관객의 일상적인 기대를 전복하는 이러한 마술적 상상력은 그가 사진, 영상이라는 기록을 전제로 한 조형매체를 사용하면서도, 사물이나 대상을 재현하는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이미지의 이면에 내포된 사물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가운데서 극대화된다. 그럼으로써 현실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다른 실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화두를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이다. 



Baum 100 x 150 cm digitalprint 2013



Baum 100 x 150 cm digitalprint 2013


2.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 
이번 전시 출품작들인 〈나무(Baum)〉 시리즈로 돌아가 보자. 영상 뿐 아니라 사진 작품들이 포함된 이것들은 사물과 대상에 대한 시각적 ‘재현’(representation)이기보다는 ‘표현’(expression)이라 할 만하다. 그가 실재를 모방하려는 태도를 드러내기보다는 자신만의 ‘해석’(interpretation)을 통해 실재의 이면을 들추어내는 ‘가능성의 세계’를 탐구했기 때문이다.  
역사철학자 화이트(Hayden White)는 ‘실재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현실 중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에게 드러난 역사적 사실은 여러 현실 중 하나의 가능성일 따름이다. 밝혀진 역사적 사실 이면에 무수히 많은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또 다른 역사가에 의해서 세상에 드러나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역사가 아닌 예술의 장에서 이러한 세계를 천착하는 류호열은 그런 면에서 실재로부터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탐구하는 시각철학자라 할만하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초현실주의의 전망마저 지닌다. 실재하지만 현실에 드러나지 않은 잠재태의 가능성을 예술의 영역에서 탐구하는 일이란, 그의 작품 〈고래(Wal)〉(2002)에서 볼 수 있듯이, ‘도시 공원을 유영하는 돌고래’에 대한 상상마저 가능케 한다. 그것은 분명코 지금으로선, 현실계의 지평과 다른 곳으로부터 발원한 순전한 공상이자 몽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종국에 현실이 됨으로써 상상의 지위를 회복할 날 또한 멀지 않아 보인다. 비행기를 만들고 우주선을 만들어 화성을 탐사하는 일이 현실이 됨으로써 그 가능성의 세계가  공상으로부터 상상으로 자리매김했듯이 말이다.    

물론, 류호열의 작품에서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는 미래의 실제적인 실현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그는 단지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이 창출하는 ‘가능성의 세계’에 대한 ‘메타포’를 관객과 공유하고자 할 뿐이다. 예를 들어 그는 카메라의 프레임을 사물의 기울기에 수평으로 맞추는 사진 작업들을 통해서, 중력에 수직으로 대립하는 우리의 관성화된 수평적 인식을 수정하면서 천연덕스럽게 질문한다. “이런 식으로 보는 가능성의 세계가 흥미롭지 않는가?”라면서.
보라! 그의 스크린 안쪽의 세계에는 우리가 막연하게 그려봤던 상상계가 그에 의해서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되어 펼쳐지고 있다. 파란 가상의 하늘 아래서, 흰색의 나무 피부로, 사각형의 나뭇잎으로, ‘비현실의 모습이되 마치 현실처럼’ 말이다.  



Baum 100 x 150 cm digitalprint 2013



3. 하얀 상상력  
우리의 눈에 감지되는 하얀 색이란 “태양광선을 모든 파장(波長)에서 같은 세기와 모양으로 반사함으로써 보이는 색”이다. 따라서 백색(白色)에는 빛이 머무를 틈이 없다. 모든 가시(可視)광선을 지속적으로 반사해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색은 모든 색이 반사하고 남는 텅 빈 결여의 공간이다. 그러나 빛으로서의 백색이란 모든 가시광선이 혼합된 충만의 공간이다. 백색광(白色光)이란 빛의 삼원색이 섞여서 명도를 높이는 ‘가산혼합(加算混合)’의 절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프리즘의 구속을 풀어낸 백색의 빛은 자신의 고향이, 태양 광원(光源)임과 더불어 모든 색의 빛을 다 가지고 있는 충만의 공간임을 암시한다.   

유호열은 이미 4개의 프로젝터로 벽면에 백색광만을 투사하는 〈설치(installation)〉(2000), 여러 개의 프로젝터로 가상 실험하는 〈그림자프로젝트(Schattenproject)〉(2001)와 〈레이저프로젝트(Laserproject)〉(2000)라는 작품을 통해 빛의 의미를 실험한 바 있다. 분명코 그가 미디어로 만들어내는 백색은 자연의 백색광과는 다르다. 그것은 충만의 공간이기보다는 비움과 결여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색이 빠지고, 현실이 결여된 무엇이지만,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고, 투명한 가능성의 세계와 그 효과가 빛을 발하는 공간! 그것은 마치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면서도 빛을 내는 것처럼 보이는 ‘하얀 달’의 반영(反映)의 정체성과 닮아 있다. 그의 작품이 일견 현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반영체임을 드러내면서 비현실의 세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듯이 말이다. 즉 그의 작품에 나타난 ‘현실처럼 보이는 비현실’의 세계는 관객으로 하여금 ‘달 속 토끼의 전설’을 살아있는 현실처럼 제시한다. 

상상(imagination)의 어원이 이미지(image)를 만드는(-ation) 것으로부터 유래하고 있듯이, 류호열이 이번 전시에, 나무 작업을 통해서 ‘하얀 상상력’ 위에 올려놓는 ‘가능성의 세계’는 관객의 상상작용을 통해서 생명력의 이미지로 꿈틀거리게 한다. 그런 면에서 장문의 내러티브를 내심 기대했던 관객을 배반하는 그의 간결하고도 선명한 단문의 내러티브는 이번 전시에서 그가 관객을 위해 마련한 하나의 선물이다. ●



Baum
HD 1920 X 1080 pixels
44KHz16-bit stereo
00:03:00:00 repetition
2013



Baum
HD 1920 X 1080 pixels
44KHz16-bit stereo
00:03:00:00 repetition
2011

출전/ 김성호,「가능성의 세계를 향한 하얀 상상력」, (류호열전, 2014. 11, 27~12. 16, 줄리아나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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